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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수 님의 서재입니다.

붉은모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천이수
작품등록일 :
2016.12.01 19:07
최근연재일 :
2018.04.21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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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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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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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발로니테의 계획

DUMMY

주칸의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오아시스 북쪽 부근엔 도시의 규모에 걸맞지 않게 제법 큰 유흥가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곳은 밤이되면 오색의 화려한 불빛과 폭죽터지는 소리,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로 항상 시끄러웠다. 불빛에 반짝이는 수면위엔 아름다운 꽃잎이 수없이 흔들거렸고 밤하늘의 은하수가 오아시스 수면위로 이어져 별과 꽃이 함께 빛을 발하여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아시스 위로 조그만한 배를 띄워 아름다운 여인들과 유희를 즐기는 귀족들은 무척 한가로워 보였다. 오아시스를 둘러싼 고은 모래 사장 너머 매끈한 대리석으로 내어진 길가에는 수많은 평민과 일부 귀족들이 아름다운 오아시스를 바라보며 조용히 때론 큰소리로 웃고 떠들며 술잔을 주고 받고 있었다.

발로니테는 조용히 술잔을 입에 갖다대며 그런 모습을 조용히 내려보고 있었다. 그의 곁엔 부하인 나시크와 바라사가 함께했다. 3층으로 높이 지어진 건물은 돈많은 귀족과 상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술집으로 발로니테는 그 건물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3층의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가까운 무대위에 전라로 춤을 추며 사내의 눈길을 빼앗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었건만 발로니테의 시선은 계속 창밖을 향해 있었다. 발로니테의 충성스런 부하인 나시크는 자신의 주인이 의외로 술에 약한것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독한 술이긴 했지만 채 석잔도 마시기 전에 그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는 취기에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옆자리에 앉은 바라사는 거의 한통의 술을 비웠지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나시크는 발로니테의 부하이기도 했지만 그전에 발로니테의 먼 친척으로 10여년을 함께한 오랜친구 였다. 나시크는 어린 시절부터 발로니테와 함께 검을 익히고 성장하며 그의 손발이 되어주었는데 바라사가 그들과 함께 한것은 그리 긴시간이 아니었다. 발로니테가 19살이 된 이후 루가단의 비밀 군사집단인 시나오의 지휘권은 테르가에서 상당 부분 발로니테로 옮겨졌다. 테르가는 나이가 들어 검을 손에 쥐는일이 적어졌을 뿐더러 이제는 성인이 된 자신의 손자에게 더 큰 책임과 능력을 주려고 했다. 더불어 자신의 상단에 대한 많은 부분도 장남인 라카드에게 넘겨줌으로써 테르가는 이제 자신의 자리에서 조금씩 물러나 후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발로니테가 시나오의 새로운 주인이 된 뒤 그는 나시크와 바라사를 새로운 부관으로 삼고 자신의 곁에서 보좌할것을 부탁했다. 그것은 나시크와 바라사에겐 대단한 영광이었다. 평민으로서 루가단에 소속된 마세르의 상인을 아버지로 둔 나시크는 어린시절 검을 다루는데 소질을 보여 특별히 테르가의 부름을 받았다. 다듬어 지지 않았던 그의 검술은 그보다 2살 많은 발로니테와 함께 성장하면서 날카롭게 다듬어져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친구인 바라사를 끌어들여 함께 발로니테를 보좌하며 테르가 상단을 위해 일했고 이제는 루가단 내에서 발로니테외엔 달리 적수가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나시크는 이만 자신의 주인을 이끌고 여관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내일 아침 작은 주인인 라카드의 여정을 전송하기 위해선 더 이상 술을 마셔선 안될것만 같았다. 하지만 발로니테는 그럴 생각이 없는듯했다. 그는 나시크의 만류에도 석잔을 더 입에 털어넣더니 꽤 놀랄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너희들이 날 좀 도와줘야 겠다. 난 이번 전쟁에 참가하겠다."

발로니테의 말에 잘 익은 고기를 집어먹던 나시크는 깜짝 놀라 멈칫했고 바라사는 말도 안된다는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발로니테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시크는 짐짓 짐작이 가면서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발로니테는 나시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시크 우린 전사다! 하지만 전쟁을 겪어보진 않았지. 이번 전쟁을 통해 우린 진정한 전사가 되는것이다.."

