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선작은 하셨나요?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조회수 :
16,066
추천수 :
1,480
글자수 :
2,061,634

작성
23.04.06 06:00
조회
43
추천
3
글자
12쪽

36. 그 이름은 김치 - 6

DUMMY

“그 정도로 자신이 있으면, 한 번 먹어봅시다.”


하룡은 어흥선생이 내민 김치통을 받아 들었다. 그러나 내심 못 믿겠는 모양인지, 연신 채야를 바라보는 하룡. 하지만, 채야의 표정은 그의 그런 태도를 꾸중이라도 하듯 완강하고 딱딱했다.


“말을 뱉었으면 지켜야 한다랄까나.”

“네, 스승님. 알겠습니다.”


하룡은 김치통을 열어, 두 눈으로 내용물을 확인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알차고 먹음직스러운 김치들. 순간, 하룡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거, 스승님이 담그신 거 맞죠? 저 사람이 아니라.”


하룡은 현과장을 할긋 쳐다봤다. 그러자,


“지금 내 실력 무시한 거야? 나 김장 마이스터 현과장의 실력을?”


발끈하며 두 눈을 부라리는 현과장, 그의 눈빛에 심어진 분노는 갓패치의 꽞ㅇ과 생떼 이상으로 고약해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퀄리티의 김치가 나올 리 없는데.”


하룡은 현재의 상황이 혼란스러운 모양인지,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의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채야. 이어서 그녀의 나무라는 듯한 어조의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 나왔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랄까나.”


하룡은 천천히 채야의 말을 곱씹었다. 겉모습이 다가 아니란 말인 것인가. 그 순간, 천천히 밝아지는 하룡의 표정. 마침내 그녀의 뜻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겉모습을 보면 안 된다는 말씀은... 아! 그런 거군요.”


그는 현과장을 향해 피식 웃더니, 그대로 김치를 찢어서 자신의 입에 넣었다. 그런데,


“스승님! 이거 아닌데요?!”


입 안에 넣자마자 은은하게 퍼지는 양념의 매콤함. 씹으면 씹을 때마다 육즙처럼 흘러나오는 배추의 달달함. 게다가 아삭한 식감까지. 어느 한 부분도 나무랄 때가 없는 훌륭한 김치, 아니 요리였다.


“이게 나, 김장 마이스터 현과장의 솜씨. 훗훗훗.”


현과장은 모든 사람들의 앞에서 똥폼을 잡으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달랐다. 하룡은 달랐다. 이렇게 맛있는 김치를 채야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만든다고? 그것도 자신의 주막에서 난동을 피웠던 저 인간이? 자신의 김치를 욕했던 바로 저 인간이? 하룡은 용납할 수 없었다.


“당신! 당신 말이야! 당신!”


하룡은 현과장을 향해 거칠게 다가왔다. 하룡의 눈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서운 분노. 그 분노의 원인이 음식에 대한 자존심 때문만은 아닌 듯 했다.


“도대체 무슨 약점을 잡고 있기에 우리 스승님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양보를 하시는 거지?”

“양보라니 무슨?”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에, 두 눈만 껌뻑이는 현과장. 그는 갓패치와 어흥선생 그리고 채야를 번갈아 바라봤다.


“도대체 어떤 약점을 잡았냐고!”

“약점 같은 건 없는데? 그치?”


현과장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더욱 성난 표정으로 바뀌어 가는 하룡의 얼굴. 주변의 사람들도 하룡의 말에 동조를 하는 듯이 얼굴에 비난과 분노를 가득 담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주방장님은 그렇다고 쳐. 식사하시던 분들은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 식사들 하세요. 식사들!”


하지만 요지부동인 사람들. 현과장은 어쩔 수 없었다. 비장의 카드를 꺼내드는 수밖에.

갑작스레, 하룡에게서 김치통을 빼앗은 뒤, 주변 사람들에게로 달려가는 현과장. 그는 김치통에서 김치를 쭐쭐 짖어서, 거침없이 사람들의 입에 쑤셔 넣었다. 김치가 입안으로 들어오자, 처음엔 거부하는 듯한 사람들이었지만, 이어지는 매콤함과 단짠단짠의 하모니가 그들의 찌푸린 인상을 활짝 피게 만들었다.


“자자, 들어가서 밥들 드셔! 밥이랑 잘 어울리니까.”


순식간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밥을 한 숟가락 입에 넣더니, 곧바로 황홀감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룡의 표정은 더욱 굳어져 갔다. 그는 확신했다. 이 김치는 스승, 채야의 새로운 레시피라는 것을.


“스승님! 무슨 약점을 잡히셨습니까? 저 인간이 무슨 악랄한 짓을 했기에 스승님께서 이렇게 고귀한 레시피를 넘겨주신 겁니까?”

“넘겨준 게 아니라, 내가 만든 거라니까!!”


현과장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본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렇게까지 믿지 않을 줄이야. 상상치도 못한 반응이었다.


“내가 여기서 한 번 만들어줘? 만들면 믿을 거야?”

“벌써 레시피를 외운 건가. 영특한 인간.”


