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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수 님의 서재입니다.

붉은모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천이수
작품등록일 :
2016.12.01 19:07
최근연재일 :
2018.04.21 07:16
연재수 :
77 회
조회수 :
19,614
추천수 :
42
글자수 :
450,893

작성
17.01.26 23:19
조회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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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21쪽

프로렌스의 새로운 용병

DUMMY

해가 떠오르기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테르카의 장남인 라카드와 그의 일행은 서둘러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상단의 7할이 움직이는 지라 하인들과 노예들도 덩달아 분주해지고 여관은 소란스러워졌다. 발로니테는 일찌감치 일어나 가볍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발로니테와 가까운 지척에서 취침을 하던 나시크와 바라사 역시 각자의 짐을 꾸리며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동쪽사막에서 해가 떠오르려는 시각 라카드는 짐을 모두 꾸리고 테르가에게 작별을 고했다. 테르가는 가벼운 옷을 걸친채 여관 밖으로 나와 길을 나서는 일행등을 전송했다. 그러다가 그의 눈길이 발로니테에게 향했다. 부친의 뒤에서 테르가의 시선을 피하려던 발로니테는 당황하지 않고 미리 준비해둔 대로 적당히 핑계를 둘러댔다.

"잠시 아버님을 전송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테르가는 잠시 표정없이 발로니테를 바라보고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 뒤 뒤돌아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발로니테는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게 의아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벗아나야 안심이 될것 같았다.

라카드일행은 상단의 남은 인원들에게서 전송을 받으며 여관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곧 주칸의 성문을 지났고 사막에 다다랐다.

"발로니테, 이만 돌아가거라."

사막에 접어들자 라카드는 아들을 향해 말했다.

"네. 아버님. 곧 다시 뵙겠습니다."

발로니테는 짧게 인사를 마친뒤 말을 몰아 왔던 길을 되돌아 가기 시작했다. 발로니테의 말은 어느때보다도 힘차게 내질러나아갔다.

"형님. 발로니테가 뭔가 이상합니다."

"훗. 알수없는 녀석이지. 그보다 어서 서두르자."

라카드는 발로니테의 생각을 읽을순 없었지만 그의 행동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발로니테는 용감했고 아울러 현명했기에···


발로니테가 주칸 성문에 도착하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나시크와 바라사가 그를 맞이했다.

"쪽지는 남기고 왔겠지?"

"네, 하지만 믿어 주실까요?"

"믿지 않으시더라도 언젠가 내 뜻을 이해해주실꺼야."

나시크의 걱정어린 물음에도 발로니테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이야기 했다. 하지만 쪽지를 남기는 것은 처음부터 발로니테의 생각이었다. 바라사는 차라리 말없이 떠날것을 건의했지만 발로니테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는 나시크와 바라사에게 새로운 검을 선물하기 위해 마누아 화산섬 인근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쪽지를 전하는것으로 조부에 대한 인사를 대신하기로 했다. 마음 한편 사실대로 이야기 하면 성인이된 자신의 결정과 의지를 조부께서 인정해주시리라 생각도 했으나 발로니테는 길게 고민하는 대신 쪽지를 남기는 쪽을 선택했다. 세사람은 서둘러 짐을 챙기고는 말 안장에 올려 끈으로 묶은 뒤 더이상 뒤돌아보지 않고 말을 달렸다.


발로니테 일행은 사막길을 달려 순식간에 프로렌스에 도착했다. 프로렌스는 주변 사막을 통틀어 가장 큰 오아시스를 가진 풍요로운 도시였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 너머로 드넓게 평쳐진 들판엔 1년 내내 곡식이 열리고 튼튼한 말과 낙타가 자랐다. 도시의 평민들은 태반이 농사를 지었다. 그래서인지 성문에 들어서도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발로니테 일행은 제일 먼저 루가단의 깃발을 단 가게를 찾았다. 이곳 프로렌스에는 루가단에 소속된 가게가 두군데가 있었는데 하나는 말과 낙타를 주로 거래하였고 다른하나는 옷가지를 거래하였다. 발로니테 일행은 몸에 걸친 화려한 장식이 자못 귀족스러운 탓에 새로운 옷을 구하기 위해 두번째 가게를 찾았다. 가게는 시장구역에서도 가장 번화한 중심가에 위치해 있었다. 루가단에 소속된 가게는 모두가 루가단의 표식인 까만전갈이 가게 앞에 깃발로 표시되어 있었기에 그들은 멀리서도 쉽사리 가게를 찾을수 있었다.

