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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수 님의 서재입니다.

붉은모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천이수
작품등록일 :
2016.12.01 19:07
최근연재일 :
2018.04.21 07:16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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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9
추천수 :
42
글자수 :
450,893

작성
16.12.1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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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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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23쪽

바라쿠타의 길

DUMMY

왕자 카루온 일행이 주칸에 도착한 이후 한달이 숨가쁘게 지나가고 있었다. 왕자의 삶은 줄곳 스페스와 다간이 있는 밀림에 속해 있었기에 주칸에서의 하루하루는 왕자에게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카루온은 빠르게 사막 생활에 적응하였고 슈말과 그의 부하들은 카루온을 주인으로 따르며 손발처럼 도왔다.

카루온은 주칸에 도착한 즉시 슈말로부터 바라쿠타 상단의 인계을 받았고 상단이 소유한 가게와 땅, 건물들을 살폈다. 상단의 규모는 그리 크진 않았으나 주칸에서 만큼은 상당한 것이었기에 카루온은 하루를 꼬박 그 일에 매달려야 했다. 상단을 돌아본 뒤 그는 바로 주칸의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의 곁엔 항상 카잔과 슈말, 그리고 헤르반과 니안 뒤따랐다.

주칸은 크지 않았기에 말을 타고 달리면 금방이었으나 카루온은 꽤나 구석구석 살피며 많은 것을 슈말과 니안에게 물었다. 카루온의 물음에 답하던 니안이 금새 갈증을 느끼고는 자꾸 물을 마셔대는 바람에 그의 물주머니는 곧 바닥이 났고 카루온은 미안했는지 그에게 자신의 물주머니를 건내주었다.

하지만 니안과 슈말의 고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칸을 다 돌아본 카루온은 이어 주칸을 실지배하는 루아즈를 돌아보았고, 루아즈의 형제국인 프로렌스까지 돌아보고 나서야 잠시 여유의 시간을 가졌다. 주칸에서의 한달은 그렇게 지나갔다. 카루온은 프로렌스까지 돌아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았다. 그는 그일을 위해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카루온이 주칸에 온 뒤 치러졌던 조촐한 환영식은 왕자의 명에 따른 슈말의 조치였으나 카잔은 다시금 정식으로 왕자를 맞는 환영회가 필요함을 슈말에게 말했다. 슈말 역시 숨가쁘게 지나온 지난 한달을 돌아보며 바라쿠타의 가족들을 위한 휴식 겸 왕자를 바라쿠타의 새로운 주인으로 맞이하는 축하잔치를 왕자에게 건의했다. 카루온도 이번만큼은 거절하지 못했다.

태양이 떨어지는 늦은 오후 슈말의 집에서는 그와 그의 식솔들이 환영회를 위한 준비로 분주해졌다. 바라쿠타 가족들의 남자들은 염소를 잡아 고기를 마련하고 여인들은 술과 음식을 내어왔다. 주칸의 술과 음식은 카루온과 카잔에게 적잖이 적응되지 않았으나 여인들이 특별히 만든 갖가지 요리는 다시한번 그들을 호기심을 자극했다. 특히 주칸의 오아시스에서 자라는 갈루아라는 물고기는 손바닥만한 크기인데 별다른 양념이 없어도 불에 구우면 입안에 침을 돌게하는 묘한 냄새를 풍겼다. 그 맛을 따라 주칸 사람들이 매일 낚시대를 들이우며 갈루아를 잡아대는 통에 이제 갈루아는 꽤나 귀한 음식이 되었는데 오늘 환영회에 3마리가 올라온걸 보니 꽤나 운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준비가 끝나갈 무렵 카잔은 왕자와 함께 만찬이 준비된 넓은 야외로 나와 제일 먼저 자리에 앉았다. 아누크와 같이 멘티스들의 세계에서도 신분계급간의 차별된 예의와 법도 등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기에 두사람이 앉기 전까진 누구도 자리에 앉지 않았다. 환영회의 시작은 슈말과 바라쿠타의 식솔들이 카잔과 함께 카루온을 바라쿠타의 새로운 주인으로 섬긴다는 충성의 서약으로 채워졌다. 카잔은 그들의 맹약을 받았다. 그리고는 카루온의 짧은 답례가 이어지고, 다소 엄숙한 분위기가 흐르자 카잔은 재빨리 잔을 들어 건배제의를 하며 환영회의 흥을 돋구었다. 간만에 가져보는 여유롭고 흥겨운 분위기 속에 바라쿠타 상단의 30여 식솔들은 다같이 술과 음식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춤을 추었다.

