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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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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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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7,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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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1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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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엽인들 [사명..세례 20]

DUMMY

세상 모든 직업이 그렇듯 통칭 청소부들도 간절한 필요와 합당한 대가에 의해 탄생했다. 그들은 폭력조직의 하수인이나 인간 장사를 하는 패륜아 따위와 질적으로 달랐다. 모든 작업을 깔끔하게 과학적으로 처리하는 전문가들이자, 손에 뜨거운 피는 절대로 묻히지 않는 나름의 불문률까지 가진 조직이었다. 그래서 실력에 따른 차이가 극명했고..


‘총기가 허용되지 않는 나라에서의 청소부라..’


추레한 옷차림과 달리 대머리 일당은 고작 30여 분 만에 시체와 관련된 모든 흔적을 말끔히 지웠다. 루비놀 등을 사용한 혈흔 탐색으로 한 번 더 현장을 살핀 뒤 반경 10미터까지 꼼꼼히 약품처리를 하고 휴대폰으로 작업지를 촬영하며 마무리해갔다. 앞으로 두세 번은 더 와서 사후처리를 하기 위함이리라.


‘나쁘진 않군.’ 현이 고개를 끄덕일 때 어디선가 포장된 시체 한 구를 더 가지고 온 대머리가 사인을 보냈다. “자, 이제 마무리합시다!”


청소부들은 자신이 입고 있던 작업복을 벗어서 음식물 쓰레기더미 속에 파묻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래 봐야 지저분하긴 매한가지였지만 말이다. 철수 준비를 끝낸 직원들이 직업병인 흡연을 하며 차에 오르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현장을 둘러본 대머리가 현에게 슬그머니 다가와서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어이쿠 사장님, 이렇게 기다려 주셔서 감사천만입니다. 일단은 제 명함부터..”


사람 좋은 웃음을 그린 대머리는 가죽으로 된 명함지갑에서 녹색 명함을 두 장 뽑아 그에게 건넸다. 현이 말없이 받아들자 깊이 허리를 숙이곤 말을 이어갔다.


“처음부터 쭈욱 지켜보셔서 아시겠지만, 저희가 일 하나만큼은 기똥차게 합니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이 선생님이 믿고 맡길 정도면 말 다한 거 아니겠습니까? 일단 명함을 보시면..”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단 하나의 기업.

-(주)맑음

-각종 폐기물 일체. 음식물 쓰레기 수거 전문.

-대표: 신 선 한

-Phone: Tel: E-Mail: Fax:

-대한민국...



명함을 본 현은 그를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신선한?”


대머리는 바로 그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대소를 터트렸다.


“예, 제가 바로 그 신선한입니다! 이 바닥에 계시면서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래도 이왕 만난 거 제 소개를 올리자면, 오래 전 그날 아버지께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고 이 더러운 세상을 깨끗이 하라는 깊고 넓은 뜻을 담아서, 빛날 선자에..”


현은 한참을 주절거리는 남자를 지켜보다 압착차를 가리키며 물었다.


“전국구?”


그러자 선한은 무슨 그런 걸 다 묻냐며 손짓에 헛웃음까지 흘리며 대답했다.


“사장님, 제가 바로 그 신선한이라니까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사실 저희 맑음으로 말씀드리자면, 양아치 공방 놈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네트워크망을 자랑합니다. 자그마치 200여 명의 직원이 상시 대기 중이라서 전국 어디라도 신속, 정확, 그리고 또 그 뭐냐.. 음.. 어쨌든 뒤탈 없게..”


이런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답지 않게 천성적으로 말이 많은지, 대머리는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때마침 압착차의 운전석에서 고함이 들려오지 않았다면, 적어도 10여 분은 더 입을 털었으리라.


“아버지! 아들 학교 좀 갑시다. 이러다 지각할라.”


이번에도 검정 모자였다. 그는 운전석 창문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채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고, 선한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저..기, 사장님! 절대 오해는 마십시오. 연락이 갑자기 와서.. 아니 그게 아니라, 저놈이 워낙 타고나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사람이 없어서 미성년자인 아들을 이런 일에 쓴다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순식간에 말라붙은 입술을 혀로 축이며 호흡을 고른 선한은 빠르게 이어갔다.


