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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은 하셨나요?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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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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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6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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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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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9. 붉은색, 그 의미는...1

DUMMY

“색깔? 색깔이 뭐 어때서?”


앉아있던 현과장은 고개를 기울였다. 도대체 색깔이 뭐가 어떻다는 이야기일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그였지만, 시큰둥한 그와 다르게, 주변의 분위기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색은 중요하다냥! 날 봐라냥!”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열변을 토하는 어흥선생. 거실이 그의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다. 이어서 그는 자신의 소매를 불쑥 현과장 앞으로 내밀었다. 희고 고운 어흥선생의 한복 소매. 하지만, 현과장의 눈에는 그저 희고 깔끔하다는 느낌뿐, 그 이상 그 이하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하얀 한복이잖아.”

“그냥 하얀 한복이 아니다냥! 하얀 개량 한복이다냥!”


어흥선생이 다시금 열을 올린다. 그러니까 도대체 뭐가 왜 어떻게 중요하냐고.


“색은 사람의 개성이라고 할까나.”


이번엔 채야가 입을 거들었다. 동시에 자신의 검은 드레스를 자랑이라도 하듯 내미는 채야. 그렇다고 해서 시큰둥한 현과장의 표정이 펴지는 일은 없었다.


“내 나이가 40개인데 개성이 뭐가 중헌디. 그냥 사는 거지.”

“그건 여기 원더랜드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냥!”


어흥선생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완고한 눈빛을 보내는 채야. 아무래도 색깔에 대한 그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 보다 진심인 듯이 보였다.


“현과장은 일반인이 아니다냥. 그러니까 빨리 색을 정해야 한다냥.”

“내가 왜 일반인이 아니야?”


이상하다. 일반인이 아니라니. 설마, 일반인 밑의 계급이 존재한다는 건가? 혹시 노예? 색깔은 계층을 구분 짓는 그런 수단인 건가?


“설마, 나 노예로 만드려고 그러는 거야?”


현과장은 의심의 눈초리를 마구 쏘아댔다. 하지만,


“현과장 사는 곳에는 노예가 있냥?”


그런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어흥선생. 채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과장 저쪽 세계에서 노예였을까나?”

“아니, 난 노예가...”


고개를 젓는 현과장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도중에 끊어지고 말았다.

표정조차 어두워졌다. 그는 가만히 머릿속으로 떠올려봤다. 정말, 노예가 아니었을까.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부모님 손 그늘을 벗어나니 이번엔 사회가 발목을 붙잡았다. 돈이 붙잡았다.

집세, 핸드폰비, 식대, 교통비, 회식비, 은행 대출금, 등등

나가는 돈을 메꾸려면, 그 돈을 벌어야 했다. 회사로 들어가야 했다. 그래, 자발적으로 밑에 있어야 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위치였지만, 전부 돈 때문에 한 일이니까, 노예 보다는 소작농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노예는 아니야! 소작농이지!”

“현과장 농부였냥? 그런데 왜 농사가 그 따위냥?”

“정말, 나보다 못 한다랄까나?”


현과장은 어이가 없었다. 이 인간들 귀로 들어오는 말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 말에는 모두 속뜻이 존재하기 마련이거늘.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난 무진 코퍼레이션의 현과장이라고.”

“무진 코퍼레이션이 땅 이름이냥?”

“땅 이름이 아니라 품앗이 단체 이름 아닐까나?”


이 사람들 소작농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갑갑한 현과장 만큼이나 답답한 듯한 어흥선생과 채야. 그들은 무척이나 소작농에 심취한 듯이 보였다.


“그런 거 아니야. 아, 그냥 돈 받고 일한 거라고.”

“뭐냥. 노가다냥?”


구름이 가득했던 어흥선생의 얼굴이 햇살이 비추듯 환해졌다.