"주인장, 계십니까?"

"네, 어서오십시오. 아니, 발로니테님 아니십니까"

테르가의 밑에서 10여년을 함께 상단을 이끈 발로니테는 이곳 작은도시 프로렌스의 상인에게도 익숙한 얼굴인듯 가게 주인장은 대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오랜만입니다. 인사드리시죠. 저의 일행인 나시크와 바라사입니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베라이라고 합니다."

짧게 인사를 마친 뒤 일행은 주인장의 도움으로 평민들이 주로 입는 옷가지를 구입해 걸쳤다. 가게주인은 발로니테가 건네는 돈을 극구 사양했지만 발로니테는 기어이 그의 손에 돈을 쥐어주었다. 주인은 거듭 감사 인사를 건네며 허리를 굽였다. 그는 루가단의 여느 상점 주인들 처럼 친절이 몸에 밴듯한 모습이었다.

"헌데 테르가님은 오시지 않은겁니까?"

주인장은 아까부터 테르가가 보이지 않는 것이 궁금했다. 테르가는 언제나 직접 루가단의 모든 가게를 방문해 인사를 건내고 관리를 했었기에 주인장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테르가가 건강이 나빠진 것은 아닌지 의레짐작 궁금해 물어본 것이었다.

"아닙니다. 할아버님은 지금 주칸에 머물러 계십니다. 우린 사정상 이곳에 먼저 들른것입니다. 아마 곧 이곳으로 오실것입니다. 헌데 이곳에 전쟁소문이 들리던데 사실입니까?"

발로니테의 물음에 주인장은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대답했다.

"말도 마십시오. 조만간 루아즈와 전쟁이 벌어질것 같습니다. 제 아들 놈도 이미 마크란으로 착출됐습니다. 저도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루아즈가 불러들인 용병이 2000을 넘는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거 큰일 아닙니까!!"

나시크는 크게 놀란듯 되물었는데 발로니테와 바라사는 눈치없게도 태연하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있었다. 하지만 주인장은 애써 웃어보이며 나시크를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마십시오. 프로렌스는 루아즈에게 한번도 패배한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결국 우리가 이길겁니다."

아들을 전쟁에 내보내는 아버지치곤 제법 당당한 모습이었다. 발로니테는 그의 아들 이름을 묻고는 그를 위로하다가 곧 자신이 용병으로 지원할것을 밝히고 도움을 청했다. 베라이는 깜짝놀라며 테르가 와의 뒷일을 염려했지만 결국 발로니테의 요청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발로니테 일행은 베라이가 구해준 마굿간에 말을 쉬게한 뒤 곧장 용병에 지원하기 위해 프로렌스 왕성 근처에 위치한 카로와나 군영에 달려갔다. 서쪽성문과 도시 중앙의 왕성사이에 위치한 프로렌스의 카로와나 군영은 1만의 사람이 들어찰수 있을만큼 넓은터를 지녔고 숙소로 사용되는듯한 수많은 천막들이 들어차 있었다. 천막위에는 프로렌스의 상징인 노란사막전갈이 그려진 푸른색의 삼각 깃발이 펄럭이고 넓은 평지에는 한참 훈련에 임하는 마크란의 기합소리와 함께 그들 몸에서 떨어진 땀방울이 마른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마크란은 카로와나의 지휘아래 검과 창, 그리고 궁술을 지도받았고 그들은 훈련 대열은 흐트러짐 없이 잘 짜여진 모습이었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용병들의 훈련도 한창이었다. 프로렌스는 대대적으로 용병을 모집하진 않았으나 꽤 오래전부터 전쟁을 준비한듯 적지않은 용병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 용병은 직업 군인신분인 카로와나에 비하면 조직력은 떨어졌지만 개개인의 전투능력은 대개 뛰어난 편이었다. 그들은 많게는 수십명이 집단을 이루기도 했으나 거의 태반이 홀로 전투에 지원했고 개성이 강한 그들을 정예화된 카로와나와 함께 부대를 편성해 전투에서 운용하기란 힘든일이었다. 따라서 전시에 소집되는 일반 평민 출신의 마크란은 카로와나의 지휘를 받았으며 용병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부대를 이루어 카로와나와 대등한 위치에서 전투에 투입되는게 일반적이었고 그들을 대표하는 용병대장은 비록 카로와나의 수장인 카로안의 지휘를 받기는 했지만 그들의 독립성은 상당부분 존중되었다.