바라쿠타를 이끌어가는 인원들은 모두 멘티스였으나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노예의 표식을 지닌 노예 출신었다. 노예의 표식은 아누크인들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밀림속 멘티스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멘티스들이 지니고 있었는데 슈말 역시 노예의 표식을 지닌 사람 중의 하나였다. 과거 우루안이 그를 50카인을 주고 사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아누크인의 노예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바라쿠타의 식솔들은 슈말이 우루안에게 깊은 은혜를 받은 것처럼 그들 역시 슈말로부터 큰 은혜를 받았다. 현명한 우루안이 멘티스의 독립을 위한 첫단계로 비밀조직인 바라쿠타 상단을 계획한 이래 그의 명을 따라 상단을 조직하고 운영해나가면서 슈말은 꽤나 많은 노예들을 돈으로 구해내 밀림으로 보내거나 더러는 주칸에 남겨 상단의 일원으로 키워냈다. 그들의 운명이 노예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 슈말이란 존재는 자신의 새로운 삶을 온전히 바쳐 헌신할만한 대상이되었다. 마치 슈말이 바라보는 우루안이 그러하듯이...

카루온은 지난 한달동안 슈말과 바라쿠타식솔들의 행동과 눈빛에서 그것을 읽어낼수 있었다. 그들의 충성심은 너무도 순수했고 또한 강렬했다. 카루온은 그들과 함께하는 이 순간을 스페스에선 절대 느껴보지 못했을꺼라 생각하며 자신이 주칸에 오게된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누구도 꿈꾸지 못한 새로운 꿈을 꾸게 하였고 카루온은 그것을 이제 막 시작하려 하고있었다.

어느덧 밤의 절반이 지나가고 환영회의 들뜬 기분이 차분히 가라앉을 무렵 여인들은 일찌감치 방으로 돌아가고 남아있는 자들은 여지껏 술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카루온의 옆엔 항상 자리를 지키던 카잔이 어느샌가 사라지고는 대신 슈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슈말은 카루온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바라쿠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라쿠타의 중요성은 물론 식솔들의 시시콜콜한 사안을 늘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 하는 슈말의 모습에 카루온은 슈말에게 있어 바라쿠타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를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

16년전 젊은 나이에 왕좌에 앉은 우루안은 왕이 되기 이전부터 그 뛰어난 왕재와 현명함을 널리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어찌보면 밀림 9부족중 한부족을 다스리는 왕에 불과했지만 그가 속한 올멕족은 대왕이 지배하는 방가게족과 함께 9부족을 이끄는 지배세력으로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따라서 우연처럼 같은해 태어난 방가게족의 로만은 항상 우루안과 비교의 대상이 되곤했다.

결국 대왕의 아들로 태어난 로만이 멘티스연합(테트라연합)의 수장이 되는 것은 거스를수 없는 운명이었으나 많은 사람들의 입에 로만의 이름이 오르내릴 때 항상 우루안이 뒤따르는 것 역시 어린 로만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운명이었고 그것은 자신보다 훨씬 빨리 왕위에 오른 우루안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했던 로만에게 적잖은 부담과 질투심을 심어주기도 하였다.

