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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포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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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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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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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37,868

작성
17.03.0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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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추천
10
글자
10쪽

엽인들 [사명..세례 16] 현 vs 이혜리

DUMMY

‘오늘은 청소부를 불러야겠네.’


그렇게 한가로운 생각을 하며 언제나 호들갑인 아이들의 방해를 무시하던 혜리는 불현듯 한숨을 뱉어내며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종국이가 왜?’


희선과 더불어 희나리로 불타기엔 아까운 재능을 가진 종국의 애달픈 고함을 더는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방음처리된 문을 뚫고 들려올 정도라면 평소와는 다른 문제이리라.


“선생님, 선생님! 제발요, 제발 좀 나와보세요. 웬 남자가 선생님을 찾아왔는데, 애들이 위험해요. 이러다 다 죽겠어요!”


누가 찾아왔다는 말에 걸음을 빨리 하던 혜리는 이어지는 종국의 고함에 그대로 멈춰 섰다.


“그 사람은.. 뭔가 달라요. 선생님이 일전에 언급하셨던 그.. 사람이 아닌 숙적인 것 같아요.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너무 무서워서.. 선생님, 이건 선생님이 직접 보셔야 해요, 빨리요!”

‘사람이 아니다?’


등골이 서늘해지며 위험을 알리는 경종이 머릿속을 울려댄다. 기감을 감지하고 존재감을 읽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 이상의 재능을 보이는 종국이 다르다고 느낀 존재가 무엇일까?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왜 하필이면 오늘 냄새를 맡은 거야?”


가끔씩 그럴 때가 있다고 들었다. 엽인이나 포인터의 냄새를 맡은 짐승이 어느 날 불쑥 나타나서 그들의 삶을 짓밟곤 떠난다 했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되는 놈들이 주로 그런 짓을 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벌어먹을!’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왜 하필 지금, 희나리와 인탄[燐彈]이 완성단계에 접어든 이 시점에 포식자가 나타났단 말인가?


‘아직은 아닌데, 피할까?’


그녀는 지하실 입구 근처에 놓인 커다란 흰색 스포츠 백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만약 다른 때였다면 미련 없이 물러났겠지만, 3년을 공들인 무기가 너무 아까웠다.


“젠장!” 마치 그녀의 결정을 재촉하듯 종국의 흐느낌이 귓가를 울려댄다.


그런데 이런 혜리의 고민은 너무 성급하고 극단적인 건 아닐까? 안타깝게도 그녀뿐만이 아니라 모든 포인터가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생활했다. 천적이 존재하는 세상에 발 들인 순간부터 생사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만 했으니까.


‘설마, 아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속 평온함에 젖어드는 순간 목이 나가떨어지는 곳이 바로 이면이었다.


조금 전 지하 밀실에서 지옥을 경험하고 죽은 여인이 고등학생들에게 반인륜적 행위를 당한 것처럼, 이면에서의 죽음은 예상치 못한 순간 가장 끔찍한 형태로 찾아왔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고!”


혜리가 포인터로 인정받으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격언은.. ‘겁에 질려 도주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라. 사자를 본 토끼가 도망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였다. 해서 그녀는 더 망설이지 않고 문 옆에 놓인 스포츠 백을 잡았다.


‘어쩔 수 없어.’ 종국이의 처연한 울음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돈다. “이러다 애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건만, 문 안에서 인기척도 들리질 않아 초조함에 울던 종국은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소리가 들리자 다급히 문을 잡아당겼다.


“선생님..?”


그는 입구 앞에 서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선생님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는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작업하실 때 방해하면 안 되는데.. 하지만..”


뭔가에 억눌린 듯 하얗게 질려 식은땀을 흘리는 종국의 행태는 짐승의 진면목을 본 피식자의 전형적인 행태였다.


‘어쨌든 살아서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야. 그냥 이 아이만이라도 건지면..’


그녀가 혼자 움직이려 했던 생각을 재고해 볼 때, 여전히 고개 숙인 채 땅만 쳐다보던 종국이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선생님, 시끄럽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애들이.. 상기가 또 처음 보는 사람한테 시비 걸었는데 갑자기 공기가 이상해져서.. 그게 물에 빠진 것처럼.. 여하튼 애들이 잘못되면 어쩌죠? 이제 곧 특별해질 수 있는데, 바보같이.. 하지만 선생님! 그 남자는 진짜 위험해요. 일단 빨리 좀.. 제발요, 선생님.”


미련없이 떠나려던 자신의 기척마저 읽은 걸까? 종국은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했고 혜리는 다시금 기다란 한숨을 내셨다. 가족이라고는 1년 중 10개월 이상을 타지로 도는 홀아버지 뿐이라서 그런지 자신에게 가족애를 느끼는 소년의 눈물에, 오래전 그날 양어머니를 붙잡고 모두 죽었다며 흐느끼던 소녀가 겹쳐진다.


‘빌어먹을!’


그녀는 어깨에 멘 스포츠 백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지퍼를 열고 두랄루민합금으로 된 4단봉 두 개와 비도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이 망할 놈의 나라에선 그나마 휴대할 수 있는 무기가 이딴 것뿐이었다.


‘이게 아닌데..’


