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음...아뇨. 특별했으면 눈에 띄었을 텐데, 그런 사람은 한명도 없었던 것 같아요.”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전부 우리처럼 착하지만은 않아.”
좋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주먹에 살짝 힘을 주던 이치는 손을 한번 세게 쥐었다가 피면서 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적어도 ‘내가 만나본 사람들’은...”
단순히 우울함에 의해 텐션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사람에게 곧 잘 퍼주는 이치의 성격으로 미루어보면 다른 능력자와의 인간관계에서 아물지 않는 상처를 받았을 가능성이 다분했기에 굳이 속으로 삼키고 있는 것을 끄집어 낼 생각이 없었다.
“언니, 무슨 일 있었어?”
다만,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이미 궁금증을 긁어주는 호기심 많은 소녀가 있었다.
“하아... 아!! 짜증나...”
이치는 천장을 향해 한번 소리를 지르고는 말을 이었다. 평소엔 창문을 열어놓지 않는 이상 외부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게 방음처리가 잘 되었다고 생각한 공간인만큼 내부의 소리도 밖으로 세지 않고 천장과 바닥사이의 벽에 부딪히며 맴돌았다.
“나 뿐만이 아니야. 소장님, 에다 씨...전부 접촉은 있었어.”
이치의 말에 따르면 아직 내가 오기 전, 자신들을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몇 번 들렀다고 한다. 처음에는 사이비 종교인가 싶어서 되돌려 보냈지만 그들은 카야 소장님이 ‘신의 말씀’을 쓴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말을 던졌고, 결국 그들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 녀석들은 카야 소장님한테 힘을 빌려달라고 했어. 물론 소장님 성격상 쿨하게 빌려주고 치웠어도 됐지만...그 놈들, 지들 목표가 ‘신을 세우는 것’이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나 싶어서 결국 또 내쫒았지.”
신을...세운다...?
“재밌는 말을 하네, 그 사람들.”
“재밌는데서 끝났다면 다행인데 말이지...거머리 같은 녀석들, 어휴!!”
결국 그 뒤로 꾸준히 접촉을 해오다가 내가 들어온 이후로는 아직 접촉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저 고사이 류노신 이라는 인간도 어쩌면 그 놈들 편일수도 있다 이 말이지.”
“제가 만나볼게요.”
“에...?”
고개를 뒤로 젖힌 상태의 이치가 눈만 옆으로 돌리는 무서운 포즈에 잠시 놀라버렸다.
“이치 누나는 그 사람들하고 접촉하기 싫잖아요. 그리고 노아를 괜히 위험할 수도 있는 일에 빠트리고 싶진 않고. 그러면 역시 제가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지잉-’
“아 잠시만요...”
주머니에서 울린 진동의 원인제공자는 당연하게도 그분이었다.
‘그럼 나대신 한번 가봐.’
“에다 씨인데요..? 으악!!!”
사무실 창틀에 앉아 다리만 까닥거리고 있는 에다 씨의 예상치 못한 등장에 한 번 더 핏기가 가실 뻔 했다.
“어 에다 씨! 왜 거기로 들어오셨어요?”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순 없잖아?’
좀 전의 고사이 류노신에 대한 회의를 연답시고 비밀회의라며 문을 마음대로 잠갔던 이치의 모습이 생각났다.
“누나, 아까 문...”
“아 맞다 맞다. 잠금장치를 푼다는 걸 까먹었구나.”
‘문 밖에 카야가 기다려. 빨리 여는 편이 좋을 걸?’
오늘만 세 번째로 핏기가 가실 뻔 했다.
허겁지겁 문으로 뛰어가서 잠금장치를 풀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 앞에는 어른의 미소를 띤 소장님이 공기가 차가워질 듯한 살기를 머금고 서있었다.
“이치야?”
“아...큰 일 났다...”
문을 반 쯤 연 이치는 입을 제외한 전신이 얼어붙은 듯, 카야를 올려다 본 자세로 굳어있었다.
“그런 건 속마음으로 생각하고, 나한테 할 말 없니?”
“...살려주세요...?”
‘쾅-’
“어라~ 차키가 이상한 곳에 걸려버렸네?”
카야가 팔을 가볍게 휘두르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의 콘크리트 벽에 차키의 금속부분이 그대로 박혀버렸다.
“다시 해볼래?”
“...역시 살려주세요...”
내가 봐도 ‘살려주세요’가 맞는 대답인 것 같은데.
“벽에 ‘걸린’ 차키 뽑아서 내 책상에 갖다놓는 걸로 벌은 면해줄게. 알았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치를 보고 카야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사무실로 들어왔다.
분명히 카야의 손이 이치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 이치는 살기를 감지한 듯 움츠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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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차피 하던 얘기니까 마무리는 지어야지? 내가 들은 바로는 ‘리온’이라는 고객을 아츠시가 직접 만나보고 싶다. 정도로 요약되네. 이유는?”
“네...아무래도 그 ‘리온’이라는 고객이 사무소에 자주 의뢰하는 점은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됐습니다...만약 ‘리온’이 ‘고사이 류노신’이라는 사람이 맞다면, 그 이유는 신어와 관련이 있을 거 에요.”
“흠~확실히 그 고사이 류노신이 맞아. 그렇다면 그가 신어와 관련되었다고 생각한 이유는?”
마치 일개 형사가 반장에게 수사 보고라도 하는 장면이 머리속으로 겹쳐졌다.
“이 영상을 한번 봐주세요.”
아까 찾은 2분짜리 클립을 재생시켜서 소장님께 드렸다.
‘툭툭’
‘카야 언니 무섭지? 큭큭...’
‘...응...’
노아는 방금 전의 상황이 익숙한 듯, 장난을 걸어왔다. 저런 모습을 보고도 웃을 수 있다니, 여러모로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아츠시 말투가 너무 굳었어. 평소대로 해도 될 걸?’
‘어떤 사람이라도... 벽에 열쇠가 날아와 꽂히는 장면을 봤으면 조심하게 될 걸...물론 너는 예외지만’
휴대전화의 화면이 검게 변하면서 재생이 종료되었다. 영상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전화를 돌려주려는 카야의 움직임에 몸은 지나친 공손함으로 반응했고, 생존 본능이란 것은 이런 거구나,라는 값진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 충분히 의심이 되는 상황이긴 하네. 그렇다면 고사이 류노신도?”
“네. 일단 그도 신어의 사용자...혹은 몇 달 전의 저처럼 아직 발굴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됐어요.”
“나도 뭔가 목적이 있다고 생각은 했다만...그 목적이 신어와 관련되었다면 조금 반전인걸.”
“네?”
“그 부분은 직접 만나보는 게 이해가 쉽겠다. 큭큭...”
진지한 분위기에 갑자기 웃음이 세어 나온 소장님의 모습에 당황한 나와는 달리, 갑자기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는 에다 씨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네...? 설마...”
“응...크큭큭...네가 생각하는 게 맞아.”
“네???! 설마 그 인간...에ㄷ...커헉!!!”
가만히 앉아있던 에다 씨는 어느새 내 명치에 주먹을 찔러 넣었다. 숨을 쉴 수가 없어 몸부림치다 의자에서 떨어진 나를 무시하고 에다 씨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 인간...에다 씨가 취향이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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