왕위에 오른 우루안은 자신의 그려왔던 도시와 종족의 미래를 하나씩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고 그것들의 종착점은 결국 종족의 발전과 함께 궁극적으로는 사막 멘티스들의 독립이었다. 아직 아누크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밀림속 멘티스들의 번영을 온세상에 드러내고 아누크인의 지배하에 노예로 살아가는 수백만 멘티스들을 독립시키는 것! 우루안의 목표는 바로 그것이었다. 우루안은 자신의 도시 스페스에서 가장 가까운 아누크의 도시 루아즈를 오랫동안 관찰해왔고, 그곳에 독립전쟁을 위한 비밀조직을 만들어 훗날 전쟁 발발시 전초기지로 삼고자 했다. 그의 희망은 네그라스 출신 노예인 슈말에게 맡겨졌고 노예에서 벗어난 뒤 새롭게 얻어진 지난 14년, 슈말의 삶은 오로지 비밀조직인 바라쿠타를 운영하는데 바쳐졌다.

바라쿠타는 주칸 및 루아즈에 위치한 8개의 상점과 루아즈와 프로렌스 멀리는 동쪽 해안에 위치한 알바다나와 코르틴을 잇는 중간무역으로 이윤을 챙기는 상단이지만 그것은 아누크인들의 눈속임과 조직을 이끌어갈 자본을 벌어들이기 위한 표면적인 모습일뿐 실제로는 노예들을 해방하기 위한 전쟁에 대비해 갖가지 정보를 수집하거나 아스카란 제국의 동향을 살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수집된 정보는 수시로 스페스의 우루안에게 직접 전달되었고 그것은 우루안에게 전쟁의 시점을 파악하고 궁극적 목표로 삼은 멘티스독립을 실현시키기 위한 전략을 짜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항상 슈말이 말하는 바라쿠타의 중요성은 이제 더 강조하지 않아도 될만큼 카루온은 정확히 직시하고 있었다.

카루온은 아버지가 자신을 주칸으로 보낸 이유를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왕자의 수업을 위해 다간에서 보냈던 5년여의 시간동안 카루온은 현실과 동떨어진 동족의 미래만을 쫒고있었다. 이곳 주칸에서 보고 느낀 노예들의 삶은 예전에 왕자의 수업때 잠시 보았던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노예들의 삶은 훨씬 더 참혹했고 밀림의 멘티스는 언젠가 그들의 고통을 모른척 한것에 대한 죄값을 치루고야 말것이었다. 그저 힘을 기른다는 핑계로 현실에 안주하려는 밀림의 멘티스들에게 이곳은 괜시리 건들고 싶지 않은 고름 같은, 꿈에서도 몸서리 쳐질만큼 악몽같은 현실이었다.

카루온은 주칸에 와서야 깨달았다. 로만 대왕이 말하는 그 때라는 것은 결코 오지 않을것이다. 똑같은 하루지만 밀림의 안락한 하루는 이곳 사람들에게 1년과도 같은 시간일 터, 이루고자 결심한 날이 비로소 그 때가 되는것일 뿐이었다.

'밀림의 동서 진영간의 반목과 불협화음도 아누크와의 전쟁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것이다. 시작된 전쟁에서 서부동맹과 동부동맹은 다시 하나로 뭉칠것이다.'


카루온은 바라쿠타에 대한 자부심에 불타는 슈말의 눈을 바라보며 그에게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는 지금의 바라쿠타를 뿌리채 바꿔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더 이상 침묵을 지키지 않았다.

"슈말 그대에게 하나 묻겠습니다."

"네, 왕자님."

짐짓 근엄한 위엄을 풍기는 카루온의 말투에 환영회의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모든이의 시선이 왕자에게 집중되었다.

"아니, 모두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진실로 나를 따를 준비가 되었습니까?"

왕자의 물음에 슈말이 가장 먼저 대답하였다.

"목숨을 바쳐 충성을 맹세합니다."

"목숨을 바쳐 충성을 맹세합니다."

슈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테이블에 앉아있던 모든이들이 한결같이 대답했다. 카루온의 눈에 비친 그들의 눈빛이 그들의 충성이 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슈말의 뒤를 이어 오늘부터 제가 잠시동안 이곳 바라쿠타의 주인이 되겠습니다."

"네 왕자님!!"

왕자의 말에 힘이 넘치고 대답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그들의 의지가 묻어났다.

"저는 슈말과 그대들이 이룩한 바라쿠타를 완전히 정리하려 합니다."