"테르가님이 절대로 허락치 않으실겁니다."

발로니테의 말에 바라사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부정했다. 그의 말투는 마치 발로니테를 달래듯 부드러웠다.

"아니 난 꼭가야겠다. 시나오를 끌어들이진 않을꺼다. 난 내일 아버님이 출발하실 때 같이 떠날것이다. 너희 둘도 떠날 채비를 해라."

"주인님. 그러다가 라카드님이 아시게 되면 큰일입니다. 아니 내일 떠나시는 것도 허락치 않으실겁니다."

발로니테의 말에 나시크는 맘이 들뜨는 것을 애써 숨기며 걱정스레 대답했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은 내일 여기를 떠나서 프로렌스까지 가는거다. 너희는 날 따르지 않을것이냐?"

"발로니테님이 가신는곳이라면 저희 두사람도 가야지요."

바라사는 발로니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듯 미소를 띠며 대답했고 나시크는 어쩔 수 없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발로니테는 바라사의 대답에 기쁜 얼굴이 되어 술잔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바라사는 술잔을 든 그의 손을 가볍게 저지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발로니테님. 기뻐하시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술잔을 거두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시지요."

발로니테와 나시크는 그때서야 주변의 시선이 심상치 않음을 느낄수 있었다. 어느샌가 검을 지닌 사내들이 저마다 탁자에 둘러앉아 어색하게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곳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발로니테는 새삼 바라사의 뛰어난 감각에 놀랐다. 발로니테는 거짓 기침을 내뱉으며 나시크와 바라사를 재촉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리 밖은 밝은 달이 벌써 하늘의 반을 넘어 기울고 있었고, 주변은 여전히 시끄럽고 밝은빛에 눈부셨다. 발로니테는 앞장 서 거리를 걸으며 상단이 머무는 여관으로 향했다. 그는 일부러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곳을 골라 멀리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뒤를 쫒는 무리는 두세명이 짝을 이뤄 거짓행세를 하며 세무리 정도가 뒤따르고 있었다. 이윽고 발로니테 일행은 번화한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야트막한 야산에 다다르자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살폈다. 사방에 불빛 한점 없었지만 유난히 밝은 달이 그들의 머리위에 올라앉아 내려보고 있었다. 이윽고 발로니테일행을 뒤따르던 무리가 온전히 모습을 들어냈다. 그들은 대략 10여명에 이르렀는데 모두 젊은나이에 허리엔 검을지녔고 체격이 건장한것이 좀도둑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무리중의 하나가 미소를 띠며 걸음을 옮기더니 서로의 검이 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멈춰서 입을열었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 네놈들의 정체가 뭐냐?"

사내는 오른손으로 발로니테를 지목하며 차갑게 말했다. 그말에 나시크는

건방지다는듯 발로니테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

"네놈들이 알바 아니다. 더이상 귀찮게하면 피를 보게해주지."

나시크의 말에 동조하는듯 발로니테와 바라스는 입가에 미소를 띄며 그가 하는말을 계속 지켜보았고 상대는 당황과 분노가 섞인 표정으로 얼굴이 변했다.

"이놈이.....!!!"

"대단한 자신감이군."

그때 무리의 뒤에서 다른사내가 입을 열며 앞으로 나왔다. 한눈에도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그는 꽤나 준수한 외모에 나이는 어려보였지만 값이 꽤 나가보이는 검을 지녔고 손에는 귀족들이 찰만한 화려한 장식의 팔찌를 하고있었다. 인상은 선해보였으나 날카로운 눈매는 당당함이 묻어나왔다.

"내이름은 카라자스다. 며칠전 술집에서 만난적이있지."

"글쎄. 기억나지 않는데?"

"후후....주칸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마라. 무사히 만오레 사막을 건너고 싶다면."

"네놈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아무런 사고도 없을것이다.' "

하지만 나시크의 말은 끝까지 입밖에 나오지 못했다. 그가 미처 피하지도 못할 잛은 순간에 카라자스의 검이 검집을 빠져나와 나시크의 가죽옷을 사선으로 그어버렸고 멈춰진 검은 나시크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말투가 건방지군."