발로니테 일행은 용병들의 훈련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용병대의 천막들중 맨 앞줄에 놓인 커다란 천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높이솟은 장대 끝에 매여진 깃발엔 용병모집을 알리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있었다. 천막안으로 들어서자 용병으로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 네댓명과 프로렌스의 카로와나 병사 두명, 그리고 귀족으로보이는 자가 한명 있었는데 발로니테와 그의 두 사내가 천막안으로 들어서자 일시에 모든시선이 그들에게 모여졌다. 모두들 새로운 신입용병을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발로니테는 테이블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귀족이 필시 용병을 받고 편성하는자라 여기고 그자에게 말을 걸었다.

"용병을 지원하고자 왔소."

"잘왔소. 뒤에 두사람과 동행이오?"

"그렇소."

"세사람 모두 말이 있소?

"그렇소."

"흠,몸이 깨끗해 보이는데 전투경험은 얼마나 되오?"

"검술대련은 많이 해봤으나 전쟁에 참가하는건 처음이오."

발로니테의 말이 끝나자 마자 천막안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고말았다. 나시크와 바라사는 숨겨도될 사실을 굳이 눈치없이 꺼낸 발로니테를 탓하려다가도 막상 비웃음 당하는 상황이 되자 신경이 거슬리는듯 인상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발로니테는 그들의 웃음에 별로 아랑곳하지않았다.

"그만 물러가. 너희같은 애송이가 올곳이 아니다."

귀족옆에서 한참을 크게 웃어대던 카로와나 한명이 표정을 바꾸며 낮은 음성으로 발로니테에게 말했다. 발로니테는 곁눈질로 그를 슬쩍 쳐다보고는 다시 귀족을 바라보며 입을 열얼다.

"보수는 필요없소. 대신에 우리 셋을 같은곳에 배치해 주시오."

순간 시끄럽던 천막안에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다. 천막안의 용병들은 아마도 밖에서 훈련하는 용병들의 우두머리들이 분명했고 그들은 새파란 젊은이의 객기를 더이상 지켜보고 싶지 않은듯 했다.

"이런 애송이가!"

방금전 입을 카로와나는 자신의 말을 무시한 발로니테를 당장 내칠기세로 그의 앞을 가로막았으나 중년의 귀족은 재밌다는듯 그를 뒤로 물리고 재차 물었다.

"그래 당신을 따르는 또다른 무리가 있소?"

발로니테는 게속해서 얄밉게 질문을 해대는 귀족이 아니꼬워 진지하게 대화할 마음이 사라졌다. 그는 비웃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일부러 허풍스레 대답했다.

"내 부하 둘이 왠만한 용병 50은 상대할테니 100명이나 다름없소."

"하하, 이거야원, 언제까지 장난질 할 셈입니까? 그만 돌려보내시오."

발로니테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 용병중의 한명이 귀족을 나무랐다.

"그렇게 믿기어렵다면 여기 용병 중 검술이 뛰어난 자와 우리가 겨루보면 될것 아니오."

성격 급한 바라사는 조금은 흥분한듯 불쑥 끼어들며 용병을 도발하였다. 그러자 용병들의 표정이 싹 바뀌고 말았다.

