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셔츠 위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목덜미를 쓰다듬어봤다. 방금 전까지 강하게 짓눌려진 탓에 얼얼함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어디 하나 부러진 곳은 없었다.
이번엔 목을 쓰다듬었던 손을 내려다봤다.
손바닥은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채였다.
“왜? 손이 아파?”
아니 아픈건 아닌데, 그런 변명을 하는 중에도 손은 텅 빈 채였다.
다음에는 잃어버리지마, 분명 내가 잃어버렸던 것들 중 하나였을까?
그 꽃, 도대체 무엇이었으며 어디로 사라져버린걸까.
텅 빈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더이상 손아귀 속에 보이지 않는 것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그것을 온전히 속으로 흡수해버릴 기세로 움켜쥐었다.
머지 않은 곳에서 모래먼지가 날렸다. 그곳에 넘어져있던 녀석은 옷에 묻은 먼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만 이쪽을 강하고 공허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아츠시, 그 아저씨가 손을 노리라고 했던 것..기억나?”
아까보다 조금 더 커진 노아의 눈 속에 무엇인가 차올랐다. 이미 절반 이상이나 머금고 있던 달빛 그 너머로,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근심까지 말이다.
그녀와 나의 시선은 같은 곳에 고정되어있었다.
이미 열상을 입어 글씨가 훼손되어버린,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말을 적어놓았던 손이다.
그때, 자신의 경험이라며 무용담을 늘어놓던 남성이 떠올랐다.
가슴에 새겨놓은 커다랗고 투박한 글씨, 한번 지워져버린 글씨를 되살리기 위해 스스로 칼을 들어야만 했던 이유.
버릇처럼 쇄골 부분을 어루만지던 그가 품고 있던, 오래된 상처가 가진 의미.
“손 이외의...다른 곳에도 글씨를 새겼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을지도 모를 글씨를 베어야한다고?
가뜩이나 가깝지 않던 해소점과의 거리가 다시 한번 멀어졌다. 허나 머지않아 실의에 빠진 표정은 진지함을 되찾게 되었다.
되찾을 수 밖에 없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던 녀석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이유가 있었다.
“정신 차려라 쿠니...!”
손이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스쳤다. 손톱이 남기고 간 길을 따라 선홍색 피부가 벌겋게 부어올랐다.
“..차릴 리가 없지!!”
자리에서 일어나기위해 몸을 튕겨올렸다. 가벼우면서도 스프링의 탄력과도 같은 것을 지닌 몸이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바닥에 닿은 다리가 허무하게 무너져내렸다.
가볍다고 느껴졌던 것은 단순한 착각이었다. 가벼운 것이 아닌, 더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게 되어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 뿐이다.
[싸움을 지속하긴 어렵겠네.]
오랜만에 들어보는 듯한 목소리, 반가움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에코의 손아귀가 또 한번 이쪽을 노려왔다.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도 피할 수 있는 직선적인 공격이다.
움직임이 제한된 이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으로 꼽을 점이라면, 저 눈이 잔뜩 풀린 녀석에게는 나 이외의 사람이 보이지 않는 듯하다.
아직까지 노아를 노리고 달려온 적은 없으니까.
기분 나쁘게도, 녀석의 본성은 나만을 노리고 있었다.
전혀 반갑지 않은 사실이다.
“..나 잠깐 어깨 좀 빌려줘.”
이렇게 어깨라도 빌려서 몸을 일으키는 것 정도가 가능한 만큼, 걷거나 뛰진 못하더라도 가만히 서있을 수는 있다.
다가오는 녀석을 향해 비장의 한 방을 먹이는 것 정도의 가능성은 남아있다는 뜻이다.
“있잖아, 노아.”
노아의 어깨에 두른 왼팔마저도 떨려왔다. 몸 구석구석으로부터 한계다 라는 신음이 듯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정신을 차리는데는 말이야.”
노아의 갈색 동공이 확장되었다.
어떠한 깨달음에 의한 감탄보다는, 마치
진심이야? 그딴 위험한 짓을 하려고??”
라며 소리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기발한데? 실험실 여럿 정도는 우습게 날려먹을 탐구심이잖아.]
