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2)
혹시나 해서 나머지 한 명도 심문을 했지만, 특별한 부분은 없었다. 둘 다 말단이다보니 아는 것은 대동소이했다. 도적들은 특별한 전략이나 병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두목의 강함 하나만을 믿고, 디어란 영지 앞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즉, 두목이 [5]등급이라는 것을 모두가 확신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생각한 것 중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 도적단에 [5]등급의 강자가 있다니.... [5]등급이면 평민도 백작의 작위를 받을 수 있을 만큼 가치있는 존재였다. 아니, 어지간한 범죄조차도 손쉽게 사면 받을 수 있으리라.
전사나 마법사가 [5]등급에 도달했다는 것은 홀로 군단에 필적할만한 힘을 가졌다는 뜻이었다. 수많은 권력자들이 어떤 대가를 주고서라도 휘하로 들이고 싶은 존재인 것이다.
설령, 다른 계통에서 [5]등급에 도달했다해도 마찬가지였다. 힘은 약할지 몰라도 기적과도 같은 일들을 벌일 수 있을테니까. 그래서 일반인들은 [5]등급에 도달한 존재를 '마스터'라고 불렀다. 어느 한 계통에서 인간의 한계에 달한 존재. 그것이 [5]등급이었다.
물론, [5]등급 이상의 존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수는 극히 소수였고, 세상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원래 그런 성격이어서 [5]등급을 넘어서는 것인지, 아니면 [5]등급을 넘어서니 그런 성격이 된 건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소설에서도 인간이 코너에 몰렸을 때가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카드란의 경우는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서 다소 일찍 힘을 드러내긴 했지만, 그건 정말 예외적인 경우였다.
그렇기 때문에 [5]등급이면 작위든, 돈이든, 명예든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존재가 굳이 도적단이 될 이유가 있을까?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결국은 범죄자.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난 존재였다. 뭐든지 얻을 수 있는 존재가 주류를 벗어날 이유는 없었다.
"마스터가 왜 저런 도적단에 있을까요? 고작해야 100명정도의 두목이라니... 어지간한 왕국, 아니 공작가에만 투신하더라도 수하가 곱절은 될텐데요."
"글쎄요. 알 수 없는 노릇이죠. 이유야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적이라는 것만이 중요하죠. 바위요새는 크게 기대할 수 없겠군요. 마스터의 검 앞에서는 시간문제일뿐이니...."
"거기다 식량도 문제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식량으로는 이 곳에서 오래버티는 것은 무리입니다. 결국 고생하셨지만, 바위 요새는 포기해야할 것 같습니다."
라이어스는 그 말을 끝으로, 휘하 인원들에게 석궁을 회수하도록 명했다. 나 역시도 바위 요새를 포기해야한다는 의견에 동의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아쉽군요. 바위 요새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정도면 굉장히 쓸만하다고 느꼈습니다만..... 아... 두목과 식량. 이 두 가지만 해결되면, 여기서 농성해도 충분할텐데요."
라이어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라이어스가 말한 두 가지 문제 중, 식량은 아공간 주머니를 가진 나에게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공간 주머니에 식량을 꽉꽉 채우면, 이 인원으로도 며칠은 버틸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5]등급의 적이란 그야말로 공성병기와 같아서 시간만 충분하면 성벽까지도 부술 수 있는 존재였다. 하물며, 임시로 만든 바위 요새따위야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후...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네... 제법 강해졌다 싶었는데, 마주치는 상황마다 목숨을 걸어야 하다니..."
"무리한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혼잣말을 너무 크게 한 모양이군요."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라이어스는 굉장히 미안해했다.
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는 목숨을 구해주고도 무리한 부탁을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일종의 호구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었고, 저런 강자가 있을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긴 했지만.
"일단 무리하게 덤벼들진 않도록 하죠. 저 놈들을 물리치는 것보다 차라리 디어란 영지로 잠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봅시다. 그게 힘들다면, 영지의 상황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라도 찾아보죠. 도적단과 정면에서 싸우는건 멍청한 짓입니다. 솔직히 제가 부탁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아직 댓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죽을 자리를 찾아갈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건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죠."
대답은 없었지만,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목숨을 걸어서 뭔가 가능성이 보인다면, 희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저 도적단에게 덤비는 것은 그야말로 개죽음이었다.
