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3)
"흠, 차라리 지금처럼 소강상태일 때, 영주성으로 들어가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영주성으로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물론 지상으로 가는건 위험하겠죠. 고블린들은 인간보다는 밤눈이 밝은 편이니까요."
"다른 방법이 있나요? 새처럼 날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하수구가 있잖습니까?"
"하수구요? 거긴..."
이곳 영지 지하에는 하수도가 있었다. 정확히는 고대의 하수도 위에 도시를 지은 것이 이 곳 영지였다.
고대에 드워프들이 만들어 놓은 하수도 시설 위에 도시를 짓는 것이 유행이었던 때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특히나 이 도시가 지어질 당시의 영주는 당대에는 손에 꼽을 정도의 강함을 보유했던 이였다. 당시만 해도 일대의 지배자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일개 백작, 그 중에서도 최약체로 꼽힐만큼 약해진 것은 어느 순간 자신들의 비전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흔하다면, 흔한 얘기였다.
중요한 것은 그런 하수도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어느날 부터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그게 반복되면서 어느순간부터 모든사람들이 입에 담기조차 꺼려하는 장소가 된것이다.
"압니다. 다들 입에 담기도 싫어한다는 거. 그런데 왜 그런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워낙 소문이 흉흉해서, 흑마법사가 있다는 둥, 괴수가 있다는 둥."
"그렇죠. 아무도 명확한 진실은 모르는 체로 다들 꺼려할 뿐이죠. 실제로 최근 수년간 그곳에 갔다가 살아남은 사람이 없으니까요."
"네. 호기심에 갔던 사람들이 모두들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그곳에 던전이 형성되었기 때문이죠."
하수도에 형성된 던전은 처음에는 매우 작았고, 난이도도 매우 낮았다. 그러던 것이 그곳에 서식하는 쥐나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영웅연대기의 던전은 그 곳에서 희생된 생명체의 수가 많을 수록 성장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하급 던전으로 시작해서 아주 가끔씩 생명체를 잡아먹었지만, 그런 세월이 수년이 흘렀다. 어느새 그 던전은 일반인도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서 벗어나서 1소대 수준에서 클리어가 가능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심지어 지금의 상황이 끝나면, 던전의 규모가 아예 한단계 더 커지게 된다. 도시에서 죽은 생명들까지 던전의 성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아마도 하수구 시설 위에 도시와 던전이 함께 있다보니 발생한 일이라 추정되었다.
"던전이라면 위험한것 아닙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던전은 정말 위험한 곳입니다. 던전 또한 생명체와 같아서 힘이 약할때는 몸을 숨기거든요. 그런 점에서 그곳은 아직 그렇게 위험한 수준이 아닙니다."
"그런가요?"
"네. 거기다 우리는 2단계 수준으로 승급했습니다. 혼자서 1개 소대급의 힘을 낼 수 있다는 뜻이죠."
"저,정말입니까?"
"네. 모르셨군요. 직업명에 적혀있는 숫자는 우리의 등급을 의미하는 겁니다."
일반적인 소설에서는 대마법사라던가 소드마스터라던가 이런 용어를 썼지만, 이 세계는 게임과 같은 설정이 도처에 깔려있었다. 소드마스터 대신 5등급의 검사라고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대체로 일반 기사가 2~3등급 수준이며, 2등급이면 병사 열명을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로운님. 일반 병사라면 고블린 2마리도 못이깁니다. 혼자서 10마리 이상을 쓰러뜨린 수준에서 이미 어지간한 기사 수준의 강함을 보유하신 겁니다."
"제, 제가 기사 수준이라구요?"
"네. 이미 그런 수준이시죠."
그리고 50이란 힘 수치는 그거 하나만으로도 3등급 정도는 이길 수준이었다. 다시말해, 나는 결국 강점은 숨기고, 안전을 도모한다는 핑계로 다른 것들로 싸운것이다.
나의 강점으로 적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 필승전략이건만, 나는 바보짓을 한셈이다.
"저는 2등급의 마법사지만, 힘만큼은 초인적인 수준이죠. 제가 전력을 다하면 3등급 한두명정도는 이길 수 있을겁니다. 다시말해 3등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죠."
"3등급이요? 하지만, 고블린들한테 쫓기셨는데..."
"네. 어리석었죠. 그냥 상대했으면 순식간에 처리했을텐데, 저는 마법사라 체력이 약하거든요. 유인한답시고 체력을 다 소비해버렸죠. 저질체력에 초인적인 힘. 그게 바로 접니다. 그런만큼 로운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음."
"우선, 제가 선두에서 단숨에 적을 해치우고, 전투가 길어지면 로운님이 주도적으로 전투를 이끌어가주시면 됩니다. 제가 포션을 복용할 시간만 확보해주실 수 있으면, 4등급 미만의 적은 충분히 이길 수 있어요."
한참을 설득했지만, 로운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그럴만 했다. 그만큼 내가 한짓은 바보짓이었고, 약하게 보였을테니까.
자신이 손쉽게 처리한 고블린에게 쫓겨온 사람이 3등급의 힘을 가졌다고 주장하다니 나라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설득하고자 했다. 나의 강점을 보완해주기 위해서는 나를 보호해줄 동료가 필요했으니까. 그만큼 로운은 믿을만한 동료였으니까.
"로운님. 저를 못믿는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만큼 고블린들에게 쫓긴 것은 나쁜 의미로 충격적인 일이었을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만 더 믿어주십시오. 던전을 클리어하고, 영주성으로 갑시다. 그래서 고블린들을 물리치고 도시를 구하는 겁니다."
로운은 내 말을 듣더니 대답없이 잠자코 있었다.
나는 그를 재촉하지 않고, 말없이 기다렸다.
잠깐의 시간이 지났을까? 로운이 입이 열렸다.
"게릭님. 저는 게릭님을 못믿는게 아니에요. 고블린한테 쫓긴것? 그게 뭐라구요. 사람인 이상 실수도 할수 있는 법이죠. 거기다 실수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미끼가 물고기를 유인해온 것은 성공이라고 말해야하는 것이죠."
"로운님..."
"곧바로 대답하지 않은건, 제가 게릭님의 동료로서 적합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섭니다. 2등급으로 올랐다고는 하시지만, 사실 믿기지도 않구요. 오늘 하루종일 게릭님을 따라다닌게, 제가 한 모든 일인데요. 이런 제가 게릭님의 동료가 되도 괜찮은 것일까요?"
하하하. 나한테 실망한게 아니었다니, 역시 사람말은 끝까지 듣기전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나는 로운에 대한 강한 신뢰가 형성되는 것을 느꼈다. 고작 하루의 만남으로 이렇게 굳건한 신뢰가 생기다니, 지금 상황이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물론, 물론입니다. 로운님 앞으로도 잘부탁드립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꽉
로운 역시 나의 손을 꽉 잡고 악수를 했다.
그렇게 하루의 전투 속에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말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현실감각을 되찾았고, 집으로 돌아갈 방법도 찾았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내가 진심으로 동료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소설 속 세상에서의 첫 번째 동료. 그의 이름은 로운이었다.
- 작가의말
쓰다보니까 왠지 천잠비룡포의 주인공이 떠오르네요.
단기결전용 전투력.
그래서 동료를 모음.
뭐 많이 다르긴 합니다만 ㅎㅎㅎ
그냥 떠오르더라구요.
그건그렇고
요번주는 자꾸 1시 다되서야 글을 올리네요 ㄷㄷㄷ
후... 정말 1일 1연재 어렵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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