믿지 않는다. 아니 듣지도 않는다. 이미 하룡은 현과장은 파렴치한 레시피 도둑으로 단정지은 모양이었다.


“이거 현과장이 만든 거 맞다냥.”

“제정신이야? 채야 본인이 아니라는데, 하룡 네가 왜 억지를 부리지?”


하룡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현과장만을 노려볼 뿐.

현과장은 그런 하룡의 눈빛이 낯설지 않았다. 그 언젠가 어느 누구도 그랬다. 자신의 김치를 한입 베어 물더니 말이다.


***


“아니, 이게 현동화 과장의 솜씨라고? 어머니 솜씨가 아니고?”


퉁퉁한 몸매의 중년 여성은, 연신 고개를 기울였다. 너무나 맛 좋은 김치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걸 만든 사람이 여자가 아닌 남자, 게다가 아직 결혼도 안 한 총각이었기 때문에.


“사모님, 제가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봤습니까?”

“영업맨이 거짓말을 안 하는 게 말이 될까요. 현과장.”


정곡을 찔렸다. 밥 보다 입에 더 달고 사는 게 거짓말. 현과장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어때, 나도 한 눈썰미 하지?”


여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현과장의 가슴 한편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친구들에게 오타쿠라고 놀림을 받았을 때도 이렇게까지 마음이 아프진 않았다. 어린 시절 잘 나온 시험 성적 때문에 커닝으로 의심 받았을 때도 이 정도까지 억울하진 않았다.


“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상대는 갑.

자신이 만든 김치까지 퍼 날라야 할 정도로 잘 보여야 하는 그런 인물이기 때문에.


***


현과장은 영업맨 시절의 자신이 떠올랐다.

그래, 그때 거래처 사모도 솜씨를 믿지 않았었다. 믿지 않으려는 상대를 억지로 믿게 만들 방법은 없다.


“그래, 내가 안 만들었어.”


현과장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주막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놀란 토끼 눈이 되어 현과장을 바라보는 갓패치와 어흥선생 그리고 채야. 너무나 놀란 세 사람은 특별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현과장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러니까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 해.”


거짓말? 그래 영업맨은 거짓말이 철칙. 지금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말이야.”


***


“그런데 사모님. 평소에 절 못 믿으셨어요?”


현과장은 활짝 열어 두었던 김치통의 뚜껑을 닫았다. 무척이나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영업맨들 하는 말이야, 죄다 거짓말이지.”


중년 여성은 당연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자, 김치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현과장. 그는 아무런 대꾸 없이 방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현과장, 갑자기 왜 그래?”


갑작스레 현과장을 불러 세운 중년 여성. 그녀의 얼굴에는 당황과 혼란이 가득했다. 현과장은 그녀의 목소리에, 천천히 여성을 향해 몸을 돌렸다. 물론 무척이나 서운한 표정으로.


“사모님, 제가 여기 사장님과 1년입니다. 이 김치는 절 믿어주신 사장님과 사모님을 향한 제 마음이고요. 그런데 절 믿지 않으셨다니요.”

“아니, 현과장, 그게 말이 그렇다는 거지.”


현과장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갔다. 선즙필승.

이런 현과장의 모습에 여성은 점점 더 당황한 몸짓을 내비쳤다.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김치는 내려 놔.”


김치를 맛 본 사람들의 하나같은 반응, 김치는 내려 놔. 그래 현과장이 현재 가지고 있는 무기는 다름 아닌 김치였다. 대한민국 국민의 필수 반찬, 김치.

여성의 눈엔 현과장은 없었다. 오직 김치만 있을 뿐.


“사모님. 1년간 신세 많았습니다.”

“아니, 그냥 가겠다고? 그렇게 김치 가지고 가면 거래 끝이야! 끝이라고!”

“어쩔 수 없지요. 저와의 신뢰가 그 정도였다는 거니까.”


현과장은 그렇게 거침없이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


“난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왔는데. 내가 잘못 온 거 같네.”


현과장은 손에 들고 있던 김치통을 그대로 갓패치에게 넘겼다. 그러자, 동공이 커지고 콧구멍까지 벌렁이는 갓패치. 그는 김치통과 현과장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거...”

“다 갓패치 몫이야.”


현과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갓패치는 주막 평상에 걸터앉아 김치를 집어 들었다. 그런 그를 무척이나 부러운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전부 한 번씩 김치를 맛본 그 주막 안 손님들이었다.


“제정신이야? 눈독 들이지마! 주모 여기 쌀밥만!”


갓패치의 명령과 같은 주문에 흰쌀밥을 퍼서 가지고 온 주모. 갓패치가 그녀의 손에 들린 쌀밥을 먹이 낚아채듯 채가자, 그녀는 고개를 기울이며 갓패치를 바라봤다.


“갓패치님, 그런데 그게 그렇게 맛있어요?”

“아니 맛없어. 그래서 내가 먹는 거야. 난 착하니까.”


거짓말. 누가 들어도 거짓말. 순간 주모도 알아차렸다. 현과장이 가져온 김치가 그냥 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 무슨 짓이지? 스승님의 김치를 감히.”

