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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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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연재수 :
3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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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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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5
글자수 :
2,037,868

작성
17.03.20 20:46
조회
418
추천
8
글자
16쪽

엽인들 [사명..세례 21]마지막 일상.

DUMMY

목이 말라비틀어질 것만 같은 갈증에 눈을 뜬 명진은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겨우 일어나 비틀거리며 방을 나섰다. 창밖을 보니 햇살이 쨍쨍한 게 대낮이다.


‘좆 같은..’


터덜터덜 거실로 가서 냉수로 목마름을 해소했지만, 속은 더부룩 했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찬물로 세수라도 하면 나아질까 싶어서 화장실로 향했는데, 변기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방광이 비명을 질러 대며 고통을 호소한다.


‘아주 가지가지 한다, 진짜.’


변기 안으로 주르륵 떨어져 내리는 노란 물줄기에서 지린내가 아닌 술 냄새가 풍겨와 코를 찌르자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입안도 텁텁한 게 숨을 쉴 때마다 악취가 올라오며 구역질을 유발한다.


“아, 술을 끊어야 되는데.”


숙취를 처음 겪었던 열아홉 시절의 결심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는, ‘이럴 거 빤히 알면서 왜 그렇게 퍼부었냐?’ 따위의 생각을 하며 거울 속 창백한 병신을 보니 절로 욕설이 흘러나온다.


“이, 병신아.” 저 한심한 인간은 대체 왜 저러고 사는 걸까?


이유 없이 울화가 솟구치고 보면 볼수록 짜증이 나서 주먹으로 한 대 쳐버리고 싶다. 한데 그러면 거울만 깨질 테니 그만 입을 헹구고 터덜터덜 욕실을 나섰다. 그리곤 혹시나 해장할 만한 게 있나 싶어 부엌을 서성이다가, 냉수나 한 컵 더 마신 뒤에 방으로 돌아왔다. 불현듯 담배 생각이 난다.


'바지 뒷주머니에 뒀던가?'


크지도 않은 방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어제 입었던 청바지가 방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걸 발견하곤 인상을 찌푸렸다.


'엄마가 아침에 저 꼴을 보고 나갔으면 참 좋다고 하셨겠다.'


그는 호주머니를 뒤적여 휴대폰과 담배를 꺼내 들었다. 무심코 휴대폰 화면을 보니 부재중 전화 일곱 통과 메시지가 와있다. 발신자를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는 뻔했다.


‘죄송해요.’


잔뜩 취해서 먼저 자리를 뜬 자신을 걱정하던 친구 몇 놈과 일주일이 넘도록 술에 취해 새벽에 기어들어오는 못난 아들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어머니겠지.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역시나 어머니가 보냈다.


-아들, 속 버릴라 아침 꼭 챙겨 먹어. 그리고 너 일찍 좀 다녀. 큰방 화장대 위에 오만 원 뒀으니까, 나갈 때 챙겨가고.


다시 그 울화가 솟구치자 그는 말없이 베란다로 가서 담배를 한 대 물었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길게 빨아당기던 중, 연기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이자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집어 던졌다.


‘집에 도움은 안 돼도 피해는 안 줘야할 거 아니야! 에이, 그냥 TV나 봐야지.’


멍하니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는데, 시끄럽기만 할 뿐 아무런 재미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근 2년 동안 본 적이 없어 트렌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 그래도 저게 뭐가 웃기다고 저 지랄들이냐?”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이런저런 불만만 늘어놓다가 결국에는 TV를 끄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리곤 별다른 생각 없이 휴대폰을 꺼내보니 벌써 다섯 시 반이라 놀라며 일어섰다.


'아, 조금만 더 있으면 엄마 오겠네.' 그는 다급히 거실을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제 입었던 청바지와 갈색 셔츠를 대충 걸친 뒤에, 5년 전부터 쭉 써왔던 검은 색 NY모자를 눌러썼다. 현관문을 밀면서 친구들에게 ‘PC방, 동네 오면 연락.’이라는 메시지를 돌리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젠장, 화장대라고 하셨지?'


다시 집을 나서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플레이어의 볼륨을 높였다. 휴대폰에 저장된 음악 역시 오래 된 것이었지만, 어디 음악에 유행이 있던가?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던 Anberlin의 음악이 머릿속을 휘젓자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듯해서 발걸음에 힘을 더했다. 마침 흘러나오는 노래가 Autobahn이라는 게 왠지 마음에 들었다.


