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어 81화
‘실패하지 않는다’
이 말이 특정 확률로서 성공할 일의 확률을 높여준다는 것은 흔히들 알고있는 사실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실패할 확률을 줄여준다는 그 말에도.
분명한 한계는 존재한다.
100%의 성공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더 먼 곳을 봐야지.]
성공을 전재로 깔아두어야만 ‘시도’할 수 있는 일의 성공을 기원하는 말을 내뱉는다면.
과실이 열리기를 기대하는 말을 뱉으려면 묘목이 충분히 자라난 상태여야 하듯이, 다만 너무 터무니없는 것을 전재로 깔아둔다면 그 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안, 다들.’
지금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에게 ‘미츠에다 쇼라는 인물을 기억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당신이 얻을 수 있는 대답은 부정 뿐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시간속을 사는 사람이 ‘지난 것’을 잊어버리는 일은 매우 흔하기 때문이다.
언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지만, 좀처럼 기억나지않는 무명인.
나 스스로도 많은 노력을 해나갔다.
현재의 내 모습으로부터, 더이상 예전의 ‘누군가’를 떠올려내지 못할 정도로 많은 노력을.
끊임없이 나를 향해 말했다.
“너는 미츠에다 쇼가 아니야.”
‘너는 미츠에다 쇼가 아니야.’
[너는 미츠에다 쇼가 아니야.]
너는...누구야?
사전에 ‘누군가’에 대한 정보를 모두 지워달라는 부탁을 받은 타니 센이치가 내걸어놓은 시간은 5년.
정보를 싸그리 지우는데에는 그만한 시간이 걸리지 않겠지만, 갑자기 사라져버린 인물을 찾아나서려는 사람들이 포기하기까지의 시간을 포함하면 5년이 적당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존재하지만, 존재한다는 기록은 없다.
음수값의 질량을 가진 물체처럼, 존재 자체가 모순덩어리인 인물.
모순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언제부턴가, 내가 낼 수 있는 세개의 목소리는 하나로 줄어들었다.
더이상은 머릿속으로 울리는 목소리도, 그것에 대답하는 목소리도 모두 입 밖으로 뱉는 소리에 잡아먹혀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내 목소리가 가장 큰 위력을 갖게 될 때에 맞춰 ‘반드시 이뤄져야만 하는 말’을 뱉는 것.
칠흑같은 어둠속을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 간접적으로나마 밤길을 배회하던 소녀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나의 나약함이구나.
그럴 때마다 문득 올려다본 철조물은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붉은 눈을, 아주 천천히 깜빡, 깜빡.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그 철조물을 오르고 있다.
나의 목소리가 가장 잘 울려퍼질 새벽 4시.
나는 지금 누구보다 죽음에 가까우며, 지면으로부터는 가장 먼 곳에 서있다.
“거 마지막인데, 이 말 하나만 이뤄주라.”
그냥 하는 말도 아니고, 유언이거든.
“...사실, 미츠에다 쇼는”
가상의 인물이었어.
주마등이란 이런 것인가.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날들을 한 장면씩 머릿속으로 투영시키는 것이라 들었는데...
왜 나는 모든 것이 반대로 흐르...
300미터의 높이에서 바닥까지 도달하는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의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내 말은, 내 유언은 이루어진건가?
바닥에 닿기 전에 이루어지길 바랬는데, 빌어먹게도 아프다.
손 발이 움직이질 않는다.
사실 저 뭉게진 형체의 검붉은 것들이 팔다리인가?
저 정도라면, 움직이지 않을 만도 하네.
싸늘하다.
아스팔트 바닥은, 이렇게 차가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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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도 가기 싫어지잖아~!’
거기 꼬맹이, 소리지르지마라.
머리울리니까.
“음~ 있잖아.”
‘나랑 내기할래?’
내기...
내기?
“무슨 내기?”
“내일 학교에서 임시 휴교령을 내릴 것 같은 기분이거든!”
내기...휴교...
휴교?
아니!!!! 잠깐만!!!
[짜-악]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뺨이라도 한 대 맞은 듯한 모습으로 위태롭게 서있었다.
“....야...너 괜찮아?”
“....아....”
뭐지?
잠깐, 내 팔은? 다리는?
분명 검붉은...뭐였지?
“...아스팔트는?”
“쇼...너 이상해.”
이 뺨의 얼얼함, 그리고 손바닥의 통증.
그렇다면, 저 소년이 본 것은...아마도 자해하는 친구의 모습이겠군.
“아니..아니야.”
“그래..? 그러면 아까 말한 휴교...정말 그럴 것 같아?”
이 녀석, 분명히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원래 이렇게 위축된 모습을 보이던 아이는 아니었는데.
뭐, 갑자기 스스로 뺨을 때리는 친구의 돌발행동을 근거리에서 목격했다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변화인가.
“아니.”
“역시 아니구나...학교 가기 싫은데~”
이 녀석이 집에 가서 ‘쇼가 자해했어’ 라고 말을 한들, 그저 아이들의 놀이에서 비롯된 나쁜 장난 정도로 생각하겠지.
“휴교는 없다. 괜한 기우일 뿐이었어.”
“기우...? 너 진짜 괜찮아? 말투가 바뀌었어..”
가방끈을 움켜쥐고 걱정스럽게 입을 여는 녀석을 향해 돌아선 나는, 그대로 녀석의 어깨를 토닥이며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응, 괜찮....”
‘왠일로 다른 길로 돌아가겠다면서...’
“아야기...”
“응? 아츠자와라면...아까 복도에서 봤는데?”
아야기를 알아?
“걔, 어디로 갔어?”
어깨를 토닥이려던 손은 그대로 녀석을 잡고 대답을 재촉하기위해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고, 어지럼증을 호소하던 그는 우리가 서있던 곳과는 정 반대 길의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저...저기...”
“혼자?”
“으응...아마도?”
아야기가 원래 살던 집은, 분명 저렇게 먼 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다.
“넌 먼저 집에 가!!”
당시의 나는 정신이 없어서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겨우 열살 혹은 열한살의 나는
건물을 뛰넘어다닐만 한 힘이 자리잡지 않은 상태였다.
.
.
.
학교 정문으로부터 정반대의 길까지, 하필이면 자전거도 가져오지 않은 날이었다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교문 앞에서 친구 혹은 자녀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무리와 그들의 대화소리는 정겹다만, 지금은 그것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
혹시, 이 쪽에서 이름을 부른다면, 잠시나마 걸음을 멈추지 않을까?
“아야기..!”
틀렸다, 숨이 차서 큰 소리가 나오질 않아.
겨우 이 앞까지는 들릴지 몰라도, 저 골목까지 울려펴질 목소리는...
....
.
.
“저기...”
혹시 나를 찾는거야?
- 작가의말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마침표의 그림자는 하얗다’라는 작품도 연재중이므로, 한 번씩 제 서재에 들러 감상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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