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로즈아라 님의 서재입니다.

애프터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SF

로즈아라
작품등록일 :
2020.02.29 00:30
최근연재일 :
2020.04.29 15:1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239
추천수 :
0
글자수 :
142,865

작성
20.02.29 00:42
조회
37
추천
0
글자
19쪽

스타트

DUMMY

화창한 날씨 속에 북적이는 카페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꽃을 피웠다.


저 멀리 에펠탑이 파리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높여주었고 푸르고 맑은 하늘에 두둥실 뭉게구름이 그림처럼 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테이블 중 가운데 테이블에 한 여자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빨간 테를 두른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고 금발 머리에 끝이 볼륨이 진 단발 파마머리인 그녀는 빨간 립스틱을 칠한 탓에 하얀 피부색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분홍색과 자주색이 번갈아 가며 패턴을 이루는 도트 무늬 장식의 골지 반팔 티와 자주색 반바지를 입었고 빨간 조리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이렇게 발랄한 복고풍 차림에도 어딘지 모르게 도도한 분위기를 내뿜는 그녀는 또한 아름다움까지 뿜어내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누군가를 발견한 그녀는 고개를 45°로 틀며 뚫어지게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녀가 응시한 곳에선 소년이 손을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긴 트렌치코트와 청색 셔츠를 입고 무늬가 조금 들어가서 포인트를 준 넥타이 차림으로.


“뭐야 일찍 와 있었네.”


금발의 백인 여자를 마주 보고 앉은 소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소년은 동양인과 백인의 혼혈로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내가 일찍 온 게 아니라 네가 늦은 거겠지.”


여자는 팔짱을 낀 채 턱으로 소년을 가리키며 핀잔을 주었다.


“쏘리 캐서린.”


“봐 줄게 윌리엄.”


손목시계를 본 윌리엄은 약속시간에서 30분이나 지나간 것을 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년이 찾으려는 사람은 거리에 없었다.


“꼬맹이가 이 카페에 그렇게도 오고 싶다 했는데.”


건너편 테이블에서 레몬에이드를 맛있게 먹고 있는 다섯 살배기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캐서린이 아쉬운 듯 말했다.


“일단 우리라도 시켜.”


윌리엄은 단정하게 하얀 셔츠와 검정색 조끼를 입은 웨이터를 불렀다.


“에스프레소 두 잔이요.”


“아냐. 나 오늘 에스프레소 안 마셔. 에스프레소 한잔, 레몬에이드 한잔이요.”


웨이터는 자상하게 웃으며 주문을 받고 카운터로 향했다.


“에스프레소 아니면 안 마신다며.”


윌리엄이 웬일이냐며 다정하게 물었다.


“꼬맹이가 좋아하는 레몬에이드, 꼬맹이 몫을 내가 대신 마셔주려구.”


서비스로 나온 얼음과 레몬이 동동 띄워져 있는 시원한 물을 마시며 캐서린이 말했다.


뒤이어 레몬과 얼음이 띄워져 있는 물 한잔이 소년 앞에 놓였다. 소년도 이에 질세라 여자를 따라 물을 마셨다.


“오늘은 뭔가 특이하게 입고 나왔네. 전엔 트렌치코트 입고 나오더니.”


흥미롭다는 듯 윌리엄이 말했다.


“어떻게 사람이 한 패션만 고수하니? 이런 패션도 입어보고 저런 패션도 입어보는 거지. 왜? 불만 있어?”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려세우고 날카롭게 묻는 여자 때문에 주눅이 들었지만 그게 싫지 않은 어린 소년은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아니 불만 없어.”


“난 단조로운 거 딱 싫어.”


어느새 주문한 레몬에이드 한잔 에스프레소 한잔 갓 구운 쿠키들과 빵 2개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이거 우리가 안 시켰는데요?”


“오늘 모쪼록 날씨도 화창하고 손님 입장에서 서비스로 쿠키와 빵까지 받는다면 더 완벽한 날이 되지 않을까 해서 드리는 겁니다.”


인상이 좋은 할아버지 웨이터는 젠틀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오른쪽 팔을 안으로 구부려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마친 뒤 자리를 떴다.


