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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수 님의 서재입니다.

붉은모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천이수
작품등록일 :
2016.12.01 19:07
최근연재일 :
2018.04.21 07:16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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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6
추천수 :
42
글자수 :
450,893

작성
17.01.06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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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페루스의 검

DUMMY

"젊은이 꽤 좋은 검을 지녔군"

페루스는 반쯤 감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옆 탁자의 노인이 아까부터 거슬렸다. 그런데 그 노인의 입에서 불쑥 평어가 튀어나오자 심기가 불편해졌다.

"보아하니 귀족같진 않은데 말이 거슬리군."

페루스를 대신해 입을 연 사람은 군영을 돌아보고 이제 막 술집으로 들어선 게이더였다. 예법에 얽매이는 페루스가 아니였지만 귀족에게 평어를 내뱉는 평민에게까지 관용을 베풀만큼 아누크의 신분질서가 문란하지 않았기에 그의 경고는 당연한 것이었다.

게이더의 낮지만 강압적인 음성에 노인의 옆에 있던 또 다른 젊은사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고 그의 눈은 태연한척 게이더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등에 두개의 검을 지닌 몸은 용수철처럼 금방이라도 튀어오를것 같았다.

게이더는 페루스의 옆에선 뒤 짧은경례로 예를 표한 다음 주의를 줄셈으로 다시 노인을 향해 돌아서고있었다.

"물론 귀족은 아니네. 이보게 젊은이..."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노인의 말이 끊나기도 전에 게이더의 검이 검집을 빠져나와 노인의 목에 겨누어졌다.

"말을 높이라고 했을텐데..."

동시에 노인의 옆자리에 있던 젊은사내와 또다른 세명의 젊은이가 동시에 검을 빼어들며 게이더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주칸사람들은 공경을 모르는군."

노인 옆에선 젊은사내의 위협적인 말에 술집은 한순간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호오, 이거 참"

페루스의 옆에 앉은 이포니아는 상황이 재밌는듯 몸을 의자 뒤로 한껏 제끼며 팔짱을 낀채 페루스를 쳐다보았고 카라자스는 대수롭지 않은듯 술을 털어넣는데 페루스는 이렇다 말이 없었다.


게이더의 매서운 눈이 노인의 두눈과 마주쳤다. 노인의 눈은 여전히 반쯤 감겨진채였지만 페루스를 바라보고 있었고 입가에 알수 없는 미소만이 살포시 지어졌다. 갑자기 살기가득해진 술집안에선 피를 볼것같은 긴장감에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게이더 칼을 내려라."

술 한모금을 입에 털어넣은 페루스는오른손을 가볍게 들어 게이더를 제지했다.

"내검이 특별한것은 어린아이가 봐도 알수있다. 괜한 말재간으로 피를 보려하지 마라."

"훗... 그렇다면 그 검의 이름을 아는가?"

"...."

노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빛나는걸 카라자스는 놓치지 않았다.

'뭔가 평범한 노인네가 아니야.'

그제서야 카라자스의 눈이 놓쳤던 사실을 꿰뚫어 보기 시작했다. 얼굴은 나이든 노인의 모습이지만 완강히 벌어진 어깨와 전혀 굽지않은 허리, 탁자아래 낙타가죽 옷밑으로 드러난 잔근육의 다리까지. 노인은 귀족으로 보이진 않았으나 적어도 보통의 평민은 아니였다.


세상엔 수많은 검이 있지만 그 검을 무엇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값어치는 천차만별이며 곡식 한바가지, 혹은 준마 수필의 가치를 지니기도한다. 상급전사라 칭하는 우나프 이상의 전사계급에겐 대개 마누아검이 주어졌다. 마누아화산섬에서 나는 용암바위을 녹여 철과 함께 섞어 제련한 마누아검은 특유의 붉은 검날이 잘 부러지지 않고 녹이 슬지않아 고급검에 속했다. 마누아검에도 여러등급이 있는데 마누아화산에 인접한 네그라스에서 나는 검은 뛰어난 제련기술 덕에 제일로 쳤고 붉은검날의 광택이 강할수록 명검에 가깝다고 전해졌다. 페루스의 검은 그 광택이 최고의 마누아검임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름을 가진 명검은 세상에 흔하지 않기에 사람들의 시선은 일시에 노인에게로 쏠렸다. 아쉽게도 페루스는 그 검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다가올 성년의 해를 앞두고 아버지에게 선물로 받았던 그때에도 자신에게 검의 이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는 그저 비싼값을 치뤘다던 부친의 말과 검날의 광택으로 미루어 꽤 좋은 마누아검이라고 짐작했을뿐.