"저..... 제가 아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만. 이게 과연 도움이 될지....."
"키르. 그러고보니 자네도 이 도시 출신이었지? 뭐든 아는게 있으면 말해보게."
라이어스의 수하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무언가 도움이 되는 정보가 나오길 기원하며,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디어란 영지로 몰래 들어가고 싶으신 모양인데..... 디어란 영지의 성에는 사람 한 명이 지나다닐만한 구멍이 하나 있습니다. 극소수만이 아는 곳인데다가 잘 숨겨놔서, 아마 도적단 놈들도 찾지 못했을겁니다."
"오, 정말 좋은 정보가 아닌가? 그 정도라면 큰 도움이 되고 말고!"
라이어스는 굉장히 흥분한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반면에 라이어스의 수하. 키르는 뭔가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마도 '그러나'라던지 '다만'이라던지 뭔가 단점이 나올 것 같았다.
"다만..... 그...."
"뭔가 도대체!!! 빨리 말해보게."
라이어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반면에 키르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이대로 놔둬서는 제대로 대답을 듣기 어려워보였다.
"라이어스님. 잠시만요. 천천히 얘기를 들어봅시다. 잠깐 더 기다린다고 바뀌는 것은 없어요."
내 말을 듣고, 라이어스는 숨을 천천히 쉬면서 차분해지려고 노력하는 눈치였다.
"키르님. 뭔가 문제점이 있는 모양입니다만, 차분하게 얘기해보세요. 어떤 문제든 그걸 알아야 우리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저... 그것이... 그 구멍이 있는 방향에 도적단이 지키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조금 옆쪽이긴 한데.... 아마 거길 가려면 도적단을 피하기 어려울 겁니다."
"허..."
과연, 자신없어할만 했다. 결국은 도적단에 가로막혀서 들어갈 수 없다는 뜻 아닌가? 설령 들어간다하더라도 도적단도 알게 될 것이고, 그건 우리의 약점을 적에게 드러내는 꼴이었다.
"적어도 적을 유인해야만 하겠군요. 흠.... 상단쪽에서 말이라도 데려와야 하는 것인가..."
"이미 나머지 인원들은 키르젤 영지에 도착했을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키르젤 영지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어떨까요?"
한 명이 입을 열자, 다른 인원들 역시도 슬슬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좋은 현상이었다. 라이어스와 나, 둘만 얘기해서는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아쉽게도 키르젤 영지 역시 제법 큰 타격을 받아서 이곳까지 지원해주긴 어려울 겁니다. 그보다 다른 분들도 의견이 있으시면 뭐든지 좋으니까 말씀해주십시오. 서로 의견을 공유하다보면 뭔가 좋은 방법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 쓸모있는 의견을 낸다면, 내가 상단주님께 건의해서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특히 키르는 조금 아쉽긴 하지만, 처음으로 의견을 냈으니 돌아가는데로 1골드를 주도록 하지."
라이어스는 눈치 빠르게 반응했다. 내 말에 덧붙여서 포상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처음 의견을 냈던 키르에게 1골드라는 큰 보상을 약속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의욕을 고취시킨 것이다.
돈의 힘이란 과연 위대했다. 보상이 제시되자 마자, 바위 요새 안은 격렬한 토론의 장으로 변했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나온 의견이 빠르게 가다듬어지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는 결국 쓸만한 의견 하나를 도출해내는데 성공했다. 약간의 위험부담은 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이라면 가능하겠군요.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게릭님께 위험요소가 아예 없다고는 볼 수 없는데요."
"네. 최악의 경우라도, 생존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경우에는 더 이상의 의뢰수행은 어렵겠죠."
"그 경우에는 제가 상단주님께 말씀드려서 어떻게든 보상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잘부탁드립니다. 다른 인원들도 충분히 보상이 될 수 있도록 할테니. 조금만 힘을 내도록! 출발이다."
과연 이 방법이 먹힐 수 있을까? 100% 장담할 순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점이다.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한다. 나는 그것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 작가의말
감사하게도 하루 쉬었는데,
선작/추천/조회가 다 늘었네요.
특히 선작이 드디어 100!!!!!!
내일은 조금 더 많이 쓸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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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화폐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1 브론즈 = 100원
1 실버 = 10,000원
1 골드 = 1,000,000원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다.
하위 화폐 100개가 모여야 상위화폐가 되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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