집 안 금고에 비치해둔 45구경 콜트와 귀라도 있으면 좀 더 나은 전투를 기대했으리라.


‘너무 안일했어.’


뒤늦은 후회가 밀려들자 송사부의 단호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너는 엽인이 될 수 없다.’


그의 단언이 이런 일들을 염두에 둔 것 같아 그녀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아니, 어차피 겪게 될 일이었어. 그가 틀렸다는 걸 지금 여기에서 증명하면 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자.’


그녀는 4단봉과 비도 주머니를 허리에 두르며 잡념을 떨치곤, 송사부가 아닌 흑검주가 풍기던 경이로운 전의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어디지?”


그녀의 말에 환히 웃던 종국은 선생님의 착 가라앉은 눈빛과 풍기는 섬뜩한 살기에 놀라 입을 다문 채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멀리 희선의 비명이 들려온다.


‘할 수 있다.’


건물 모퉁이가 가까워져 올수록 걸음걸이가 느려지던 종국은 이내 멈춰 서서 그녀를 향해 고개 돌렸다.


“저기, 저.. 이곳만 돌면 애들이 보일 거예요. 그러니까.. 그래서 저는..”


어눌하게 말끝을 흐린 종국은 혹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녀의 눈치를 보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는 그냥 여기서 기다리면..”


그를 가만히 쳐다보던 혜리는 뜻밖의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무슨 뜻인지 알겠어. 종국아, 선생님은 다 이해하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그녀는 공포와 죄책감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의 어깨를 살며시 잡아줬다. 옷이 땀으로 축축이 젖어있는 게 맘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네가 필요한 곳은 여기가 아니야.’


존재감을 드러낸 포식자 앞에 선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마어마한 위기감을 받게 된다. 하나 이성이 그 위험신호를 생소한 위화감 정도로 치부하곤 했으니.. 같은 인간에게 잡아먹힌다는 것을 어찌 받아들이겠는가?


이혜리 역시 처음에는 그랬고, 우물 안 개구리들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기감이 기형적으로 발달한 강종국은 놈의 진면목을 보고 더 증폭된 위기감을 맛봤을 게 분명했다.


’재능을 타고난 게 무슨 잘못이겠어?’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그는 놀라운 포인터가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건 유망주가 아닌 병정이지 않던가? 해서 해리는 이 민감한 개구리에게 다른 일을 맡기기로 했다.


“종국아, 학기 초에 내가 얘기해줬던 세 가지 계획 기억해?"

“계획이요? 예, 그럼요 선생님, 다 기억하죠.”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종국을 보며 그녀는 짧게 말했다.


“잘들어, 지금부터 그 계획 중에서 세 번째 것을 실행할 거야.”


빠르게 기억을 더듬던 종국은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보다가 길게 한숨을 뱉어냈다.


“이번에는 제 예감이 틀리길 바랐는데.. 선생님께서 언급 숙적 중 하나가 바로 그..”

“그래, 그런 것 같아. 그런데 종국아, 이 일을 실행하면 네 삶을 다 포기해야 한다는 거 알지? 특히나 넌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해.”

“예, 선생님. 솔직히 전.. 기다렸어요.”


나름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 끄덕이는 종국을 보며 혜리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 네가 충분히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러니까 더는 말하지 않을게, 어서 움직이렴.”


뭔가 더 할말이 있는지 입을 달싹이던 종국은 짧게 숨을 뱉어 미련을 떨치곤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반드시 성공해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돌아 올게요.”

“그래.”


혜리는 지하실 방향으로 뛰어가는 종국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결정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즉시 행하는 걸 보면 그는 좋은 포인터가 될 게 분명했다.


‘이제, 아홉..’


그녀는 남은 희나리를 떠올리며 운동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득 떠오른 송사부의 목소리가 입가에 띤 미소를 쓴웃음으로 뒤튼다.


‘우습구나, 네가 간을 버렸다고 말하다니.’

‘너처럼 타인에게 냉정하고 자신에게 가혹하게 구는 건 어렵지 않다. 분노를 희열로, 슬픔을 즐거움으로, 아픔을 무감정으로 감춰서 자신과 상대를 기만하면 그만이니까.’

‘그래, 혜리 너는 부정할 혈연과 천륜이 없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지. 하나 자신의 감성을 타인에게 투영하는 것이 네 천성이기에.. 너는 친인에게 결코 같은 잣대를 댈 수가 없다. 그것이 바로 네 업이요 약점이 될 거고.’

‘세상을 살아가기에 엮일 수밖에 없는 인연이 그 가면을 부수는 날.. 혜리야, 너는 목숨을 잃게 될 거다.’


송사부의 예언 같은 말이 종국의 활로를 열어준 오늘이거나 미래의 어느 날이 될 수도 있었다.


“아니면 헛소리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코너를 틀어 희선과 그 너머 일단의 무리가 눈에 들어오자, 혜리는 으스러지라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전투의 잔향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기껍게 받아들인 짐승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혜리.’ 서로를 인지하고 마주하는 순간 타고난 감각이 그녀를 해부하기 시작한다.


작가의말

그러고 보니 조회수가 근 3배로 늘었네요. 눈물 좀 닦고 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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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엽인들 [사명..세례 9] 세례자 17.02.27 532 1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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