카루온의 갑작스런말에 그 자리의 모든이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멈추고 말았다. 슈말과 그의 아들들은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왕자님 그게 무슨 말씀인지···"

"바라쿠타의 모든 토지와 상점을 정리하겠습니다. 최대한 높은 값으로 팔되 시일을 지체하지 말고 끝내 주십시오."

슈말을 비롯한 바라쿠타의 모든 식솔들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왕자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바라쿠타를 정리하다니요!"

슈말은 정색을 하며 왕자에게 되물었다. 슈말의 물음에 카루온은 금새 답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 시간이 길지 않았으나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하루만큼이나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슈말, 그대가 지금까지 구해낸 동족이 몇 명인지 기억하십니까?"

슈말은 갑작스런 왕자의 질문에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그것이 무슨상관이란 말인가?’

"천명이 됩니까?"

슈말은 너무도 터무니 없는 왕자의 어림수를 듣고는 서둘러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200이 조금 넘습니다."

조금은 날카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헤르반이었다. 슈말의 뒤에서 바라쿠타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왔던 그의 눈이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왕자의 결정에 불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루온은 전혀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군요"

카루온은 헤르반의 대답에 짧게 응한뒤 다시 말이 없었다. 그의 말투는 마치 헤르반의 감정을 더 불태우는듯 너무도 무성의함을 느낄수 있었다. 다시금 카루온의 물음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앞으로 몇 명을 더 구하겠습니까? 그대들이 죽기 전까지 몇 명을 더 구하겠습니까?"

슈말은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부친의 대답을 기다렸던 헤르반이 이번엔 좀더 격한 어조로 반문 했다.

"그렇다면 왕자님께선 몇 명을 구하셔야 만족하시겠습니까?"

"헤르반, 함부로 입을 열지 마라."

슈말은 헤르반의 언성에도 애써 침착함을 잃지 않으며 그를 제지 했다. 그 역시 왕자의 결정에 쉽사리 따를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그는 명령에 복종 할지언정 거역할 수는 없다고 여겼다. 슈말의 제지에 헤르반은 잠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눈빛에 노여움을 거두었으나 카루온은 매사 표정에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낄수 있었다. 헤르반의 노여움속엔 바라쿠타에 대한 그의 애정이 녹아있었고 그의 눈빛을 바라보며 카루온은 자신의 결정이 흔들리려 하는것을 몇번이고 다잡아야만 했다. 그때 냉랭하고 당당한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왕자님, 넬칸께서 바라쿠타를 만드신 것은 아누크의 동향을 살피는것일뿐 노예를 구해 그들에게 자유를 준것은 오로지 저희 부친의 생각입니다.. 전사라 불리만한 이가 없는데 저희에게 어찌 수천 수만의 동족을 구할 방도가 있겠습니까? 왕자님께서 바라쿠타에 대해 잘못 알고계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니안!!"

여지껏 말이없던 니안이 삐꼬듯 왕자의 잘못을 꼬집으며 말하자 카잔은 매우 거친목소리로 그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카루온은 즉시 카잔을 제지했다.

"니안, 그대는 나와 같은 뜻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넬칸께서 바라쿠타를 만드신 것과 저를 이곳으로 보낸것은 결국 한가지 목적 때문이고 그분의 물음에 이젠 제가 답을 할 차례입니다. 헤르반, 전 이 땅의 모든 동족을 구할것 입니다. 넬칸께서 날 이곳에 보낸것도 그것 때문이고 슈말과 그대가 그리고 그대들이 지금까지 이곳에서 그토록 고생해 온 것도 그 것 때문입니다. 슈말, 그리고 바라쿠타의 식솔들 모두 방금전 내게 했던 충성의 서약을 잊지 않았다면 나의 결정에 따라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새로운 바라쿠타를 만듭시다. 모두들 나와 함께 하겠습니까?"

