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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수 님의 서재입니다.

붉은모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천이수
작품등록일 :
2016.12.01 19:07
최근연재일 :
2018.04.21 07:16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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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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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글자수 :
450,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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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2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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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주인과 노예

DUMMY

왕자의 명에 따라 상단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10일이 채 되지 않아 상단은 모조리 처분되었고 생각보다 높은가격으로 매매가 이루어졌다. 왕자는 바라쿠타가 매각되자 새로운 명을 내렸다.

"40일치 식량을 비축하고 남은 모든 카인은 노예와 무기를 사는데 써주십시오."

헤르반은 왕자의 명에 따라 직접 전사로 양성할 노예를 사들였다. 주칸에서는 노예시장이 열지 않기에 루아즈, 혹은 좀 더 멀리 프로렌스까지 가서 노예들을 사들였다. 하지만 전사로 적합한 노예를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아서 그는 7일이나 걸려 그일을 마무리 지을 수있었다. 헤르반이 사들인 노예는 모두 220명이었는데 하나같이 체격이 건장하여 전사로 양성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노예 신분을 벗어나게 해주겠다. 검을 들고 검술을 연습하라."

노예를 처음 만난 카루온 왕자는 그들앞에 검을 한자루씩 놓아주며 짧은 인사만 남긴채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노예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오로지 헤르반의 몫이였다.


노예들의 거처는 슈말의 저택 밖에 마련되었는데 슈말의 집이 주칸의 중심부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관계로 수많은 노예가 그의 집에 머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검술 연마에 전념하더라도 그것을 알 수 있는 자가 없었다. 헤르반은 노예들에게 검을 쥐어준 이후 한시도 쉬지않고 검술을 가르치는데 온 힘을 쏟았다. 헤르반은 그 자신이 누구에게도 검술을 배운적은 없지만 그는 그가 가진 것을 간결하면서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법을 알았다.

카루온은 헤르반을 지켜보며 그의 훈련기술이 검술 못지않게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노예들의 검자루가 땀에 미끌어져 떨어지고 기합소리와 함께 몸을타고 흘러내린 땀방울들이 모래를 적시던 나날들이 어느덧 7일이 지나고 노예들의 검이 제법 매섭게 허공을 가르기 시작할 때, 헤르반은 자신의 훈련방법이 너무 가혹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수 밖에 없었다. 노예들 중 3명이 몰래 도망치려다 잡히고 만것이었다. 헤르반은 적잖이 분노했으나 그들의 처벌을 두고 왕자의 의견을 묻고자 잠시 화를 참았다.

달이 떠오르고 어느덧 풀벌레가 우는 밤이 되자 220여명의 노예들은 슈말의 저택 앞에 집결해 도주를 감행한 3명의 노예들이 밧줄에 묶여 처벌을 기다리는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스카란제국의 노예법은 대단히 가혹하여 그 처벌이 잔혹한데 자신의 주인을 죽인자와 반란을 도모한자는 최고형을 받아 몸의 가죽을 벗겨 소금을 뿌린뒤 뜨거운 태양아래 말려죽이며, 도주하여 붙잡힌 자는 그 신체를 하나씩 잘라내는데 양쪽귀, 코를 잘라내며 3번을 도주한자는 역시 최고형을 받게된다.

그 외 도둑질을 하거나 아누크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거나, 혹은 주인의 명에 따르지 않는 등 노예의 사사로운 잘못은 그 주인에 의해 임의로 처벌을 받는데 그 처벌 방법은 어떠한 것이라도 상관없으며 간혹 처벌도중 노예가 죽는다 해도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노예들은 자신들을 한없이 낮추는 일에 길들여져 있었으며, 감히 다른뜻을 품지 못하고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것에 익숙했다. 간혹 귀가 잘리거나 코가없는 노예들은 노예들 사이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기 일수였고 그들은 감히 아누크인 앞에서 고개를 드는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아마도 오늘밤 3명의 노예들은 모두들 귀를 잘리어 고통과 함께 온전치 못한 얼굴로 평생을 살아야할 운명이 될 처지였다.

해가 떨어질 무렵 니안과 함께 루아즈를 둘러보고 돌아온 카루온은 헤르반의 뜻하지 않은 보고에 저녁식사도 뒤로한채 서둘러 노예들이 집합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니안은 그런 카루온을 멈춰 세우며 조심히 말을 건냈다.

"왕자님, 이제 저들에게 거사를 밝힐 때가 온것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왕자님의 진짜 존재를 알려서는 안될것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카루온은 니안의 생각을 옳게 받아들였다.