"행정관님! 제가 이놈을 상대하겠소. 정당한 결투 중엔 죽는다 해도 상관없겠지요?

멀찌감치 서서 대화를 지켜보던 또다른 용병 하나가 바라사의 앞으로 나서며 그와의 대결을 자처했다. 긴머리에 선해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날씬하면서 탄력이 넘쳐보이는 근육질 몸에 상처자국이 가득한 꽤 노련해보이는 자였다.

"그야 그렇지만 왠말하면 좋게 타일러 돌려보내시오."

행정관은 웃음을 띠며 말했지만 용병은 전혀 그럴 맘이 없는듯 인상을 싹바꾸며 천막밖으로 나갔고 발로니테의 표정을 한번 살피던 바라사가 허락한다는듯한 주인의 끄덕임을 본 뒤 용병 뒤를 따라 나섰다. 그리고 두사람의 대결을 구경하려는듯 천막안의 인원들이 줄줄이 밖으로 나오자 재밌는 구경거리를 눈치챈 또다른 하급용병들이 몰려들어 군영의 훈련장은 순식간에 시끄러운 싸움판이 되고말았다.


"발로니테님은 지켜만 보십시오."

굳이 주인을 나서게하지 않으려는듯 바라사가 발로니테에게 말했지만 사실 바라사 자신이 직접 승부를 겨뤄보고 싶어 꺼낸 말뿐이라는걸 발로니테는 잘 알고있었다. 발로니테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에게 승부를 양보했다. 그 모습을 본 긴머리의 용병은 기가찼다.

"세놈다 덤벼라. 피멍든 몸뚱아리로 네놈들 엄마에게 돌려보내주마."

용병은 자신의 장검을 번쩍들어올리며 용병들의 응원을 한몸에 받았다. 바라사는 전혀 위축됨 없이 검을 뽑지도 않은채 그자 앞에 나아가 먼저 공격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용병은 건방지다는듯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잽싸게 바라사의 몸통을 공격해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검은 어제밤 나시크가 상대했던 카라자스에 비해 너무도 느렸다. 거기에다 장검을 쓰는 그의 동작이 너무 크고 헛점이 많았다. 물론 그것이 여느 용병들 눈에도 똑같이 비춰지는것은 아니였다.

"오~!!"

여기저기 환호성이 들렸지만 어리석은 용병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은 순간이었다. 단 몇초의 시간이었지만 용병들은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농락당하는 모습을 놀라운듯 쳐다보고있었다. 순간적으로 주위가 조용해졌다. 바라사는 여유롭게 그자의 공격을 세네번 피하고는 용병의 코앞까지 파고들어 장난스레 위협을 주며 그를 조롱했다. 그리고는 힘주어 어깨로 몸통을 쳐내자 상대는 멀리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모두들 놀라운듯 바라사를 쳐다보았고 바라사는 쓰러진 용병을 보며 아직 뽑지도 않은 검에서 완전히 손을 놓아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또다른 용병하나가 검을 뽑아들고 나섰다.

"이놈! 나와 겨뤄보자."

바라사가 바라보니 방금전 천막안에 있었던 또 다른 용병중의 하나였다. 바라사보다 좀더 큰 덩치에 역시 장검을 사용하는 히타페리아였다. 바라사는 호기심에 짧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검을 빼들었다. 바라사의 검은 피처럼 검붉은 마누아검이었다. 한눈에봐도 고급스러운 값진 검을 소유하고 있는것에 용병들은 부러운듯 탄성을 내뱉었다. 바라사는 역시 상대의 공격을 기다렸다. 그는 좀 더 그럴듯한 상대가 나오길 기대했으나 두번째 용병 역시 방금 전의 용병과 다를바가없었다. 몇번 검을 휘두르기도전에 덩치큰 용병이 나가떨어져 버리자 바라사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쓰러진 두 용병은 패배를 받아들일수 없다는듯 이번엔 두사람이 함께 바라사와 맞섰으나 그래도 승부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였다. 두명의 용병은 곧 바라사 앞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곳 용병단엔 진짜 전사가 없는가?"

