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진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유진이와 이야기는 오랜만이네요.”
“그래.”
헌터 회사 안단테, 팀 오리온 소속 에이스 헌터 강현수, 그리고 안단테의 사장 강철.
대한민국 헌터판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두 사람이 한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
현수는 자꾸만 엘리베이터 거울을 보며 강박적으로 옷차림을 점검했다.
아버지 강철은 씁쓸한 얼굴로 그 광경을 보다가 이내 머리를 털었다.
그의 감정이 어느 정도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유진은 그들 가족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애교도 많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항상 웃고 있던 아이.
천재적인 재능으로 한국 무용계를 넘어, 세계를 놀라게 하던 아이.
그리고 비극적인 사건으로 날개가 꺾인 채 꼬꾸라져 버린 아이.
어머니가 죽고, 유진은 형과 아버지에게 마음을 닫았다.
띵.
앨리베이터 계기판이 36층을 가리키고, 이내 문이 열렸다.
현수가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오고, 현관 손잡이에 손을 대다가 멈칫했다.
“괜찮을까요?”
“뭐가.”
“유진이는 아직도 아파하는데, 일 얘기 꺼내서 괜히 애 속을 헤집어놓는 건 아닌지.”
“언젠가는 풀어야 할 문제였잖아. 평생 얼굴 안 보고 살 것도 아닌데.”
평생 얼굴을 안 보고 살 것도 아닌데.
현수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쳐졌다.
강철의 입도 일자로 굳게 다물렸다.
현수가 한참이나 머뭇거리고 있자 강철이 나섰다.
그의 크고 단단한 손이 현관 도어락에 잠시 머물렀다가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의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아영의 목소리였다.
“어, 나야.”
“앗, 사장님?”
이내 도도도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현관문이 열렸다.
“사장님! 말씀하고 오시지! 앗, 도련님도!”
아영이 놀라서 외쳤다.
“급한 일 때문에.”
강철이 어색하게 말하고, 뒤에서 현수도 어색하게 웃었다.
“이럴 게 아니라 일단 들어오세요. 차 드릴까요. 아니면 커피?”
“난 커피로.”
“저는 허브차로 주세요.”
강철과 현수가 아영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들어온 본가(本家)는 익숙한 냄새가 다 빠져서 마치 남의 집 같았다.
표면적으로는 그들 가족의 집이지만, 유진이 ‘For Honor’를 시작한 이후 강철과 현수는 회사 주변에 따로 집을 사서 살고 있었다.
집은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서 흔한 먼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아영이 성실하게 잘 청소한 모양이었다.
식탁에 두 남자가 앉고, 아영이 물었다.
“작은 도련님 불러드릴까요?”
“재촉하지 말고, 안전 충분히 확보하고 나서 나오라고 전해주게.”
“넵!”
커피와 허브차를 담은 찻잔이 아영의 염동력에 둥실둥실 날아서 그들 앞에 달칵 내려앉았다.
아영이 유진의 방으로 들어가고, 현수가 차를 호록 들이켜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말씀하실 생각이세요? 솔직히 얘기하자면 저는 모르겠어요.”
“그러게.”
강철이든 현수든 어딜 가든 해야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 어떤 자리에서도 지금만큼 막막하진 않았던 것 같았다.
사과부터 해야 할까.
수백 번 사과해도 듣지 않았던 유진이었다.
침묵은 아영이 다시 방에서 나오고 나서야 깨졌다.
“말씀드렸어요. 일 있어서 조금 걸린다는 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유진이 만나러 온 거니까요.”
현수의 대답에 아영이 조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오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뭐 때문이겠어요. ‘For Honor’ 때문이죠. 유진이가 하는 게임.”
“아.”
“단순한 게임이 아닌 건 아시죠?”
아영이 배시시 웃었다.
“알죠. 요즘 되게 핫하잖아요. 곧 수확 시즌이라고. 앨런인가? 그 유저때문에 난리가 났다면서요? 저는 ‘For Honor’ 잘 몰랐었는데, 친구들이 아주 난리에요.”
“앨런이 유진이야.”
강철이 말을 툭 던지자 아영의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정말요?”
“그래. 유진이가 우리 회사에서 키우던 유망주들을 죄다 리타이어시키는 바람에 아주 난리가 났어. 우리도 그것 때문에 온 거고.”
“아앗. 그렇구나. 와, 누굴 닮아서 그런지 대단하네요.”
“그럼. 누구 아들인데.”
“아뇨. 제 동생이어서 그런 거예요.”
“이 녀석아. 너는 유진이 DNA에 일 퍼센트의 관여도 못 했어.”
“하하하.”
