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소월(小月) 님의 서재입니다.

학사검신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소월(小月)
작품등록일 :
2014.01.06 17:12
최근연재일 :
2014.02.09 10:48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520,775
추천수 :
19,837
글자수 :
39,576

작성
14.02.03 08:05
조회
16,993
추천
803
글자
11쪽

10장 : 세 개의 검, 그리고 한 걸음 (3)

DUMMY

흑일령이 땅을 박찼다.

극성의 영혈보가 펼쳐졌다. 눈으로는 그 잔영조차 볼 수 없는 속도. 수하들이 펼치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서윤도 기감을 써서 겨우 경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어딜!”

장검을 날려 보내 경로를 막았다.

보통 칼이라면 모르되 검기가 둘러진 검이었다. 흑일령도 서윤을 바로 노리진 못하고 검을 맞댔다.

퍼퍼퍼펑!

허공에서 연신 폭발음이 울렸다. 두 개의 검기가 충돌하며 사방으로 검풍을 뿌렸다. 폭풍이 몰아쳐 숲을 뒤흔들었다.

그 와중에 서윤은 있는 힘껏 달렸다. 어떻게든 흑일령과 떨어지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 뒤를 흑일령이 집요하게 쫓았다.

검끼리 부딪치는 모습만 본다면 일대 장관일진대, 몸끼리 쫓고 쫓기는 모습은 술래잡기와 크게 차이가 안 났다.

보법을 전혀 익히지 못해 그저 되는 대로 달리고 있는 서윤.

영혈보를 펼치면서도 장검의 방해와 허벅지의 부상 때문에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흑일령.

그러는 사이 흑일령의 몸 곳곳에 생채기가 나고 있었다. 검기끼리 충돌할 때의 검압(劍壓)이 상당했던 탓이다.

‘괴물 같은 놈!’

흑일령은 내심 이를 갈았다.

저렇게 달리면서도 장검의 제어는 기가 막히게 하고 있다.

놈의 본모습을 몰랐다면 정녕 절정의 어검술사라 생각했을 것이다.

애초에 이기어검을 익힐 정도의 강자가 도망이나 다니고 있진 않겠지만.

서윤도 혀를 내두르긴 마찬가지였다.

‘괴물 같은 인간!’

그 역시 멀쩡하진 못했다.

등가죽의 상처로부터 피가 멈추지 않고 있었다. 계속 달린 까닭에 체력도 바닥이 났다. 숨은 턱까지 차올랐고 두 다리는 후들거렸다.

이대로는 먼저 쓰러진다.

흑일령이 상처를 입고 있긴 하다지만 그거야 말 그대로 생채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저쪽은 접근만 한다면 일격에 서윤을 절명시킬 수 있었다.

‘끝을 보는 수밖에.’

서윤은 두 팔을 좌우로 뻗었다. 흑일령이 내던졌던 비도들이 손아귀로 날아왔다.

마침 공터가 나타났다.

결심을 굳힌 서윤이 공터에 들어서자마자 몸을 반전시켰다.

흑일령과의 거리는 대략 십오 장.

여기까지 닿는 것은 순식간이리라. 밭은기침 한 번 뱉는 여유나마 있을까?

서윤은 두 비도를 띄우고 장검까지 불러들였다.

장검을 쥔 후에 온정신을 두 비도에 집중했다.

두 비도가 서윤 앞에서 회전했다.

회전하는 두 칼날 위로 서서히 은광이 맺히기 시작했다.

두 개의 검기.

그것도 지금까지와 달리, 전신전력을 모두 쏟아 부은 특대판이다.

장검 하나에 검기를 싣는 것도 조금 전에야 겨우 해냈다. 그런 마당에 서윤은 두 비도 모두에 검기를 극한까지 주입하는 짓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미친 짓.

하나만으로도 언감생심인데, 두 곳으로 자연력을 집중시킨다니?

그러나 하지 못하면 죽는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서윤은 필사적인 모험을 감행하고 있었다.

주르륵.

코피가 입술을 지나 턱 끝에서 떨어져 내렸다. 뇌에 과도한 부하가 걸린 탓에 실핏줄이 터져 두 눈이 충혈됐다.

그 와중에 두 개의 서기는 완연한 색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동안 벌어진 일.

뒤늦게 공터로 뛰어든 흑일령은 경악했다.

“놈!”

일갈을 하며 극성의 영혈보를 펼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덜컥 하는 부담이 발목을 잡았다.

“……!”

허벅지의 상처였다. 아물지 않은 상태로 무리하여 달린 탓에 근육이 다시 벌어져 피를 쏟고 있었다.

순간의 멈칫함이 서윤에게 기회를 주었다.

“먹어라!”

서윤이 검기 서린 두 비도를 연달아 날렸다.

뻔한 수법이다. 비도 하나로 방어를 상쇄하고 나머지 하나로 숨통을 노린다. 병법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수법이 아닌가.

그러나 뻔하다고 해서 파훼하기도 쉽다는 건 아니다.