화창한 날씨, 아름다운 풍경, 사람들의 흥겨운 웃음소리, 이야기 소리, 예쁘게 데커레이션 되어있는 레몬에이드, 향이 고급스러운 에스프레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서비스로 받은 쿠키와 빵, 친절한 말솜씨까지···.


더 활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아~ 이런 날에 꼬맹이가 없다는 게 정말 말이 안 된다. 벌써 7일째야.”


그녀는 쨍한 하늘과 주위를 둘러보며 한탄했다.


“아무 소식 없이 잠수 탄다는 게 이상하지. 그럴 애가 아닌데. 그리고 내가 꼬맹이를 위해서 발견한 기막힌 물건이 있다구.”


“뭔데?”


트렌치코트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척 얹은 소년은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어떤 대단한 물건이기에 ‘기막힌’이라며 꺼내 들었을까 의아한 그녀는 납작하고 네모난 물건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뭐야?”


“스마트폰.”


“와. 이걸 어디서 발견했어?”


‘스마트폰’이라는 한 마디에 선글라스를 당장 벗어버린 캐서린은 에메랄드빛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바라보았다. ‘태어나서 이런 신기한 물건은 처음 봐’ 라듯이.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는 윌리엄은 마치 영웅 인양 어깨가 낙타봉처럼 솟아오를 것 같았다.


“만져도 돼?”


“그럼.”


납작하고 딱딱한 그 물체가 뭐라고 루비보석을 만지듯 조심스러우면서도 호기심이 마구 샘솟는 게 느껴졌다.


“이게 진짜라면 갖고 튀었을 거야.”


욕망에 활활 탄 눈동자로 그녀가 손에 든 스마트폰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거짓말이지?”


“농담 반 진담 반.”


“진짜는 우리 집에 있지. 어두컴컴한 지하실 우리 집에······.”


어쩐지 말끝을 흐리는 남자의 얼굴에 슬픈 낯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스캔해서 가지고 온 게 이 정도라면 진짜는 어때?”


“똑같아. 대신 작동이 안 되는데 충전기만 찾으면 실제에서도 쓸 수 있고 이곳에서도 쓸 수 있어.”


“아날로그적인 감성, 우리 꼬맹이가 좋아하지······”


그때였다.


가까운 테이블에서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재빠르게 일어난 흑인 중년의 남성, 손으로 입을 감싸고 놀란 동양인 여자, 자리를 박차고 뒷걸음질하다 넘어진 콧수염을 단 백인의 남성은 모두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신이라도 본 양.


카페의 온 손님들, 웨이터들, 그리고 캐서린과 윌리엄은 그들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다. 시선을 따라간 곳은 눈을 뜬 채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몸집이 큰 신사 한 명이 있었다.


웨이터가 다가가서 신사를 흔들어보니 신사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땅으로 엎어져 버렸다. 갑자기 마법처럼 웨이터의 손에서 신호기가 생겼다.


신호기에 어떤 말을 하더니 몇 초가 지나자 그 자리에서 남자가 서서히 사라졌다. 사람들은 모두가 공포에 질려있었다. 다른 테이블에선 아수라장이 된 분위기를 감지한 어린아이가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또 누군가가 저세상으로 가셨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여자가 말했다.


소년은 너무 놀라서 영혼이 가출한 듯 넋이 나가 버렸다. 여자에게 이 같은 상황은 처음이 아니었으나 소년에겐 완전히 처음이었다.


“그··· 그 남자 그분···. 괜찮을까?”


“괜찮다니···죽었어.”


“아니···. 잠깐 기절했을 수도 있잖아.”


“안타깝지만 그건 절대 아니야. 이쪽 세계가 너무 따스하고 좋으니까 오래 머물다가 화근이 된 거야. 진짜 세계에서 제 몸을 잘 돌봤어야지.”


“······.”


여자는 냉정했고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손이 떨리는 것을 막기 위해 두 팔로 자신을 감싸는데 마치 자신을 보호하는 것 같았다.


