UFL의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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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칠수 센슈. 69.5kg!”
“고구라 센슈, 70.0kg!”
고구라의 계체 실패는 이번엔 없었다.
오히려 칠수보다도 체중을 잘 맞춘 상태였다.
“이번엔 저번보다 컨디션이 좋은 거 같네”
일본어를 꾸준히 공부한 칠수는 이제 웬만한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됐다.
“아쉽기라도 한 모양이지?”
얼굴을 맞댄 고구라가 말했다.
“아니, 너무 좋아 죽겠네”
칠수가 피하지 않고 이마를 맞댔다.
“좋아요, 좋아. 두 선수 그대로!!”
불타는 의욕이 둘의 멋있는 파이트 포즈 걸작을 만들었다.
훈련하며 친해진 나오키도 경기 전날 칠수를 찾아왔다.
“가자, 맛있는 거 먹으러”
태도로 보아 아무래도 로킥 전략은 진짜였던 모양이었다.
“맛있는 거? 뭐 사주게?”
나오키가 칠수들을 데려간 곳은 톤부리 집이었다.
톤부리는 일본식 덮밥이다. 새우튀김, 소고기볶음 등이 올라가며 와사비와 초 생강 등이 올라가는 게 특징이다.
“우와 잘 먹겠습니다···.”
톤부리라면 사족을 못 하는 정복남 관장이었다.
톤부리만 사준 게 아니다. 교자, 연어 덮밥, 돈가스까지 계체 때문에 고생한 그간의 고민이 한 번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나오키와 그간의 이야기를 하며 맥주 한잔을 기울이는데 연상연 실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연 실장은 최근부터 심동연과 칠수의 경기 외적인 모든 일을 돕고 있다.
“네, 연 실장님. 무슨 일이죠?”
“저녁 8시까지 호텔로 올 수 있죠?”
시계를 보니 7시였다.
“무슨 일이시죠?”
“뭐야, 연 실장이야? 아니, 나한테 전화하래도 왜 직접···.”
연 실장의 ‘연’ 자만 들어도 얼굴이 빨갛게 변하는 정 관장이다.
“미국 언론사 스포츠 인터내셔널에서 취재 기자가 와 있어요. 칠수 선수 보려고 여기까지 날아왔데요”
스포츠 인터내셔널 데이빗 콘 기자가 묵고 있는 숙소는 슈퍼 멀티짐 식구들의 바로 아래층이었다.
“Hi, I’m david cone. NIce to meet you”
데이빗 기자의 덩치는 칠수는 물론 심동연 보다도 컸다. ‘근돼’ 정 관장보다도 무거울 것 같았다.
“전에 미식축구를 했데요”
연 실장이 한 마디 보탰다.
통역 걱정을 하는데 우려를 연 실장이 덜었다. 연 실장은 중국어, 일본어, 영어까지 능통하다.
“여기 온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당신의 인터뷰를 싣기 위해서, 두 번째는 인터뷰를 마치고 말씀드리죠.”
데이빗 기자의 인터뷰는 짧은 게 아니었다. 한 시간이나 대화를 나누고도 질문 거리가 남아 있었다.
“기자님, 선수가 쉬어야 할 상황이라···.”
정복남 관장이 중간에 들어와 시계를 가리켰다.
“오, 관장님. 잘됐네요. 함께 들어와 잠시 이야기하시죠. 금방 끝납니다”
데이빗 콘 기자의 두 번째 제안은 미국 격투기 리그 UFL에 대한 것이었다. 세계 시장은 크라이드로 대표되는 일본, 그리고 UFL의 미국으로 양분되고 있다.
“UFL의 레이나 왓슨 대표 아시죠? 레이나 대표가 당신의 아주 큰 팬입니다”
레이나 대표는 UFL을 만든 장본인이자 현재까지 UFL을 10년 넘게 잘 이끌어 오고 있는 사람이다. 화끈하고 다혈질적인 성격이지만, 선수들을 잘 대접해주기로 유명하다.
“네, 알고 있습니다. 저도 UFL 경기 보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지만, 2007년 정도를 기점으로 UFL의 기세가 크라이드 턱밑까지 쫓아왔다. 칠수가 회귀하기 전인 2019년에는 세계가 UFL로 거의 통일돼 있었다.
