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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숫자를 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최근연재일 :
2019.11.19 21:00
연재수 :
183 회
조회수 :
151,980
추천수 :
3,311
글자수 :
1,250,240

작성
19.04.0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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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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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글자
12쪽

*2*

DUMMY

4.

숫자가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이들의 머리 위에 있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지갑을 잃어버린 남자아이의 이름은 양훈.

반장의 이름은 김도훈.

범인으로 지목된 여자아이의 이름은 이수지.

이수지를 압박한 머리를 묶은 여자애는 이미수.

그리고 담임 유인준.


이들과 주변 아이들의 말을 들은 나는 어느새 메모장을 꺼내 적고 있었다.

사건 내용은 간단했다.

양군은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저녁 식사가 늦어진다는 소식에 바깥 분식점에서 식사하기 위해, 지갑을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지갑을 훔칠 수 있는 시간은 모두가 나가 있는 체육 시간뿐이라고 생각한 그는 유일하게 체육 시간에 나오지 않았고, 교실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이수지를 범인으로 생각한 것이다.

“양군 저거 또 건망증 도진 거 아니야?”

“에이, 근데 오늘은 교실만 있었잖아.”

“그러고 보니 화장실도 안 갔네.”

“그러면 이수지가 범인?”

“전교 일 등 머리로 바로 걸릴 거라는 거 모를 리 없잖아.”

“내가 듣기로는 집안이 기울어서 특목고에서 이곳으로 왔다는 소문을 들었어.”

“나는 일진이었다가 쫓겨났다고 들었는데.”

“아니야. 내가 알기로는 너무 뚱뚱해서 병원 신세였다가 간신히 이곳에 온 거라고 들었어.”

“아무렴 어때. 오늘 잰 좃 된 거야.”

“맞아.”

“쯧쯧. 독사 년이 물었으니 끝이긴 하지. 쟤 아버지가 이곳 경찰서 과장님이시잖아. 저러다 경찰서까지 가겠네.”

같은 반 아이에 대한 소문이 많다는 건 결코 좋은 게 아니다.

그만큼 소문의 주인공에게 직접 묻기 힘들다는 뜻이니까.

이는 두 가지를 뜻한다.

주인공이 따를 당하고 있다거나, 건드리기 힘든 일진이라는 뜻이니까.

지금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이수지의 모습은 한가지를 뜻했다.


따.

나와 같은 따.

그 빌어먹을 따.

잠시 동안 잊었다고 생각했던 따.

따 따 따.


콱.

나는 메모장에 구멍이 뚫을 정도로 펜에 힘주어 내리 찍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둘 중 하나였다.


이들과 동참해 방관하거나.

아니면 딱 봐도 자신이 아니라고 온 몸을 표현하고 있는 아이를 도와주거나.


제일 편한 건 외면하는 거다.

도와 줘봤자 이곳에서 실세인 독사라고 불린 이미수라는 여자애와 척을 지고 계속해서 시달릴 것이다. 심하면 다시 따가 되겠지...

외면해야 다시는 따를 당하지 않을 것이고, 내 마지막 3년간의 학교생활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고 편하게 마무리 할 수 있다.

정확히는 조금 전 느꼈던 충만감과 황홀감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살자.

이제 나도 다른 이들에게 뒤섞여 웃고 떠들며 지내자.

그래서 나도 평범한 이들처럼, 평범하게 지내다 졸업하자.

마음속에서 내 욕망은 커졌고, 점점 앞에서 들려오던 말소리는 줄어들어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래 외면하자.

“후...”

나는 몸을 뒤로 눕혔다.

자연스럽게 상체가 곡선을 그리며 뒤로 꺾였고, 전과 다르게 길어진 내 상체는 뒤에 걸려 있는 거울까지 기울어졌다.

무심코 그 거울을 바라본 나는 순간 숨을 멈추었다.


1


나의 머리 위에도 숫자가 있었다.

회색.

그리고 그 숫자의 색이 검게 변하고 있었다.

결코 좋은 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나였다.

왜?

나는 그저 따가 되기 싫을 뿐인데.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지내고 싶을 뿐이야.

그냥... 평범.

[저들이 너를 도와줄 줄 알았지?]

순간 들려온 남자아이 목소리에 세상이 크게 흔들렸다.

김명호.

놈의 목소리다.

[놈들은 절대로 너를 도와주지 않아. 그저 네가 빨리 사라지길 바랄걸? 그래야 자신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잊을 수 있을 테니까? 왜 그렇게 억울한 표정을 지어. 너라고 다를 거 같아? 과연 너라고 그들처럼 되지 않을까?]

