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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아라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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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SF

로즈아라
작품등록일 :
2020.02.29 00:30
최근연재일 :
2020.04.29 15:10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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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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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2,865

작성
20.03.2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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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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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덫에 걸려들다.......!

DUMMY

“이것 보세요. 말씀 참 이상하게 하시네요.”


서이유 대표 말이 잔상으로 떠올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정정해야 했다. 할 말은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제 프로포즈를 거절한 댓가는 톡톡히 치르게 될 거예요. 누나의 말이 맞았네요. 현이씨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단순하게 돈과 권력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라고요. 당신을 내 부인으로 묶어두면 만사 일이 다 풀릴 거라고 내가 단순히 여겼죠. 우리 남매가 눈엣가시라고 여기고 있던 당신을 제거하기 쉬운 길이라고. 근데 이 방법은 실패네요.”


말을 마치고 싸늘하게 웃고 있는 남자를 보며 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서이유 대표의 진심 어린 경고는 정확했다.


‘이 둘은 보통이 아니야. 굉장히 위험한 족속이니까 조심해야 돼.’


현은 겁먹지 않은 척 상대를 아무렇지 않게 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모르겠네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정식 회의는 제 스케줄이 비는 날 그때로 하죠. 전 차기작 때문에 바빠질 거라 오늘처럼 갑자기 미팅을 잡으시면 곤란합니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돌아서는 현에게 대표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차기작 때문에 바빠지는 게 아니라 다른 일 때문에 바빠질 텐데. 잘 모르는군.”


그러거나 말거나. 현은 무시하고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에밀리와 함께 스카이카에 탑승한 현은 찜찜한 기분을 떨쳐내려 애썼다.


창밖의 어둠이 깔린 뿌연 하늘과 높다란 빌딩 숲을 바라보며 기분 나쁜 남매와 어떻게 같이 일을 할까 고민했다.


***



아파트 현관에 들어선 현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분명 문을 닫고 나왔는데 살짝 열려 있는 것이다.


“어라? 미주가 문을 열어놓고 잠깐 나갔나?”


안을 들어간 현은 기겁했다. 집안이 온통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도둑이라도 든 듯 서랍은 죄다 열려 있었고 뒤진 흔적이 역력했다.


물건은 아무렇게나 굴러다녔고 던지기라도 했는지 깨져 있는 물품들이 많았다. 바닥에 나뒹구는 깨진 조각들을 밟지 않으려고 현은 조심조심 집 안으로 들어갔다.


“미주야?”


아무 대답이 없었다. 현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 미주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얘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현은 갑자기 불어닥친 일로 경황이 없었다. 도둑이라도 든 것인가! 그럼 미주는? 그런데 이곳은 보완이 삼엄한 곳이라 도둑이 들어 올 수 있는 곳이 절대 아닌데.


불길한 마음은 걷잡을 수 없었다.


현은 정신없이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며 미주를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미주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일까···!


현은 미주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미주의 연락은 꺼져 있었다.


위치추적을 시도했으나 불가로 나왔다. 대체 무슨 일이니!


현은 엉망진창이 된 방 한가운데에 초조한 마음을 가득 안고 서 있었다. 그리고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에밀리!”


아···.! 같이 들어온 줄 알았던 에밀리마저 없었다.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집안에 웬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가보니 생전 열릴 일이 없던 베란다 문이 열려서 커다란 하얀색 커튼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현은 열린 베란다를 나가 보았다.


그리고 베란다 난간에 묻어있는 선명한 핏자국을 바라보았다.


“뭐···뭐야 이게?”


현은 베란다 아래를 바라보았다. 까마득히 높은 층수의 베란다는 저 아래가 멀어 보였다. 장식용으로 심어놓은 나무의 가지들이 부서져 있는 게 보였고 몇몇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곧 집안은 누군가가 불어닥친 발소리가 들렸다.


“유현 씨.”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베란다에 있는 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당신을 살인미수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남자는 현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



“긴급 속보입니다. 톱스타 유현이 어제 저녁 8시 경에 매니저 J씨 와 심한 다툼으로 끝내 아파트 난간에서 떨어뜨려 숨지게 하였는데요. 톱스타 유현의 영향력이 매우 큰 만큼 전 세계 대중은 큰 충격의 도가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일부 팬들은 그럴 리가 없다며 강력하게 부인을 하는 상태이지만 배우 유현의 집에 설치된 보완프로그램이 공개되면서 팬들의 무죄 주장도 점점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배우 유현이 심한 우울증으로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원래 다혈질적인 성격인데 배우 이미지 때문에 가면을 쓴 것이라 전해지고 있는데요. 단단히 뿔난 대중은 소속사에게 입장을 표명할 것을 요구 중이지만 소속사는 계속 침묵으로 일관 중입니다.”