왕자의 물음에 그 누구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카잔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왕자를 따르겠노라고 대답 할뻔했으나 바라쿠타와 아무런 인연도 없었던 그는 지금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님을 알았다. 그는 묵묵히 좌중을 둘러보았고 잠시 긴 침묵이 이어졌다. 모두의 시선은 슈말에게도 쏠려있었다. 그는 지금껏 바라쿠타를 이끌어왔고 왕자가 이곳에 오기전까지 모든 것은 그의 뜻대로 이루어졌기에 그의 대답에 앞서 누구하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었기 때문이었다. 슈말은 마음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오갔으나 그것은 찰나와 같은 시간이었고 그가 망설이는 동안에도 그의 눈빛은 충성으로 가득했기에 이어지는 슈말의 대답은 카루온의 예상대로였다.

"왕자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슈말의 완강하면서도 거침없는 대답이 이어지고 뒤따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이들이 왕자앞에 무릎을 꿇으며 다시 한번 충성을 맹세했다.

"왕자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왕자 카루온은 슈말의 손을 잡고 다시금 헤르반과 니안의 손을 잡으며 그들 모두를 일으켜세웠다. 그의 가슴은 뜨겁게 요동치고있었다.

"고맙습니다. 모두들, 정말 고맙습니다."

"왕자님께선 올멕족의 왕이 되실분입니다. 어찌 저희가 왕자님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다만 왕자님의 새로운 계획을 알고자 합니다."

"그럼 이제 숨김없이 말하겠습니다. 전 바라쿠타를 모두 정리하고 그 돈으로 노예들을 사 전사로 훈련시킬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카론을 칠 생각 입니다."

"왜 아카론을 치시는 것입니까?"

모두들 알수 없다는 표정인 가운데 카잔은 그 까닭을 왕자에게 물었다. 왕자는 카잔의 얼굴을 잠시 쳐다본 뒤 입을 열었다.

"그들이 우리의 거사에 걸림돌이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슨...."

슈말은 여전히 알 수없는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왕자님 어찌 이길수 있겠습니까? 불가능 합니다."

왕자의 말에 헤르반이 그들을 쳐서 제압하는 것이 힘들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헤르반, 그대가 있기에 가능할것 입니다."

"왕자님, 아카론을 친 뒤에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번엔 니안이 왕자에게 물었다. 그의 표정은 헤르반과 달리 꽤나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건 아직 생각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왕자님의 뜻은 도대체 알수가 없군요.'

슈말은 카루온의 지시를 도무지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니안의 표정은 달랐다.

"왕자님, 아직 숨기시는게 있으시군요. 저희는 왕자님의 뜻에 따르겠노라고 맹세했습니다. 이제 왕자님께서 그 충성에 대한 답을 보여주십시오."

니안은 말을 아끼려는 왕자를 다그치듯 매섭게 말했지만 표정만은 부드러웠다. 카루온은 니안의 얼굴을 바라본 뒤 잠시나마 미안했다는듯 짧은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사실 나조차도 확실한 계획이 서질 않았기에 말을 미룬것 입니다. 우린.... 아카론을 친 뒤 곧이어 이곳 주칸을 공격해 주칸의 멘티스를 해방시킬것 입니다. 그리고는 때를 노려 루아즈를 공격해 그곳의 멘티스도 해방 시킬것입니다. 동족해방 전쟁을 시작하는것입니다."

거침없는 왕자의 말에 니안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고 슈말과 헤르반은 거의 동시에 왕자에게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왕자님 그것은 너무도 위험한 생각입니다. 아카론을 치기도 버거운데 주칸과 루아즈를 공격한다니오? 루아즈의 병력은 카로와나만 1천이 넘습니다. 저희가 가진 돈으론 400의 노예도 사기 어렵습니다. 혹시 스페스에 지원군을 요청하실 생각입니까?"

"아니오. 모든것은 넬칸께 보고하지 않을 것입니다. 슈말, 전 전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니안 그대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카루온은 슈말의 말에 짧게 대답한뒤 아무말이 없는 니안의 의견을 물었다.

"왕자님, 지금 루아즈는 어느때보다 강성합니다. 또한 프로렌스와의 전쟁을 위해 수많은 용병을 불러모으고 있다는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니안은 진지한 표정으로 카루온의 뜻을 막으려는듯 보였다. 하지만 카루온은 니안의 또다른 진심을 향해 물었다.

