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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아라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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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아라
작품등록일 :
2020.02.29 00:30
최근연재일 :
2020.04.29 15:10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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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2,865

작성
20.03.2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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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위험한 초대

DUMMY

“어머 언니, 이제야 오셨어요?”


현의 집에 머물고 있던 미주가 돌아온 집주인을 반겨주었다.


“아~ 너무 피곤해.”


“언니는 피곤해도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으세요.”


“당연하지. 내가 보통 유전자가 아니잖아. 타고나기가 굉장한데.”


베시시 웃으며 현은 소파에 녹다운 했다. 그녀는 발랄한 에이라인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메이크업은 시상식에 어울릴법한 컨셉이었다. 귀찮다는 듯 구두를 벗어제낀 현은 아무렇게나 훌러덩 두었다.


“파티는 어떠셨어요?”


“별로였어. 웃겨 진짜. 너두 갔으면 좋았을텐데. 내 매니저인지 뻔히 알면서 왜 막고 난리야.”


“아 괜찮아요. 대신 언니가 대스타이신데 매니저 없이 혼자 파티에 가면 힘드실까 봐 걱정했어요. 또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스타 계급도 아니고 무려 갓 에스 사람들만 모였던데.”


“스타라든지 갓 에스라든지 다 카드 등급이잖아. 그걸로 등급 매기는 게 참 그래. 옛날 말로 금수저 흙수저 뭐 그런 거잖아. 금수저 위는 다이아몬드 수저라 했지, 아마? 암튼 예나 지금이나 사람한테 뭐 갖다 붙이길 좋아한다니까.”


고개를 저으며 툴툴대던 현은 화려하게 반짝이는 귀걸이와 목걸이를 빼서 소파 앞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와. 언니 귀걸이랑 목걸이 엄청 이쁜데 엄청 비싸 보이기까지 해요.”


미주가 그 귀금속들을 보러 가까이 다가가며 행여나 닳을세라 조심스럽게 구경했다.


“그거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래.”


그 말에 걸맞게 투명하게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귀걸이와 목걸이는 가치가 상당해 보였다. 이런 귀금속들은 현에게 흔한 악세서리였다.


협찬으로 빌려주었다가 결국은 거의 현에게 선물로 주기 일쑤였다.


“누구한테 받으셨어요?”


“내가 광고하는 회사한테.”


감히 닳을세라 만져보진 않았지만 미주의 눈빛을 읽은 현은 목걸이를 집더니 미주에게 걸어주었다.


“아아. 언니. 이렇게 비싼걸”


“한번 차봐. 귀 뚫었니? 오 그럼 귀걸이도 해봐.”


부담스러워했지만 고마운 마음이 큰 미주는 조심스럽게 귀걸이도 차보았다. 미주에게도 잘 어울리는 보석이었다.


어색해했지만 기분이 좋은 미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 만져선 안 되는 물건을 탐한 듯 부리나케 걸친 보석을 빼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제가 주제넘게.”


“뭘 주제를 넘어. 물건 주인이 허락해서 걸쳤는데 그게 주제넘을 일이니.”


“저 이렇게 비싼 물건 처음 만져봐요. 행여라도 만지다 깨지거나 하면 어떡해요?”


“다이아몬드가 깨지면 그게 다이아몬드겠니?”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그 말에 증명이라도 해보겠다는 듯 미주의 손에서 스르륵 목걸이와 귀걸이가 빠져나갔다.


바닥에 살짝 떨어진 것 같은데 그 아리따운 보석들은 보기 좋게 산산조각이 났다.


“꺄아아악!”


미주가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짜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굉장히 커진 눈으로 현을 바라보았다.


현은 아무 반응 없이 멍한 얼굴로 미주를 바라보았다.


“와 씨 이게 뭐야.”


현은 쭈그려 앉아 부서진 처참한 잔해들을 살펴보았다. 미주는 형벌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죄인의 심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귀금속 주인은 분노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미주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용서를 구했다.


“절대 용서 못해!!”


