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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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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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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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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37,868

작성
17.02.2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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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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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엽인들 [사명..세례 3] 제물, 극악무도1

DUMMY

그 처절한 모습을 지켜보며 불안과 두려움, 긴장과 경계 그리고 묘한 안도와 반가움을 느끼던 대우는 저 가련한 이가 곧 쓰러져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덜컥 들자 다급히 입을 열었다.


“저기요! 저기요 아저씨, 괜찮아요? 혹시 아저씨도 강제로 끌려왔어요?”


오롯이 걷는 데만 집중하던 관장이 그제야 한숨 돌리며 자신을 바라보자 대우는 어색하게 양손을 들어서 적의가 없음을 보이곤 말을 이어갔다.


“보다시피 저도 아저씨랑 비슷한 처지예요. 그 개.. 나쁜 놈들이 아저씨한테도 그 역겨운 문신을 새긴 거 맞죠? 그러면 혹시 그.. 팔하고 다리도 그놈들이 그렇게 만든 거예요?”


자신의 몸에 새겨진 혈문을 슬쩍 쳐다보며 기이한 미소를 그린 관장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곧 죽을 제물이 측은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게 어처구니 없었지만, ‘이 꼴을 보고 그런 생각을 안 하면 그게 이상한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먹잇감에게 다가가려 최선을 다했다. 그러자 대우가 주춤 물러선다.


‘저 사람.. 뭔가 이상해.’ 하나밖에 없는 손으로 벽을 목발 삼아 간신히 움직이는 낯선 이로부터 기괴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 감각은 과다 투입된 귀와 각종 술식으로 강화된 육체가 적이 품은 살기를 감지해서 알려주는 것이었지만, 여태 살아오며 제대로 된 위기를 겪어 본 적이 없는데 어찌 그를 읽어내랴?


‘저리 심하게 다친 사람을 처음 봐서 그런가? 장애인들을 봐도 괜히 좀 그런 게 있던데..’


중년인의 끔찍한 상처와 피, 그리고 이 빌어먹을 상황에서 오는 서먹함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린 대우는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저기요 아저씨, 조명 때문에 이리로 오시려는 것 같은데요, 여기도 뭐 별거 없어요. 저기 그리고..지금 많이 힘들어 보이시는데요, 그만 좀 움직이고 일단은 좀 쉬세요. 그러다가 진짜 큰일나요.”


그의 어눌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곳을 지나 기어코 나트륨 램프 근처까지 온 중년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특히, 한쪽 눈마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대우는 커다란 연민마저 느꼈다.


‘세상에, 혼자서 여기까지 온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진작 가서 도와줬어야 했는데..’ 이 낯선 이도 자신과 같은 처지이리라.


상처도 상처지만, 그의 몸 전체에 새겨진 검붉은 문신들.. 자신의 것과는 뭔가 다른 듯했지만, 어쨌든 온몸에 새겨진 것을 보면 같은 놈에게 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아저씨 괜찮아요? 어쩌다가 그런.. 이 악마 같은 놈들이 해도 해도 진짜 너무하네요.”


역시나 반응이 없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이어갔다.


“저기요 그런데 아저씨, 갑자기 이런 거 물어봐서 죄송한데요, 혹시 몸에 그..문신 있잖아요? 그거 다 완성되니까, 그.. 몸에다 그런 짓을 한 거예요?”


이번에도 아무런 답이 없었지만, 힘겹게 신음하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기에 대우는 중년인이 비틀거리자 다급히 달려가서 그를 부축했다.


“죄송해요, 처음부터 도와드렸어야 하는데.. 제가 정신이 없어서. 그런데 이제 어쩌죠? 응급처치 같은 건 저도 잘 모르거든요.”


토실토실 살이 오르고 건강한 토끼가 상처 입고 배고픈 사자의 아가리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미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둘의 간격이 닿고 살과 살이 자연스럽게 부딪히는 순간, 토끼는 자신도 모르게 사자를 왈칵 밀어내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주춤 물러서기까지 했다.


‘뭐야?’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 끝이 쭈뼛 서는 감각에 놀라 몸서리칠 때, 힘없이 밀려나다가 아예 쓰러져버린 관장은 바닥과 충돌하는 가벼운 충격조차 견딜 수 없어 고통에 신음했다. ‘빌어먹을.’ 온몸의 근육과 신경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대고 눈앞은 깜깜해 졌으며 코끝에는 피비린내가 맴돈다. 하지만..