“여하튼,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만 믿어주십시오. 두 말 할 것없이 언제 한 번 불러만 주시면 바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그리고 한 번만 더 말씀드리자면, 저희 맑음은 양아치 공방 놈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전국적인 네트워크망을 자랑합니다. 그래서 회사 주소도 대한민국으로 정한 것이지요.”


본래 이쪽 청소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혈연을 중심으로 뭉친다는 것 정도는 알기에 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자식까지 쓰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타고났다면 나쁠 것도 없었다. 평범한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흥미를 느낀 현은 나직이 말했다.


“곧 연락하지.”

“예? 아, 예.. 감사합니다. 사내대장부답게 화끈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현명하신 고객님, 편히 들어가십시오.”

“그러지.”


느긋한 걸음걸이로 떠나는 현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선한은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차를 향해 냅다 뛰어 압착차의 문을 열었다. 그는 보조석에 엉덩이를 걸치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훔치며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와, 아주 뒈지는 줄 알았네.”


검은 모자는 차에 시동을 걸며 물었다.


“갑자기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잘된 거 같더니..”

“그게 말이다, 저 사장님은 우리를 그냥 안 불렀으면 좋겠다, 이 말이지. 우리 이 선생님이랑 같은 업종에 있는 것 같아서 명함은 줬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 사랑하는 고객님들과는 뭔가 다르단 말이야. 내가 이 장사하면서 등골이 서늘해지긴 또 오랜만이네.”


선한을 빤히 쳐다보던 검은 모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버지, 그놈의 고객 타령 좀 그만 해요. 까놓고 이혜리라는 년만 해도 살인에 미친 괴물이지 고객은 무슨 놈의 고객이에요. 저런 게 내 선생이었으면 벌써 차에 실었다 진짜.”


아들의 투덜거림을 들은 선한은 보조석 창문을 내리며 답했다.


“이놈아, 그런 말 마라. 우리가 그 살인에 미친 분들 때문에 먹고 사는 거잖아. 살인에 미쳤건, 인육을 씹어 먹든.. 우리는 돈만 벌면 장땡이야. 네가 또 잔소리를 하겠지만, 그래야 네 엄마 병원비도 대고, 퇴원하면 소원인 남극 오로라도 직접 보여주고.. 북극인가? 여하튼 그런 곳도 가고 하지.”


무슨 사연이 있는 지 몰라도 아내를 언급한 선한의 눈시울이 붉게 물든다.


“우리 마누라, 네 엄마가 나 만나서 죽도록 고생만 했는데, 오래라도 살아야 할 거 아니냐? 네놈 결혼하는 것도 보고.. 손주도 안고..”

“어휴, 내가 말을 말지. 일단 출발할게요.”


투덜거린 검은 모자가 액셀을 밟으려 할 때, 선한의 바지 주머니에서 메시지가 왔다는 아기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쿠, 이거 또 어느 고객님이 사고를 치셨나?”


너스레를 떨며 놀랍게도 폴더폰을 꺼낸 선한은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문자를 확인하다 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와, 우리 사내대장부께서 벌써 일을 주시네. 그냥 못 한다고 했다가는 명줄이 떨어질 것 같고..”


그는 어느새 꺼내 문 담배에 불을 붙여 깊이 빨아들이며 생각에 잠겼다가, 힘차게 폴더를 닫았다.


“아들, 봤지? 이래서 함부로 명함질을 하면 안 되는 거라니까?“

“내 말이요.”

“에이, 이제 나도 모르겠다. 이미 선이 닿은 걸 어떡해? 우리 아들! 내가 신발 하나 비싼 거로 사줄 테니까, 주말에 서울 구경이나 한 번 가자. 이번에는 큰마음 먹고 10만 원까지 지른다."

“10만원으로 무슨 비싼 신발을.. 아버지 마음대로 하세요. 언제 또 물어봤다고..”


검은 모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차를 몰아갈 때, 선한은 담배를 차창 밖으로 던지며 중얼댔다.


“그런데 우리 최동민 고객님은 또 어떤 분이려나?” 녹색 압착차와 회색 물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정문을 빠져나가자, 학교는 이제야 휴식을 취하려 적막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렇게 오늘 평범하지 않은 자들의 사소한 연이 혼돈의 주체 아래 얽히기 시작하였으니, 그 결과 역시 범상치만은 않으리라. 모를 일이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그저 지켜볼 밖에..


어느 명망 높은 사립학교에서 하룻밤 사이에 학생들이 가출하고, 도박 빚에 시달리던 선생이 당직중에 자살한 건 분명 석연찮은 일이었다. 하나 거기에 대해서 흉흉한 입소문 한 번 돌지 않았으니..


