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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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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2018.03.2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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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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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37,868

작성
17.02.2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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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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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엽인들 [사명..세례 6] 일상

DUMMY

떡, 하니 앞에 서서 “오랜만?”이라고 코웃음을 치며 그를 아래위로 쓱, 훑어 내린 동생은 워밍업이라도 하듯 혀를 내밀어 입술을 살짝 적셨다. 그리곤 순식간에 뽑아 든 캐틀링포를 갈겨대기 시작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일찍이야? 아, 오랜만에 봐서 눈물 나게 반가운 우리 오빠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지?”

“어? 아니, 그걸 갑자기 왜.. 오늘 월..”

“월요일이잖아, 월요일! 월요일에 이 시간이면 늦은 거 아니야?”

“아니, 명희야. 그건 강의 스케줄 짜기에 따라서 다른 거잖아? 그리고 너도 이제 3학년..”

“뭐래, 지가 그런 거 언제 신경 썼다고. 내가 3학년인건 알고 있네?”

“야, 당연하지. 그래도 내가 오..”

“나한테는 2년 동안 전화 한 통 없는 오빠 같은 거 없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언제 온 거야?”

“야, 그래도 그런 말은.."

“어머, 2년이나 잠수타신 분이 곱고 바른말을 들으시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언제 왔냐니까!”

“어? 어 그게 사실은 한..”

“아, 됐고. 엄마한테 연락은 했어?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아빠는 요즘 머리가 푹푹 빠져서 대머.. 아, 맞다. 아빠가 이런 말 하면 싫어하던데. 여하튼 너는 전화 한 통 하는 게 그리 힘들어? 휴대폰은 맨날 꺼져 있고..지가 무슨 연예인이라도 되는 줄 아나 봐?”

“아니, 그게 아니라 명희야, 이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됐어! 빤한데 변명 따위 들어서 뭐해? 그리고 왔으면 왔다고 전화를 하던가, 그렇게 바쁘시면 문자라도 한 통 돌려야지. 아빠한테는 전화했어?”

“아니, 잠시만.”

“잠시는 무슨 잠시야, 엄마한테는 당연히 안했지? 그러니까 내가 이러는 거 아니야. 너는 정말 애가 왜 그래?”

“야, 너라니. 너 나 전역 선물로 그렇게 안 부른다고..”

“아, 됐어. 진짜 별꼴이야. 언제적 얘기를 해?”


길게 한숨을 뱉어낸 명진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리고 너 이 오빠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요즘 진짜 정신없이 바..”

“뭐래? 서울에서는 바쁘고 정신 없으면 밥 먹고 똥 쌀 시간도 없는가 봐? 그때 번호 몇 번 누르면 되는 거 아니야?”

“아니, 내가 처한 상황이 그런 게 아니었다니까?”

“아, 아니셨어요? 와, 아니셨구나. 얼마나 바쁘면 밥 먹고 똥 쌀 시간은 있는데 전화 한 통할 시간이 없으실까?”

“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조금 다른 의미로 바..”

“상황? 다른 의미? 백수 주제에 웃기고 있어 진짜. 그럼 내려오는 길에 하면 되잖아? 밥 먹고 똥 싸고 기차타고 내려올 시간은 있는데 전화할 시간이 없어?”


명진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느끼며 힘없이 입을 열었다.


“야, 그래도 똥은 좀..”

“왜, 더러워? 아, 남명진 씨는 워낙 바쁘셔서 똥도 안 싸시나 봐요?”

“아, 내가 말을.. 명희야, 사실은 그게 있잖아, 나 그냥 잤어. 요즘 영 잠을..”

“오빠! 오빠가 생각해도 그건 좀 구차하지 않아?”

‘하, 이런 조옷 같은거!’


본 게임에는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백기를 들기로 했다.


“미안하다. 내가 다 잘못한 거지, 뭐.”

“알면 됐어, 그래도 생각은 있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기다란 한숨을 본 명희는 묘한 웃음을 띤 채 말을 이어갔다.


“오빠, 솔직히 말해봐.”

“또 뭘?”

“지금 눈치 보여서 못 들어가는 거지? 아직도 백수잖아?”

“야, 말을 해도 좀..”


명희의 얼굴에 걸린 비릿한 미소가 짙어진다.


“어머, 미안해. 그런데 백수 말고는 딱히 대신할 말이 없잖아? 그럼 취업준비생이라고 해줘? 그러면 막 기분이 좋고 그래? 서광이 비치면서 어깨도 펴지고?”


동생의 변함없는 썩소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 명진은 절레절레 고개 저었다.


“남명희, 너 정말 여전하구나.”


말을 머릿속에서 거르지 않고 뱉어내는데, 그게 묘하게 맞아떨어져서 도무지 반박할 수 없게 만드는 화법이 여동생의 주특기였다. 그 때문에 예전에도 많이 괴로워했던 게 떠오르자 명진은 담배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였다. 그러자 역시나..