형사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현이씨. 빨리빨리 사건 종결합시다. 그쪽이 죽인 거 맞잖아요.”


현은 그 말에 형사를 쏘아보았다.


“저 아니라고 했잖아요. 억울하다고요!”


형사는 그런 현을 가소롭게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러더니 현의 맞은편에 앉아서 깍지낀 손으로 턱을 받친 채 가늘게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증거가 명백한데 자꾸 잡아뗄 겁니까? 이럴수록 그쪽한테 불리하다고. 형만 더 늘어나요.”


“불리하고 말 것도 없어요. 제가 범인이 아니니까요. 대체 보완프로그램이 뭘 어떻게 찍었길래 저를 명백한 범인으로 몰고 가는 거예요?”


형사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짓더니 리모컨을 공중에 쏘았다. 그러자 두 사람 앞에 투명한 스크린 창이 허공에 나타나고 거기엔 현의 집안을 보여주는 영상이 나왔다.


보완프로그램이 담은 증거였다.


프로그램의 하단 부분은 시각을 나타냈다.


오후 8:00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저기요. 저는 이 시간에 소속사 대표님과 미팅 중이었어요. 그런데 뭘 보라는 거죠?”


“유현씨. 이 정도면 그쪽 싸이코 패쓰입니까? 거짓말도 정도껏 치세요. 하물며 정확한 증거가 버젓이 있는데 왜 자꾸 뻔한 거짓말을 처댑니까? 장난합니까 지금?”


“대표님한테 물어보면 되잖아요. 그리고 제가 갔던 동선 알리바이도 있고 스카이카 비행기록도 있어요. 죄다 보안CCTV에 제 알리바이가 찍혔을 텐데 왜 이러는 거죠?”


“대표님은 당신을 만난 적이 없답니다. 그리고 당신이 갔다는 레스토랑 보완프로그램도 봤는데 당신이 간 흔적은 없었어요. 심지어 그 날은 오픈 일도 아니고 레스토랑 휴일이었습니다.”


“하···.!”


미치고 팔짜 뛸 노릇이다.


현은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자신의 심기를 건드는 형사의 멱살을 붙잡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보완프로그램에 대체 어떻게 찍혔길래 이런 난리란 말인가.


그런데 막상 영상을 본 현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최악을 보게 되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분명 영상 속 현이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가서 매니저에게 소리치는 모습이 생생하게 찍혀 있었다.


매니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그저 현을 바라보았다. 다짜고짜 악 소리를 들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잔뜩 흥분한 현을 달래려는 듯 다가간 매니저는 현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당해야 했다.


한 손으로 자신의 뺨을 감싸던 매니저는 바닥에 넘어졌다. 그 상태로 올려다본 매니저는 현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았다. 발길질은 기본이고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죄다 매니저에게 던졌다.


물건들은 거의 가여운 매니저를 맞췄고 매니저는 피를 흘리며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는 듯 재빨리 현장을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현관문을 빠져나가지 못했고 계속 공격을 받은 매니저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피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괴물처럼 보이는 현은 주위의 물건들을 부수며 미주에게 돌진했고 막다른 길목에 몰린 듯 베란다 쪽으로 간 미주는 커튼의 펄럭임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베란다에서 나온 현은 유유히 안으로 들어와 거실에 서 있었다.


누가 봐도 현이 서 있는 모습이었다.


“세상에···.!”


현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영상을 확인한 현은 경악한 눈으로 형사를 바라보았다. 형사는 ‘이제 진짜 자백하시지’라는 얼굴이었다.


“그만합시다 이제. 다 끝났어요.”


“형사님···.”


현은 간절한 눈빛을 보며 내 형사의 두 손을 잡았다. 형사는 왜 이러냐는 듯이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저···. 저 진짜 아니에요. 진짜 진짜 저 아니에요. 저도 이 영상보고 되게 저 같아서 너무 놀라서 뭐라 할 말이 안 떠올라요.”


“이 여자 진짜 미친 거 아니야?”


형사는 현의 손을 가차 없이 뿌리쳤다.