"이보게 젊은이, 내 보기엔 그대의 허리에 장식품으로 달려있기엔 그 검이 너무도 아깝네. 자네가 그 검을 가질만한 실력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검은 이런 술집에서 휘두를만한 검이 아니네."

"이봐 노인장, 이분이 어떤분인지 아는가! 이분이 루아즈의 3검사 중의 한분이신 페루스님이시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술집주인이 아첨하듯 떠들자 일시에 주변이 술렁거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달라졌음을 페루스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느낄수 있었다.

"검의 이름이 뭐냐?"

페루스 자신의 검이 어떤 물건인지 궁금했다. 그 역시 피가 끓는 타고난 전사의 기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오늘은 이쯤하지. 말이 많아지니 목이 아프구만. 그만 일어서자."

노인이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옆에 섰던 젊은이들이 검을 거두며 자리를 피하려했다. 순간 게이더의 검집이 다시 한번 노인의 앞을 막았다.

"질문에 대답해라."

"허허허. 날 베는걸 그대 주인이 원치 않아하는 표정인데. 비켜주게. 난 이만 가야겠으니... "

게이더는 순간적으로 페루스의 눈치를 살폈다. 페루스는 아무런 눈치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였다. 노인은 유유히 문을 열어 술집을 나섰고 게이더는 조용히 검을 검집에 넣었다. 그의 표정은 뭔가 아쉽다는 표정이었으나 어쩔수 없었다.

술집문을 나서던 노인은 갑자기 멈춰서더니 고개를 돌려 페루스를 보았다. 비웃든 듯한 그의 표정은 페루스 향했다.

"검의 이름이 궁금하다면 이틀뒤 이 곳 주칸에서 리오넬여관을 찾아오게."

"....."

게이더의 뭔가 아쉬운 표정을 뒤로하고 노인은 조용히 술집을 빠져나갔다.


페루스는 이틀에 걸쳐 아카론을 공격했지만 결국 도적패를 제압하지 못했다. 바위산의 협곡에 틀어박혀 화살만 쏘아대는 도적들은 갖은 협박과 야유에도 전투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세명의 병사를 더 잃고 페루스는 증원군을 요청했지만 루아즈로부터 돌아온것은 지원병이 아닌 복귀하라는 명령이었다. 페루스는 아쉽지만 부친 샤몬의 뜻에따라 루아즈로의 복귀를 결정했다. 결국 그의 첫 전투는 146명의 적을 죽이고 49명의 아군을 잃은것으로 끝이났다. 한낮의 태양이 기울기 시작할쯤 사막의 열기는 조금 가라앉기 시작했다. 주칸의 성문 밖, 루아즈의 토벌대는 복귀준비를 마치고 페루스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지금 출발하면 해가 떨어질쯤 루아즈에 도착할 터였다. 막사안에서 이제 막 자리를 일어선 페루스의 붉은 검날이 미끄러지듯 검집에 들어갔다. 그의 다리엔 한뼘보다 조금 큰 단검이 왼쪽 종아리 옆으로 매여져 있었다. 굳이 이번 전투가 아니더라도 항상 단검을 휴대하던 그였다.

그의 호위를 책임지는 게이더는 그런 자신의 주인을 볼때마다 자신의 진짜 직책이 무엇인지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평민으로 샤몬가의 가신이며 한때는 루아즈 카로와나에서 우나프로 활동했던 게이더는 어린시절부터 페루스의 검술스승이었고, 그의 신변을 책임질 의무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페로스가 14살이 넘은 이후 게이더가 하는 일은 고작 그의 옆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잔심부름을 하는게 전부였다. 페루스의 검술은 이미 자신을 넘어섰다는 생각에 왠지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지는것을 떨쳐내기 힘든 그였다.


"게이더."

"네, 페루스님"

말에 오르자 페루스가 입을 열었다.

"이포니아와 함께 먼저 루아즈로 출발하라. 난 그 노인을 만나보고 가겠다."

"그렇지만 페루스님의 호위는 샤몬 주인님으로부터의 명령입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해가지기전에 도착하려면 지금 출발해야돼, 나는 별 문제될 일 없을꺼야."

"그렇지만..."