“언니 정말 죄송해요. 흑흑 제가 한푼도 안 쓰고 평생 번 포인트를 언니에게 드려도 부족할 거예요. 아니 저는 감옥에 가야 할까요?”


“너 말고.”


“네?”


분노의 대상은 미주가 아니었다.


“후···. 나를 진짜 뭘로 보고. 뭐? 다이아몬드라고 사기를 쳐? 에라이 빡빡머리 새끼야.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놈 관상이 딱 사기꾼이었는데. 다이아몬드라고 그렇게 생색을 내더니. 어유 열 받아.”


방송에서 거친 말에 삐- 처리가 되는 것처럼, 미주의 듣고 있는 귀는 현이 내뱉는 몇 구간에서 삐-처리가 되는 것처럼 들렸다.


미주는 왜 현이 임세나와 신경전을 벌일 때마다 밀리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임세나는 이상한 일에 거침이 없었고 현은 불의에 거침이 없었다···.


“저···언니, 그 선물 주신 회사 회장님 오늘 파티에 참석하신 거 맞죠? 보셨을 텐데.”


“봤지. 심지어 파티장 들어서자마자 나한테 아는 척 하더라구.”


파티에서 웃으며 인사까지 했는데. 나중에 다시 만나면 꼭 따져야겠다. 그냥은 못 넘어가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미주에게 별로라고 했던 파티는 실은 굉장한 파티였다···.


***



서이유대표가 말했던 자신의 사촌 남매가 주최한 파티.


현의 소속사 대표가 된 사촌 남매를 직접 처음 보는 자리였다.


그 파티에 초대되어 온 손님들은 갓 에스 계급에 속하는 난다긴다한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대스타인 현은 그들에게 꿀리지 않았다.


다만 신경 쓰이는 것은 그 파티에 세미도 참석한 사실이다!


특히 자신의 새로운 소속사 대표 중 여자대표의 옆에 척 붙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도 도란도란 웃으면서.


어떤 계기로 친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소속사 사장도 아닌데 어떻게 친해진 것인지.


간간이 가늘게 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눈빛엔 알 수 없는 비웃음까지 담겨 있었다.


파티의 대미는 남자 대표가 공들여 설계한 웅장하고 장엄한 인공 정원의 공개였다.


이름이 ‘신의 정원’이라고 했다.


그 이름에 걸맞게 정원은 갖가지 식물과 아름다운 폭포가 살아 숨 쉬듯 존재했다.


오로지 갓 에스 사람들을 위한 정원이라며 그 외의 사람은 절대 발을 디딜 수 없는 신성한 곳이라며 비장하게 소개했다.


***



“아 열 받아. 내가 찬 악세서리 보고 얼마나 그놈이 비웃었을 거야. ‘그거 진짜 아니고 가짜인데.’ 이러면서. 심지어 튼튼하지도 않어. 개 같은 놈.”


파티의 기억은 제쳐두고 현재의 분노로 돌아왔다. 그렇다. 현의 별명은 러블리가 맞다. 다른 유사어로는 현블리, 유블리였다.


대중에게 이런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이 공개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일지···. 그렇다고 현이 나쁜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분명 현은 좋은 사람이었다.


단지 이런 모습이 보이면 오해받기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주는 현을 아주 잘 관리해야겠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아! 언니, 대표님 집중치료 들어가시기 전에 저한테 선물을 주셨어요.”


화제를 돌려야 좋을 것 같다고 미주가 판단했다.


“어떤 선물?”


“잠시만요.”


큰 박스를 가지고 온 미주는 여러 가지 물건을 꺼내 놓았다.


대표가 쓰던 물건 같았는데 책들, 도자기, 신발(마침 대표와 발 치수가 같다고 했다), 장갑, 지갑, 백, 그림(서이유 대표가 경매로 낙찰받은 고가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여러 잡다한 물건들이 나왔다. (사탕, 껌, 초콜릿, 간식거리였다. 미주는 잘 못 먹어 봤다고 했다. 먹거리, 간식거리 자체가 비쌌기 때문)


“항상 주식으로 에너지바만 먹다가 처음으로 음식다운 음식을 먹고 간식도 먹어보니까 미치는 줄 알았어요. 너무너무 맛있어서.”