한껏 고조된 기분에 바라사는 잠시 겸손을 잃고 의기양양됐으나 발로니테는 굳이 그런 그를 말리지 않았다.


그때 둥글게 모여든 용병무리의 한쪽이 좌우로 갈라지더니 제법 나이가 들어보이는 용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라사와 비슷한 체구에 가슴앞에 새겨진 커다란 상처가 범상치않는 기운을 풍기는 자로 한눈에 봐도 보통 용병은 아니었다.

"실력이 제법이군."

"그대가 이곳의 우두머리인가?"

"우두머리는 아니지만 네까짓놈을 혼내주기엔 나로도 충분하지."

바라사는 의기양양 자신을 깔보는 용병을 비웃으며 순식간에 검을 들어 상대의 얼굴을 노렸다. 그는 비스듬히 검을 눕혀 얼굴에 흉터를 내는것 만으로 겁을 주려했으나 상대는 놀라우리만치 가볍게 그의 공격을 피했다. 순간 여유를 잃은 바라사는 더이상 봐주지않을 심산으로 빠르게 검을 꺽어 그의 가슴을 베려했다. 상대가 몸통을 젖혀 검을 피하면 그대로 오른 허벅지를 벨 속셈이였다. 하지만 그는 바라사의 검보다 빠르게 몸을 돌려 피하고는 그대로 검을 쳐올려 바라사의 검을 공중으로 쳐냈다. 바라사는 그의 검이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려는것을 간신히 붙잡았다. 그것을 지켜본 발로니테와 나시크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나시크와 대등한 검술을 지닌 바라사는 마세르에서도 꽤나 이름난 히타페리아였다. 그런 그가 이런 작은 도시의 이름없는 용병에게 이토록 힘없이 당할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발로니테는 살며시 바라사와의 거리를 좁히며 혹시 모를 그의 실수를 막기위해 신경을 곧추세웠다.

"이제보니 입만 산 녀석이었군."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상대의 조롱에 바라사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다시 검을 고쳐쥐었다. 상대는 전혀 흔들림없는 자세로 바라사의 눈을 노려보며 그의 마음을 읽는듯했다. 바라사는 마치 발로니테와 상대하는 듯한 막막함을 느꼈다. 빈틈이 없는 상대,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바라사가 머뭇거리는 사이 상대는 현란한 검놀림으로 바라사를 공격했고 한동안 숨막히는 접전이 이어졌다. 서로의 검이 오갈때마다 주위를 둘러싼 용병들의 입에선 놀라움과 감탄의 탄성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바라사는 곧 수세에 몰리고 말았다. 상대는 바라사의 예상을 뛰어넘는 강자였다. 곧이어 바라사의 집중이 흐트러짐을 놓치지않고 상대용병은 바라사의 가슴을 찔러 들어왔다. 피할수 없다는 직감이 바라사의 머리를 스칠때 그의 귓가엔 두개의 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타리그!!!"

"캉!!!"

잠시 뒤 자신의 코앞에서 상대의 검을 바닥으로 쳐 떨어뜨린 발로니테의 모습과 조금은 당황한 표정의 상대의 모습이 바라사의 눈에 들어왔다. 타리그라는 이름의 용병은 발로니테의 위협적인 모습에 쉽사리 땅에 떨어진 검을 줍지못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어느샌가 다가온 또 다른 용병이 차분한 눈빛으로 발로니테 앞으로 나서며 타리그의 검을 대신 줍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꽤들어보였지만 발로니테는 그가 용병들의 진짜 우두머리임을 직감했다. 발로니테는 조심스레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나의 친구가 실례를 범했지만 먼저 싸움을 건 것은 용병들이니 그만 이해해주시오."

발로니테는 최대한 겸손하게 말하려했지만 역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아니였다. 여차하면 자신이 나서 상황을 정리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옆에서 상황을 쭉 지켜보던 행정관이 서둘러 상황을 마무리짓는 바람에 발로니테가 원하던 더이상의 대결은 결국 이뤄지지 않게 되었다.