나시크는 물론 바라사와 발로니테는 순간적으로 그의 발검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카라자스의 말과 함께 동료들은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고 나시크가 몸을 뒤로 빼며 검을 뽑아들자 바라사 역시 검을 뽑아들었다. 모두가 긴방감에 신경이 날카로운 가운데 발로니테는 아직 여유를 잃지않은 모습이었다.

"카라자스라고 했나? 발검술이 제법이군. 내친구의 말이 지나쳤다. 사과하지. 우린 이곳에서 그대들과 싸울 이유가 없다. 하지만 굳이 싸움을 걸어온다면 피할 이유도 없지."

발로니테는 나시크의 어깨를 손으로 짚으며 그의 옆으로 나와 카라자스를 타이르듯 말했지만 그의 눈빛은 충분히 상대를 도발하고 있었다. 카라자스는 자신의 발검술에도 싸움을 피하지않는 상대가 가소로우면서 한편 얼마나 강한 상대인지 호기심이 일었다. 그의 발검술은 이포니아도 인정한 루아즈 제일이었기에 상대는 자신을 뛰어넘는 전사이거나 형편없이 배짱만 가득한 하급용병일것이 분명할꺼라 생각했다. 사실 사람들은 루아즈의 3검사로 카로안인 데카에와 귀족자제인 이포니아, 페루스를 입에 올리는데 그것은 귀족들의 생각이었고 평민들, 그리고 대다수의 주칸 주민들은 데카에 대신 카라자스를 제3의 검사로 생각하고있었다. 그런 그에게 눈앞에 서있는 곱게 자란 귀족처럼보이는 자가 자신보다 뛰어난 검술의 전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래도 쉽게 받아들일수 없는 것이었다.

"고작 3명이서 우릴 상대하겠다고?"

"정 미덥잖다면 두사람이 겨뤄볼텐가?"

"우습군. 가장 강한것은 그대가 아니였나?"

"난 그저 호위를 받을뿐 검을 다루지 못한다. 더군다나 내친구가 옷값을 돌려받길 원하는것 같은데?"

카라자스는 한 눈에 보아도 값비싸보이는 발로니테의 검을 보며 그의 말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괜시리 따져 묻고싶지 않았다. 분명한것은 상대가 건방진 말투로 자신을 도발했고 그것은 전사로서 분명 승부를 피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검술로는 주칸의 제일인 카라자스가 그가 지배하는 땅에서 낮선상대의 도전을 피하는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을것이었다. 카라자스의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그의 동료들은 검을 손에 쥔채 뒤로 물러나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발로니테와 바라사 역시 나시크의 뒤로 물로났다.

카라자스의 눈썹이 꿈틀거리는듯 움직이더니 서로의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이 카라자스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이포니아에게 배운 아누크 정통검술은 흠잡을데 없이 완벽했고 카라자스의 기교가 더해져 더욱 화려했다. 마치 갈대가 흔들리듯 검이 춤을 추었다. 카라자스는 상대에게 작은 상처만을 주길원했다. 그의 검이 상대의 몸에 거의 닿았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검을다시 거두려 손목에 힘을 주었다. 그순간 카라자스의 귀에 강렬한 파열음을 들리며 그의 검이 손아귀에서 벗어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단 일격에 상대는 카라자스의 빠른 공격을 막고 그의 검을 튕겨내 버렸다. 나시크의 검은 어느새 카라자스의 목을 겨누고있었다. 카라자스를 비롯해 그의 동료들은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 루아즈의 제1검사라는 이포니아도 단 일격에 카라자스를 제압하지 못했는데 눈앞의 사내는 너무도 쉽게 카라자스를 막아낸것이다. 카라자스는 놀라움도 잠시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내가 졌다."

나시크는 검을 거두며 카라자스의 체념에 빠진 얼굴을 보고는 그를 조롱하려던 마음을 거두고 애써 말을 아꼈다.

"그대의 이름을 알고싶다."

카라자스는 패배했지만 그의 목소리엔 여전히 당당함이 묻어났다.

"나시크다. 마세르 출신이지."

"그대의 검술과 너그러움에 경의를 표한다. 예에 어긋난다만 다시한번 결투를 원한다."

"뭐라고? 전사에게 두번의 기회란 없다. 죽이지 않은걸 다행으로 알아라."

"알고있다. 그래서 이렇게 청하는것이다. 이번엔 내 목을 걸지."