페루스의 시선은 이미 다른곳에 있었다. 항상 말을 아끼는 페루스에게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게이더는 말을 몰아 주칸성안으로 되돌아 가는 페루스를 그저 망연자실 바라볼뿐이였다. 페루스의 옆에는 곧 카라자스가 뒤따르는것이 보였다. 이포니아의 출발 명령에 게이더는 결국 말머리를 돌렸다. 그런 게이더를 뒤로하고 페루스는 급히 말을 몰아 달렸다. 노인이 말한 시일은 오늘까지였다. 검의 이름을 알기전에 늙은이가 떠난다면 두고두고 후회될것이 분명했다.


주칸은 루아즈에서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주로 루아즈 내의 여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소규모 상인들을 상대로 한 여관이 많았다. 값이 저렴한탓에 질이 나쁘거나 도난의 위험도 많았고, 소매치기와 사기꾼은 물론 가끔 도적때들이 소규모로 급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술집과 유흥가는 루아즈보다 크고 화려했다. 카라자스는 자신을 따르는 협객들을 끌어들여 일정량의 돈을 받고 주칸의 술집과 상점을 비호하며 이 유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비록 신분이 평민이지만 뛰어난 검술과 대범함, 호탕하면서도 주도면밀한 그를 지켜보며 친구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던 페루스는 지난번 노인을 만났던 술집을 지나쳤다.

노인을 다시 찾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카라자스는 이미 그가 머무는 여관을 찾아내고는 페루스에게 빠른길을 일러주었다. 리오넬 여관은 주칸에서 제일가는 여관이었다. 카라자스는 노인의 상단이 여관을 통채로 빌린 사실을 페루스에게 귓뜸해주었다. 그말이 사실이라면 노인은 루아즈에 머무는 대상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상단을 가진 거상일 것이었다. 그가 주칸에 머무는 이유를 굳이 페루스가 알필요는 없었으나 의아한것은 사실이었다.

"테르가를 만나러 왔다. 검의 이름을 알고자 한다고 전해라."

페루스는 여관의 문앞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에게 용무를 전했다. 시종은 빠르게 말을 되전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여관은 의외로 화려했다. 여관문을 들어서자 넓은 방이 나왔는데 여느 벽돌 천장대신 햇빛을 가리는 천으로 장식되었고 천은 루아즈에서도 값비싼것이었다. 자신의 방에 비하면 여전히 볼품 없었으나 자못 볼만하였다. 시종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페루스는 꿋꿋이 서서 테르가를 기다렸다. 곧이어 발자국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테르가는 술집에서 보았던 건장한 청년 3명과 함께 등장하였다.

"다시 올줄 알았네. 일단 날 따라오게."

의자에 앉아 검의 이야기를 할줄 알았던 노인은 페루스를 여관 깊숙한 곳으로 인도했다. 페루스는 별 의심없이 그를 따랐다. 노인을 따라간 곳은 여관에서 무희를 즐기는 무대로 원형의 넓은 공터에 돌로쌓은 단이 둘러싸고 있는 곳이었다. 보통의 여관뿐만 아니라 여느 도시의 귀족 저택에도 이런 공간이 하나쯤 있었다. 보통은 집안 행사를 위한 공간이나 남자들은 여시종과 무희를 즐기기 위한으로 더 많이 쓰였다.

"내 이름은 테르가. 그 검의 이름을 아는 몇안되는 사람이지. 자네가 이곳에서 조금 명성을 날린다는것은 전해 들었네. 그렇지만 그 검에 어울리는 자인지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군. 시작해라."

페루스는 3일전 자신이 보았던 노인이 지금 앞에 있는 노인이 맞는건지 의심스러웠다. 노인은 무척이나 단호하고 냉철했다.

'내가 귀족이라는것을 알고 있음에도 검을 들이댄다는건 왠만한 법따위는 무시할만큼 높은 위치에 있다는것인가?'

라는 생각에 페루스는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노인 곁을 지키던 3명의 청년이 그에게 천천히 접근해왔다. 페루스는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검을 뽑아들며 노인을 향해 말했다.

"좋다. 상대해주지."