노예들의 절망적인 기다림은 잠시 뒤 나타난 왕자 일행에 의해 서서히 공포감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왕자의 모습은 무표정한 얼굴이 마치 먹이를 앞에 두고 날카로운 발톱을 숨긴채 일격의 순간을 노리는 샤크논처럼 두려움에 떨게했다. 하지만 카루온은 노예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눈에서 끝없는 공포와 함께 깊이 감추어진 슬픔을 읽을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노예들 사이를 걸으며 그들의 눈을 하나씩 훓어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의 눈을 피하며 그의 시선이 닿는 것을 두려워했다. 카루온은 그들이 자신과 다름없는 동료가 처벌받는 것을 이미 여러 번 봐왔을 테지만 그것은 결코 무뎌지지 않는 칼날이 시시때때로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적이 깊어지자 카루온은 그때까지 들리지 않았던 노예들의 거친숨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그는 두려움과 분노로 얼룩진 노예들의 몸과 마음을 아직 돌보지 못했음을 자책했다.

카루온은 서서히 걸음을 옮겨 밧줄에 묶인 3명의 노예앞에 섰다. 그리고는 아무말 없이 오른쪽 허리에서 단검을 빼들었다. 그 모습을 본 노예 셋은 겁을 집어먹고는 울부짖으며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그들은 순식간에 벌어진 왕자의 손놀림에 놀라고말았다. 카루온은 그들을 묶고있던 밧줄을 손수 끊으며 그들을 바닥에서 일으켜세웠다. 노예들은 순간적으로 할말을 잃은채 카루온을 바라보고있었다.

"놀랄것 없다. 너희의 죄를 묻지 않을 테니 안심하거라."

"감사합니다. 주인님. 감사합니다."

카루온의 말에 노예들은 몸둘바를 모르며 연신 머리를 숙였다. 카루온은 그들을 잠시 바라본뒤 가만히 입을열었다.

"노예인 너희들이 왜 검을 쥐고 훈련을 받는지 아느냐?"

카루온의 물음에 노예들은 아무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누가 대답할 수 있으랴. 카루온의 시선은 노예들의 눈과 눈을 스쳐가며 그들의 마음을 깨우치려 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지금껏 아누크인들의 노예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고 온갖 치욕을 받아왔을것이다. 나 카루온이 너희에게 약속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너희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

노예들은 자신의 어린주인이 하는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장난어린 말속에 어떤 분노와 보복이 숨겨져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들의 의심은 카루온의 이어지는 말에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아누크인이 아니다."

노예들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의 앞에 서있는자가 아누크인이 아니라 한다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카루온은 그들의 혼란을 뒤로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 나는 일하는 노예가 아닌 검을 쥐고 싸우는 전사가 필요하다. 바로 너희들이 나의 전사들이다. 잘 들어라, 나는 이곳 주칸을 점령하고 노예들을 위한 도시를 만들것이다. 헛소리가 아니다. 너희가 날 따라와 준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것을 계획해 왔다. 너희가 아누크인과 다른점이 무엇이냐? 너희는 그들과 똑같이 말하고 생각하고 느낄수 있다. 하지만 너희 노예들은 그들이 키우는 가축이나 다를바가 없다. 아니, 오히려 가축보다 싼값에 팔팔려나가는 것이 너희 노예들이다. 노예로 태어난 것이 너희들의 운명이라면 나는 너희들과 함께 그 운명을 바꿔보고자 한다. 나는 너희들에게 약속한다. 앞으로 30일 안에 너희는 모든 훈련을 마치고 두번의 전투를 치룰것이다. 그 두번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자에겐 자유를 주겠다. 또한 흩어진 가족을 살수있는 충분한 카인도 주겠다. 나의 제안이 내키지 않은 자는 앞으로 나서라. 그자는 귀를 자르고 내일 당장 루아즈의 노예시장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카루온의 말이 끝났지만 노예들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서로 눈치만 살필뿐 어느 하나 앞으로 나서는 자가 없자 카루온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다시 기회는 없다. 아무도 없느냐?"

노예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에 빠져있는데 카루온은 재빨리 그 기회를 가져가 버렸다.

"모두 내 제안을 받아들인걸로 하겠다. 앞으로 약속한 기한을 채우지 않고 도망치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목숨을 다해 검술을 익히는 것이 좋을것이다. 행여 자유를 얻고 노예사냥꾼에게 다시 붙잡히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밤이 깊었으니 훈련은 내일 아침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주인님. 한가지 여쭙고 싶은게 있습니다."

