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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小月)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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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小月)
작품등록일 :
2014.01.06 17:12
최근연재일 :
2014.02.09 10:4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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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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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4.01.2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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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8장 : 반격 (3)

DUMMY

시력을 돋워 서윤을 본 흑이령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행색은 학사 나부랭이? 네깟 놈이 어떻게 살아남았단 말이냐? 그리고 내 수하들은 대체 어떻게……?”

“그깟 놈에게 죽은 머저리들이 당신 수하들이었군요.”

예전의 서윤이라면 엄두도 못 냈을 대답이다.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 흑이령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몰라도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네놈의 낯가죽을 벗겨 칼집으로 써야겠다.”

“그러려면 먼저 이리로 건너와야 할 텐데요. 당신 수하들은 그대로 떨어져 버렸지만.”

“이놈!”

일갈을 하면서도 차마 건너오진 못했다. 뭔가가 있으니 저리 당당하리란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서윤은 허리를 곧추세웠다. 내뱉는 말에도 자연 칼날이 돋았다.

“당신이 우두머리는 아니겠지. 당신 같은 작자들이야 집 지키는 개, 시키는 대로 따르는 번견(番犬)이니까. 누가 마을을 몰살시키라 명령했지? 관철백인가? 아니면 천지당의 다른 누군가?”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감히 당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지껄이다니!”

“번견다운 반응이군. 어쨌든 이곳의 우두머리는 흑일령 그자겠지?”

서윤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정신력도 체력도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이 밤이라는 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낮이었다면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이고 말았으리라.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를 바라며 입을 열었다.

“그자에게 전해. 자신이 벌인 모든 일을 후회하게 될 거라고. 나락 밑바닥의 구정물 속에서.”

“건방진 놈!”

흑이령이 단도를 뽑아 그대로 던졌다. 단도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서윤의 얼굴을 노려 쇄도했다.

하마터면 움찔할 뻔했다. 그러나 서윤은 애써 평정을 유지했다.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먹잇감으로 전락할 것임을 알았기에.

힘겹게 선 채로 자연력을 전방에 응집시켰다. 그로써 무형의 벽이 만들어져 단도를 쳐냈다.

티잉!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허공에서 튕겨져 추락해 버리는 단도. 결국 움찔한 것은 흑이령 쪽이었다.

“무슨……?!”

“똑같이 되고 싶다면 따라오시지.”

나직이 중얼거린 서윤이 그대로 몸을 돌려 멀어졌다. 흑이령은 곧장 경공을 펼치려 했으나 이내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때렸다.

조금 전의 광경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암기를 던져 단도를 쳐낸 것인가? 아니면 무형의 기막을 쳐서? 어느 쪽이든 일개 학사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

보고에 의하면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건 둘이었다. 하나가 저 애송이라면 다른 하나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일개 학사 따위가 흑령대원들을 죽이고 식량고를 불태운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필시 놈에겐 조력자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얼추 앞뒤가 맞는 듯했다.

‘수하들을 죽인 건 저 애송이가 아니다. 애송이는 미끼일 뿐. 필시 또 한 명의 고수가 숨어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고수는 내가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달인이다.’

흑이령은 그 쪽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했다. 무력한 학사 따위에게 수하들이 당했음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이는 필시 함정일 터! 무턱대고 쫓아 들어갔다간 당한다.’

평소였다면 의심을 더 해 봤을 것이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상황이 연이어 벌어진 까닭에 사고의 통로가 막혀 버렸다. 학사에 대한 편견 역시 한몫을 했고.

허약하지만 영악한 놈들. 그게 바로 무학사에 대한 무인들의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흑이령으로서도 그 편견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하! 그깟 계략에 멍청히 당해줄 성싶으냐?’

생각을 마친 흑이령이 이를 갈았다. 아가리를 벌린 호랑이 입으로 머리를 들이밀 수야 없는 일이었다.

“일단은 대기한다!”


움직이지 않는 흑령대의 기척을 느끼며 서윤은 안도했다.

‘다행이다.’

서윤은 싸울 상태가 아니었다. 정신력의 소모도 컸고 체력적으로도 한계였다. 지금도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조금 전 펼쳤던 무형의 막은 최후의 정신력까지 짜낸 결과물. 격장지계(激將之計)가 통하지 않았다면 흑이령에게 그대로 도륙당했을 것이다.

“휴우.”

눈앞이 핑핑 돌았다. 메스꺼움과 함께 목구멍으로 신물이 자꾸 치솟았다. 쉴 자리를 찾아야 했다.

서윤은 한참을 걸었다.

몇 번씩이나 방향을 바꾸어 가며 흑령대와 최대한 멀어졌다.

그러던 중에 적당한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마른 낙엽이 잔뜩 쌓여 있었고 꼬이는 벌레도 없었다.

이젠 정말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서윤은 마른 낙엽을 이불 삼아 드러누웠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초조해져선 안 돼.’