페루스는 자신보다 큰 덩치의 장정을 상대하면서도 여유를 보였다. 첫번째 검이 페루스의 복부로 깊이 찔러왔다. 페루스는 상대의 검이 꽤나 날카롭다고 생각했지만 게이더의 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는 가볍게 몸을 돌려 검을 피하고, 그대로 몸을 돌려 상대의 팔목을 자르려 했다. 하지만 그의 검은 옆에 있던 다른 상대의 검에 막혔다. 순간 두개의 검이 다시 그의 목과 팔을 노리고 다가왔다. 페루스는 허리를 반쯤 뒤로 젖히며 검을 피하고 검을 왼손으로 바꿔쥐었다. 그의 왼쪽허리로 다가오는 또다른 검을 막고 페루스는 세명과 거리를 두기 위해 빠른 뒷걸음으로 벗어났다. 세명은 조심스레 발을 옮겨 페루스를 세방향에서 에워싸고 다시금 공격의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그 순간 페루스는 자신의 앞에 선 자를 향해 빠르게 검을 놀려 목을 찔렀다. 노인은 그 매서운 공격을 보며 반쯤 감은 눈을 크게 떴다. 페루스의 공격을 받은 자는 순간적으로 몸을 제겼으나 쇄골을 비집고 들어간 검은 그대로 어깨를 관통하고 말았다. 페루스는 공격과 동시에 빠르게 자리를 옮겨 원형벽을 등지고 남은 두명을 바라보았다. 페루스는 검을 왼손에 든 왼쪽 장정의 팔을 노리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내리쳤다. 상대는 급히 검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았으나 페루스의 검은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상대의 검을 두동강내버렸다. 페루스의 완력에 튕겨져 나간 상대는 잠시 동안 얼이 빠진듯 했으나 곧이어 발목의 단검을 뽑아들었다. 그순간에 페루스는 오른쪽에서 허리로 들어오는 공격을 막아내고 다시금 상대의 목을 노리고 베어들어갔다. 페루스는 순간적으로 그의 목을 베었다고 생각했다.

"캉!!!"

순간 어디서 날아온 단검이 페루스의 검날에 튕기고 검은 상대의 목에 작은 상처를 내며 비겨갔다. 페루스는 단검이 날아온 방향으로 순신간에 몸을 돌려 검을 치켜세웠고 그의 시선은 게슴츠레 눈을 뜨며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에게 향했다.

"상당히 잘 다듬어진 검술이군."

페루스는 노인의 방해에 자존심이 상한듯 자신의 왼발에 숨겨둔 단검을 뽑아들고 노인의 얼굴을 향해 손을 뿌렸다.


노인은 전혀 미동도 않는데 다시금 페루스의 단검을 때리는 강한 파열음이 들렸다. 어느샌가 나타난 또다른 장정이 그의 단검을 투검으로 막고는 강한 눈빛으로 페루스를 째려 보고 있었다. 페루스는 계속되는 방해에 기가찬듯 콧웃음을 쳤고 다시 검을 들어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더이상 위협적이지 못했다.페루스는 자신의 검을 휘감듯 쳐올리며 반격하듯 검날을 자신에게 겨누는 사내의 빠른 검놀림에 잠시 당황했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 남자가 방금전 자신을 상대한 3명과 비교할수 없을 만큼 강함을 느꼈다. 빠르게 검을 거두며 노인에게서 떨어진 페루스는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띄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 상대인가?"

페루스의 말에 강한 기운을 내뿜떤 사내 역시 살며시 검을 거두었고 옆의 노인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걸로 됐네. 쇄골이 상했구만. 괜찮나 스케로?"

"네, 견딜만 합니다."

스케로라 불리는 사내는 꽤나 고통스러운 표정이었으나 여느 풋내기 전사들처럼 비명을 내지르진 않았다. 그의 옆에선 방금 전 페루스가 상대한던 나머지 2명이 양쪽에서 부축을 하고 있는채였다.


"루아즈의 3검사라... 허명은 아니군."

노인은 자신의 턱을 만지작 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내 검을 막은 자는 누군가?"

페루스은 노인의 옆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젊은 전사가 궁금했다. 천천히 뜯어보니 그는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검사였다.

"나의 손자 발로니테다."

"실력이 제법이군."

소개를 받은 발로니테가 페루스에게 말했다.

"너역시..."

페루스로서는 발로니테의 검을 진심으로 칭찬한 말이었으나 발로니테는 딱딱한 그에 말투에서 그 진심을 느낄수 없었다.

"이제 내 검에 대해 말해줄수 있나?"

페루스는 이제야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생각해내고는 테르가를 향해 물었다.

"그러지.. 일단 차를 한잔 하며 숨을 돌린 다음에..."

테르가는 시종을 불러 좀 더 정중히 페루스를 안으로 인도했다.


따뜻한 차를 한모금 마신 페루스는 이국적인 차의 맛에 조금은 감탄했다. 적어도 루아즈에서는 이런차를 맛보지 못했다.

"마세르의 아키토스호에서 자라는 스발랑케라는 나무의 잎이네. 향은 은은한데 맛은 강렬하지. 귀족들은 찾지 않지만 마세르의 카르테히나들은 많이 즐기는 차일세."