카루온의 말이 끝나자 한껏 용기를 낸듯한 노예하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카루온에게 말했다.

"주인님이 아누크인이 아니시라면 쿠아즈이십니까? 어떻게 노예들의 도시가 생길수 있단 말입니까?"

카루온은 노예의 물음에 곧잘 대답하는 대신 슈말을 불렀다.

"그들에게 노예의 낙인을 보여주시지요."

카루온의 말에 슈말이 자신의 웃옷을 벗어 오른쪽 어깨에 감추어진 노예의 낙인을 드러냈고 카루온의 뒤에서 서있던 바라쿠타의 식솔들이 모두 자신이 노예시절 지니고 있던 낙인자국을 하나씩 드러냈다. 그모습을 본 노예들은 믿을수 없다는 듯이 하나 둘 일어서서 놀라운듯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누크인들의 나라, 아스카란의 제국내에서 모든 멘티스는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노예의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수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녀도, 혹은 아무리 아름다운 노예라도 그들은 노예의 신분을 벗어날수 없었다. 모든 노예는 왕과 귀족들의 소유였으며 간혹 부유한 평민들이 돈으로 노예를 사기도 했으나 노예들은 철저히 도시의 관리하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탈출을 하는 노예들이 있었지만 아누크인들은 끝까지 노예들을 추적해 붙잡았고 그들을 따돌렸다 하더라도 온 대륙에 퍼져있는 노예사냥꾼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대부분의 노예들은 아예 탈출을 생각치도 않았다. 헌데 카루온의 허황된 말을 믿지못하던 노예들의 앞에 아누크인인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이 모두 노예의 낙인을 보이고 서있자 그들의 놀라움이 쉽게 사그라 들지 못했다.

노예들은 솟아오르는 흥분과 함께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죽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던 그들에게 지금껏 이런 꿈 같은 이야기는 있을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훈련시켜왔던 사람들이 모두 같은 노예출신이라는 사실이 카루온의 말을 사실로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노예들의 마음에 카루온의 제안을 거절할만한 이유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단 하루라도 노예신분을 벗어나 자유인으로 살아갈수만 있다면 하나뿐인 목숨이라도 걸어볼만 하다는 생각이 노예들의 다 같은 마음이었다. 카루온은 다시 한번 노예들을 향해 외쳤다.

"너희들의 마음속에 있는 의심을 버려라. 나와 너희들, 우리 모두는 다 같은 피가 흐르는 멘티스다. 나의 이름은 카루온, 남자라면 어차피 하나뿐인 너희들의 목숨을 나에게 걸어라."

그날 밤, 카루온의 계획에 반감을 가진 노예 둘이 또다시 탈출을 감행했다. 두 노예는 아만에게 붙잡혀 카루온 앞에 놓였으며 카루온은 이틑날 두 노예의 목을 베어 노예들의 불안을 잠재웠다. 바라쿠타의 식솔들은 카루온의 결단력에 놀라워 하며 노예들의 도망을 철저히 감시했고 이후 노예들의 검술은 눈에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카루온이 만든 바라쿠타의 검은 서서히 단단하고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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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바라쿠타와 아카론 17.02.18 16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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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전쟁의 시작 17.02.11 187 1 15쪽
18 새로운 형제들 +1 17.02.04 340 1 19쪽
17 아카론의 도적들 +1 17.01.27 209 1 18쪽
16 프로렌스의 새로운 용병 +1 17.01.26 344 1 21쪽
15 발로니테의 계획 +1 17.01.22 309 1 18쪽
14 루가단 +1 17.01.22 283 1 11쪽
13 페루스의 검 +1 17.01.06 382 1 20쪽
12 루아즈의 세검사 +1 16.12.31 318 1 15쪽
11 카소에의 음모 +1 16.12.29 439 1 12쪽
» 주인과 노예 +1 16.12.24 430 1 12쪽
9 바라쿠타의 길 +1 16.12.17 264 1 23쪽
8 아카네르의 계략 +1 16.12.17 341 1 9쪽
7 아카네르와 코누잔 +1 16.12.10 311 1 10쪽
6 코누잔의 거래 +1 16.12.10 385 1 11쪽
5 만오레사막에 감도는 전운 +1 16.12.03 472 1 11쪽
4 새로운 여정 +2 16.12.01 502 3 11쪽
3 스페스의 귀족회의 +2 16.12.01 866 4 12쪽
2 왕자의 귀환 16.12.01 1,271 8 11쪽
1 프롤로그 16.12.01 1,920 9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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