아영은 목소리가 포근하고 리액션이 좋아서, 남자 둘만 있을 때는 침묵만 감돌던 식탁은 어느새 이야기꽃이 피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이야깃거리들이 떨어지고, 결국 식탁은 다시 침묵이 차지했다.
떨어진 차도 세 번이나 갈고, 결국 할 게 없어진 아영이 고개를 떨구고 눈치를 보며 떨고 있을 때, 식탁 너머 방 어딘가에서 미약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영이 누나.”
미약하지만, 워낙 적막한 참이라 선명하게 들리는 그 목소리는 유진의 것이었다.
“데려올게요!”
아영이 사라지고, 현수가 긴장한 낯빛으로 다시금 셔츠를 매만졌다.
“너는 히드라 잡으러 갈 때보다 더 긴장한 것 같다?”
“솔직히 더 긴장돼요. 아버지는 안 그래요?”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던 강철이 문득 손을 내려다보았다.
묵직하고 큰 손은 답지 않게 식은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러게. 나도 긴장을 좀 했네.”
위이잉.
전동 휠체어가 특유의 진동음과 함께 유진이 나타났다.
유진은 게임 속 역동적으로 움직이던 앨런과 다르게 창백하고, 깡마른 몸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단도직입적으로 용건부터 묻는 유진의 목소리가 사뭇 날카롭다.
“유진아. 오랜만이야.”
현수가 따뜻한 목소리로 대꾸해보지만, 유진의 얼음장 같은 표정은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유진아. 오랜만에 아빠 보는데 인사도 하지 않고···.”
“안녕. 아빠. 무척 오랜만이네. 형도. 그래서 무슨 일이야?”
“도련님!”
보다 못한 아영이 유진을 말렸다.
현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침울해지고, 강철 역시 침중한 낯빛.
강철이 아영에게 부탁했다.
“아영 양. 커피 한 잔만 다시 타 줄 수 있겠나? 조금 진하게.”
“네. 두 분은?”
“저는 허브차 다시 주세요.”
“나는 먹던 거로 줘.”
유진이 늘 먹던 것. 코코아다.
유진은 혀가 얼얼해질 정도로 진하게 탄 코코아를 좋아했다.
아영이 다시 차를 타다 나르고. 그 찻잔을 다시 비우고 나서야 대화는 시작됐다.
시작은 강철이었다.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지원하던 ‘For Honor’ 유저들이 대거 죽었다.”
“아버지!”
“사실이잖아. 그것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온 거고.”
유진이 빈 찻잔을 홀짝이며 대꾸했다.
“솔직해서 좋네. SP 연합이 아빠 회사네 일이었나 봐?”
“그래. 마룡 길드. 파케가 이끌던 길드가 우리가 키우던 녀석들이야.”
“잘됐네. 헌터 되도 쓸모없었을 거야. 약하고, 잔머리나 굴리고, 도망이나 잘 치는 녀석들이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게임에서 죽었으면 원래부터 안 될 녀석들이었던 거지. 상황이 어떻든.”
탁.
유진이 찻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래서 나보고 어떡하라고?”
“유진아. 아버지께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하면···.”
“우리 회사에 들어와라.”
유진이 헛웃었다.
뭐지. 내가 잘못 들었나.
“아빠 회사에 들어가라고?”
“그래.”
유진의 앙상한 팔에 힘줄이 돋았다.
“나 다친 날. 벌써 까먹었나 봐? 하하.”
“도련님.”
아영이 말리려고 했지만, 유진의 말이 더 빨리 치고 들어왔다.
“그날. 처음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했던 날. 그래. 한국에서 제일 큰 공연장이라고 엄마가 그렇게 좋아했었지. 온 가족이서 처음으로 내 공연 보기로 한 날이었잖아. 근데 그날 아빠 어디에 있었어? 오는 길에 갑자기 태평양으로 틀었댔나? 크라켄이 나타났다고?”
“유진아. 그건···.”
“형도! 형도 마찬가지잖아! 아빠랑 같이 갔잖아! 그래. 회사에는 둘도 없는 기회였겠지. 나는 상상도 못 하는 몇백억, 몇천억짜리 건수였겠지. 알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으니까. 그래! 세계 해양 운송업 어쩌고저쩌고!”
현수가 눈을 감았다.
강철 역시 굳게 다문 입으로 묵묵히 유진을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돈이 그렇게 중요했겠지. 근데 그거 알아야 해. 그날 아빠나 형. 둘 중 하나만 왔어도 엄마는 그렇게 안 됐어.”
기어코 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어떻게 가족 앞에 선 가치가 있단 말인가.
생명 앞에 선 가치가 있단 말인가.