“제가 최근 인터뷰를 했는데, 칠수 선수가 UFL로 오면 바로 DJ 켄 선수와 타이틀전을 마련하겠다 하더라고요”
DJ 켄은 ‘천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전 UFL 라이트급 챔피언이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챔프 자리에 올랐지만, 직전 경기에서 ‘이뇨제’ 양성 반응을 보여 챔피언 벨트를 박탈당했다.
이뇨제는 소변 배출을 돕는 약이다. 많은 선수가 체중 감량 보조제로 몰래 사용하곤 한다.
“야, DJ켄이랑 대결이라니. 나도 기대된다”
정 관장이 말했다.
“DJ 켄······. 대단한 선수죠. 저도 싸워 보고 싶어요”
현재 격투 마니아들이 꼽는 가장 일 순위 경기 중 하나가 고구라 타카노리와 DJ 켄의 경기다. 칠수가 고구라를 꺾으면 그 꿈의 매치는 그의 몫이 된다.
데이빗 기자가 명함 두 장을 칠수에게 내밀었다.
“이건 내 연락처, 또 하나는 레이나 대표의 연락처예요. 개인 연락처라고 하니 언제라도 전화하면 기쁘게 받을 거예요”
인터뷰가 끝나자 연 실장과 정 관장이 모여 환담을 가졌다.
“UFL이라니 점점 스케일이 커지네요”
정 관장이 말했다. 아까부터 연 실장만 보고 있는 정 관장이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UFL의 시장 규모가 이미 크라이드를 넘어섰어요. 크라이드는 야쿠자 연계설 등 악재가 많죠”
“결국 칠수가 UFL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러자 연 실장이 다리를 바꿔 앉으며 말했다. 순간 칠수가 정 관장의 속마음을 읽어버렸다.
<하고 싶다...>
“크흡!”
순간 침이 터져 나오려던 걸 간신히 참았다.
“뭐야, 괜찮아?”
“아뇨, 사례가 걸려서. 괜찮아요”
“아무튼, 결국 칠수 선수는 물론이고 심동연, 이언규, 인계석까지도 목표를 UFL에 둬야 할 거예요”
그러더니 연 실장이 옆에서 묵직해 보이는 쇼핑백을 가져왔다.
“여기 영어책이 있으니 각자 한 권씩 가지세요. 이제 영어 공부 하셔야 합니다.”
연 실장이 일어난 정 관장을 잠시 쏘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곰탱이 아저씨 왜 이렇게 쳐다봐.>
정 관장은 그런 까칠한 모습이 더 맘에 드는 눈치였다.
“들었지, 앞으로 영어 공부 다 같이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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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구라와 칠수의 경기가 대회 최고 이벤트는 아니었다.
같은 날 크라이드 헤비급 타이틀전이 동시에 열리기 때문이다.
‘얼음 황제’ 알렉스 알렉세이노프. 미르코 크로우의 경기였다.
알렉세이노프와 크로우의 1라운드는 그야말로 불꽃 튀는 공방전이었다.
넘기려는 알렉세이노프와 때리려는 크로우가 아주 치열하게 부딪치며 5분을 보냈다.
알렉세이노프가 한 차례 테이크다운에 성공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반면 크로우는 스트레이트 연타 등에 성공하며 1라운드를 가져갔다.
“그래도 결국은 알렉세이노프가 이길 거야.”
정 관장의 예상이었다.
“저도 알렉세이노프 승”
전략가 이언규도 똑같이 생각했다.
칠수는 이 경기의 승자를 알고 있었다. 알렉세이노프가 테이크다운에 연거푸 승리하며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다.
“전 그래도 크로우 승에 걸어볼래요”
칠수는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크로우 팬이었다.
전광석화 같은 하이킥, 그리고 냉정해 보이는 인상. 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아버지 크로우.
경기는 2라운드 중반 알렉세이노프가 테이크다운에 성공하며 급속도로 기울어졌다.
남은 3분 내내 크로우가 일어나지 못했고, 3라운드도 비슷했다.
3라운드 마지막 무렵, 크로우가 잇달아 하이킥을 날렸으나 예상한 알렉세이노프가 공격을 모두 막아내며 경기가 끝났다.
“이런 대박 경기 뒤에 나서야 한다니”
칠수도 순간 자신의 경기를 잊은 채 경기에 빠져들어 버렸다.
“칠수야, 준비해!”
최진호 대표의 신호에 맞춰 칠수와 정 관장, 이언규 등이 문을 열고 나섰다.
한국 최초로 크라이드 챔피언 벨트를 가져오기 위한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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