'오늘은 좀 다른 걸 해봐야지.'


하지만 그는 어제처럼 친구들을 만나서 게임을 하고, “오늘은 어디에서 한잔 빨까?”라며 배회하다 밥 대신 안주로 속을 채우며 술을 들이켰다. 그리곤 또 먼저 일어나면서 애들에게 미안하다 사과하고 술집을 나섰다.


"그래, 내일 또 보자."


고개를 푹 숙인 채 걷다 보니 흐릿한 가로등불이 오히려 더 스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어두컴컴한 골목길이었다. 그래, 바로 어제처럼 말이다.


“좆도, 인생 다 그런 거 아니야? 뭘 바라?”


누군가에게 변명이라도 하듯 중얼중얼대며 걸어가서 길옆으로 줄줄이 늘어선 자동차들 사이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곤 오늘 먹은 안주를 확인하던 중 누런 토사물이 신발을 적시자 킥킥대기 시작했다.


“잘하는 짓이다. 씨 팔, 너 뭐해? 너 뭐하는 거야? 이러려고 내려왔어? 이러려고 내려온 거 아니잖아!”


동생과의 일이 있은 지도 제법 시일이 지났건만, 그날 만들어진 벽은 여전히 견고해서 허물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내가 미친놈이지.”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이 잘못한 일이라 진심을 담아 몇 번이고 사과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놈의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되고 말았다.


‘좆 같은 거.’


가끔 마주칠 때 미안하다 말을 해봐도 동생은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럴 만하지, 누굴 탓해.’


그날 자신은 화만 낸 게 아니라 술로 증폭된 광기와 살의를 드러냈다. 오늘 만난 친구들이라 해도 그런 종류의 살기와 마주하면 자신을 두 번 다시 마주 볼 수 없으리라. 그래도 가족이니까 견디는 거겠지.


“병신.”


자신을 담은 동생의 눈동자에서 불안과 공포를 읽을 때면 끔찍한 기분이 들었고, 때때로 거울 속 낯선 남자와 눈이 마주칠 때면 등골이 오싹해지고는 했다.


‘뭔가 잘못됐어.’


다행히도 악몽을 꾸지는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술기운이 아니면 잠들지 못했다.


‘이유가 뭘까?’


오랜만에 내려온 고추 친구를 위해 날마다 시간을 내는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또 어떠한가? 그들은 예전과 다름없는 우정으로 자신을 대했지만, 같이 자리를 할 때 먼저 드는 생각은 그들의 육체적 약점과 빌어먹게도 죽이는 방법이었다.


‘미쳤어, 미친 거야.’


아무리 외면해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사념에 쫓겨 술을 들이켜다 보면 빨리 취하게 되고, 혹여 술기운에 실수라도 할까 싶어 결국에는 자리를 먼저 뜨고 만다. 당연히 친구들은 불만을 토로했지만, 동생에게 한 것과 같은 실수를 하면 두 번 다시 그들을 만나지 못할 거다.


‘이러다 진짜 큰 사고라도 치면 어쩌지?’


어쩌면 누군가를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특히나 모두가 취해 있을 이런 시간대에는 눈조차 마주칠 수가 없었다.


‘이게 아닌데, 내가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처음 집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끝났다 여겼는데, 크게 잘못된 생각이었나 보다.


‘올라가면 스승님을 한 번 뵈어야..’ 어쩌면 그는 이미 길이 어긋나버렸다는 걸, 더는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인정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한데 그런 그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건, 이 역겹게 뒤틀린 감정들이 켜켜이 쌓이다가 부모님께 폭발해버리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억지로 술을 마시고 자서 늦게 일어나곤 했는데.. 그 또한 임시방편일 뿐 삶이 피폐해지는 건 막을 도리가 없었다.


“씨 팔.” 입안을 맴도는 시큼하고 역한 냄새가 싫지 만은 않게 느껴지자 신경질적으로 입 안을 훑어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골목 골목을 비틀비틀 걷다 보니 어느덧 집 주변까지 왔는데, 2층의 명희 방을 비롯한 집 전체가 환한 걸 보곤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뭐야?”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어서 한참을 망설이다 다시 걸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근처 놀이터였다. 자정이 가까워서 그런지 사람 하나 없이 컴컴한 놀이터는 귀신이라도 나올 듯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예전에 이 시간이면 양아치들이 득실득실했었는데..”