하지만 점점 들려오는 목소리는 괴물의 음성처럼 변해 나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으...”

깨어난 후 처음으로 두통이 내 머리를 씹어 먹었다.

맨 뒷자리라서 아이들은 내 상태를 눈치 채지 못했다.


내가 병자라는 사실이 들킬까봐.

흐릿해진 시야 너머 보이는 눈물을 들킬까봐.

내가 멋진 놈이 아니라 겁쟁이라는 사실을 들킬까봐.


으드득.

이를 악물고 견뎌내는 와중에, 손등을 움직여 눈물을 훔쳤다.

빌어먹을...

나는 아니길 바랐는데...

그사이 검게 변하고 있는 숫자를 바라보며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악인이다.

그런데, 난 너와 달라. 김명호.

[어떻게 다른데.]

으드득.

난.

미친놈이거든.

다시 회색으로 돌아가는 숫자를 바라보며 나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것도 완전 미친놈.

드르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내가 일어나면서 낸 소음에 나를 바라본 다섯 사람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반장을 제외한 네 사람의 머리 위의 숫자가 검은색으로 변해있었고, 그곳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형체의 연기가 흘러나와 이지수를 감싸고, 아니, 압박하고 있었다.

“지금이 웃을 분위기가 아니지 않니? 웃음 거두고, 어서 제 자리로 돌아가지 못해!”

굳은 얼굴의 유인준은 냉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목소리도 그만큼 삭막했다.

자기가 담당하는 반에서 도둑질했으니, 당연한 표정과 행동이었지만, 그의 머리 위 숫자 색은 검은색이었다.

“혹시 이수지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나의 물음에 움찔한 그가 입을 열지 않았지만, 바로 답하지 않는 모습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검은색 숫자의 주인공인 양군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도?”

“당. 당연하지.”

그리고 마지막 검은색 숫자의 주인공 이미수를 바라보았다.

이미수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아이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열쇠를 가진 이 아이가 범인이 분명하잖아. 안 그래 애들아?”

내가 묻기도 전에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그녀의 목소리는 전과 다르게 누그러져 있었다.

다들 답을 피하거나 다른 이들의 지지를 요구하는 걸 보고, 나는 처음과 다르게 그들이 이수지가 범인이라는 걸 확신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째서?

나라도 이수지가 범인이라고 생각할 텐데?

궁금증은 다섯 사람 중 유일하게 숫자가 하얀, 우리 교실의 반장 김도훈의 말을 듣고 풀 수 있었다.

김도훈은 운동할 때와는 다르게 약간 갈색빛이 도는 안경알이 끼워진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안경알이 불안하게 흔들리자 그것을 다시 고정하면서 말했다.

“수지 책상이나 가방, 그리고 사물함에 지갑이 없었잖아. 그리고 수지가 열쇠 주인이긴 해도, 교실 창문이 열려 있었어. 충분히 다른 반 아이가 몰래 들어오거나 외지인이 훔칠 수 있었다고. 아니면 혼란을 틈 타 우리 반 아이들이 훔쳤거나.”

마지막 말에 그와 나를 제외한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떻게 같은 반 아이를 의심할 수 있어.”

“맞아. 네가 그러고도 반장이야.”

“목사님 아들이 남을 의심하는 말을 하다니 실망이야.”

아이들이 내뱉는 날카로운 말들에 의해 김도훈 머리위에 있는 하얀색 숫자에 구멍이 숭숭 뚫리기 시작했다.

사나운 사람들의 기세 밀려 입술만 깨물고 답하지 못하는 김도훈의 모습이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내 머릿속을 찔러왔다.

왜 이러는 거야.

이제 그만 아프고 싶어.

그만 아프고 싶다고.

“그만!”

내 외침이 끝나자마자 교실 안은 적막이 흘렀다.

좃 됐다.

순간 다시 따가 되어 웅크리는 내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 상황을 면하려면 다시 사건에 시선을 돌려야 해!

나는 이미수를 바라보았다.

“독사.”

“독사?”

“미안, 순간 마음속에 있는 말을 내뱉었네.”

“풋.”

“푸흡.”

뒤에서 몇 명 아이들이 웃는 소리가 들려오자, 이미수의 눈꼬리는 더 올라갔다.

나는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선수 쳤다.

“증거도 없는데 너무 단정 지어 말한 거 아니야?”

“그거야. 열쇠를 가진 건, 이 년, 뿐이잖아.”