“야, 너 백수 주제에 비싼 담배 피우지 말고 그냥 끊어. 몸에서 썩은내 난단 말이야.”

“야, 내가 백수인 건 맞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빠한테 썩은내가 뭐냐? 썩은내가.”

“엄마가 그랬는데?”

“아, 이런 조..”


동생의 커다란 눈동자에 어린 섬뜩한 기대를 발견하는 순간 반사적으로 욕설을 삼킨 패배자는 조용히 담배를 끄려다가,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모금만 더 빨자는 생각에 슬쩍 입술을 가져다 댔다. 바보같이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와, 이 아저씨 진짜 추하다 못해 안쓰럽네. 그거 하나 못 참고 추태를 보이니까 여태 백수에 솔로로 사는 거잖아요. 아저씨, 참 안 됐네요.”


모든 게 끝났다고 여겼을 때 행해진 불의의 일격은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다시 담배연기가 목에 걸린 명진은 눈물까지 흘리며 캑캑거렸고, 명희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빨리 들어와!”

‘좆 같은..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내가 뭘 배웠는지를 보여주..면 안 되겠지?’


그가 결코 뽑지 못할 비수를 움켜쥐며 이를 갈 때, 명희는 현관으로 들어서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 엄마가 그렇게 고대하던 남명진이 왔어. 그런데 아직도 백수래, 그리고 현관 앞에서 썩은내나면 오빠가 담배 펴서 그런 거니까, 그렇게 알아.”

“아, 저게 진짜..”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파괴자의 잔영을 보며 이를 갈던 명진은 불현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집에 왔구나.’ 동생의 한바탕 수다 덕분에 큰 부담감을 떨친 그는 주저 없이 현관으로 들어섰다.


따스한 온기에 섞여 흘러온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자, 괜스레 눈물이 핑 돈다. 그는 투박한 신발장 옆에 서서 겨우 울음을 삼킨 뒤 거실바닥에 옷가방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다가 주방에서 뛰어나온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아, 뭐라고 하지?’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우물쭈물할 때, 자식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던 어머니가 참 보기 좋은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배고프지? 너 좋아하는 된장찌개 했으니까, 아버지한테 인사하고 저녁부터 먹어.”

“어? 아.. 알았어.”


짧은 대답에 울음이 섞여 나오자 바로 고개를 숙인 명진은 괜히 신발끈을 풀면서 몇 번이고 이를 악물었다. 이내 감정이 조절돼 슬그머니 고개 들고 멋쩍은 듯 웃음을 흘렸다.


“엄마, 나 집에 왔어.”

“그래, 얼굴 보니 아픈데는 없어 보이네.”


혹여 어디 한 군데 문제라도 생겼을까, 아들을 구석구석 살피던 어머니의 눈가에 옅은 안도가 맺힐 때, 안방 문이 벌컥 열리면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배고프네, 저녁은 아직 멀었소?”

“아버지, 다녀왔습니다.”


그새를 못 참고 모르는 척 방에서 나온 아버지가 깊숙이 허리 숙이는 아들을 발견하곤 다시 헛기침을 했다.


“그래,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예, 보다시피 건강합니다.”


허리를 편 아들이 대장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건장하자 아버지는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일단은 밥부터 먹자."


그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TV를 보며 평소와 다름없는 가십거리를 주고받았다. 잠들기 전에는 아버지와 간단히 한잔하며 안부를 확인하고 정말로 오랜만에 따스한 온수로 샤워를 하며 한없는 여유를 즐겼다.


‘봐! 이런 게 내 삶이야. 지켜야 하는 건 사명 따위가 아니라 내 가족이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이곳이야. 잠깐.. 이게 무슨!’


일순 호흡을 멈춘 명진은 다급히 샤워기를 옆으로 틀고 날아가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곤 날카롭게 고함을 질렀다.


“야, 싱크대 물 좀 틀지 마! 애도 아니고 진짜 너 뭐 하는..”

“엄마가 그랬는데?”

“아, 이런 조..”


그렇게 웃고 떠든 뒤에 깊고 평화로운 숙면을 취했다. 그리곤 느지막이 일어나서 한가로운 일상을 마음껏 누렸다. 기차를 타고 오며 품었던 커다란 근심은 다 부질없는 걱정이었나 보다.


‘지옥은 무슨..’


10년이면 강산이, 5년이면 집단이, 1년이면 사람이 변하고.. 한 일주일 정도면 생활 패턴이 바뀐다. 물론 나쁜 쪽에서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면 7일로 많이 부족하겠지만, 치열함에서 나태함으로 바뀌는 데는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방 한가운데 대자로 드러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는 저 친구처럼 말이다.