"이제보니 상당한 실력을 가진자들이군. 타리그와 호각이라니... 라페리온님, 저들이 말을 가졌다하니 용병기마대의 라메타(하급지휘관)를 맞겨보면 어떻습니까?"

프로렌스의 행정관이 귀족 신분임에도 라페리온이라는 용병을 높여부르는것에 나시크와 바라사 두 사람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은 발로니테의 놀라움에 비할바가 아니였다.

"라페리온님이라고 하셨습니까?"

발로니테의 물음에 라페리온이라는 용병은 그의 얼굴을 잠시 살펴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듯 짧게 대답했다.

"그렇다."

"제가 어릴적 라페리온님과 만난적이있습니다. 저의 조부의 이름이 테르가이십니다."

"테르가님이라고??!!!"

테르가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라페리온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그는 발로니테의 손을 덥썩 잡으며 반가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25년전 마세르에서 라슈트로 활동했던 라페리온은 자신의 직속상관인 아르칸트 테르가를 친 형제처럼 따르고 존경했었다. 이후 헤라트 페텐을 따라 함께 은퇴한 두사람은 이후 몇번을 다시 만나며 우애를 다졌지만 지난 15년동안은 서로 연락이 끊어져 아쉬워하던 상황이었다.


더이상 싸움이 없자 하나둘 자리를 떠버리는 용병들을 뒤로하고 발로니테와 라페리온은 한동안 테르가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발로니테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려던 생각이었으나 이번일은 어쩔수 없었다며 스스로 위안을 삼고있었다. 라페리온은 당장이라도 테르가를 만나러 갈 심산이었지만 발로니테의 간곡한 부탁으로 만남을 뒤로 미루었다. 발로니테는 전쟁이 끝나면 자신이 직접 조부께 안내하겠노라고 약속한 뒤에야 라페리온을 겨우 진정 시킬 수 있었다. 프로렌스의 행정관은 발로니테가 과거 아르칸트를 지냈던 자의 손자라는것을 알고 서둘러 카로안인 안트슈메크에게 소식을 전했고 안트슈메크는 대번에 달려와 그에게 용병기마대의 우나프(상급지휘관)급 지휘를 맡겼다. 하지만 발로니테는 조부 테르가의 이름을 빌려 전투에 임할 생각이 없었기에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생각보다 일이 커지는것을 경계한 그는 오로지 용병기마대에 편입 되는것만을 부탁했고 나시크와 바라사는 발로니테의 요청으로 같은곳에서 그와 함께 전투에 나설 수 있도록 조치되었다.

안트슈메크는 오랜 친구인 라페리온이 자신을 돕는것에 이어 아르칸트의 자손이 프로렌스를 위해 참전하는것에 크게 기뻐했고 발로니테는 자신의 실력을 전혀 보이지도 않았음에도 아르칸트의 자손이라는 것만으로 이렇게 높은 대우를 받을수 있다는것에 감탄했다. 그의 바램은 다만 조부 테르가에 의해 자신의 의지가 꺽기지 않기를 바랄뿐이었다. 발로니테 일행은 높아진 대우로 인해 그들의 말들을 마수가 딸린 왕성 마굿간으로 옮길수 있었고 그들은 그날이후 온전히 라페리온 용병대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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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5 아히ㅡ
    작성일
    18.04.21 09:43
    No. 1

    원체 잘난 집안 출신이라 그런지 본인도 잘났고, 잘난 사람들하고 인연도 많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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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바라쿠타와 아카론 17.02.18 16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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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전쟁의 시작 17.02.11 187 1 15쪽
18 새로운 형제들 +1 17.02.04 340 1 19쪽
17 아카론의 도적들 +1 17.01.27 209 1 18쪽
» 프로렌스의 새로운 용병 +1 17.01.26 343 1 21쪽
15 발로니테의 계획 +1 17.01.22 308 1 18쪽
14 루가단 +1 17.01.22 28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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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16.12.01 1,920 9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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