카라자스의 말에 그의 동료들이 동요했지만 그의 눈은 흔들림이없었다.

"리잔, 검!"

카라자스는 나시크의 대답을 기다리지않고 동료들을 돌아보지도 않은채 뒤로 손을 내밀었다. 나시크는 기가찬듯 그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훗. 좋다."

동료가 주어준 그의 검은 어느새 카라자스의 오른손에 쥐어졌고 그의 왼손엔 리잔이라는 또 다른 동료의 검이 쥐어졌다.

이검류.

"싯트리안? 훗."

고대 마세르에서 개발된 다양한 검술 중 가장 난해하고 어려운 반면 가장 화려하고 공격적이어서 수 많은 전사들에게 익혀졌던 싯트리안(이검류)은 빠르고 방어가 쉬운 케이시안(단검류)과 공격이 크고 강력한 히타페리아(장검류)에 밀려 지금은 잊혀져가는 검술이었다. 하지만 공격을 극대화 하기 위해 방어도구인 방패 대신 또 다른 검을 선택한 전사 중의 전사들에게 싯트리안은 가장 높은 자등심을 가져다 주는 최고의 검술이었다.

카라자스는 14살에 처음으로 검을 잡았고 이포니아에게 검술을 배웠다. 부친의 뜻에 따라 마세르의 검술을 체계적으로 익힌 이포니아는 케이시안과 히타페리아의 달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케이시안 검술을 배우던 카라자스는 이포니아를 넘어서기위해 그가 배우지 않았던 싯트리안을 몰래 배워 익혔고 나름 자부할만큼의 실력을 갖게되었다. 카라자스는 검끝이 땅을 보도록 양손을 내린채 오른발을 앞으로 살짝 내밀고 비스듬이 옆으로 섰다. 나시크의 눈에 비친 카라자스는 싯트리안의 기본자세도 모르는 무지한일 뿐이었다.

"실수하고 있군. 어디 한번 실력을 볼까?"

나시크는 승리를 확신하는듯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다시 검을들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카라자스의 눈은 여전히 나시크 자신을 보고 있었고 검끝은 그의 오른 허벅지를 향해 찔러 가고 있었다. 그를 죽일 까닭도 없지만 나시크는 눈앞의 상대에 묘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간단히 상처만 주어 더이상 귀찮게하지 않게하면 그뿐이었다. 그때였다.

"앗!!"

발로니테의 짧은 외침이 들리고 순간 나시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오른발을 돌려빼며 몸통을 틀어 어느새 자신의 앞으로 파고든 카라자스의 왼손검이 자신의 검을 치려했고 동시에 그의 오른검이 자신의 손목을 향하고있었다. 눈으로 쫒을 수 없을 만큼 빠른 검은 곁에있던 발로니테는 물론 나시크조차도 이미 손을 쓸수없었다.

"캉"

날카로운 검날의 소리가 들리고 나시크는 오른손에 통증을 느끼며 검을 놓혀버리고말았다. 검은 그대로 날아가 땅에 박혔고 카라자스의 양검은 다시 나시크의 목을 향해겨눠져있었다. 발로니테와 바라사는 아무말이없이 그저 서있을 뿐이었다. 나시크는 참담한 마음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이젠 더이상 검을 쥘 수 없다는 생각에 그의 얼굴은 허망함으로 넋을잃었다. 하지만 그의 오른팔엔 분명 잘리워졌어야 할 손이 그대로 붙어있었다. 대신 검날의 모양대로 손목에 빨간자국이 남았다.

"검날을 눕혔군. 내가졌다."

나시크는 패배했지만 그의 얼굴은 오히려 기뻐해보였다. 카라자스도 눈에 가득한 살기를 풀고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뒤에선 동료들의 환호가 들렸다.

"그에게 검을 돌려줘라. 나시크, 승부를 내지 않겠나?"

자신의 검을 돌려받은 나시크는 잠시 고민하는듯 하더니 슬쩍 웃음을 흘기고는 검을 휘둘러 카라자스의 복부를 베려했다. 무의식중에도 카라자스는 몸을 피했으나 복부의 옷이 한뼘이나 베이는것 마저 피할순 없었다. 카라자스는 재차 공격을 피하며 빈틈을 찾아 검을 찔러넣고 반격에 들어갔다. 두사람을 지켜보는 카라자스의 동료들은 연신 환호성을 지르고 발로니테와 바라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검날을 쫒았다.