“당신 지금 반성을 해도 모자라. 근데 끝끝내 아니라고 우기는군. 이건 세상에 대한 모독이야. 세상이 그렇게 만만해? 인생이 그렇게 만만해? 세상을 속이고 살아가는 게 얼마나 재밌었겠어. 당신은 천벌을 받아야돼.”


벌레 보듯이 현을 바라보는 얼굴, 말투는 치가 떨리고 있었다. 현은 자신이 말을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라는 걸 깨달아서 할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말 만은 꼭 해야 했다.


“미주 말이에요. 제 매니저요. 미주 정말 저 방송대로 죽은 거 아니죠? 그쵸? 오보죠?”


제발.


미주가 살아있기를!


저 방송에서 나오는 뉴스는 다 거짓말이길!


현은 간절하게 형사의 대답을 기다렸다. ‘살아있다고 무사하다고’ 그런 한 마디가 나오길 간절히 바랐으나 돌아온 대답은 처참했다.


“자기가 죽여놓고 살아나기를 바라나? 정말 가증스럽군. 나도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나랑 내 아내는 그쪽 팬이었지. 우리는 처음에 누명일 거라고 여겼는데 마음에 비수만 꽂히더군. 결론은 이번 일로 단단히 깨달았어. 당신에게 열광했던 사람들은 미쳤다고.”


***



모든 게 다 끝난 것 같았다.


현은 넋 놓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혼란스러웠고 두려웠고 머리가 하얘졌다.


갑자기 불어닥친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간 격이었다.


당연히 그런 거대한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으니 살아남는다는 건 불가능이겠지. 내가 딱 그 격이구나···.


다시 조사실에 들어온 형사가 현을 몹시 언짢다는 듯 흘겨보았다.


전혀 상대하고 싶지 않은데 업무상 피할 수 없는 요건이었으므로 그는 탐탁치 않게 자리에 앉았다.


“지금 당신 하나로 세상이 혼란이네요. 당신같이 미친 여자에 사람들이 놀아나서 아주 기분이 뭐 같이 보여요 다들.”


이제 억울하다는 말도 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안 현은 그저 힘없이 듣고만 있었다.


형사는 그런 현의 모습도 짜증이 나는지 테이블 위에 납작한 파일을 큰 소리가 나도록 세게 놓았다.


현이 억울하다는 말을 해도 그저 입 다물고 있어도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이제 현이 뭘 해도 맘에 안 들고 화가 나는 듯했다.


“당신은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있어.”


형사는 리모컨을 허공에 들고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허공에 영상이 생겼다. 현은 공허한 눈으로 틀어진 영상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어떤 공간에 가득 모여 있었는데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다.


거대한 자신의 사진을 성난 사람들이 모여서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화면은 어떤 여자를 클로즈업했다. 그러자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유현은 더 이상 스타가 아닙니다!! 그년은 미친 싸이코 살인마에요!!! 그년은 모두를 속이고 스타 노릇을 해왔어요! 원래 착했는데 변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마저 방금 짓밟혔어요! 그년은 원래부터 나빴다고요. 해성 학교 시절 유현의 동창으로부터 증언을 방금 들었는데 원래부터가 인성이 나빴어요. 약한 친구를 주동하여 왕따 시키고 본인이 피해자인 척 왕따 당한 척 쇼를 한 거더군요. 죗값을 톡톡히 받았으면 좋겠어요!”


주변의 사람들은 동의한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현은 클로즈업해서 화면에 나타난 여자를 잘 알고 있었다. 현의 팬덤 ‘현앤유’의 회장이었다.


돈독한 스타와 팬의 관계였는데 이제 그들은 현을 보면 찢어서 죽여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왕따까지 시켜놓고 피해자 코스프레라. 참 가지가지 하셨네요.”


하···. 정말 억울하다. 증언이라고? 누가 그런 증언을 했단 말인가.


현은 당장 형사에게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거짓말이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진정시켰다.


그래 봤자 변하는 건 없었기 때문에 바지를 손으로 움켜쥐고 분을 삭혔다.


“다음은 배우 유현의 인성 논란에 대한 학창시절 동창분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화면이 바뀌면서 어떤 여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현은 그 여자를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막혀했다.


“어···.! 쟤가 여기 왜 나와?”


빨갛게 립스틱을 칠하고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특유의 얄궂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면상을 또 보게 될 줄이야.


자신이 못마땅히 여기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뿐만 아니라 현을 괴롭힐 때도 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현은 저 얼굴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해성 학교 시절 배우 유현씨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그녀는 마치 세상이 모르고 있던 비리를 밝히는 사람처럼 엄숙하고 차분한 태도로 돌변했다.