“년이 아니라 이수지다.”

“흥. 내가 맘대로-”

“미수 이건 수호 말이 맞아. 같은 반 친구를 그렇게 부르면 안 돼.”

선생님의 말씀에 그녀는 입술을 내밀었다.

“네~”

“아무튼 경찰 아버지를 둔 네가 너무 강압적으로 이수지를 범인으로 몰은 건 아닌가 싶어서. 혹시 전교 일 등인 이수지를 질투해서-”

“그런 거 아냐! 난 단지 우리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압박하면 술술 불 줄 알았다고! 난 그렇게 치졸한 년이-”

“년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해야지. 그런 말 쓰지 마. 알았어?”

내가 단호하게 내뱉은 말에 이미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라써.”

갑자기 몸을 왜 배배 꼬는 거야? 배배

“억지 주장도 그만하고.”

“응...”

일단 그녀 머리 위에 있는 검은 숫자가 회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시선을 양훈에게 돌렸다.

“왜. 왜 그래?”

“너 지갑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언제지?”

“음... 어젯밤에 치킨 시켜 먹고. 이빨 닦고. 침대에 누울 때 머리맡에 놨고, 아침에 일어나서... 나서...”

말을 잇지 못하는 그의 머리에 검은 숫자가 회색빛으로 변하는 것을 발견한 나의 얼굴에 미소가 자리 잡았다.

“놓고 왔지?”

“어? 으...응.”

대답과 동시에 하얀색으로 변했고,

“야! 너 때문에 내가 미친년이 됐잖아!”

“이 녀석이 규칙을 어기고 치킨을 시켜먹어!”

미수와 선생님의 머리 위 숫자 색도 하얀색이 되었다.

그리고 하얀색 숫자가 가루가 되더니, 여전히 검은 가루에 휩싸인 이수지라는 작은 아이의 몸으로 날아갔다.

“흑.”

하지만 검은 가루는, 굵은 눈물을 흘리는, 아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얀 가루가 검은 가루를 방해하긴 했지만, 울고 있는 이수지를 구해주지 못했다.

뭐가 문제지?

왜 더 많은 하얀 가루가 이기질 못하는 걸까?

고민하는 나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네가 만약 같은 상황이라면 무얼 제일 원하지?

같은 상황이라면...

...이 뭔지 나는 모르겠고.

나를 괴롭힌 아이들이 나를 만났을 때 이것만은 꼭 해줬으면 하는 게 있다.

사과.

진심어린 사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그 모습을 나는 보고 싶다.

난 단 한 번도 그걸 보지 못했고, 삼 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과거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이 아이만이라도 나와 달랐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내 머릿속에서 피어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 욕망을 참지 못했다.

왜냐고?

나는 악인이니까.

팍.

“윽.”

양훈의 등을 내리친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뭐해?”

“응? 뭘?”

“사과해야지.”

“어?”

“범인으로 몰았잖아. 설마 미안한 감정을 못 느끼는 거야? 설마 사이코패스?”

“아니야! 미안해. 많이 미안하다고. 단지 창피해서.”

“변명하지 말고 제대로 사과해. 그리고 이건...”

나는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들도 해당하는 거 알지?”

이수지의 울음소리만 흐르자, 나는 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설마 너희들 모두 사이코-”

“아니야!”

아이들이 수지 앞으로 다가왔다.

“미안하다. 수지야.”

“미안해.”

“정말 미안.”

“으어어엉.”

아이들의 사과를 들은 이수지는 더 크게 울었고, 나는 슬쩍 뒤로 물러났다.

시간이 흐르고 검은 가루가 하얀 가루에 의해 흩어지는 걸 바라보던 나는 두 가루, 아니,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숫자가 사라지는 걸 보니까, 내가 정상인이 된 기분이 들어서 좋네.

교실 공기도 예전에 느꼈던 텁텁한 나무 냄새가 느껴지는 거 같고.

여자나 남자나 땀 냄새가 역겨운 것도 다시 느끼고 말이야.

무엇보다 숫자가 없는 게 너무 좋아.

나는 거울로 고개를 돌렸다.

과거 어둡고 우울한 색으로 가득했던 내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었다.

어때?

내 물음에 환청은 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미쳐도 곱게 미쳤지?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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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ㄱ* +1 19.04.17 1,209 24 14쪽
28 *11* 19.04.16 1,199 26 14쪽
27 *11* +2 19.04.15 1,170 26 17쪽
26 *11* 19.04.14 1,201 2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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