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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 님의 서재입니다.

디어 헌터 Dear, Hunter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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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8.10.12 23:45
최근연재일 :
2019.08.19 19:03
연재수 :
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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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476

작성
19.04.2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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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헌터 Dear Hunter 38. 당신이 뭘 어쩔 건데요

DUMMY

전자센터 밖으로 나오며 엘피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국내 최고수준의 전자센터라더니 엘피가 직접 온라인에서 발품을 팔아 찾느니만 못했던 것이다.




‘미라구나도 별 거 없네.’




기대가 허물어진 만큼이나 몸도 지쳤는지, 길거리에서 파는 오믈렛 냄새를 맡자 허기가 졌다. 스트라제나와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는 까마득하게 남아있었다.


헝클어진 빨간 머리를 다시 풀어서 묶고, 안경을 고쳐쓰는 엘피 앞으로 뱀장어버스가 지나갔다. 버스 허리에는 세계적인 여배우, 킨 클라리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킨 클라리가 가지각색의 유명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광고가 뱀장어버스의 긴 몸체를 따라 길게 이어졌다.


킨 클라리가 나오는 광고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엘피는 버스가 떠나버리자 쩝, 하며 혓바닥을 튕겼다. 뱀장어버스가 떠나버린 뒤에도 엘피는 한참을 운동화 바닥으로 보도를 비비며 서 있을 뿐, 어디로 가야할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 뒤 엘피에게 신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스트라제나가 있는 곳으로 엘피가 먼저 찾아가서,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제나의 앞에 불쑥 나타나 깜짝 놀라게 하는 작전이다. 이 작전의 성공률을 높일 도구가 바로 엘피의 휴대전화 안에 들어있었다.




엘피는 얼마전 센터 사람들에게 날씨를 알려주는 어플이라며 휴대전화마다 하나씩 특정 어플을 설치하게 했다. 사실, 그 어플은 엘피가 직접 시험삼아 만든 것이었다. 날씨 관측은 눈속임일 뿐, 사실은 어플을 설치한 사람들의 현재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추적어플이었다.


센터 사람들이야, 활동반경이 모힘사 산속에서 벗어나질 않았으니 위치추적 어플이 큰 의미가 없었고, 어디까지나 어플이 작동이 잘 되는지 확인하려는 실험용이었다. 그러나 어플이 제대로 돌아가는 걸 확인한 뒤 엘피는 위치추적어플에 대해 잊어버렸고, 드디어 오늘에야 모힘사 산에서 수십킬로미터는 떨어진 미라구나에서 다시 쓰게 된 것이다.




잠시후, 한 손에는 킨 클라리가 선전하던 아이스크림(호두맛)을 들고 또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든 채 엘피가 어플을 실행하고 스트라제나의 번호를 입력했다.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미라구나의 도심 지도가 펼쳐지고, 스트라제나의 현재 위치가 빨간 깃발로 떴다. 블록 단위에서 거리 단위로 확대하자 건물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나가 있는 건물의 상세설명을 확인한 엘피의 얼굴이 두려움으로 굳었다. 잠시 액정화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기만 하던 엘피는, 콧물을 한 번 들이마시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걷었다.



“여보세요, 릴(조이)? 지금 내가 말하는 곳으로 와줄 수 있어요?”


그동안 녹아내린 호두 아이스크림이 엘피의 손 위로 흘러 긴 자국을 그렸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던 엘피가 대답했다.



“여기가 어디냐면요....미라구나예요.”










제피스토텔레스의 말에 얼어붙은 듯 앉아있던 스트라제나는, 곧 웃으면서 목을 똑바로 펴고 앉았다.




“틸리.”




스트라제나의 부름에 제피스토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제나가 자기 맞은편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다시 자리에 앉아주시죠. 얼굴을 보고 말하고 싶네요.”





짧게 웃음을 터뜨린 틸리, 제피스토는 고분고분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스트라제나는 잼을 타지 않은 커피로 입을 축인 뒤 말했다.




“내가 바슬란디우스랑 같이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저를 보는 사람들마다 물었죠. 왜 하필 바슬란디우스냐고 했어요. 내가 너무 좋았으니까, 라고 대답했죠. 하지만 이후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이미 내 대답을 들은 사람들까지도 못 들은 척 계속해서 물어봤어요. ‘왜 바슬란디우스냐?’

나는 내 대답이 충분하지 않았나보다 했죠. 그래서 설명을 붙이기 시작했어요. 내가 남편의 어떤 점들을 좋아했고, 왜 좋아했고, 그래서 결혼할 마음까지 품었는지.