“대표님이 사주셨구나.”


“넵! 대표님이 언니 잘 부탁한다면서 사주셨는데 너무 뭉클했어요. 언니 앞으로 더더욱 제가 잘 할게요.”


말하는 도중 물건을 다 꺼낸 것 같았는데 깨지지 않게 잘 포장된 어떤 납작한 상자를 발견했다.


“이건 뭐야?”


“아! 이거 벽시계에요.”


미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납작한 박스를 들어 올렸다.


박스를 열어보니 숫자가 둥글게 적혀 있는 시계가 들어 있었다.


둥근 모양의 시계는 은색으로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시계 보는 방법 알아?”


“아뇨. 언니는요?”


미주의 눈과 마주친 현은 머쓱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어보았다.


“아유 언니, 쑥쓰러워 하시긴. 요즘 세상에 바늘 시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대표님은 아시던데.”


“아···그래요···. 그래도 흔치 않죠. 볼 필요 있나요? AI가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데. 암튼 대표님이 흔치 않은 물건이라며 힘들게 구하셨대요. 요즘 이런 시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저보고 땡 잡은 거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이 시계는 엄청 정확하대요.”


“비싼거야?”


현은 그게 제일 중요한 대목 같았다.


“비싼 거라고 하시긴 하셨는데. 정확히 가격은 잘 모르겠어요.”


“그래. 암튼 우리 미주 좋겠네.”


“사실 시계 걸어 둘 때가 집에 마땅히 없어요. 제집이 워낙 좁아서. 언니 집에 걸어둘까요?”


“맘대루.”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에밀리가 나타났다.


현은 싸인회때 있었던 사건 이후로 에밀리를 처음 보았다.


미주의 말대로라면 현은 에밀리 덕분에 무사히 의식을 차릴 수 있었다. 에밀리의 당연한 임무였겠지만 현은 조금의 고마움을 느꼈다.


“배우님, 오늘 급작스러운 미팅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서유미, 서유광 대표님 두 분이 배우님과 앞으로 활동에 대해서, 방향성에 대해서 미팅하길 희망하십니다.”


“이 시간에?”


“네.”


에밀리의 대답에 현은 미주를 쳐다보았다.


“나한테 아무 보고가 없으셨는데?”


미주가 알림 시스템을 살펴보며 말했다.


“제가 직접 보고 받았습니다. 하여 모시러 오셨습니다.”


서이유 대표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 좋게 선물 언박싱을 하고 있었는데 찬물을 끼얹은 등장과 멘트였다. 미주는 에밀리를 몹시 눈엣가시라는 듯 쳐다보았다.


허나 에밀리는 그런 미주를 일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게. 잠시만 기다려줘.”


현은 카키색의 자켓과 검은색 바지로 갈아입었다.


“미주야. 금방 올게. 가지 말고 내 집에서 쉬고 있어.”


“아. 언니 기다리는 동안 책 좀 보고 있어도 돼요?”


“응. 맘껏 봐.”


미주는 거실 한 귀퉁이에 놓여 있는 책장에 가서 신기하다는 듯 구경했다.


“언니는 과학에 관해서도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과학에 관련된 책들이 있네요.”


“그런가? 넘기다 보니까 맘에 드는 구절이 있어서 구매했어.”


“어떤 구절이요?”


“책의 저자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쓴 글이더라고. 고 양반이 내 생각엔 좀 선수인 듯. 음···뭐라 쓰여 있었더라···. 과학이 낭만적이지 않다고 말하던 그녀에게 나는 증명하고 싶었다. 과학도 낭만적일 수 있다고. 사람들은 그 오기를 치기 어린 생각에서, 젊은 날 잠깐의 열정으로, 혹은 헛된 몽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치부하지만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마법에 빠졌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현은 책에 실린 구절을 통째로 몽땅 외워서 읊듯이 알려주었다.