쉴 수 있을 때 확실히 쉬는 것이 생존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서윤은 느리게 호흡하며 긴장감을 삭였다.

호흡을 어느 정도 안정시키고서 눈을 감았다. 초감각은 반쯤 무의식의 영역과 맞닿아 있어, 쉬는 동안에도 어느 정도는 작용을 했다.

일단은 그걸 믿고 쉬는 수밖에 없었다.

본래 지닌 기척 자체가 워낙 미미하니, 흑령대로서도 쉽사리 찾아낼 순 없을 것이다.

어두운 밤중이란 것도 다행이었다. 낮이라면 보일 흔적들도 어둠이 감춰 주었으니까.

다시 눈을 떴다.

그제야 바라본 하늘엔 별이 총총했다.

별빛에 눈을 고정한 채, 서윤은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한다?’

전력의 차이는 압도적이다.

서윤은 혼자고 저쪽은 수십이었다. 그중에서도 흑이령과 흑일령은 일대일로 싸워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승산은커녕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으리라.

‘그렇다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다행히 저들의 식량고를 싹 태워 버렸다. 숫자가 많다는 건 먹을 입도 많다는 뜻. 시간이 지날수록 난감해지는 것은 흑령대였다.

물론 이곳이 사막도 아니고, 먹을 것이 아예 없진 않다. 산짐승이 있긴 하니 사냥을 한다면 식량을 구하는 게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그것도 그것대로 좋았다. 어쨌든 저들의 전력이 분산될수록 서윤으로선 유리했으니.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정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내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야 해.’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서윤이 이내 혼절하듯 잠들었다.


*


“……그래서 추격을 중단했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흑이령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변명할 여지가 없으니 당연했다.

수하를 둘이나 잃고 식량고까지 불탔다. 그 마당에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세 명의 희생자만 더 만든 채 추격을 마쳤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흑일령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그래, 어린 학사 하나와 광인 하나였다고?”

“예. 그렇게 추정됩니다.”

“추정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냐?”

“그것이…….”

흑이령은 자신이 본 것과 추측한 것을 보고했다.

이야기를 듣는 흑일령의 주름이 한층 깊어졌다.

“그래서, 직접 본 것은 학사놈 하나뿐이라고?”

“예. 아마 다른 한 놈은 숨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말 그대로 추정일 뿐이군. 혹여나 그 모든 게 놈의 계략이었다면 어쩐단 말이냐?”

“예? 하지만 무학부 학사 따위가 무공을 펼칠 리가 없잖습니까?”

그건 그랬다. 지금 흑이령이 보이는 반응이 전형적인 무학사에 대한 반응이었다.

흑일령 역시 그 편견과 동떨어지지 않았다.

하루 전이기만 했어도 흑이령과 비슷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흑이령의 추측과 판단엔 분명 논리적 허점이 거의 없어 보였다.

실제로 학사들 중엔 광인과 가족에 가까운 유대 관계를 만든 놈들도 있긴 했다.

광증이 비교적 약한 광인이라면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이 코앞에 닥쳤는데 무슨 짓인들 못할까.

‘허나 정말 그런가? 그렇게 딱딱 계산된 듯 상황이 맞아떨어질 수 있는가?’

역시 마음에 걸렸다. 마음속에 한 번 파문이 일어나니 걷잡을 수 없었다.

그저 심증뿐이지만, 물증이라곤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수하를 셋이나 잃고 추격에도 실패한 것은 간과할 순 없다. 무림맹으로 돌아가는 즉시 처벌하겠다.”

“예, 대주님.”

그렇게 대답하는 흑이령의 두 눈에선 살기가 풀풀 넘쳤다.

그것은 다른 흑령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어느 누구도 흑일령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흑일령은 비수 같은 살기를 갈무리했다.

“놈이 되었든 놈들이 되었든…… 숨통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끊겠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만든 후에!”

그렇게 일갈한 흑일령이 손을 뻗었다. 그의 왼쪽 팔뚝에 앉아 있던 전서구가 하늘로 치솟았다.

무림맹, 관철백에게로 보내는 보고.

내용은 지극히 간단했다.


월영촌 소멸(燒滅) 완료.

극소수의 생존자 존재.

완전히 처리한 후에 복귀하겠음.


구태여 보낼 필요는 없었다. 마을 전체를 초토화하는 데에도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

남은 것은 고작 한둘일 뿐이다.

해치우고 돌아간들 시간상 차이가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서신을 보낸 것은 흑일령 나름의 다짐과 같았다.

“학사가 되었든 망령이 되었든 개의치 않는다. 재는 잿더미로 돌아갈 뿐! 모조리 쓸어버리지 않고선 복귀하지 않으리라!”


작가의말

 

 서윤도 좀 더 독해져야 할 텐데요.

 

 9장, ’단 한 명의 학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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