노가다? 어쩌면 다를 건 없었다. 영업도 몸으로 뛰는 직업이니까. 단지 육체적인 소모보다는 정신적인 소모가 좀 더 심할 뿐이었지.


“진작에 그렇게 말을 했으면 좋았을까나~”


채야 또한 환히 미소를 지었다. 아니, 이 사람들 단순한 거야, 아니면 순수한 거야?


“난 현과장이 사무직 중간 관리자 정도는 되는 줄 알았다냥.”

“난 바이어 만나서 계약 따내는 그런 사람으로 알았다랄까나.”


현과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사람들 정확히 알고 있잖아?! 맞아, 그거 맞다고.


“그래, 그거 맞아. 그게 맞다고!”

“아까는 노가다라고 그랬다냥. 지금 거짓말 하는 거냥?”

“현과장,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랄까나. 우리가 말한 게 조금 멋져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말을 바꾸면 안 된다랄까나.”


어흥선생은 이번에도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채야 또한 완고한 눈빛으로 현과장을 쏘아보았다. 현과장을 향한 두 개의 시선. 그 시선은 마치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압박하는 듯 그의 얼굴로 쏟아져 내렸다.

순간, 현과장은 그 어떤 말도 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는 걸 깨달았다. 이 인간들 꼰대 그 자체다. 자신 보다 몇 배 월등한 꼰대 기질이 느껴졌다. 급으로 볼 때, 부장 아니, 이사 급 이상의 꼰대력. 이런 사람들은 쉽게 설득하려 해선 안 된다.


“응, 그래 노가다야. 내가 잘못했어.”


그의 말에, 다시금 얼굴을 활짝 편 두 사람. 그 반응에 현과장은 한 숨 돌렸다. 결재 사인을 받기 위해 부장 앞에 서 있는 것보다 더 숨이 막혔었던 시간들. 돌이켜 생각할수록 몸서리가 쳐졌다.


“그럼 색깔을 정하자냥.”

“무슨 색이 좋을까나~”


10년이 넘게 사회생할을 하면서 현과장이 터득한 게 있다. 그건, 꼰대들은 언제나 답정너라는 사실. 뭐 이런 건 꼰대랑 1시간, 아니 5분만 대화 해봐도 알 수 있는 거지만.


“무슨 색이 좋을 거 같은데.”


이럴 땐 그냥 묻는 게 낫다. 어차피 현과장의 의견 따윈 그들에게 있어서 ‘Out Of 안중’이니까.


“색이 있기는 한데... 어떨까나?”

“역시 갓패치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냥?”


둘은 색을 찜해 둔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갓패치에게 물어본다고? 여기에 꼰대를 한 명 더 부르는 거야? 지금 한 번에 세 명의 꼰대를 상대하라는 거야?


“아니, 아니, 아니! 그냥 둘이 정하면 되지. 뭘 또 번거롭게 갓패치를 부르고 그래?”


현과장은 다급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갓패치가 오는 건 막아야 했다. 10년의 경험과 지난 차원문 이벤트로 미루어 볼 때, 그는 그냥 꼰대가 아니다. 꼰대 중의 상꼰대. 이사 급이 아닌 회장급 꼰대 기질의 보유자. 그냥 움직이는 인간 재해였다.


“그만큼 중요하다냥.”

“아니, 색 하나 정하는데 뭐가 그렇게 중요해?”


그 순간, 찾아온 정적. 어흥선생과 채야의 싸늘한 눈빛이 현과장의 얼굴 위로 총알처럼 다가왔다.


“중요하다냥.”


엄숙하고 진지하게 깔리는 어흥선생의 음성. 지난 날 갓패치의 육중한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화를 낼 정도로 그렇게 중요한 거야? 단지 색깔을 정하는 게?


“난 갓패치를 부를까나.”