“자 다들 각자의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세요. 소란은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분명 아까와 같은 말투, 아까와 같은 표정, 아까와 같은 친절함이 가득 베어 있는 할아버지 웨이터인데 어쩐지 여자와 소년은 그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더는 이 카페에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두 사람은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긴 두 사람은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화보인 파리의 거리를 말없이 걷고 또 걸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눈을 감으며 헤드폰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 벤치에 앉아 사랑을 확인하며 키스하는 연인들, 날아가는 풍선을 잡으려고 뛰어가는 아이들······


걱정거리가 전혀 없는 세상인데 이 모든 게 두 사람은 낯설게 느껴졌다.


“뭐가 뭔지 모르겠네, 나는.”


미니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분수대 앞에서 윌리엄이 먼저 침묵을 깼다.


“뭐가?”


다 알고 있음에도 의견을 더 들어보려는 캐서린이 물어보았다.


“이 세계는 다 완벽해. 인간이 예전부터 갈망한 곳이야. 우리 셋도 이곳에서 만나고 친구가 되었잖아. 그런데···그런데···따지고 보면 이곳은 진짜가 아니고 모두 가짜야. 저 푸른 하늘, 이 분수대, 지금 이 거리들, 이 모든 게 다 가짜인데 진짜인 듯 우린 착각하고 있어. 그리고 그렇게 믿고 싶은 거고. 그 아저씨도 이곳에서만 계속 지내다가 진짜 세계에서 먹지도 자지도 않고 제 몸을 방치 하다가 돌아가신 거잖아. 이곳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진짜가 아니야. 그럼에도 이곳이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속이는 사람들, 이곳이 ‘진짜’라고 믿어버리는 사람들까지 있어. 난 그 정도는 아니지만···다만 진짜 세계에 있는 내 자신과 마주치기가 싫고 두려울 뿐이야.”


말을 끝마친 소년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여자는 그런 소년을 안아주었다. 울고 있는 소년과는 다르게 세상은 웃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그나마 이곳은 사람들끼리 만나는 공간이지만 그것마저 거부한 사람들은 아예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마치 왕이라도 된 듯이 본인 입맛에 맞게 가상세계를 설계해서 살고 있잖아. 그나마 차라리 우리가 더 낫다 생각하자. 적어도 우리는···이곳 이 세상에서 만나 소통하고 있잖아.”


애틋하게 소년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의 눈은 소년의 울음을 멈추게 했다. 바람이 불어 소년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소년은 잠시 눈을 감고 바람을 느꼈다.


“그래, 난··· 난 살아있고 그래서 누나도 이곳에서 만났고 꼬맹이도···꼬맹이도 이곳에서 만났어. 그러니까 됐어, 그러니까··· 난 행복해.”


어떤 말에서 동요를 일으켰는지 모르지만 캐서린의 눈동자가 잠깐 요동쳤다. 하지만 윌리엄은 그걸 알아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몸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불안정하게 투명해졌다가 선명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태양광이 아직도 말썽인 거야?”


“응···. 덜 고쳐졌어. 이제 난 되돌아가야 할 것 같아.”


“‘유션샤인’보다 ‘제로나이트’로 바꾸라니까. 그러면 이럴 걱정도 없어.”


“나는 누나처럼 스타계급이 아니야. 유션샤인으로 바꾸면 포인트가 얼마인지 알아?”


“얼른 포인트 벌어서 올라와. 그리고 그 계급이라는 말 나쁜 거야. 고작 카드단계인데 그걸 계급으로 부르는 것은 유행을 가장한 ‘있는사람들’의 횡포라구.”


“그쪽처럼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은데. 99.99퍼센트가 이런 식이라.”


“다들 못됐어.”


“나 이제 서버 끊어질 것 같아. 꼬맹이 만나거나 연락되면 내 안부 전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윌리엄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캐서린은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윌리엄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에 잠긴 그녀는 핸드백에서 꺼내든 버튼을 눌렀다. 캐서린도 윌리엄처럼 사라졌다.


***

사방이 어두컴컴한 방에 사람형체 한 명이 부스스 일어났다.


커다란 선글라스 같은 것을 쓰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벗고 힘겹게 일어났다. 빛이 한 점도 들지 않은 방에 손을 더듬더듬하여 후레쉬를 켰다.


후레쉬에서 희미한 빛이 들어와 칠흑 같은 어둠을 그나마 살짝 물리쳤다. 후레쉬에 비친 사람은 윌리엄이었다.