동감이야.
그래도 당신이 말해줬던 것을 기반으로 한 실험이니까, 잠자코 지켜봐.
자신의 기억을 보여주겠다며 손을 내밀어보라던 사람이 있었다.
‘단순히 새끼손가락을 걸어보이는 것만으로도 힘은 강해져.’
마음의 벽은 가벼운 접촉 혹은 신호만으로도 얇아질 수 있다.
그 벽 속에 쓰러져있을 에코에게 목소리를 전달하는 법, 장황하게 설명하던 신념이란 것을 이루지 못한 채 쓰러져있는 녀석을 깨우는 법.
정신 차리라며 이마에 따끔한 충격을 주던 사람이 알려준 방법.
[이번엔 몇 배 정도가 적당할까? 아예 머리를 리셋시킬만한 충격?]
아니야.
가전제품도 아니고, 껐다 켜서 고쳐질 문제가 아니라고.
그냥, 적당히 정신을 차릴 정도의 힘만 있으면 돼.
“그 정도면 충분해.”
나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달려오는 녀석에게 붙잡힌다면 아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그래도, 가까이 붙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감수해야할 위험이다.
엉거주춤하게 달려오는 에코를 똑바로 마주했다.
피하지 않는다.
중지손가락을 엄지에 걸어 장전시켰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가버릴 듯한 장력을 견뎌내었다. 이상적인 거리에 진입할 때까지는 어떻게든 견뎌내야만 했다.
“노아, 나를 지탱해줘.”
어깨에 걸쳐놓은 팔로서 비장의 한 발을 지탱했다. 넘어지려 할 때면 나를 지탱해주는 손이 어깨를 감싸주었다.
활시위를 당기는 사수처럼, 깊게 들이마신 숨을 뱃속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앞으로 에코와의 거리는 5미터.
3미터, 2미터.
1미터.
왔다.
“정신 차려라!!!!!”
쿠니에의 오른손이 눈에 보이는 세상 전부를 집어삼켰다. 앞은 암흑처럼 캄캄해졌으며, 곧이어 다가온 충격에 발이 땅으로부터 떨어졌다.
눈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어도 상관 없어.
어두컴컴한 세상이라도, 사람의 머리가 어디쯤 있을지는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몇 배로?]
그냥, 내가 낼 수 있는 힘의 100퍼센트.
그 정도가 좋겠네.
딱-
눈앞을 가린 손이 힘을 잃었다. 헐거워진 손틈 사이로 달과 별의 빛줄기가 새어들어왔다.
에코는 마임 술사가 투명한 벽에 부딪히는 묘기를 선보이듯, 고개가 뒤로 젖혀진 채로 쓰러지고 있었다.
혼자 짊어지기에는 다분히도 무거운 것들을 안고 있던 녀석이 쓰러졌다.
달려들 때와는 정반대의 무게로, 아주 조용히 쓰러졌다.
조금의 먼지가 공기중으로 떠올랐으나 이내 가라앉았다.
그 먼지들도 비슷한 소리를 내었을 것이다.
한없이 후련한 녀석이었다.
에코의 손바닥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진작에 훼손되어버린 글씨는 이제 너덜너덜하다는 표현 외에 어울리는 것이 없어보였다.
그럼에도 처량하다거나, 불쌍해보이지는 않았다.
“분명.”
히죽거리던 녀석의 어깨에 업혀있던 모습을 몇 번이고 되새겨봤다.
모든 장면의 에코는 손바닥이 단검에 꿰뚫려버린 모습이었다.
“단검에 꿰뚫린게 맞는데...”
그 말이 방아쇠가 되어 공이를 자극했다.
누워있던 에코의 눈은 방금 전까지 잊고 있던 생기를 되찾고 빛을 탐했다. 그리고 마치 잠꼬대라도 하듯, 발을 강하게 앞으로 후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린 우리는 바닥에 나뒹굴어버렸다.
“..이건...그런 쇠붙이 따위에 끊어질 신념이 아니란 말이다.”
그에게는 더이상 일어날 힘이 남아있지 않은듯, 간만에 던져보는 대사를 누운 채로 읊어댔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몸 어디에도, 더이상 일어날 힘을 끌어올만한 곳이 없었다.