자리에서 일어서는 채야. 움직이는 그녀에게서 왠지 모를 냉랭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싸늘한 시선과 냉랭한 기운에 아무런 반응도 못한 채 그저 두 눈만 꿈뻑이는 현과장. 그는 그렇게 갓패치가 오는 순간까지 그대로 굳은 채로 앉아있었다.


***


“색깔을 정한다고?”


갓패치는 턱을 긁적였다. 사뭇 진지한 그의 표정.

무엇보다도,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제정신이야?”를 입에 담지 않았다. 이 사람 그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 완전 신중하다.


“갓패치,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런 갓패치 옆에 꼼짝없이 앉아있는 현과장. 지난 경험으로 많은 것을 배운 그는, 이번엔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현과장은 일반인이 아니니까.”


어흥선생 때와 똑같은 대답이 들려왔다. 일반인이 아니라니 무슨 뜻일까.


“일반인이 아니라고? 내가 그럼 뭔데?”

“현과장, 제정신이야? 영원히 안 죽는 인간이 어떻게 일반인이야. 키토랑 동급이지.”


갓패치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어흥선생과 채야. 이해가 안가는 건 오직 현과장 뿐이었다.


“아니, 안 죽는 것 빼고는 아무런 슈퍼 파워가 없는데?”

“그거면 됐지. 뭘 더 욕심을 내? 제정신이야?”


갓패치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인데 너무... 좀... 그렇잖아!”


주인공 치고는 너무나 비루한 그의 능력. 분명 엄청난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임팩트가 없다. 능력을 보여주려면 죽어야 하다니. 사실 사건이고 싸움이고 죽으면 끝나는 거잖아.


“주인공이니까 그만큼 좋은 능력을 받은 거다냥. 불만 갖지 마라냥.”

“그렇다랄까나. 불만은 노노하다랄까나.”


단호한 듯 말을 건네는 어흥선생과 채야였지만, 그들의 입꼬리는 씰룩씰룩 멈출 줄 몰랐다. 자기들은 좋은 능력이 있다고 실실 쪼개는 거 봐라. 영업부에서 잔뼈가 굵은 현과장이 이런 상대의 미묘한 움직임을 놓칠 리가 없었다.


“잠깐, 두 사람 입술이 씰룩거리는데.”

“모기 물렸다냥.”


현과장이 치고 들어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곧바로 받아치는 어흥선생. 그의 대답에, 채야는 뭐가 분한 지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말 할 건데! 난 그럼, 모스키토에게 물렸다랄까나.”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짓는 채야. 그녀를 바라보는 세 사람의 시선에서 무시와 경멸이 가득히 느껴졌다.


“왜 그럴까나~”

“할매, 모스키토가 모기다냥.”


할매라는 단어에도 반응을 안 한 채, 그저 눈알만 돌리는 채야. 남정네의 때국물을 젊음의 비약이라고 했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채야는 남들 보다 조금, 아주 조금 지식이 부족한 모양이다. 이럴 땐 그냥 너그러이 눈을 감아 주자.


“다들 제정신이야? 헛소리 그만하고 색이나 골라.”


갓패치의 말에, 쭈뼛거리며 입 열기를 망설이는 어흥선생. 채야도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색이 있긴하다냥.”

“있다랄까나.”


그들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갓패치. 그는 그런 그들을 향해 거침없이 질문을 했다.


“무슨 색인데?”

“그게... 그러니까냥...”


말도 못 꺼내고 그저 머뭇거리기만 하는 어흥선생. 채야는 뭐가 두려워서인지 갓패치의 눈조차 못 마주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뭘 그렇게 시간을 끌어? 아, 몰라. 나 그냥 그 색 할래. 그 뭐냐, 그래, 갓패치 가죽 재킷 색.”


답답함에 모두를 재치고 자신의 생각을 질러버린 현과장. 그가 입에 담은 색깔은 갓패치가 팔고 있는 가죽 재킷의 색상이었다. 붉은색. 그래, 여왕이 입고 있는 옷의 색이자 그녀의 개인 색깔.