만 가지를 예측하는 책사의 지모도 절대적인 힘 앞에선 무의미한 것.

두 비도의 검기는 그가 지금껏 상대했던 장검의 검기를 상회하고 있었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이 두 개라는 것이었다.

이런 게 찰나의 시간차로 들어온다면……?

‘이런 식의 운용이 가능하다니!’

경악하는 사이 비도들은 코앞까지 쇄도한 뒤였다. 이미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었다.

“으음!”

할 수 없이 검을 뻗어 첫 비도를 막았다.

쾅!

검기의 폭풍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어깨가 빠질 듯한 충격과 함께 오른팔이 튕겨졌다. 비도는 완전히 너덜너덜해져 날아갔다.

그리고 복부로 파고드는 두 번째 비도!

“크으윽!”

허공으로 치솟은 팔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근육이 찢기는 고통 속에서도 애써 검을 내리찍었다.

꽈앙!

두 번째 폭풍!

오른팔로부터 전해진 충격이 온몸을 휩쓸었다. 기어코 흑일령이 검붉은 피를 토했다.

‘단전까지 손상을 입었나.’

연달아 두 번이나 방어를 하느라 내력을 급하게 끌어 쓴 게 문제였다. 한계를 넘어선 운용에 온몸의 기혈이 뒤틀려 버렸다.

자칫하면 주화입마까지 걱정해야 할 판.

‘그러나 이걸로 놈의 수는 끝났다!’

흑일령의 두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서윤 역시 엄청난 무리를 했을 터. 이제 놈에게 남은 패는 아마도 없을 터였다.

반면 자신은 내상만 입었을 뿐. 두 허벅지를 제외하면 외상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육체만으로도 놈의 모가지를 비틀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흑일령의 두 눈이 돌연 경악으로 가득 찼다.

‘세 번째 검!’

서윤이 직접 장검을 쥔 채 쇄도하고 있었다.


*


“이겼어요, 선생님! 오늘 비무에서 처음으로 송 소협을 이겼어요!”

남궁린이 깡충깡충 뛰면서 좋아했다.

그녀가 환히 웃으니 덩달아 서윤의 기분도 따스해지는 것 같았다.

“정말 기쁘신가 보군요.”

“그럼요. 송 소협이 업신여기는 눈으로 볼 때마다 얼마나 얄미웠는데요! 이걸로 당분간은 찍소리도 못하겠죠?”

서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송 소협이라면 아마 외당원 소속 무인인 송유철을 말하는 걸 텐데, 서윤이 기억하기로 그가 남궁린을 바라보던 시선은 업신여기는 게 아니었다.

‘그냥 홀딱 빠진 표정이라면 모를까.’

하기야 숫기가 없는 건지 유달리 남궁린에게 딱딱하게 굴긴 했었다. 좋아하는 여자애 치마를 억지로 들춰대는 심리랄까.

금지옥엽으로 자란데다 호의를 받는 데에 익숙한 그녀가 오해를 살 만도 했다.

남궁린은 연신 재잘대고 있었다.

“역시 선생님 말이 맞았어요. 과연 무림맹의 학사는 대단해요. 검법을 펼칠 때는 팔보다도 오히려 걸음의 조절이 중요하다는 거. 오늘 확실히 깨달았어요.”

“그거야 굳이 학사가 아니어도 아는 사실인걸요.”

“어쨌든요! 중요한 건 선생님 덕에 깨우쳤다는 거잖아요?”

남궁린 정도의 미소녀에게 칭찬받아 기분 나쁠 건 없으리라.

서윤이 선선히 웃으며 물었다.

“어떤 보법을 쓰셨습니까?”

“복호유보(伏虎流步)였어요. 한번 보실래요?”

남궁린이 자세를 한껏 낮췄다.

이름 그대로였다. 먹잇감을 앞에 두고 자세를 낮춘 호랑이 같은 모습.

그런 채로 슬금슬금 먹이를 향해 다가간다. 물론 이것만으론 보법이라기엔 한참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한순간.

허벅지의 힘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도약을 하는 순간이다. 복호유보의 요체는 기실 이것, 도약 시의 한 걸음이었다.

방향 전환에 약점이 있긴 하지만 그 순간적인 속도는 여느 보법으로 따라잡기 힘들 정도다.

게다가 유연한 몸을 지닌 그녀에게 있어 이보다 어울리는 보법도 없으리라.

‘그건 그렇고…….’

서윤의 얼굴이 붉어졌다. 남궁린의 자세가 자못 뇌쇄적이었던 까닭이다.

무가의 딸답게 유연한 그녀의 몸이 탄력적인 굴곡을 그렸다.

슬쩍 내려간 허리로부터 이어진 곡선이 엉덩이로 올라오며 활등을 그린다.

보법을 펼치기 위한 자세라고는 해도 좀 자극적이었다.

“선생님?”

“네, 네?”

“선생님도 한번 해보실래요?”

마음속을 들킨 건가 하던 서윤은 내심 안도했다.