“옛 친구이기 때문에 행여나 제 말이 이간질로 변질될까 봐 그게 걱정이네요.”


화면 속의 여자는 한숨을 쉬며 슬퍼했다.


“괜찮습니다. 증언이 이간질이라뇨.”


“그래두 온 세상이 좋아하는 스타인데 제가 하는 말은 좋은 말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진실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제 말이 진실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을 열겠습니다. 배우 유현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아름다운 스타가 아니에요. 그땐 어려서니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 친구의 비극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어요. 학교의 규칙위반은 밥 먹듯이 어기고 AI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은 어디 개가 짖나 하고 무시하고 일쑤였답니다.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면 그게 꼴 보기 싫었나 봐요. 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서 이간질 시키고 싸우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주동해서 왕따 시키고···. 보통 애가 아니에요, 그 애는. 막다른 곳에 몰고 가서 어찌나 제 머리를 찌르면서 못된 말로 마음을 후벼 파던 지. 또 싸우다가 주먹으로 그 애한테 뺨까지 맞았어요. 꽃 같은 얼굴로 뱀 같은 언행을 일삼는 아이예요. 그 애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뱀이에요 뱀. 하···. 어릴 적 아픔을 얘기하려니까 눈물이 나오네요. 아 손수건 고마워요. 그렇게 학교에서 군림하고 있다가 서바이벌 오디션인지 뭔지 거기에 척 붙어서 그 후로 승승장구 잘 나가는 스타가 되더라구요.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그런 애가 잘 먹고 잘사는지. 역시 세상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들이 잘나가는 세상인가봐요.”


끝내 화면 속의 여자는 진행자가 준 손수건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꼈다.


“저런 미친년이.”


현은 끝내 마음속 말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형사는 그런 현을 쏘아보았다.


하···. 망할. 지금 현이 내뱉은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화면 속의 여자가 한 말한 증언에 신빙성과 무게를 실은 꼴이었다.


말을 정정하자면 현이 학교 규칙을 위반한 것과 AI의 말을 듣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불량스러운 마음으로 이행한 게 아니라 부당한 것에 대한 표현이었다.


AI는 절대 학생들, 인간의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완전히 왜곡된 부분은 바로 현은 절대 왕따 주동자가 아니었다. 왕따 피해자였다.


화면 속 여자가 학교 아이들을 군림하였으며 저 여자가 현의 손등을 손톱으로 긁어버리는 바람에 아직도 현의 손등에 흉터가 남아있다.


그리고 참다못한 현이 끝내 자신을 지켜낼 유일한 방법으로 선방을 날린 것을 일방적인 폭행으로 둔갑시켜 버렸다. 화면 속 아이는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남에도 여전히 똑같은 인간이었다.


역시 시간이 지나도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라는 말은 팩트 였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여기서 끝은 아니었다.


“뒤이어 배우 임세나씨의 인터뷰가 있겠습니다.”


화면은 잘 빼입은 두 배우를 비추었다.


생방이 아닌 이미 녹화분인 그 영상은 아마도 자신이 보기 전 수십 번 수백 번 틀어준 것 같다고 추측했다.


조금 전 분노한 팬들의 영상을 보니 이런 인터뷰 영향이 상당한 듯싶었다.


“유현 배우씨는 평소 작품활동을 하면서 어땠나요? 두 분은 같이 작업한 적이 많아서 잘 아실 것 같은데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세나는 슬픈 표정으로 돌변하더니 눈물을 흘리며 가련한 여주인공으로 돌변했다.


“걔가 스타병에 걸려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학창시절부터 쓰레기였군요. 주인공만 맡다 보니까 걔 눈엔 무슨 조연은 시궁창처럼 보이나 봐요. 사람 우습게 깔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제일 답답한 건 사람 많을 땐 온갖 착한 척은 다 하면서 사람 없을 땐 그렇게 지독할 수가 없어요. 저와 단둘이 있을 땐 완전 딴사람이 된다니깐요. 그 애 승질머리를 안 당해 본 사람은 잘 몰라요. 얼마나 악독한데요. 저한테 항상 연기 톤이 거슬린다 나대지 말라고 하면서 평생 조연이나 하다가 뒤질 거라고 하더군요. 저는 무서워서 입도 뻥긋 못하잖아요. 컨디션 안 좋을 땐 별일 아닌 걸로 시비트기 일쑤여서 촬영장 오기 전엔 항상 그 기집애 아니아니 말이 헛 나왔네요 하하···. 죄송합니다. 유현씨 컨디션 먼저 살피고 오는 게 제 일상이었어요. 항상 스트레스를 달고 살았죠. 그 죽은 매니저 말고 유현씨 전 매니저 있거든요. 최시향 매니저라고. 그 매니저한테 항상 유현 배우 컨디션 물어봤잖아요. 그 언니 덕분에 제가 산 거죠. 고마워요 시향 언니. 아! 그리고 최시향 언니는 이번에 제 매니저가 되었어요.”