집 생각을 하지 않으려, 오래전에 봤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놀이터 한쪽 구석에 있는 그네에 엉덩이를 걸쳤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 물곤 멍하니 미끄럼틀을 바라봤다.


‘이러다가 진짜 스승님을 만나러 가게 되면.. 좆도, 그건 아니잖아? 그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이야? 그냥 가족들한테 확 까놓고 말해 볼까? 아버지라면 뭔가 답을 주실 지도 몰라. 아, 그냥 그때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명희의 얼굴을 생각하니 또 가슴 한편이 답답해져 온다. 하면 할수록 커지는 후회라는 놈이 이어지는 줄담배를 따라 망상을 불려 자신을 천하의 패륜아로 결정지으려 할 때, 나지막한 전자음을 동반한 진동이 허벅지를 흔들었다.


“집인가?”


휴대폰을 주섬주섬 꺼내 화면에 뜬 발신자를 확인하다가 다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 이놈을 잊고 살았지?’


한없이 기가 죽어 있던 명진은 목에 잔뜩 힘을 주고 기세 좋게 소리쳤다.


-창수야! 네가 웬일이야?


특유의 웃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우렁찬 목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아, 이 아저씨가 많이 고팠나 봐? 얼마나 외로우면 고추 연락에 흥분을 다하시고 그래?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그려진다.


-그래, 이놈아. 외로워서 아주 돌아가시겠다. 그런데 이 시간에 웬일이야? 혹시 제수씨가 또 데이트 안 해준대?


바로 헛기침 소리가 들려오는 게 창수의 당황한 표정이 선하게 그려진다.


-아, 명진이 형님. 우리 수진이는 방금 집에 보냈습니다. 프레젠테이인가 뭔가 준비해야 한다고 한 사흘 쉰다 그러던데.. 팀원들이랑 잘 안 맞아서 하기 싫다고, 그래서 심란하다고.. 잠깐만? 아, 이게 아닌데. 형, 지금 어디야?

-어? 어, 백수가 집에 있지 어딜 가?

-집? 서울?

-아니, 고향.

-그래? 잘됐네. 안 그래도 오늘 형 보려고 탈에 갔다가, 그 무서운 꼰.. 관장님 보고 도망 왔잖아. 아, 그 양반은 보면 볼수록 후달린단 말이야.


관장이라는 말에 명진은 얼굴을 굳혔다.


-탈에 갔었어? 스승님은 어떠셔?

-뭐, 여전히 살벌하더라.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더 쌩쌩해 보이던데? 문 열고 마주치는 순간 똥오줌 다 지릴 뻔 했잖아. 아, 생각하니까 또 다리가.. 아니 그건 그렇고.. 형! 나왔으면 나한테 먼저 연락을 했어야지, 섭섭하게 이럴 거야? 아, 갑자기 눈물이 막..


억지로 울먹거리는 창수의 놀라운 연기력에, 명진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이고 예, 예.. 우리 아우님한테 먼저 보고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이거 제가 너무 죄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명진의 너스레에 낄낄거리던 창수는 느닷없이 화제를 전환했다.


-형, 오늘 나 집 청소 싹 했어.

-청소?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답답한지 가슴을 친 창수는 언성을 높였다.


-아, 형님. 살벌한 꼰대한테 한 3년 붙잡혀 계시더니 말귀를 못 알아먹으십니다. 전에 통화했을 때 탈에서 나오면 같이 살기로 했잖아.

-뭐, 너랑 내가? 우리가 그런 말도 했어?


명진이 기억을 더듬을 때, 창수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뭐 그딴 거 기억 안 나면 또 어때? 형, 그동안 방황했으니까 집에서 푹 쉬고 남자답게 후딱 털어내고 올라와. 나랑 같이 있으면 서로 힘도 되고.. 형도 다시 시작해야지. 설마 공부 포기한 건 아니지?


한동안 말이 없던 명진은 흐릿한 웃음을 그리며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시작? 그래, 시작이라.. 좆 같은 거, 내가 포기를 왜 해?

-오케이, 그럼 생각난 김에 한 일주일 더 쉬고 후딱 올라와. 내가 기막힌 두루치기를 완성했는데, 먹어보면 눈물이 줄줄 술이 술술 들어갈 거야. 아, 라임 죽이지?