‘뭐, 뻔한 일이잖아?’


가출이야 흔하디 흔한 일이고, 하루에 4-50명이 자살하는 나라에서 한 명 더 느는 건 그리 놀랄 만한 사건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의 친지 가족들의 세상은 무너지겠지만, 대중에게 '어긋난 아이들의 가출과 어느 도박 중독자의 자살'이라는 키워드는 식상한 메뉴일 뿐이었다.


만일 당신이라면 ‘가출’ ‘자살’이라는 제목의 인터넷 기사를 클릭이나 하겠는가? 물론 댓글이 많다면 또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말인즉슨, 그 학교의 수위가 소리 소문도 없이 바뀐 건 언급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번에 고용된 자도 연고지 없는 외톨이였으니까. 그래도 누군가는 심상찮은 냄새를 맡았을 수도 있겠지만, 사흘 뒤에 벌어진 대참사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니.. 그 엄청난 학살극에 나라 전체가 정신이 팔리면서 이 초라한 사건은 조용히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면에 선 자들은 어떠했을까?




평소라면 활발한 포인터나 세력의 지부에서 조사에 들어갔겠지만, 이번에는 숨 죽인 채 지켜보기만 했다. 감히 과거로부터의 격언을 무시하지 못한 것이다.




귀머거리가 되어라. 유희를 들을 수 없게.

장님이 되어라. 향연을 볼 수 없게.

벙어리가 되어라. 왔음을 말할 수 없게.

어둠 속에 숨어 간절히 기도하여라. 분노가 미치지 않기를.

세례자가 강림하였음이니, 너는 숨쉬는 것마저 멈춰야 할 것이다.



그래, 드디어 세례의 때가 도래했다.







어미의 이기와 자식의 오만이 엮여 뒤틀린 날에 혼돈이 부정의 검에 닿았구나.

불쌍한 아이야, 이제와 누굴 탓하리.

주조한 건 어미요 날을 세운 건 자식이라 모두가 원죄를 품었음에, 흑검이 다시 우는 날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게 되리라.

화난 아이야, 어디까지 가려느냐.

아프구나. 그의 무너진 하늘에 내 이 한잔의 술을 바치리라.

-서[書]-


작가의말

재미있게 읽으셨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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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엽인들 [사명..세례 21]마지막 일상. +2 17.03.20 421 8 16쪽
» 엽인들 [사명..세례 20] +2 17.03.17 396 11 11쪽
145 엽인들 [사명..세례 19] 현 & 이혜리 17.03.17 378 8 13쪽
144 엽인들 [사명..세례 18] 현 vs 이혜리 +1 17.03.15 384 14 15쪽
143 엽인들 [사명..세례 17] 현 vs 이혜리 +1 17.03.14 467 13 15쪽
142 엽인들 [사명..세례 16] 현 vs 이혜리 +2 17.03.08 614 10 10쪽
141 엽인들 [사명..세례 15] 드잡이질 17.03.08 432 8 14쪽
140 엽인들 [사명..세례 14] 현 vs 희나리 +2 17.03.06 434 12 14쪽
139 엽인들 [사명..세례 13] 우물 안 개구리 17.03.03 358 9 14쪽
138 엽인들 [사명..세례 12] 희나리 17.03.03 512 12 13쪽
137 엽인들 [사명..세례 11] 이혜리 & 송광극 17.03.02 455 10 14쪽
136 엽인들 [사명..세례 10] 이혜리 +2 17.02.28 466 10 15쪽
135 엽인들 [사명..세례 9] 세례자 17.02.27 533 13 15쪽
134 엽인들 [사명..세례 8] 전조 +1 17.02.24 490 1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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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엽인들 [사명..세례 5] 일상 17.02.24 410 9 13쪽
130 엽인들 [사명..세례 4] 제물, 극악무도2 +2 17.02.22 543 13 14쪽
129 엽인들 [사명..세례 3] 제물, 극악무도1 +1 17.02.22 424 6 11쪽
128 엽인들 [사명..세례 2] 제물, 먹는 자. +2 17.02.21 421 11 14쪽
127 엽인들 [사명..세례 1] 제물, 먹히는 자. 17.02.20 396 1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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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엽인들 [사명..사제 16]선택 +1 17.02.15 461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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