그렇게 대답했는데도 사람들은 내게 질문을 멈추지 않았어요....그제서야 깨달았어요. 사람들은 내 생각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는 걸. 그들은 내게서 정교한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는걸요.“





숨을 한 번 고른 뒤 스트라제나가 말했다.





“그 뒤로는, 누가 내게 묻더라도 똑같이 대답해요.”


“어떻게?”


“틸리, 저한테 물어봐줄래요?”


“좋아요, 왜 바슬란디우스랑 결혼했어요?”


“당신이 뭘 어쩔 건데요.”





제피스토가 눈썹을 치켜올려보였다. 스트라제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물론 누구한테나 그러진 않고요. 나한테 대답을 원해서 묻는 게 아니라, 단지 딴죽을 걸고 싶어하는 게 훤히 보이는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말하죠. 틸리, 당신의 물음에 대한 제 대답도 똑같아요.”


“흠?”


“내가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그것으로 삶의 이유를 찾는 것처럼 보였나요? 네, 맞아요. 정확히 보셨어요.

오늘 미라구나로 오면서 나는 최근 들어 가장 살아있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이제 바슬란디우스가 죽어가는 걸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못하던 여자애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렸거든요. 이제는 내가 지금 당장 뭘 해야할지 알고, 그걸 위해서 움직이는 스트라제나만이 여기에 살아있죠.

조이가 원하지 않았다고요? 무슨 상관이에요, 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런 식으로 제 생각에 따라서 움직일 거예요. 그렇게 살아야 앞으로도 잘 살 것 같아요. 틸리가 뭘 어쩔 건데요?“




제피스토텔레스는 대답없이 씩 웃었다. 그리고 책상 한 켠에 서 있던 탁상달력을 들어 쓱 훑더니 스트라제나에게로 밀어보냈다. 달력 위에는 정갈한 글씨로 상담이나 외부 일정 따위를 적어두었는데, 전부 갈레리 말이었다.


그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할지 몰라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제나에게 그가 말했다.



“그중에서 비어있는 날짜 중 하나를 골라요, 제나.”


“?”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까, 조만간 우리 센터에서 다시 만나 얘기합시다.”


“왜 그래야하죠?” 다시 고개를 드는 경계심에 스트라제나가 물었다.


“맙소사, 불과 5분전에 조이를 돕고 싶다고 했잖아요?”



제피스토는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표정으로 한 손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기억조작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요. 날짜를 알려주면 미라구나에서 제일 쾌적한 호텔을 잡아줄게요. 아, 총은 가져오지 말고요.”




달력을 살펴보던 스트라제나는 문득 자신이 놓치고 있던 한 가지를 떠올렸다. 빈 커피잔을 치우느라 분주한 제피스토텔레스를 향해 제나가 물었다.



“틸리, 제가 듣기로는, 조이에게 기억조작을 시키기 위해 우리 센터에서 동행한 사람이 있었다던데요.”


“이미 알면서 왜 물어요?”




새침한 목소리로 제피스토가 싱크대에서 잔들을 부시며 대꾸했다. 제나가 말했다.




“정말 그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제피스토텔레스의 센터를 나오는 스트라제나의 한 손에는 제비꽃 빛깔의 종이가방이 들려 있었다. 센터의 기념품이라며 제피스토가 억지로 쥐여준 것이었다. 본래 마음이었다면 거절했겠으나 스트라제나는 머릿속이 가득 차 있어서 한 손에 기념품 가방을 쥔 채 원장실에서 나와 센터 정문에 이를 때까지도 자신이 걷는 줄도 몰랐다.


환풍구에서 뿜어져나오는 더운 김, 식당가의 생선 굽는 내음에 스트라제나는 겨우 자신이 바깥에 나와있음을 알았다. 어느덧 해도 저물어 시간은 저녁이었다. 정신을 차리려는 스트라제나의 눈앞을 화난 조이의 얼굴이 막아섰다. 잠깐, 조이라고?


미라구나와 모힘사 산은 고속철도의 시속으로 두 시간 떨어진 곳이다. 지금쯤 모힘사 산속 센터에 있어야 할 조이가 이 자리에 나타난 이유를 떠올릴 수 없던 제나가 현실감을 찾지 못한 채 멍한 눈으로 조이를 보자, 그녀를 돕기 위해 엘피가 나섰다.




“미안해요, 제나. 조이까지는 안 부르려고 했는데....”




오늘 스트라제나와의 미라구나 행은 센터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되어있었다.

당황한 제나의 입에서 우습게도 인사가 먼저 튀어나왔다.




"어....미라구나에는 어쩐 일이야, 릴."