“우와. 언니 그걸 언제 다 외우셨어요?”


“내가 배우잖아. 대사를 그렇게 외우는데 이정돈 껌이쥐.”


당당한 제스처를 취하며 현은 씩 웃어 보였다.


“종이책 사고 싶어도 사기 힘든데. 여기서 이렇게 보게 되네요.”


“읽고 싶은 책 맘껏 읽어. 나 이제 갈게.”


“네 언니.”


미주와 손을 저으며 인사를 하는 현은 전혀 알지 못했다.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운명을.


강력한 소용돌이에 휘말리듯 아무런 해답을 찾지 못하며 괴로워하는 가까운 미래, 자기 자신의 모습을.


***




남매가 소유한 높은 빌딩의 맨 위층 레스토랑이 약속 장소였다.


굉장히 럭셔리한 고품격의 식당은 손님이 오로지 2명뿐이었다.


현과 그리고 서유광 대표. 마주 보고 앉아 있는 현은 부담스러워서 눈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는 노골적으로 현을 바라보았다.


매우 흡족해하면서.


“드디어 나오네요. 배 많이 고팠죠?”


그다지 고픈 것은 아니었는데 화려한 음식들이 식탁을 가득 메웠다.


랍스타, 스테이크, 파스타, 봉골레, 굴요리 등등 갖은 고급요리들로 즐비했다.


이런 진수성찬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대스타라 해도 지금의 시대에선 음식다운 음식을 먹기는 굉장한 일이었다.


“맨날 곤충으로 만든 에너지바를 먹느라 얼마나 질렸겠어요?”


“아···뭐 잘 먹겠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대로 차려진 음식들은 맛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속에서 기쁜 탄성이 났다. 현은 체면을 차리느라 차분히 먹었다.


“아 잘 먹었다. 치워주세요.”


엥? 뭐라구?


현은 이제 겨우 세입 먹었다.


랍스타 한입, 스테이크 한입, 파스타 한입···. 저기 있는 봉골레, 굴요리, 샐러드는 손도 데지 못했다.


“맨날 먹는거라 이제 질리네요. 허허.”


눈앞에서 서빙하는 직원들이 음식들을 치웠다. 현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자기를 갖고 놀리는 것인가.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서이유 대표의 경고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들은 위험하니까 조심하라고.


그저 맘속으로 삭히는 게 제일이었다.


허허 거리는 그에게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예의상으로.


“서유미 대표님이 늦으시나 봐요.”


약속 시간에서 30분이나 지났는데 또 다른 대표는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누나는 안 와요.”


“예?”


“누나는 안 온다고 하더라구요. 저만 왔어요.”


말하는 본새가 어쩐지 끈적끈적해 보였다. 현은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시선을 피하게 되었다.


아까부터 상대방의 눈길이 불편하다.


“저는 두 분이 오시는 줄 알고 왔는걸요. 그렇게 전해 들었어요.”


“첨엔 그랬었죠. 하지만 자리의 목적이 바뀌어서 누나는 빠졌어요.”


자리의 목적이 바뀌다니.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자리는 향후 활동에 대한 미팅이 아니던가.


“무슨 말씀이신지 통 모르겠네요.”


현의 말에 대표는 그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와 지금 장난치는 것인가.


현은 답을 얻지 못한 채 자신의 앞에 후식을 나온 아이스크림을 보았다. 유리컵에 담긴 동그란 아이스크림. 분홍색인 걸로 보아 딸기 맛인가?


그래. 이왕 온 거 후식이라도 먹고 가자.


현은 아이스크림을 미니 숟가락으로 떠서 한입 먹었다. 추측했던 딸기 맛은 아니었고 체리 맛이었다. 체리 함량이 높이 들어간 맛이다.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본 현은 차분히 먹으려고 노력했다. 되도록 ‘우와 너무 맛있다’를 티 내지 않으려고.


평화롭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현은 딱딱한 뭔가를 씹어버렸다.


“악!”