돈, 명예가 그렇게 중요하던가.
그래서 더욱 그들을 볼 때마다 날을 세우는 건지도 몰랐다.
‘For Honor’에 집착하는 이유도, 사실은 초능력자가 되면. 이렇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되면 저들이 이렇게 자신을 찾아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일이 바쁘다고 얼굴 보기 그렇게 힘들던 사람들이, 이렇게 시간을 빼내서 두 시간이나 자신을 기다린다.
아영이 부드럽게 유진을 달랬다.
“도련님. 지난 일이잖아요. 두 분도 많이 반성하고 계실 거에요.”
“맞다. 유진아. 우리도 그때 많이 반성하고. 후회하는 중이다.”
유진이 필사적으로 눈물을 닦았다.
“반성하고 후회하는 중이라고?”
“그래. 네 형도 그때 일 많이 자책하고 있다. 나도 물론 마찬가지고.”
그렇다는 말이지.
유진이 킁. 작게 코를 먹고 아영에게 핸드폰을 빌렸다.
그리고 기사를 검색했다.
세계 각지에 나타나는 괴물들. 게이트들. 그리고 그들을 막는 굴지의 헌터들의 이야기가 화면을 장식했다.
괴물들이 도시를 파괴하고, 인명 피해를 입힌 이야기들 역시 기사화되어서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툭 툭
가녀린 유진의 손이 이리저리 굴러가고, 이내 멈췄다.
유진이 말하려다 목이 메어 갈라지는 소리가 나 몇 번이나 큼큼,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큼. 볼까. 3월 15일. 부산항 게이트. 인명 피해 3명. 항구 괴멸적인 피해입어. 4월 16일. 팀 오리온. 애리조나에서 반파될뻔한 그랜드캐니언 기적적으로 수호. 미국 정부 ‘당신들은 영웅.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어.’”
“유진아 그건···.”
“5월 14일. 송파구 미니 게이트. 1명 사망. 12명 중상. 조금만 일찍 출동했으면. 헌터 인력이 너무 부족해. 유족들 눈물. 5월 17일. 헌터 회사 안단테. 굴지의 세계 회사들 사이에서 지중해, 지브롤터 해협 방역권 따내. 하. 대중들 반응. 역시 한국 대표 헌터 회사.”
탁.
유진이 핸드폰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뭐가 바뀌었는데? 뭘 반성했는데? 아빠는 지중해로 날아가고, 형은 그랜드캐니언을 수호하시네. 대단해. 그러는 사이 부산항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송파구에서 사람이 죽어 나갔어.”
“유진아. 한가지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맡아서 할 수는 없어. 모든 사람이 다 각자 역할을 떠맡아서 하는 거지. 우리는 세계를 수호하는 일을. 그리고 또 누군가는 송파구를, 부산을. 그러다 보면 실수가 나올 수도 있는 거야.”
“그러니까 왜 아빠가 지브롤터 해협을 방역하는데? 석촌 호수 방역하면 안 돼? 능력이 차고 넘치니까 고작 한국에 썩히기 아까워? 방역권, 따냈다면서. 하고 싶다고 난리 치는 단체들 사이에서 따냈다면서! 그깟 방역권 그 사람들 줘버리고, 돈 좀 안되는 지역 신경 쓰면 안 돼? 그게 그렇게 어려워?”
안단테라는 덩치 큰 회사가 오로지 공익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걸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최소한의 작은 도움. 그거면 되는 거였는데.
유진이 손가락이 스마트폰을 그어댄다.
그런 기사는 단 한 개도 없었다.
안단테 급의 덩치라면 명목상 생색내기라도 기사화가 될 터인데, 어쩜 이리 깨끗한지.
사람 이전에 돈. 사람 이전에 명예.
됐어. 변한 건 하나도 없네.
유진이 또다시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뚝뚝 흘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전동 휠체어를 뒤로 돌렸다.
이러기 싫었는데. 약한 모습 보이기 싫었는데.
유진은 형도 밉고, 아빠도 밉고, 그들을 볼 때마다 무너지는 자신도 미웠다.
그때, 수현이 벌떡 일어났다.
얼마나 힘차게 일어났는지, 의자가 넘어질 정도였다.
수현이 유진에게 다가갔다.
유진의 휠체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비켜.”
성질을 부리려던 유진이 멈칫했다.
수현의 눈이 너무나 총명했기 때문이다.
수현이 말했다.
“그거. 네가 해라.”
- 작가의말
ㅋㅋㅋㅋㅋㅋ 현철 강철드립은 생각도 못했네욬ㅋㅋㅋㅋㅋㅋㅋ
오늘도 읽어주신 분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