제나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조이가 선수를 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제피스토텔레스의 센터?”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기가 막히는지 작게 코웃음친 조이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네가 무슨 꿍꿍이로 움직이는지는 관심없어. 그런데 엘피까지 끌어들여?”




그제야 스트라제나의 눈에 방금 모힘사 산속에서 여기까지 달려왔을 조이의 긴박함이 낱낱이 보였다. 센터 안에서 쉬는 날에만 입는 트레이닝복, 밑창이 얇고 발가락이 시원하게 드러난 슬리퍼.




“....네가 걱정하는 일들은 없을 테니까 흥분하지마, 릴.”




누구보다도 모든 것을 파악하는 척 굴지만, 사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는 게 없는 건 너잖아, 스스로가 뭘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제피스토와는 내가 저번에 준 자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야. 갈랑콜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갈레리 출신 남편을 뒀던 사람의 조언이 절실한 게 당연하잖아.”


“스탠은?”



조이가 다그치듯 물었다. 사실 궁금해서 묻는다기 보다는 압박감을 주기 위해 마구 던지는 것에 가까웠다.



“네가 여기에 온 거, 알리스타나도 알고 있어?”


“알리스타나 선생님은 몰라. 바쁜 사람한테 뭐하러 일일이 보고를 해?”


“하하....뭘 믿고 그렇게 기고만장해?”


“마음에 안 들면 알리스타나한테 일러바치든지? 너 그게 특기잖아.”


“뭐, 특기?”


“어쩔 건데, 고자질쟁이야.”




방금 제피스토와 담판을 지은 후로 스트라제나의 안에서 어떤 벽이 허물어졌는지, 이제 그녀는 반쯤 될대로 되라는 듯 굴고 있었다. 조이는 화를 넘어 짜증이 나기 시작했는지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기가 막혀서 다른 대꾸를 못하고 있었다.



“그만! 둘다 그만 싸워요! 내 말도 들어봐요, 릴.”



두 암시자 옆에서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고 있던 엘피가 결국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내가 제나를 따라서 여기 오겠다고 했다구요. 미라구나 전자센터에 꼭 가보고 싶었거든요. 매운 가재도 먹고! 나는 제나가 제피스토텔레스한테 납치당한 줄 알고 무서워서 릴을 불렀을 뿐이에요.”


“그러고보니, 엘피.” 불현듯 스트라제나가 엘피를 보며 물었다.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요? 어디로 가는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아, 그건......”




얼버무리던 엘피가 느닷없이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쥐어보이며 말을 돌렸다.




“우선 저녁부터 먹고 천천히 얘기하면 안될까요? 나 배가 고프다 못해 없어질 거 같아요. 릴도 급하게 고속열차 타느라 밥도 못 먹고 왔대요.”




저녁시간이 가까워 달려간 매운 바닷가재 식당은 이미 골목 하나를 길게 메운 줄로 성황을 증명했다. 대기줄에 섞인 세 명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었다. 트레이닝복 아래 슬리퍼만 끼워신은 피리간 남자 한 명,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돌아보게 만드는 어여쁜 금붕어같은 피리간 아가씨가 한 명, 큰 키만큼이나 목이 긴 선셰이드 외국인 여자가 한 명.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는 반시간 내내 엘피는 냉랭해진 두 암시자 사이를 붙여보려고 했으나, 번번이 시도에만 그쳤다. 점원이 가게 밖으로 나와서 대기줄에 선 손님들에게 메뉴판을 나눠주었다.


메뉴판을 손에 들고 넘겨보던 조이가 불쑥 말을 꺼냈다.




“닭고기 조림을 먹으면 되겠네.”




그의 말에 스트라제나와 엘피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서로의 얼굴을 한번씩 바라보았다. 특히나 놀란 엘피가 말했다.




“지금까지 매운 바닷가재집 앞에서 몇시간 동안 줄을 서놓고는, 닭고기 조림을 먹겠다고요?”


“나 말고, 스트라제나 말이야.”




조이가 메뉴판을 기울여 그의 곁을 가리키며, 정작 그곳에 서 있는 선 셰이드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진 않으면서 말했다.




“갑각류 알러지가 있다고 했잖아.”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엘피는 안경이 코끝까지 미끄러질만큼 놀라며, 스트라제나에게 물었다.




“정말이에요, 제나? 그럼 가재 못 먹어요?”


“엘피한테는 식당에 들어가서 말해주려고 했는데......”




스트라제나는 내심 그 사실을 조이가 기억하고 있었다는 데 놀랐다.

그가 언제 처음 알게 됐던가, 아, 그랬다. 스트라제나가 센터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알리스타나가 둘에게 준 암시 문제에서, 서로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나가 센터에 갇힐 처지가 되었던 그 날이었다.