재빨리 뱉어낸 현은 바닥에 땡구르르르 구르며 반짝이는 물체를 발견했다.


이가 너무 아프고 신경질이 났다. 음식에다가 뭔 장난을 친 거야.


턱을 감싸며 온갖 짜증이 치솟고 있는데 난데없이 맞은편에 앉아 있던 대표가 일어서더니 바닥에 떨어진 물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더니 그 물체를 들어 올렸다.


“아 뭐에요? 저 방금 이빨 나갈 뻔 했어요.”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현이 따지듯이 말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상관없어 보였다.


“현이씨 저와 결혼해 주시겠어요?”


남자가 들어 올린 물체는 다름 아니 반지였다. 반지의 정 중앙엔 보석이 박혀 있었다. 다이아몬드였다.


“뭐요?”


현은 여전히 턱을 감싸며 물었다. 이번엔 짜증이 가득 담긴 말투였다.


“프러포즈 하는 겁니다.”


“아아 잠시만요.”


보다 못한 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헛소리를 계속 듣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저한테 왜 그러세요?”


“네?”


“저 몇 번 봤다고 프러포즈 하시냐구요.”


대표는 현의 반응에 당황해했다. 당연히 넘어올 거라고 여긴 뉘앙스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현의 반응에 그는 선뜻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제 호의를 거절하시는 겁니까?”


“이게 왜 호의죠?”


“제 50번째 아내가 되면 굳이 일하지 않아도 호화롭게 살 수 있어요.”


“오···. 오십 번 째라고요···.?”


“누나는 70명의 남편을 두고 계십니다.”


이 어마어마한 남매의 편력에 현은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와우···. 끔찍해라.


“참···. 부지런하시네요. 호호. 관리하기가 힘드실 텐데. 배우자 이름들은 다 아세요?”


“다 알진 못하죠.”


지금 자기가 뭔 대화를 하고 있는지 한심했다.


이런 대화를 하자고 피곤에 찌든 몸을 일으켜 갑작스러운 미팅에 참석했는지 현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제가 워낙 인상이 좋구 대스타잖아요. 그러니까 잠깐 음···. 해까닥 하신 것 같아요. 스타가 이래서 참 피곤하답니다. 다들 워낙 저를 좋아하니까요. 양날의 검이라고 여겨야죠. 근데요 대표님 이건 좀 아니죠···. 저는 진지하게 미팅하러 나왔거든요. 향후 활동에 대해서 이것저것 의논할 게 많은데 이렇게 나오시면 저로선 참 화도 나고···.”


“향후 활동은 편하게 인물 스캔하고 AI가 알아서 캐릭터를 생성해서 연기 할 겁니다. 현이씨는 앞으로 그렇게만 활동하시면 됩니다.”


대표는 일어서더니 슈트의 옷깃을 두 손으로 잡아서 반듯하게 고쳤다.


“저랑 누나는 현이씨의 연기활동 방식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굳이 왜 저렇게 해야 하나 하면서요. 서이유 대표와 현이씨 때문에 제작환경은 엉망이 되버렸구요. 인간이 직접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AI에 더더욱 거부감이 생기고 쓸데없는 희망에 사로잡혀 망상에 빠지게 되죠. 그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어요. 그냥 AI 가상세계에 사로잡혀 사는 게 훨씬 행복할 텐데 왜 깨어나려고 하는 건지. 현이씨가 사람들을 더 불행하게 만들어요.”


작가의말

코로나 항상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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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도망자 20.04.03 9 0 20쪽
9 덫에 걸려들다.......! 20.03.28 14 0 22쪽
» 위험한 초대 20.03.25 12 0 19쪽
7 꿈에서 본 의문의 여자 20.03.20 15 0 18쪽
6 초대장 20.03.19 13 0 18쪽
5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다 20.03.13 13 0 18쪽
4 에밀리를 만나다 20.03.11 15 0 18쪽
3 꿈에서 본 의문의 남자 20.03.06 23 0 19쪽
2 이상 기후 20.03.04 17 0 20쪽
1 스타트 20.02.29 38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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