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내가 아는 드라마 작가가 있어서
고양이의 직업을 알게 된 이후로
요새 내 일정이 하나 추가됐다.
타다다닥
[웹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한 후 앤터를 치자 수 많은 정보가 떠올랐다.
과연, 최근 뜨고 있는 장르라더니 내용이 방대했다.
검색 목록 중에 제일 위에 있는 기사를 눌렀다.
딸칵
[인터넷 전용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창작 또한 굉장히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이전에는 실물 책이 나와야 그나마 작가로 인정받던 장르 문학은
이제 유료 연재만으로도 성공한 작가들이 나오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매회, 제작비만 몇십억씩 지출하는 예능 판은 웹 예능이 활성화되면서
기존 방송국의 메인 예능도 위협받을 정도가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많이 바뀐 곳이라고 한다면 웹 드라마 장르다
영상 시간도 짧고 스토리 흐름도 빨라
기존 드라마에 질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웹 기반 콘텐츠들이 기존 콘텐츠들을 밀어낸 건 아니다.
지금까지는 기존 드라마 시장의 빈틈을 웹 기반 콘텐츠들이 잘 치고 들어갔다고 보는 시각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웹 기반 콘텐츠들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덩치를 키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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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드라마가 이때부터 자리를 잡았나 보네"
웹 드라마가 성장할 건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웹 드라마 전문 대형 제작사도 있었으니까
다만 정확한 성장 시기는 몰랐는데 기사를 보니
이때부터 조짐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치면 웹 드라마도 나쁘지는 않은데. 이걸 노리고 웹 드라마 대본을 쓰는 거야?”
기사를 내리고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냥아치 녀석은 아직도 토 작가 집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럴 거면 저 집은 필요 없지 않아?“
이사는 커녕 새로운 집에 거의 들어간 걸 본 적도 없는데
새로운 주민 생각해서 특별히 종이 박스 모양으로 만들어 준 성의가 아깝다.
타다다닥
토 작가처럼 등을 돌리고 열심히 앞발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자니
솔직히 가증스럽기 그지없었다.
"너 지금 뭐 하냐?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쓰고 있잖아?"
이 자식이 어디서 액션 질이야?
네 덩치로는 노트북 화면이 안 가려진다니까?
그런 엉성한 연기에 누가 넘어가게···
뀨우!
...속는 애가 있었네
언제 다가왔는지 우리 착한 토 작가가 또 귀로 녀석을 감싸주고 있다.
제 딴에는 아침부터 무리하는 친구를 위로해주는 것 같은데
내 입장에서는 착한 내새끼가 이상한 친구에게 이용당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
냐앙
"얼씨구? 놀고 있네. 이 자식 이거. 터진 묘성 어떻게 고치지?"
어디서 감동한 척이야?
그보다 너 때문에 일 잘하고 있는 토 작가가 또 자리를 이탈했잖아!
너 추가로 마이너스 1점!
딸칵
도끼눈을 한 수혁은 며칠 전에 새로 생긴 폴더를 클릭했다.
바탕화면 - 고양이 - 웹드라마 - 히든하울링순으로 이어지는 고양이 전용 작업 폴더
그곳에는 벌써 며칠째 하나의 파일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히든하울링 1화.Text - 최근 수정 3시간 전]
"하, 최근 수정 이력이 3시간 전이면 아침에 파일 연 이후로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거잖아?"
이래 놓고 자판을 그렇게 쳐?
너 무슨 리듬 액션 게임 하냐?
"진짜 왜 그러냐? 오늘은 그래도 컨디션 뽑기도 나쁘지 않았잖아"
오늘의 고양이 컨디션은 [중상]
현재 토 작가가 적용 중인 [상]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적어도 이제까지 내가 봤던 고양이 상태 중에는 최상이었다.
그런데도 이러고 있다.
"1편은 아직도 완성이 안 됐으니, 이제까지 나온 건 이거 하난가?"
수혁이 폴더에 있는 유일한 파일을 바라보았다.
히든하울링 기획서.Text
"토 작가는 이런 파일이 없던데.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이것부터 쓴 걸 보면 드라마 업계는 기획서가 기본인가?"
그쪽 업계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알 수가 있나
그나저나 얘를 어쩌면 좋지?
"꼴을 보면 일하기 싫어서 농땡이 피우는 건 또 아닌 거 같고"
하는 꼴이 얄밉긴 하지만 그런데도 내가 얘를 미워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띠링
[불안으로 털이 7가닥 빠집니다.]
[오늘 빠진 털의 개수 : 105가닥]
[일정 수 이상의 탈모로 인해 상태이상 : 우울증(소)가 재발합니다]
[우울증의 지속시간 : 2시간]
[고양이의 집필 의욕이 10% 감소합니다.]
[고양이의 자존감이 10% 감소합니다.]
[고양이의 대본 구성력이 10% 감소합니다]
"하아, 오늘도 떴네"
안 그래도 슬슬 시간이 됐을 거 같더라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타난다.
이놈도 내 말 들리는 거 아니야?