언젠가 조이가 알리스타나와 함께 바닷가재를 먹고 온 날, 포장한 가재를 스트라제나더러 먹으라고 가져다주었다가 알러지 때문에 거절당한 기억이, 조이에게는 선명히 남아있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자기 형제를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다니....’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코가 턱 막히도록 매운 고추향이 물씬 코를 적셨다. 잠시 후 테이블 위로 날라져온 바닷가재와 닭고기조림은, 무너져내리는 고추산의 잔해를 해치고 기어나온 것처럼 투쟁적으로 빨간 외양을 자랑했다.




“한 입이라도 먹었다간 인생이 잘못되게 생겼군.”




조이의 말은 예언이 되었다.

간신히 한 입을 먹고 난 뒤 엘피는 가재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연신 기침을 해가며 물잔만 비웠다. 조이는 가재속살을 깨끗이 발라내는데 서툰 엘피를 도와주는 척하며, 약삭빠르게도 자기는 한 입도 대지 않았다. 제나가 주문한 닭고기 조림조차도 매웠다.




“입술에 주사를 오십 방은 맞은 거 같아....난 지금 후식 시킬래.”




닭고기가 빨간 얼룩을 피처럼 흘리며 장렬하게 누워있는 접시를 밀어낸 스트라제나의 말을 조이가 조용히 받았다.



“좋은 생각이야.”



포장을 위해 남은 음식을 트롤리카트에 옮겨 담던 점원은 자꾸만 엘피의 얼굴을 흘끔거렸다. 이 바닷가재 식당까지 오는 동안만 해도 엘피의 얼굴에 홀려 연락처를 물어오는 미라구나 시민이 여럿 있었고, 그때마다 엘피가 신호를 주면 제나와 조이가 번갈아가며 무서운 얼굴로 몰아내주었다. 이번에도 그런가 싶었는데, 점원은 별다른 말 없이 접시를 쓸어담은 트롤리 카트를 끌고 그들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동료 점원에게 카트를 맡긴 뒤 다시 그들이 앉은 테이블로 돌아온 점원이 엘피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제 얼굴 기억 안 나세요?”




두 의심 많은 암시자는 점원이 엘피에게 수작질을 거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어물거리는 눈빛을 하던 엘피가 우와, 소리를 지르며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라운지에서 내 생일케이크에 불 붙여준 사람?”


“기억하시는구나.”



점원이 싱긋 웃었다. 뜻밖에도 두 사람은 구면인 듯 했다. 엘피의 반가움이 가득한 얼굴을 보며 의심을 덜어낸 두 암시자는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엘피가 잔뜩 들뜬 목소리로 점원에게 물었다.




“지금은 여기서 일해요?”


“아, 그 라운지 레스토랑은 그만 뒀어요. 이사를 갔는데 출근이 멀어져서.”


“여기서 만나다니 너무 신기하다.”


“저도 그래요.”




엘피의 손에는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속도로 어느새 휴대전화가 들려있었고, 지켜보던 조이와 제나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엘피와 함께 연거푸 사진을 찍고 난 뒤 점원이 엘피에게 물었다.




“어머니한테 보낼 거죠, 그 사진?”




그 말을 분명 들었을 텐데, 엘피는 사진이 잘 찍혔는지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점원이 또 말을 꺼냈다.




“제가 그쪽 어머니를 자주 봤다고 하면 친구들이 거짓말은 집어치우라고 해요. 어머님이랑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줘야지만 믿는다니까요.”




이번에도 엘피는 사진에 뜸을 들이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조이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만 슬슬 일하러 가야해서요’라고 운을 띄운 점원은 엘피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다음에 또 봤으면 좋겠고요!”




엘피는 처음 반가워하던 모습보다는 사뭇 차분해져서 점원에게 얌전히 손을 흔들어보였다.

곧이어 스트라제나가 후식으로 주문한 케이크가 나왔다. 커다란 초콜릿 케이크 위에 빨간 체리시럽으로 ‘미라구나에 온 걸 환영해요, 릴리와 친구들!’이라는 문장이 솜씨좋은 기술로 적혀있었다. 릴리 피어스는 엘피(LP)의 이름이었다.




"엘피, 유명인사였군요. 어머님도."




스트라제나가 진지하지 않은 척 물었다. 하하, 하고 누가 들어도 어색하게 웃음을 터뜨린 엘피가 직접 초콜릿케이크를 잘라서 접시마다 덜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는 그냥 평범한 엄마예요. 저 사람이 장난친 거예요.”




손사래를 치며 자리에 앉아 초콜릿케이크로 달려드는 엘피를, 조이가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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