‘이 고통에 감사하고 그 순간에 기뻐해라. 아직은 살아 있음이다.’ 비명에 간 아버지의 유언, 한계를 느낄 때면 습관적으로 떠올리는 문장을 되새기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곤 어렵사리 벽으로 기어가서 힘겹게 등을 기대다가 시끄러울 정도로 사과하는 제물의 행태에 혀를 찼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요, 그.. 실수로 놓친 거예요. 땀이 많아서 미끄러졌는데..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많이 아프셨죠?”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점까지 원액을 주입하고 술로서 광기를 자극해 과거에의 복수심과 분노를 극대화 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연민을 버리지 못하다니.. 거기에다가 습관적으로 변명부터 하는 걸 보면 심성이 참 바르다 못해 우둔하고 멍청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저러니 먹잇감이 되는 거겠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연신 고개를 조아리던 대우는 상대의 얼굴에 흐린 미소가 그려지자 겨우 사과를 멈췄다. 이 정도면 그도 이해했으리라.


‘엄청 아플 텐데 화 안내는 거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닌가 봐.’


지독한 상황에 몰려 판단력이 흐려진 걸까? 아니면 본래 그렇게 생겨먹은 걸까? 그렇게 편한 대로 생각해버린 그는 머쓱해진 분위기에 차마 입을 열지는 못하고 슬그머니 눈을 돌려서 중년인의 상처를 훑었다. 그런데..


‘징그러워.’


잘려나간 부위를 꿰매거나 치료한 게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뭔가가 붙들어 매고 있는지 출혈은 없었지만, 시뻘건 살과 근육 뼈 등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게 절로 속이 미식거렸다.


‘토 나오네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정말로 속이 울렁거리다 이내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자 그는 다급히 고개를 돌리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런 모습을 복잡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관장은 과거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말을 읊조리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저.. 원망해라.”


캑캑거린다고 특유의 쉰소리를 듣지 못한 대우는 당사자 앞에서 추태를 보였다는 생각에 사과라도 한마디 하려 고개를 돌렸다.


“저기..” 자연스럽게 둘의 눈이 마주치고 눈빛이 오가는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숨을 머금었다.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자신을 향한 눈빛이 너무나도 무감정했던 것이다. 중년인을 부축할 때 느꼈던 섬뜩한 감각과 상처, 그리고 서늘한 짐승의 눈빛이 뒤섞이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 사람, 뭔가 이상해. 그러고 보면 문신이 완성된 날 저기에서 나온 것도 그렇고, 설마..'


뭔가 알듯말듯 머릿속을 맴도는 진실 앞에서 슬쩍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한 대우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정체가.. 뭐야?”


호랑이 앞에 선 겁쟁이 토끼로서는 용기를 낸 말이었지만, 관장은 그의 물음을 싹 무시한 채 고개를 살짝 젖혀 천장을 가리켰다.


“어리석은 놈, 문은 아직 열려있다.”

“뭐, 문이라고? 그게 무슨..”


역시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자 관장은 언성을 높였다.


“우둔한.. 내가 어떻게 여기로 들어왔느냐?”


그제야 대우는 고개 돌려 관장이 나타난 어둠 속 천장을 바라봤다. 기다렸다는 듯 특유의 쉰소리가 들려온다.


“놈들에게 복수해야지.”

“복..수?”


되뇌는 순간 속에서 부글부글 울화가 끓어올랐다. 당장에라도 움직이고 싶었지만, 알고 보니 탈출구를 알려준 좋은 이에게 사람 된 도리라도 지켜보려고 다시 물었다.


“저기요, 알려주셔서 감사하긴 한데, 당신은.. 아니, 저기 아저씨는 어쩌시려고요?”

‘역시, 부족해.’ 관장에게는 시간이 부족했고, 제물에게는 광기와 살기가 부족했다.


과다 투입한 귀의 원기와 뒤틀어 새긴 술식이 그의 수명을 모조리 갉아먹기 전에 광기와 살기를 골수에 이르게 해서 마[魔]에 물들여야만 했다. 제물이 품은 마기를 있는 대로 끌어 올려야, 곧 행할 이식술의 완벽한 동조를 이루어낼 테니까.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돼.’ 일전에 형편없는 놈을 제물로 삼았다가 얼마나 큰 후회를 했었던가?


평소의 그였다면 이렇게까지 공을 들일 필요도 없이 쉽게 이식술을 행했을 거다. 하나 그야말로 천운이 닿아서 얻은 구명지책 최고위급 이식술을 그놈에게 사용하면서 너무나도 많은 걸 잃고 말았다.