“저는 이런 몸인지라 자세를 따라해 봤자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도요. 운동 삼아 한다고 생각하시면 괜찮잖아요?”

“글쎄요…….”

“아이, 참! 그냥 한번 해보세요. 제가 잘 가르쳐 드릴 테니.”

그녀의 등쌀에 밀려 서윤도 복호유보의 자세를 취했다. 유연한 그녀에 비하면 누가 봐도 엉거주춤한 모양새였지만.

“이러면 되겠습니까?”

“좀 더 자세를 낮춰 보세요.”

“이렇게요?”

“조금 더 낮게요!”

“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데요?”

“에이, 남자가 그렇게 허리가 부실해서 어디다 써먹겠어요?”

서윤의 얼굴이 한층 붉어졌다.

그걸 본 남궁린이 쿡쿡 웃었다.

“조금만 더 해보세요. 조금 더 낮게요.”

그녀의 입술이 느릿하게 달싹였다.

“조금 더 낮게…….”


더 낮게!

서윤의 몸이 흑일령의 품으로 쇄도했다. 자세를 극도로 낮춘 모양새는 먹잇감을 노리는 한 마리 범의 형세였다.

코끝이 땅에 닿을 것만 같다. 이대로 엎어져 기절하고만 싶다. 탈진 상태의 몸뚱이는 당장이라도 땅바닥에 처박힐 것만 같다.

그러나 처박히지 않는다.

서윤은 그 순간 한 줄기 바람이었다.

그리고 한 순간.

바람은 돌풍이 되어 솟구쳤다.

지난 열흘이 서윤에게 준 것은 제어력 하나만이 아니었다. 기실 서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노인이 이어 놓았던 기혈 덕에 하단전 역시 약간은 회복되어 있었다.

밤마다 이어졌던 은밀 기동은 하반신을 단련시켰다. 흉내 내기에 지나지 않던 호흡도 약간이지만 토납법의 역할을 했다.

그야말로 미미한 수준의 내력. 비유컨대 한 방울 이슬에 다름없음이리라.

기껏해야 한 걸음의 보법을 펼칠 정도나 될까?

그러나 그 작은 것들을 한데 모아, 서윤은 복호유보의 한 걸음을 확실히 펼치고 있었다.

이는 계산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몇 가지의 자그만 우연들이, 서윤의 의지와 합쳐져 이룬 결과라 해야 옳았다.

고작해야 단 한 걸음.

그러나 흑일령의 심장을 노리기엔 충분했다.

“이익!”

흑일령이 다시금 검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두 번에 걸친 검격은 오른쪽 어깨를 완전히 부숴 놓았다.

서윤도 그걸 알았기에 일부러 오른팔 쪽으로 쇄도했다.

때문에 흑일령으로선 왼손으로 대처하기 애매했다. 몸을 빼면 간단한 일이지만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크앗!”

기합성과 함께 어찌어찌 검을 휘두르긴 했다. 그러나 서윤의 종아리 쪽 옷깃만 스치고 지나갔다.

그 사이 서윤은 흑일령의 오른 어깻죽지 밑을 완전히 점했다.

푸욱!

칼날이 파고드는 소리.

검기로 호신강기를 뚫고는 그대로 비틀어 심장까지 찔러 넣었다.

쿨럭!

흑일령이 입으로 피를 토했다. 그는 뒤늦게 왼팔을 뻗어 서윤을 후려쳤다.

힘껏 쳤으나 내력은 실을 수 없었다. 심장을 꿰뚫린 탓에 완력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서윤은 그저 몇 걸음 물러나기만 했다.

흑일령은 가슴팍에 꽂힌 검과 서윤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의 머리는 자신을 패배시킨 수법을 차분히 복기하고 있었다.


세 개의 검, 그리고 한 걸음.


“훌륭하다.”

흑일령의 몸이 서서히 무너졌다.

쓰러진 그의 숨소리가 차츰 희미해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서윤은 참았던 숨을 토하며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작가의말

 

30회군요. 정확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학사검신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 출간 공지입니다. +27 14.02.09 6,216 46 1쪽
» 10장 : 세 개의 검, 그리고 한 걸음 (3) +65 14.02.03 16,994 803 11쪽
9 10장 : 세 개의 검, 그리고 한 걸음 (2) +48 14.02.02 15,254 673 10쪽
8 10장 : 세 개의 검, 그리고 한 걸음 (1) +36 14.01.31 16,963 626 10쪽
7 9장 : 단 한 명의 학사 (3) +44 14.01.30 16,867 647 12쪽
6 9장 : 단 한 명의 학사 (2) +67 14.01.29 16,791 739 9쪽
5 9장 : 단 한 명의 학사 (1) +50 14.01.28 17,162 707 9쪽
4 8장 : 반격 (3) +35 14.01.27 17,312 654 9쪽
3 8장 : 반격 (2) +39 14.01.26 17,372 676 8쪽
2 8장 : 반격 (1) +49 14.01.25 18,911 671 8쪽
1 서장 +15 14.01.06 25,055 632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