‘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출근하는 부모님을 배웅하고 나니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 든 죄책감이 고민을 던졌다.


‘다시 시작하려면 일단 올라가야 하고.. 그런데 올라가서 대체 뭘 어떻게..? 아, 막막하네.’


서울에서 생활하던 아파트는 고모가 이민을 가며 남겨준 것이라 문제없었고, 예전과 달리 아르바이트 자리는 쉽게 구할 것 같았다. 이제 몸 쓰는 건 누구한테도 안 질 테니까. 하나 아예 포기하다시피 한 공부에 다시 손대려니 어찌해야 할지 영, 감이 오질 않았다.


‘그냥 강수한테 방 하나 내주고 공무원 준비나 해볼까? 그놈이 졸업하고 바로 시작했으니 벌써.. 그쪽도 장난 아니라고 했었지. 그런데 벌써 붙었으면 어쩌지? 뭐, 혼자서 해도.. 나이 제한이 없다고 했으니까 한 1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탈에서처럼 하면.. 그래, 그렇게 하면 안 될 게 뭐 있겠어! 일단은 전화부터 해보고.. 아니지, 나도 그동안 준비한 게 있는데..’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뒤척이던 명진은 슬며시 눈이 감겨오자 반사적으로 허리를 들었다.


‘아, 무슨 기면증에 걸린 것도 아니고 누웠다 하면 잠이냐? 요즘 왜 이러지?’


지난 일주일, 시체처럼 누워서 잠만 잤는데 또 피곤이 몰려와서 잠을 청하니 이제는 겁이 날 정도였다. 처음 며칠간은 그냥 원 없이 잤는데, 이건 해도 해도 정도가 심했다.


‘설마, 무슨 금단현상 같은 건 아니겠지? 귀는 중독성이 없는 대신에.. 그래, 스승님이 거짓말을 할 분도 아니고 좀 움직이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그는 화석처럼 각인된 스승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이내 털어내곤 방을 나섰다. 일단 부엌으로 가서 시원한 냉수 한 잔 마시고, 담배나 한 대 피울까 싶어 베란다로 이동해 문을 열었는데.. 향긋한 냄새가 풍겨와서 코끝을 간지럽히는 게 아닌가?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아, 이 냄새 너무 좋아.’


건조대에 널린 옷가지에서 나는 평범한 섬유유연제 향기였지만,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항상 써와서 그런지 그냥 이렇게 맡기만 해도 몸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포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옷도 갈아 입어야겠다.”


몸에 착 감길 향긋함을 상상하며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고,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곤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이려는 찰나!


“아, 내가 미쳐 진짜. 이 아저씨가 남의 집에서 지금 뭐 하는 짓이니?” 파괴자의 목소리가 귓가를 강타했다.


'이런 조..'


작가의말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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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엽인들 [사명..세례 23]천붕(天崩) +5 17.03.23 468 12 15쪽
148 엽인들 [사명..세례 22] +5 17.03.21 387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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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엽인들 [사명..세례 19] 현 & 이혜리 17.03.17 376 8 13쪽
144 엽인들 [사명..세례 18] 현 vs 이혜리 +1 17.03.15 383 14 15쪽
143 엽인들 [사명..세례 17] 현 vs 이혜리 +1 17.03.14 465 13 15쪽
142 엽인들 [사명..세례 16] 현 vs 이혜리 +2 17.03.08 612 10 10쪽
141 엽인들 [사명..세례 15] 드잡이질 17.03.08 427 8 14쪽
140 엽인들 [사명..세례 14] 현 vs 희나리 +2 17.03.06 432 12 14쪽
139 엽인들 [사명..세례 13] 우물 안 개구리 17.03.03 357 9 14쪽
138 엽인들 [사명..세례 12] 희나리 17.03.03 509 12 13쪽
137 엽인들 [사명..세례 11] 이혜리 & 송광극 17.03.02 454 10 14쪽
136 엽인들 [사명..세례 10] 이혜리 +2 17.02.28 464 10 15쪽
135 엽인들 [사명..세례 9] 세례자 17.02.27 532 13 15쪽
134 엽인들 [사명..세례 8] 전조 +1 17.02.24 489 10 14쪽
133 엽인들 [사명..세례 7] 일상 17.02.24 441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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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엽인들 [사명..세례 5] 일상 17.02.24 409 9 13쪽
130 엽인들 [사명..세례 4] 제물, 극악무도2 +2 17.02.22 538 13 14쪽
129 엽인들 [사명..세례 3] 제물, 극악무도1 +1 17.02.22 421 6 11쪽
128 엽인들 [사명..세례 2] 제물, 먹는 자. +2 17.02.21 419 1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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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엽인들 [사명..사제 16]선택 +1 17.02.15 460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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