‘아쉬운 일이지.’ 설혹 그날이 다시 온다 하여도 사용하는데 망설이지는 않겠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야 해.’ 지금은 이렇게라도 자구책을 마련해서 앞으로의 1년을 준비해야만 했다. ‘딱 1년만, 어떻게든..’


해서 팔다리를 자르면서까지 시간을 벌었는데, 제물이 어이없을 정도로 착하고 멍청한 게 변수요 독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순박한 제물의 정신상태가 극도로 불안정하다는 것이었다.


'바닥까지 쥐어 짜내게 하는구나.'


길게 한숨을 뱉어낸 그가 지친 몸으로 술식을 짚자, 혈문 중 일부가 혈광을 내뿜고 외눈이 붉게 물들었다. 발현자의 강인한 의지가 술을 매개체로 하여 소리에 실리니.. 나약한 자의 의지를 강제하고 따르게 하는 명이 뱉어진다.


“이대우.”

“예? 아니 어떻게 내..”

“너는..”

“저기요, 아저씨! 내 이름을 어떻게..”


대우는 성큼 다가서며 그를 윽박지르려 했지만, 지상명령이 떨어지는 게 먼저였다.


“복 수 하 라.”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엉거주춤이 선 대우는 관장의 외눈에 서린 붉음을 홀린 듯 쳐다보며 복수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그의 의지에 동조해 갔다. 그러자 명령이 이어진다.


“떠 올 려 라.” 대우는 씹어 죽일 연놈들을 떠올렸고..

“분 노 하 라.” 어느새 그처럼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광기를 흘렸으며..

“이제 너는 그들의 죄를 죽음으로써 물어라.” 몇 번이고 맹세하며 되씹었던 말을 뱉었다.


“죽인다, 죽여. 내가.. 내가 다 죽여버릴 거야.”


이제 행동으로 이어질 만큼 첨예해진 살의를 보며 관장은 술을 마무리하고 지친 듯 입을 열었다.


“저리로 가서, 행해라.”


타락의 길로 들어설 준비가 된 자는 나트륨등이 미치지 않는 어둠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머릿속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시야에 잡히는 건 천장의 시꺼먼 구멍뿐이었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저곳으로 들어가면 이 분노를 풀 수 있으리라.


그가 쉽게 뛰어올라서 구멍을 잡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관장은 흐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광철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놈 미치게 할 놈도 사흘쯤 후에 보내겠수. 나도 이 바닥에서만 30년을 굴렀수.. 제물 윗방에 넣어둘 놈 말이요.’


그래, 이대우를 지옥으로 끌어들인 바로 그 개새끼가 저곳에 있었다.


작가의말

분량이 어중간 해서 읽기 편하게 나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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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엽인들 [사명..세례 17] 현 vs 이혜리 +1 17.03.14 465 13 15쪽
142 엽인들 [사명..세례 16] 현 vs 이혜리 +2 17.03.08 613 10 10쪽
141 엽인들 [사명..세례 15] 드잡이질 17.03.08 429 8 14쪽
140 엽인들 [사명..세례 14] 현 vs 희나리 +2 17.03.06 433 12 14쪽
139 엽인들 [사명..세례 13] 우물 안 개구리 17.03.03 357 9 14쪽
138 엽인들 [사명..세례 12] 희나리 17.03.03 509 12 13쪽
137 엽인들 [사명..세례 11] 이혜리 & 송광극 17.03.02 454 10 14쪽
136 엽인들 [사명..세례 10] 이혜리 +2 17.02.28 464 10 15쪽
135 엽인들 [사명..세례 9] 세례자 17.02.27 532 13 15쪽
134 엽인들 [사명..세례 8] 전조 +1 17.02.24 489 1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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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엽인들 [사명..세례 6] 일상 17.02.24 421 12 12쪽
131 엽인들 [사명..세례 5] 일상 17.02.24 409 9 13쪽
130 엽인들 [사명..세례 4] 제물, 극악무도2 +2 17.02.22 540 13 14쪽
» 엽인들 [사명..세례 3] 제물, 극악무도1 +1 17.02.22 423 6 11쪽
128 엽인들 [사명..세례 2] 제물, 먹는 자. +2 17.02.21 419 11 14쪽
127 엽인들 [사명..세례 1] 제물, 먹히는 자. 17.02.20 395 1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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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엽인들 [사명..세례 prologue] 송씨 형제.1 +1 17.02.16 510 10 14쪽
124 엽인들 [사명..사제 16]선택 +1 17.02.15 460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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