“내 김치. 당신 스승이 아니라, 내 김치.”


하룡의 시선이 채야를 향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완전히 무시하고 오직 갓패치 손에 있는 김치통만 바라보는 채야.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더니,


“갓패치, 나도 같이 먹으면 안 될까나?”

“제정신이야? 안 돼. 이건 내 거야. 현과장이 날 줬어.”


단칼에 거절하는 갓패치. 그의 앙칼진 답변에 채야는 시무룩해져서 현과장 옆으로 돌아왔다.


“집에 가서 다시 담그면 되니까.” 우리 돌아가자고.“


채야를 다독이던 현과장은 몸을 돌려 주막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바로 그때,


“다시 담근다고? 저걸 저 맛있는 걸? 당신이?”


현과장을 멈춰 세우는 하룡. 그러자, 현과장은 아차 싶은 듯 손으로 이마를 두드렸다.


“아차차. 내가 아니라, 채야, 당신의 스승이. 그럼 모두 돌아가자.”


현과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하룡에게 보내더니, 그대로 주막을 등졌다.


***


“원하는 게 뭐야? 돈? 아니면 실적?”


중년 여성은 다급했다. 당장이라도 현과장이 김치를 가지고 떠나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원하는 게 있겠습니까, 사모님. 그냥 마음이 조금 아플 뿐.”


현과장은 그대로 문을 열었다. 그랬더니,


“김치, 김치는 놓고 가! 제발, 부탁이야, 현과장!”


그런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중년 부인. 이미 그녀는 현과장표 김치의 노예가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음훙한 미소를 짓는 현과장. 그의 눈동자 안에 비열함이 가득했다.

잠깐, 지금 이 장면만 보면, 이 웹소설이 NTR물 일 거란 착각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단연코, 이 이야기는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그런 건전한 개그 판타지. 절대 그런 어른어른하고 야릇야릇한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는 걸 명심하자.


***


하룡은 재빨리 달려가 현과장의 앞을 막았다. 그 옛날의 중년 여성처럼 말이다.

그런 그의 반응에 음흉한 미소를 짓는 현과장. 그의 두 눈동자에 비열함이 가득 차 있었다.

아, 한 번 더 말하지만, 이 글은 개그 판타지. NTR 혹은 BL물이 아니니, 혹시나 행여나 그런 장면을 원했던 분들은 조속히 퇴장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다시 한 번 말씀 올리지만,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진짜 아니라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44. 역쩐재판 - 4 23.04.14 37 4 12쪽
43 43. 역쩐재판 - 3 23.04.13 29 3 11쪽
42 42. 역쩐재판 - 2 23.04.12 33 3 11쪽
41 41. 역쩐재판 - 1 23.04.11 37 3 12쪽
40 40. 제발 좀 끝나라 김치 에피소드 - 2 23.04.10 34 3 12쪽
39 39. 제발 좀 끝나라 김치 에피소드 - 1 23.04.09 34 3 12쪽
38 38. 김치 그리고...2 23.04.08 40 3 12쪽
37 37. 김치 그리고...1 23.04.07 36 3 12쪽
» 36. 그 이름은 김치 - 6 23.04.06 44 3 12쪽
35 35. 그 이름은 김치 - 5 23.04.05 37 3 12쪽
34 34. 그 이름은 김치 - 4 23.04.04 39 3 11쪽
33 33. 그 이름은 김치... 속 작은 외전 <중년탐정 현과장의 사건일지> 23.04.03 38 3 12쪽
32 32. 그 이름은 김치 - 3 23.04.02 40 3 12쪽
31 31. 그 이름은 김치 - 2 23.04.01 42 3 12쪽
30 30. 그 이름은 김치 - 1 23.03.31 42 3 12쪽
29 29. 인고의 보약 - 3 23.03.30 39 3 13쪽
28 28. 인고의 보약 - 2 23.03.29 43 3 12쪽
27 27. 인고의 보약 - 1 23.03.28 45 3 11쪽
26 26. 인간체스 특별전 - 3 23.03.27 45 3 12쪽
25 25. 인간체스 특별전 - 2 23.03.26 45 3 12쪽
24 24. 인간체스 특별전 - 1 23.03.25 43 3 12쪽
23 23. 여왕 찾아 삼만리 - 2 23.03.24 41 3 12쪽
22 22. 여왕 찾아 삼만리 - 1 23.03.23 48 3 11쪽
21 21. 붉은색, 그 의미는...3 +2 23.03.22 55 4 11쪽
20 20. 붉은색, 그 의미는...2 +2 23.03.21 65 4 12쪽
19 19. 붉은색, 그 의미는...1 +2 23.03.20 62 4 12쪽
18 18. 아니, 왜 여기인 거야?! - 2 +1 23.03.19 69 4 11쪽
17 17. 아니, 왜 여기인 거야?! - 1 +2 23.03.18 75 4 12쪽
16 16. 차원문4 +2 23.03.17 77 4 12쪽
15 15. 차원문3 +2 23.03.16 79 5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