"독특한 보법이야. 보기드문 싯트리안이다."

발로니테는 옆에서있는 바라사의 귀에만 들릴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엔 천진난만한 아이를 바라보듯 연신 잔잔한 미소가 번져있었다.

"상당한 실력이군요. 방심하면 나시크가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라사는 상대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말투였다. 발로니테의 부하이기전부터 나시크는 오랜 친구로서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자신보다 키가 작고 힘은 약했으나 빠른검을 가진 나시크와는 늘 호각을 다투었다. 바라사는 전사로서 싸움을 지켜보기만 해야한다는것이 얼마나 힘든것인지 또 한번 깨달으며 두근대는 가슴으로 나시크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40번 넘게 서로 검이오갔지만 승부가 나지못했다. 나시크는 문득 시간이 너무 지체됨을 느끼고 검을 멈춘채 몸을 뒤로 빼내었다. 제법 거친 숨소리와 함께 마른 모래위에 땀방울이 떨어졌다.

"이만하자. 아쉽지만 승부는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카라자스 역시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는 지금의 실력으로는 결코 상대를 쓰러뜨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좋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또 만날수 있지?"

"기약 할수 없다. 하지만 그대가 이곳에 계속 있는다면 1년 뒤에 내가 찾겠다."

"혹시 용병인가?"

"아니다."

"그럼, 상단에 고용된 모양이군. 이곳은 곧 전쟁이 일어날꺼다. 서둘러 떠나는게 좋아."

"소식은 들었다. 그대는 루아즈의 전사인가?"

두사람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발로니테가 문득 끼어들며 물었다.

"그렇다. 그대들도 루아즈의 용병이 되지 않겠나? 전사라면 상인을 따르는것보다 용병이 되는편이 나을꺼다."

"용병이라... 후후, 그것도 괜찮겠군."

발로니테는 카라자스의 말에 두리뭉실 대답하고는 돌아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카라자스는 알수없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검집에 검을 꽂아 넣고는 왔던 길을 돌아갔다.

"훌륭한 승부였다. 나시크. 많이 늘었어."

"과찬이십니다. 시간을 많이 지체했습니다. 서두르시지요."

발로니테의 칭찬에 나시크는 부끄럽다는듯 말을 바꾸었다.

"그래. 가야지."

'저 친구가 루아즈용병으로 출전한다면 전쟁에서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군.'

그 날밤 발로니테의 머릿속은 주칸의 젊은 검사와의 만남으로 가득했고 쉽사리 잠에 들지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루가단의 비밀군대 시나오의 두 부관인 나시크와 바라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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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바라쿠타와 아카론 17.02.18 160 0 14쪽
20 프로렌스의 새로운 우나프 +1 17.02.11 255 1 11쪽
19 전쟁의 시작 17.02.11 187 1 15쪽
18 새로운 형제들 +1 17.02.04 340 1 19쪽
17 아카론의 도적들 +1 17.01.27 209 1 18쪽
16 프로렌스의 새로운 용병 +1 17.01.26 342 1 21쪽
» 발로니테의 계획 +1 17.01.22 308 1 18쪽
14 루가단 +1 17.01.22 283 1 11쪽
13 페루스의 검 +1 17.01.06 382 1 20쪽
12 루아즈의 세검사 +1 16.12.31 318 1 15쪽
11 카소에의 음모 +1 16.12.29 437 1 12쪽
10 주인과 노예 +1 16.12.24 429 1 12쪽
9 바라쿠타의 길 +1 16.12.17 264 1 23쪽
8 아카네르의 계략 +1 16.12.17 340 1 9쪽
7 아카네르와 코누잔 +1 16.12.10 311 1 10쪽
6 코누잔의 거래 +1 16.12.10 384 1 11쪽
5 만오레사막에 감도는 전운 +1 16.12.03 472 1 11쪽
4 새로운 여정 +2 16.12.01 501 3 11쪽
3 스페스의 귀족회의 +2 16.12.01 866 4 12쪽
2 왕자의 귀환 16.12.01 1,271 8 11쪽
1 프롤로그 16.12.01 1,920 9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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