-라임? 야, 너 요즘 탑골공원 다니냐?

-뭐, 탑골? 그 정도야?

-요즘 거기 어르신들도 그런 건 안 하셔. 그리고 창수야, 너 제발 제수씨한테는 그딴 거 하지마라. 울면서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아, 벌써 했는데..

-뭐, 너 미쳤어? 아, 이제 알겠다. 그래서 과제한다고 한 거구나.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프레젠테이션인가 뭔가 한다는 게 줄줄 술술 때문이라고? 그래서 며칠씩이나 빠진다고.. 전화 못 받아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한 거였어?


정말로 당황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던 창수는 명진이 웃음을 터트리자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가슴부터 쓸어내렸다. 그리곤 뭔가 한 마디 해주려다가 딱히 이렇다 할 답이 나오지 않자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형, 그냥 빨리 와서 두루치기나 먹어봐. 이제 가게만 개업하면 돈을 아주 포대로 쓸어 담게 생겼으니까.

-그래? 우리 아우님 부자 되시겠네?

-그렇지!

-그래, 미리 축하하고.. 그거 고기는 많이 들어갔냐?

-아, 형! 아직도 고기야? 집에서 어머님이 고기 반찬 안 해줘?

-야, 백수가 무슨 고기반찬이야? 눈치 본다고 사시 되겠다.


함께 낄낄댄 둘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서로 환하게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어쩌다 보니 소원해진 친우의 생각지도 못한 응원에 머릿속이 명쾌해진 청춘은 피우던 담배를 집어 던지고 벌떡 일어섰다.


“그래, 이번 기회에 훌훌 털어내고 올라가자. 여기 있어봐야 답 안 나올 거라는 창수 말이 맞아. 명희한테 사과부터 하고..”


그는 동생이 아직 잠들지 않았기를 바라며 집으로 내달렸다.


‘이제 현실을 부정하지도 외면하지도 말자. 다 받아들이고, 감내하고, 앞으로 가는 거야. 죽도록 맞고 고생하면서 배운 것도 바로 그거잖아? 스스로 믿고 뭐라도 하면 어떻게든 변한다. 그래, 일단 해 보자.’


문득 떠올린 스승의 거친 목소리가 걸음걸음 귓가를 맴돈다.


외면한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선택에는 합당한 대가가 따른다.

네가 떠나기로 선택한 거다.

또한 발 디딘 곳이 지옥이었음을 명심하거라.


“아, 하필이면 마지막에 좆 같은 말이 떠올라?”


훌훌 다 털고 새출발 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섬뜩한 단어가 떠올라 움찔한 그는 강하게 고개 저어 불길함을 털어내곤 단박에 집 근처에 도착했다. 그리곤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며 여전히 환한 집을 쳐다봤다.


‘이상하다, 다들 잘 시간인데? 혹시 내가 오길 기다린 건가?’


못난 자식놈 컴컴한 집에 들어오기가 그럴 거라고 아버지가 켜둘 거실의 보조등만 보여야 했는데, 집 전체가 훤한 게 마치 자신을 반기는 것만 같았다. ‘내가 오늘 결심한 건 또 어떻게 알아 가지고..’ 이심전심, 가족끼리 통했다는 생각에 괜히 설레자 그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좋아, 이번 기회에 확 까놓고 얘기하는 거야. 명희한테 사과도 하고.. 그냥 싹 털고 올라가자.” 술기운이 이래서 무서운 건가 보다.


스승께 배우고 익힌 감각이 끊임없이 위험신호를 보내오건만, 그는 이 말할 수 없는 위화감을 최근 들어 생긴 불안의 연장선상 정도로 여겼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것도 새로 시작할 내일에의 설렘 때문이리라.


“그런데, 어떻게 시작하지?”


그따위 따사로운 생각이나 하며 걸음을 옮기던 그는 집 근처에 주차된 검정 SUV를 발견하곤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못 보던 차인데, 이 근방에 이런 걸 모는 사람도 있었어? 오, 엠 더블유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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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 VicTiM
    작성일
    17.03.20 23:14
    No. 1

    오늘에서야 봤습니다..ㅎ작가님 화이팅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K.S
    작성일
    17.04.05 10:59
    No. 2

    발을 디딘 자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세례식이 어떤 건지 생각났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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