페루스의 표정을 읽은 테르가가 설명했다. 페루스는 역사서를 통해 자주 접해오던 카르테히나를 떠올렸다. 제국의 수도, 마세르의 황제를 보좌하는 전 아누크 대륙의 최강의 검사들. 그들의 검은 빠르기가 번개같고 바위도 잘라버릴만한 힘을 가졌다고 했다.

"나의 고향은 마세르. 30년 전에 카르테히나 헤라트였던 페텐님을 보좌한 4인의 아르칸트중 한명이네."

'아르칸트!'

순간 페루스는 입안에 있는 차를 밷어낼뻔 했으나 간신히 참았다.

'이사람이 아르칸트였단 말인가!'

페루스는 눈앞의 노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이곳 루아즈에서도 수많은 전사들이 있지만 이제껏 아르칸트에 이른 전사는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카르테히나는 페루스를 비롯한 모든 전사들의 꿈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누크 대륙이 통일되기 이전부터 마세르는 아키토스호 주변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거대도시였다. 마세르의 왕은 많은 제후도시를 거느린 수장으로써 수없이 많은 자객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카르테히나라는 전사를 곁에 두었다. 카르테히나는 마세르 최강의 전사들로써 왕을 보좌하는 의무를 가짐과 동시에 카로와나를 지휘하는 카로안을 겸한 최고위 전사계급이라는 명예를 가질수 있었고, 그들의 지위는 귀족보다 낮았던 전사로써는 이례적으로 1귀족인 에나토리아에 준하는 높은 지위도 가질수가 있었다. 이후 마세르에 의해 아누크 대륙이 통일된 이후 카르테히나는 마세르 뿐만 아니라 아누크의 모든 도시에서 최강의 전사들이 자웅을 겨뤄 뽑히게 되었는데 그들의 검은 가히 전설이 될만했다. 카르테히나는 1명의 헤라트 밑으로 4명의 아르칸트가 있으며 아르칸트는 휘하에 각각 10명의 전사를 두는데 이들은 라슈트로 불리었다. 카르테히나는 10년을 주기로 한번씩 선발되는데 헤라트는 물론 휘하의 아르칸트와 라슈트역시 상당한 능력의 고위전사로 라슈트만해도 제국 각 도시의 카로안을 넘어서는 실력을 가진것이 보통이었다.


"...자네가 갖고있는 검은 나의 주인이던 페텐님의 검. 검의 이름은 '카에드라스'라고하지. 마누아화산섬에서 난 질긴 철로 만들어진 명검이네. 페텐님이 카르테히나에서 물러나고 돌아가신 뒤 그 검의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이렇듯 내눈앞에 있다니... 자네, 그 검을 내게 줄수 있겠나?"

테르가는 자못 진지한 눈빛으로 페루스에게 물었다. 하지만 페루스는 생각조차 없이 단호히 거절했다.

"그럴순 없습니다... 나 역시 전사의 한사람으로써 나의 무기는 무엇과도 바꿀수 없습니다."

아르칸트였던 자 앞에서 페루스의 입에서는 자연스레 겸양의 말이 나왔다. 페루스는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는 듯이 자리를 툭 털고 일어났다.

"미안하네, 그검을 뺏을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게. 대신 나랑 약속하지. 자네가 전사의 길을 가지 않을때엔 그 검을 내게 주는걸로 말일세. 물론 충분한 사례는 하겠네. 어떤가?"

테르가는 페루스를 붙잡을 생각은 없었지만 이대로 검을 떠나보내자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훗... 좋습니다. 어차피 이 검이 당신 손에 들어갈일은 없을테니."

말을 마친 페루스는 테르가에게 간단한 눈인사를 건넨뒤 뒤돌아 원형무대를 빠져나갔다. 그때 페루스는 등뒤에서 자신을 부를는 소리를 들었다.


"페루스!! 언젠가 다시 만나자. 나 발로니테가 널 잊지 않겠다."


"... 좋을대로."

발로니테의 힘찬 목소리에 페루스의 목소리는 파묻히듯 들리지 않았지만 테르가는 마치 자신의 귀에 속삭이는듯이 또렷히 들을수 있었다. 그는 알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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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5 아히ㅡ
    작성일
    18.03.29 08:14
    No. 1

    아르칸트는 대충 소드마스터+경호원
    이거군요 ㅎㅎ
    페루스하고 발로니테는 뭔가 영웅 느낌 나는 사람들인데
    이게 반란하고 전쟁하고 어떻게 엮이려는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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