팔도 다리도 만신창이다. 그것을 내려보던 눈이 괜히 다른 곳을 쳐다보려할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모습이었다.
에코가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안간힘을 쓰며 어딘가에 기댈 곳을 원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에게는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욕심이었다.
녀석의 배에서 쏟아져나오는 생명력이 바닥에 고여갔다. 그것을 한없이 내려다보는 얼굴도 단숨에 혈색을 잃어갔다.
“고집 좀 그만 부려!!”
이 둘의 처절한 움직임은 노아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나오게 만들기 충분했다. 자신의 배를 쳐다보고만 있던 에코도 잠시나마 노아를 쳐다볼 정도로, 나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고 쳐다보고만 있을 정도로 서럽게 울어버렸다.
노아를 쳐다보던 눈이 이번엔 나를 향해 움직였다.
에코의 두 눈은 무엇인가 말을 하고 있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이번엔 그것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자신의 끝을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한 적절한 준비를 마친 눈이 말했다.
끝을 준비하자.
그래.
네 의뢰는 접수됐다.
“쿠니에 에코.”
이쪽도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어떻게든 움직였다.
배가 고픈 인간이 자신의 살점을 뜯어먹는 마음가짐으로, 이전에는 없던 화력으로 모든 것을 연소시키면서도 최악의 연비를 가진 기관에 시동을 걸었다.
“이제 해방시켜줄게.”
에코 또한 최고의 화력과 최악의 연비로 몸을 불태웠다.
남길 것은 이미 충분히 남겼다고 생각한 그는 모든 것을 불태우기로 마음먹은 모습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느린 걸음으로 다가갔다. 바람이 조금 거세지는 것만으로도 쉽사리 휘어질 견고함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부러지지 않았다.
“...시 하나가 떠올랐어. 그런데...”
“말하지 않을래.”
이제는 지겨울만큼 지겨워진 안경과 오른손, 그곳의 글씨.
에코는 여전히 같은 메뉴얼을 고집하듯, 안경을 고쳐쓰고 오른손을 뻗어왔다.
“쇠붙이 따위에 끊어지지 않을 신념이라..”
그게 진짜 이유였다면, 조금 허무하기도 하네.
“다행히도, 이건 쇠붙이 따위가 아니야.”
아츠시의 오른손이 살짝 굽혀지고는, 최후에는 무엇인가를 쥔 듯한 형상을 취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은, 그렇게 무엇인가를 움켜쥐고 혈관이 꿈틀거릴만큼 힘을 끌어모았다.
아츠시는 생각했다.
이 미지의 물체가 만들어낼 단면도, 이것이 흉내낼 재질, 이것이 목표물을 완벽히 끊어내기위해 필요한 힘, 그리고 최후의 모습까지.
그리고,
휘둘렀다.
마음 깊은 곳의 이성은 꾸준히 정답을 외치고 있었다.
생각해봐! 쿠니에의 오른손은 상처를 입으면 끝이야. 힘이고 뭐고 다 사라져버린다고.
그럼에도, 왜 굳이 오른손만을 휘둘러댈까?
에코가 진심으로 나를 이기고 싶어했다면, 적어도 약점을 들이밀면서 싸우지는 않았겠지.
거기까지만 말해.
걔가 들이민 것은 단순히 오른손도, 힘이 새겨진 글씨도 아니야.
손을 휘두른 마음, 그건 에코의 진심이야.
아츠시의 빈 손은 보이지 않는 직선을 분명히 그려내었다.
손목의 바깥쪽부터 안쪽까지 이어지는 최단거리, 그 직선을 향해 끊을래야 끊을 수 없던 것을 끊어냈다.
그 선을 따라 맺히기 시작한 핏방울이 굵어지고, 머지않아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에코의 진심은 절단면을 따라 미끄러지듯 움직이고는, 결국엔 땅바닥에 떨어지는 최후를 맞이했다.
“이 미친 세상에서...미치지 않으려다...”
“나도 미쳐버렸네.”
그 말이 목에 걸렸던거냐.
에코.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피소드의 끝이 머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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