"그래도 오늘은 점심 먹고 나타난 걸 보면 기록은 경신했네"
우울증은 고양이가 집필을 시작한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발생하는 상태 이상이었다.
원인은 메시지에 나왔다시피 일정 이상의 털이 빠지면 발생했는데
문제는 고양이가 집필에 집중하게 되면 털이 쉼 없이 빠진다는 거였다.
"이것도 과거에 겪은 안 좋은 기억 때문이겠지?"
자기 대본을 몇 번이나 도둑질당했다고 했으니
트라우마가 생기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몰랐다.
그나마 토 작가가 넘겨준 초기 버프
성취감(최소)의 효과 덕분에 상태 이상이 발생할 확률이 줄어든 게 이 정도였다.
"이건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긴 해야 하는데"
단순히 고양이 작가의 문제라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토 작가는 자기 친구를 돕겠다고 벌써 며칠이나 컨디션을 나눠줬다.
그뿐인가?
지금만 봐도 중간마다 상태를 살필 정도로 고양이를 신경 쓰고 있었다.
원래는 집필을 시작하면 잠들기 전까지 글만 쓰던 토 작가였다.
그런데 고양이를 신경 쓰다 보니 집필하는 속도가 줄어들고 있었다.
"지금이야 아직 비축분이 많이 쌓여있긴 하지만"
혹시라도 또 고양이 상태가 안 좋아지고
토 작가가 그걸 돕겠다고 나서게 된다면
연재를 시작한 차기작에도 영향이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지금 돌아가는 상환만 본다면 100% 생긴다고 봐야겠지"
최악의 경우에는 그렇게 고양이를 돕다가
토 작가 본인의 연재에 문제가 생겨 상태 이상이 발생하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조혼광마가 아직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있고
차기작에도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두고 있어 나타나지 않을 뿐
토 작가도 고양이와 같은, 아니 어쩌면 더 위험한 약점이 있으니 말이다.
"악플에 트라우마가 있다고 했지. 차기작에 문제가 생겨서 악플이라도 달리면 골치 아픈데"
고양이의 우울증은 가만히 있으면 털이 빠지지 않으니까 발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악플은 토 작가의 작업 상황과는 상관없이 언제든 달릴 수가 있었다.
"스토리가 마음에 안 들면 연재 중간에 언제라도 달릴 수 있고, 연재를 쉬면 또 쉰다고 악플이 달릴 테니까"
어떻게 보면 고양이보다 더 위태로운 게 토 작가였다.
"그렇다고 고양이가 대본을 쓰지 못하게 할 수도 없고"
어차피 물리적으로도 막는 게 불가능하긴 한데
가능하다고 해도 내가 저놈을 막을 수 있을까?
달달달
우울증의 여파로 몸을 덜덜 떨면서도
어떻게든 대본을 쓰려고 컴퓨터를 놓지 못하는 모습의 고양이
저 꼴을 보면 누구라도 쉽게 말리지 못할 테니 말이다.
"돕고 싶어도 뭘 알아야 도울 텐데. 드라마 쪽은 아예 모르니"
웹소판은 그래도 10년 동안 활동해서 이것저것 아는 거라도 있지
드라마 판은 진짜 쌩 초보라 뭐 아는 게 하나도 없단 말이지
그렇게 수혁이 답답한 마음에 머리만 긁고 있을 때
지이잉
[유재영]
"응? 이 자식이 또 왜?"
집들이 이후 조용하던 금쪽이 녀석의 전화에 수혁은 별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야, 뭐하냐?]
"나? 그냥 방에 있는데 왜?"
[아, 오늘도...]
뭐지?
저 그럼 그렇지라는 뉘앙스는?
"뭐냐? 지금 시비 거는 거? 심심한가 봐? 어디, 욕이라도 쳐 해주리?"
[정중하게 사양할게. 그냥, 너무 평온한 거 같으니 부러워서 그랬지. 역시 대박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쓸데없이 혓바닥이 길다. 기브 미 용건, 허리 업"
[오, 예아!]
이 자식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 바꿔 끼우는 거 보니 뭐 부탁할 거 있구먼
[야, 내 동생 기억하지? 재선이]
"어, 기억하지. 네가 하고 난리를 쳐서 온라인 투표까지 했잖냐?"
조혼광마 OST 때문이라도 어차피 투표할 생각이긴 했지만
[어이쿠, 국민 프로듀서님 감사드립니다. 프로듀서님 덕분에 재선이가 OST도 부르고, 덕분에 이번에 데뷔 확정됐잖아요]
"아, 스포충 극혐인데"
아직 방송으로는 최종 6인까지밖에 안 나왔잖아
8명이 남았을 때부터 녹화 방송으로 변경됐으니
지금쯤이면 결과가 나온 건 알았지만
이렇게 결과를 미리 알고 싶진 않았다고
내가 왜 일부러 너한테 안 물어봤는데!
[엇, 쏘리! 내가 너무 기뻐하다 보니 실수를... 그, 그래도 아직 등수는 말 안 했잖아?]