“혀, 현과장 제정신이냥?”

“어흥선생. 겹쳤잖아. 제정신이냐는 갓패치가 쓰는 말이라고.”


무척이나 당황해 하는 어흥선생을 그저 꼰대의 호들갑 정도로 무시하는 현과장. 그는 개의치 않은 듯 담담하게 주변의 반응을 살폈다. 그런데,


“현과장, 미쳤다랄까냥!!”


채야의 반응이 이상하다. 어흥선생처럼 말 꼬리가 섞였다. 얼굴에도 당혹감이 가득하다. 그제야 자신의 말을 천천히 되새겨보는 현과장. 설마, 말실수는 했는지 그는 꼼꼼하고 또 꼼꼼하게 자신을 뒤돌아봤다.


“붉은색이라고? 현과장, 붉은색이 뭘 뜻 하는지 알아?”


세 사람 중 유일하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는 사람, 갓패치. 그가 무척이나 진지한 눈빛으로 현과장을 바라봤다.


“정열?”

“정열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이는 갓패치. 현과장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는 채, 그냥 담담하게 대화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하긴, 여왕의 색이 붉은색이란 걸 알았다면 현과장도 그 색을 입에 담지 않았겠지.

사실을 모르는 현과장에게 긴장감이 감도는 건 어불성설. 긴장하는 건, 아니 할 수 있는 건 어흥선생과 채야 쪽이었다.

숨 막히게 흐르는 정적. 미묘한 긴장감만이 거실에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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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2. 역쩐재판 - 2 23.04.12 33 3 11쪽
41 41. 역쩐재판 - 1 23.04.11 37 3 12쪽
40 40. 제발 좀 끝나라 김치 에피소드 - 2 23.04.10 34 3 12쪽
39 39. 제발 좀 끝나라 김치 에피소드 - 1 23.04.09 34 3 12쪽
38 38. 김치 그리고...2 23.04.08 40 3 12쪽
37 37. 김치 그리고...1 23.04.07 36 3 12쪽
36 36. 그 이름은 김치 - 6 23.04.06 43 3 12쪽
35 35. 그 이름은 김치 - 5 23.04.05 37 3 12쪽
34 34. 그 이름은 김치 - 4 23.04.04 39 3 11쪽
33 33. 그 이름은 김치... 속 작은 외전 <중년탐정 현과장의 사건일지> 23.04.03 38 3 12쪽
32 32. 그 이름은 김치 - 3 23.04.02 40 3 12쪽
31 31. 그 이름은 김치 - 2 23.04.01 42 3 12쪽
30 30. 그 이름은 김치 - 1 23.03.31 42 3 12쪽
29 29. 인고의 보약 - 3 23.03.30 39 3 13쪽
28 28. 인고의 보약 - 2 23.03.29 43 3 12쪽
27 27. 인고의 보약 - 1 23.03.28 45 3 11쪽
26 26. 인간체스 특별전 - 3 23.03.27 45 3 12쪽
25 25. 인간체스 특별전 - 2 23.03.26 45 3 12쪽
24 24. 인간체스 특별전 - 1 23.03.25 43 3 12쪽
23 23. 여왕 찾아 삼만리 - 2 23.03.24 41 3 12쪽
22 22. 여왕 찾아 삼만리 - 1 23.03.23 48 3 11쪽
21 21. 붉은색, 그 의미는...3 +2 23.03.22 55 4 11쪽
20 20. 붉은색, 그 의미는...2 +2 23.03.21 64 4 12쪽
» 19. 붉은색, 그 의미는...1 +2 23.03.20 62 4 12쪽
18 18. 아니, 왜 여기인 거야?! - 2 +1 23.03.19 69 4 11쪽
17 17. 아니, 왜 여기인 거야?! - 1 +2 23.03.18 74 4 12쪽
16 16. 차원문4 +2 23.03.17 7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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