창밖은 거친 바람이 불어서 들썩이고 있었고 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새까만 먹구름으로 온 세상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칙칙한 어둠에 잠겨서인지 혹은 다른 이유에서인지 소년의 얼굴에 생기라고 하는 것은 없었다. 윌리엄은 후레쉬로 어떤 물체를 비추었다.


빛바랜 그 물건은 아주 오래 된 유물인 듯 보였고 차가운 금속에 앞면은 유리로 되어있었다. 직사각형의 그 물건은 소년이 스캔해서 가져간 진짜 스마트폰이었다.


“꼬맹이가 보면 좋아할 텐데···.”


밖은 거센 바람에도 모자라 요란한 천둥번개로 날씨가 더 거칠어졌다. 천둥번개가 폭발하듯이 내리치자 소년의 집은 아예 어둠이 잠식해버렸다.


***

넓은 공간에 하나의 공간으로 다 통일한듯한 인상을 주는 고급스러운 아파트에 캐서린도 커다란 선글라스 같은 것을 벗었다. 그리고 아파트의 중앙에 놓인 홀로그램식 컴퓨터에 접속했다.


여자가 메시지창에 들어가 보니 메시지는 여전히 부재중이었다. ‘9살 꼬맹이’ 이의 수신자는 어느 순간부터 아무런 메시지를 읽지 않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엄지와 검지를 교차해서 부딪쳐 딱 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보라색 공처럼 생긴 게 허공에 나타났다.


그 공은 개구진 눈과 이를 드러내며 씩 웃고 있었다.


“무슨 일을 도와드릴까요?”


“‘9살 꼬맹이’ 에게 가서 연결 좀 해줘.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아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보라색 공은 허공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보라색 공이 나타났다.


“서버추적에 성공하였습니다. 영상 연락을 가능하게 할까요?”


“꼬맹이가 허락했니?”


“네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은데요.”


“얼른 접속해줘.”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보라색 공은 사라지고 여자 앞에 한 여자아이가 감쪽같이 나타났다. 닉네임답게9~10살 가량으로 보였다.


여자아이만 나타난 게 아니라 여자아이의 주위 모습도 언뜻 같이 나타났다. 아이는 박스가 가득한 곳에 있는듯한데 그런 박스에 기대서 팔로 무릎을 끌어 앉아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었다.


“꼬맹아.”


“아! 언니!”


여자아이가 고개를 풀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 잘 보이니?”


“언니가 바로 제 앞에 있어요. 언니도 마치 이곳에 저와 함께 있듯이 생생하게 보여요.”


“그래 그러면 영상연락에 접속 잘 된 거야. 무슨 일이야 대체? 가상세계엔 통 보이지도 않고 메시지 확인도 안하고.”


“갇혀 있어요.”


“갇혀 있다구?”


“엄마가···.”


말끝을 흐린 꼬맹이는 애써 울음을 참으려는 듯이 입술을 앙다물었다. 슬픔에 입술이 떨리고 곧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데 꿋꿋이 참은 꼬맹이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여긴 창고에요. 엄마가 저를 가둔 이유는···고의가 아니에요. swin시스템에 빠져서 엄마는 제가 엄마의 진짜 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엄마는 한 나라의 왕비이고 엄마의 딸은 고급스러운 공주라며···저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어요. 저에게 잿투성이에 더러운 옷을 입고 있고 씻지도 않아서 냄새가 난다고··· 거지라며 이곳에 가두었어요.”


“swin 프로그램이 그래서 나빠. 본인이 만든 가상세계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버리게 만드니까. 특히나 현실에서 고통을 크게 받는 사람일수록 더 증상이 심하지. 암튼 아빠는 어디 계시니?”


“아빠는 아예 swin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저러다 두 분 모두 잘못되실까 봐 걱정이에요.”


“경찰을 부를 게 조금만 기다···”


갑자기 꼬맹이의 모습이 사라졌다.


캐서린의 앞에 놓인 홀로그램식 컴퓨터도 함께 사라졌다. 섬뜩함이 느껴진 그녀는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육중한 표범을 연상케 하는 흑인 남자가 양손에 음식 재료 꾸러미들을 테이블 위에 던지듯 놓았다.