세나의 말에 입증이라도 하듯 그녀의 옆에 떡하니 현의 전 매니저 최시향 매니저가 서 있었다. 갑자기 퇴사하는 바람에 미주를 뽑았고 그녀는 그 후에도 내내 잠수를 탄 상태였다. 그러다 떡하니 지금 현의 눈앞에 세나의 매니저로 서 있는 것이었다.


“이어서 이휘정씨의 인터뷰가 있겠습니다.”


휘정은 다리를 꼬고 앉아 특유의 거만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앉아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 일이 있는지 입가엔 여유로운 미소를 담고 있었다.


“참 세상 말세네요. 같은 동료로써 저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팬분들은 오죽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저는 유현씨를 같은 동료로써 탑스타로써 대하고 싶었는데 자꾸만 유현씨가 저를 좋다고 좋다고 한 번만 만나자고 들이대는데 얼마나 부담스럽고 피곤하던지···. 배우는 모름지기 우아한 품격을 갖추어야죠. 그렇게 저 좋다고 따라다닐 땐 언제고 이제 다른 남자한테 갈아 타버렸어요. 사랑이 금세 식었나요?”


현은 폭발 직전이었다. 누가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짜잔 이거 몰카에요 속으셨죠? 이벤트로 기획해 보았어요’ 해도 화가 풀리지 않을 판이었다.


“다들 기막혀하군.”


형사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것 보세요 형사님. 기막힌 건 저라구요!! 현은 마음속으로 외칠 뿐이었다.


제발 이건 꿈이라고 누가 말해줘요! 현은 손으로 자신의 뺨을 때렸다. 선명한 짝! 소리와 함께 볼에 통증이 느껴졌다. 형사는 완전 정신 나간 여자를 쳐다보는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현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자신이 정상적인 언행을 하든 이상한 행동을 하든 매한가지였으니까.


형사가 자리를 뜨고 일어나자 방송에서 속보가 떴다.


현은 속보가 뜨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급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유 엔터테인먼트 전 대표인 서이유 대표가 방금 오전 11시경 유리스병으로 끝내 사망하였습니다. 병원측에 따르면 서이유 대표는 유리브병에서도 급속히 진행된 케이스라···.”


아무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정말로 현은 이 세상이 아득히 끝나버린 것만 같았다.


세상이 무너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땅으로 꺼져버릴 것만 같은 이 참담함은 주변에 대한 느낌을 무뎌지게 만들었다. 이 조사실 안이 현실감이 없게 느껴졌다.


심적으로 버텨내기가 힘들었다.


‘그 값지고 빛나는 것들을 지켜내야 해.’


대표님의 말···. 하···. 미안해요. 저는 지켜낼 수가 없어요.


이제 다 끝난 것 같아요···.


현은 반쯤 감긴 눈으로 조사실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흘러가는 그 광경에서 현은 바로 이상한 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슬로우모션으로 형사가 열린 출입문 앞에서 고함을 지르는 것 같았고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누군가가 형사를 때려 눕혀지는 게 보였다.


천천히 누군가가 들어왔다.


금발 머리의 반듯한 정장을 입고 있는 여자가···. 아니···. 여자가 아니었다.


“일어나십시오. 장례식장에 가셔야 합니다.”


에밀리였다.


작가의말

금요일날 올리려고 했는데 토요일로 넘어가 버렸네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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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도망자 20.04.03 9 0 20쪽
» 덫에 걸려들다.......! 20.03.28 14 0 22쪽
8 위험한 초대 20.03.25 11 0 19쪽
7 꿈에서 본 의문의 여자 20.03.20 15 0 18쪽
6 초대장 20.03.19 13 0 18쪽
5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다 20.03.13 13 0 18쪽
4 에밀리를 만나다 20.03.11 15 0 18쪽
3 꿈에서 본 의문의 남자 20.03.06 23 0 19쪽
2 이상 기후 20.03.04 16 0 20쪽
1 스타트 20.02.29 38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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