"됐어! 이 자식아. 등수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등수에 따라 상금이나 비중이 달라지는 건 알지만
그거야 오디션 참가자들이나 중요한 거고
시청자로서는 내 최애가 데뷔하느냐 마냐가 더 중요하다고
그리고 난 그 가장 중요한 정보를 스포당한거고
그것도 내 최애의 오빠한테 직접!
"하, 이건 어디 가서 스포 당했다고 신고도 못 하겠고"
[하하하... 죄송합니다]
그래도 자기 잘못은 아는지 빠르게 사과하는 재영의 말에 수혁도 아쉬움을 털어냈다.
"됐다, 너도 가족 말고 다른 사람한테 자랑하고 싶었겠지. 아무튼, 그거 때문에 전화한 거야?"
[아, 맞다. 그건 부수적인 이유고]
이 자식
자랑이 목적 중에 하나긴 했구먼
[재선이가 OST 관련해서 너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사실 몇 번 메일로 연락했는데 네놈이 답장 안 했다며? 결국 나보고 전해달라잖아]
"아, 그래?"
미안, 그거 업무용 메일이라 그때 이후로 거의 들어가 보질 않거든
초반에는 유료화나 프로모션 관련해서 결정할 게 많아서 자주 들어갔지만
요새는 그것도 다 끝나서 안 들어간 지 꽤 됐다.
최근에는 고양이 돌보는 게 가장 큰 고민이라
[직접 만나 저녁 대접하고 싶데. 아! 부담은 안 가져도 돼. 이번에 받은 일등 상급이 무려 천만 원이나 되거든]
"아"
빌어먹을 스포충 새끼
그 와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등수 결과까지 알려주고 있네
재영이이 이 자식 평소에는 눈치 겁나 빠르더니
동생만 얽혀 있으면 나사가 17개쯤 빠진 상태가 되는구먼
[우리는 월 천 킥이 최대 목표인데, 역시 대형 기획사 오디션은 다르지?]
"...그러네. 난 월 천 킥 예전에 뛰어넘었지만"
[··· 재수 없는 시키. 레고나 밟고 넘어져라.]
응 반사다 스포충 새끼야
"뭐, 그런 의미에서 대접은 됐어. 공짜로 한 것도 아니고."
재선이가 부른 OST가 유명해지면서 나한테도 득이 많이 됐다.
원작인 조혼광마도 유명해졌고
무엇보다 나를 공동 작사가로 등록해줘서 작사료도 들어온다.
‘무엇보다 환희 버프가 쏠쏠했지’
덕분에 창세 대전도 무리 없이 집필하고 있으니 말이야
[야, 그래도 내 동생이 밥 산다고 하는데 얼굴 좀 비춰라. 내 동생이 기대 많이 하고 있단 말이야. 베일에 싸인 글쓰는 AI작가 볼 수 있다고]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뭐에 쌓여?
"네 동생, 뭔가 착각을 많이 하고 있는 거 아니냐?"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웃기게도 업계에서 네 이미지가 지금 그래. 오직 작품만 신경 쓰느라 인터뷰는 신경 쓰지 않는 천재 작가라고. 그, 시상식 기사에도 네 사진은 없잖아. 그게 다 언론에 노출하기 싫다고 오해 중이거든. 그나마 예전에는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창세 대전까지 대박 나면서 그런 이야기도 싹 들어갔다.]
야, 그건 내가 꺼려서 그런 게 아니라 그때 사진기사가 없어서 안 찍었던 거고!
심지어 인터뷰 요청은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이게 뭔 개소리야?
[오죽하면 재선이가 웹 드라마 촬영 들어가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어 하겠냐. 정체를 감춘 천재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단다]
"정체를 감추긴 개뿔, 내가 무슨 영국 마법사도 아니... 응? 야, 잠깐만. 웹 드라마?"
유언비어가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걸 막으려던 수혁은 방금까지 고민하고 있던 단어가 나오자 자신도 모르게 말을 돌렸다.
[이번에 일등 특전 중에 웹 드라마 주인공도 있었잖아. 그거 떄문에 마지막 경연 방송 나가고 나면 곧바로 촬영 들어갈 거래]
"아니, 그러니까 스포 좀, 휴... 아니, 됐다. 그것보다 그러면 촬영할 드라마는 결정된 거야?"
[응? 아마 아닐걸? 아직 오디션 최종 결과가 방영되기 전이잖아. 듣기로는 일단 웹 드라마 기획서를 받는 중이라고는 하는데, 마지막 방송이 나가고 나면 그때까지 받은 기획서랑 대본 놓고 결정하겠지]
"그...래? 기획서는 어디서 받는 건데? JJ? 아니면 외주 제작사?"
[JJ 기획팀. JJ도 자사 연예인들을 위해 웹 드라마를 만들고 있잖아. 이번에도 거기서 제작할 예정이라던데? 그런데 니가 그게 왜 궁금하냐?]
"아니, 그냥"
재선의 질문에 수혁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작은 몸을 계속해서 떨면서도 어떻게든 대본을 쓰려고 노력하는 동물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아는 드라마 작가가 이번에 웹 드라마 대본을 쓰고 있어서. 괜찮으면 그쪽에 응모하라고 알려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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