캐서린은 벌떡 일어났다. 마치 상관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부하인 것처럼.


그녀는 침착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으나 그렇지 못한, 공손하게 모은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역시 로봇은 믿을 게 못돼.”


“제가 다 설명을 하겠습니다.”


“감히 내 신상을 이용해서 잘도 인간인 척을 하고 다녔군그래.”


사건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남자는 잔인하게 여자를 발로 차버렸다. 제대로 눈도 감지 못한 채 산산조각이 나버린 캐서린은 지지직거리며 모든 몸이 분리되어버렸다.


남자의 뒤에 있던 동양인 남자와 사건을 일으킨 흑인 남자와 비슷한 생김새를 한 흑인 여자는 이 광경을 보고 저절로 떡 벌릴 수밖에 없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충격을 좀 더 완화 시키려고 노력했다.


놀란 두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흑인 남자는 발로 눈도 감지 못한 캐서린을 밀어보았다. 움직이나 움직이지 못하나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때 짓궂은 표정의 노란색 공이 남자의 앞에 나타났다.


“찰리 박사에게서 온 연락입니다. 받으시겠습니까?”


“응.”


그러자 흑인 남자 앞에 불투명한 백인의 노인이 서 있었다.


수신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지 노인의 모습은 ‘치지직’ 거리며 이따금 스파크가 일어났다.


노인은 자신의 앞에 처참한 광경으로 망가진 캐서린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 온통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만 매만질 뿐이었다.


“저번엔 남자 AI를 부수더니 이번엔 여자 AI를 똑같이 해놓았구려.”


“박사님이 정성 들여 직접 설계한 AI인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사과임에도 불구하고 미안한 감정은 전혀 섞여 있지 않았고 오히려 남자는 당당했다.


“아니요. 내가 오만했고 그대의 생각을 꺾어보려 했는데 오히려 내가 졌소. 저번 AI가 너무 완벽해서 이질적이라 느끼는 것 같아 이번엔 그 이질적인 것을 없애면 좀 더 나을 거라 여겨 인간의 감성, 인간의 어리석음을 60% 더 끌어올렸는데 이것도 문제인가 봅니다.”


노인은 소탈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지만 멋쩍은 감정이 더 큰 것 같았다.


“그냥 저는 AI와 맞지 않나 봅니다. 그들은 자꾸 인간을 위협하고 있어요. 심리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편하지 않습니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 여기겠소.”


“아니요. 박사님 실력은 최고이십니다. 그리고 이 AI는 비서로서 아주 합격입니다.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어요.”


그의 말에 박사는 가늘게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비서로서도 아주 합격이고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는데 그렇게 처참하게 부수다니. 말에 앞뒤가 맞지 않소만.”


“죄송합니다.”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는 흑인 남자의 태도는 진심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방 부아를 더 치밀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처참하게 망가진 AI를 사이에 두고 박사와 남자에게 묘한 긴장감이 형성되었다.


곧 싸움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기류였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제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ㅠㅠ

독자분들의 관심과 사랑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고 계신데

모두 힘내시고 우리 다 함께 잘 이겨내보아요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애프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미워할 거예요! 엄청 많이! 20.04.29 8 0 15쪽
16 버림받은 톱스타 20.04.27 8 0 17쪽
15 갈색 코트를 입은 남자 20.04.26 15 0 18쪽
14 행운이 찾아올 거야 20.04.24 11 0 17쪽
13 시간여행자 20.04.20 14 0 19쪽
12 운명의 메시지 20.04.18 14 0 17쪽
11 블루 게이트 20.04.03 9 0 20쪽
10 도망자 20.04.03 9 0 20쪽
9 덫에 걸려들다.......! 20.03.28 12 0 22쪽
8 위험한 초대 20.03.25 10 0 19쪽
7 꿈에서 본 의문의 여자 20.03.20 15 0 18쪽
6 초대장 20.03.19 13 0 18쪽
5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다 20.03.13 13 0 18쪽
4 에밀리를 만나다 20.03.11 14 0 18쪽
3 꿈에서 본 의문의 남자 20.03.06 22 0 19쪽
2 이상 기후 20.03.04 15 0 20쪽
» 스타트 20.02.29 38 0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