"니안 또다시 저를 시험하는 군요. 그대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거사는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카루온의 대답에 모두의 시선이 니안에게로 쏟아졌다. 그의 눈은 오로지 카루온에게 향해있었고 그를 바라보는 니안의 눈은 어느새 신뢰와 믿음의 눈빛으로 빛나고있었다. 그의 입가에 보일듯 말듯한 미소가 번졌고 그는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대들이 내뜻을 받아주었으니 더이상 꾸물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이만 연회를 마치겠습니다. 내일부터 서둘러 일을 진행해 주십시오"

카루온은 그를 바라보며 수많은 궁금증을 내비치는 눈동자들을 뒤로한채 더 이상 말이 없이 뒤돌아 자리를 뜨고말았다. 이어 왕자와 같은 방을 쓰는 카잔이 왕자를 따라 일어나고 순식간에 환영회는 마무리 되었다. 그날 밤 슈말의 저택에 잠들지못한 남아있는 사람은 슈말과 그의 두 아들뿐이었다. 달은 이미 밤의 절반을 훌쩍 지나버렸는데 슈말과 두 아들은 아무래도 잠이 올것같지 않았다.

"아버님, 이대로 왕자님의 뜻에 따라도 될런지요?"

헤르반은 꽤나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듯 차분하게 아버지의 뜻을 물었다.

"왕자님이 비롯 어리시나 어려서부터 범상치 않은 분이셨다. 그분은 스페스의 왕이 되실분. 더 이상 아무말 마라. 하지만 왕자님과 우리의 안위를 위해 때를보아 넬칸께 보고해야 할것이다."

슈말은 이미 모든 것을 왕자의 뜻에 맡긴듯 차분히 아들을 타일렀다. 15년을 그가 몸바쳐 일궈온 조직이었기에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왕과 왕자를 향한 그의 충성심은 감히 사사로운 감정 따위와 비교할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아버님"

슈말은 차남인 니안이 부르는 소리에 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의 얼굴은 조금은 참담한 표정의 헤르반과 자신의 얼굴과는 달리, 알수없는 기운에 사로잡힌듯 했다.

"왕자님의 계획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닙니다."

히타친의 말에 슈말과 헤르반은 거의 동시에 입을열었다.

"뭐라고?"

"왕자님은 제 생각보다 훨씬 큰분이시군요. 어쩌면 제국의 노예들은 우루안 넬칸의 이름 대신 카루온 왕자님의 이름을 소리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왕자님은 우루안 넬칸의 손발이 되어 멘티스 해방전쟁을 시작하려고 하시는겁니다."

"이것이 넬칸의 뜻이란 말이냐!?"

슈말과 헤르반은 니안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니안은 슈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뒤 별안간 땅위에 무릎을 굽히며 말을 이어갔다.

"아버님, 왕자님의 뜻이 오래토록 제가 감춰온 뜻과 같습니다. 지금의 바라쿠타를 과감히 버리시고 새로운 바라쿠타를 만드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왕자님의 머리가 되어 함께 그 뜻을 이루고자 합니다. 하지만 아버님께 죄를 짓는듯한 고통을 떨쳐버릴수가 없습니다. 부디 못난 아들을 용서하십시오."

니안은 눈물을 보이며 슈말의 앞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슈말은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측은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덩달아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바라쿠타가 어찌 나의 것이겠느냐. 시작은 나로 인한 것이나, 모든것이 너와 너의 형이 이룬것이다. 너의 큰뜻을 늙은 내가 가로막았으니 모두 나의 잘못이다. 나에게 죄를 구하지 말거라."

두 부자는 손을 마주 잡으며 뜨거운 눈물로 서로를 감싸주었다. 헤르반은 그 모습에 왕자에게 품었던 작은 의심과 걱정을 모두 떨쳐버릴수 있었다. 비롯 아우이긴 했으나 니안의 깊은 생각과 튀어난 통찰력을 그는 한번도 의심해 본적이 없었다. 그의 말은 항상 옳았고, 틀림이 없었다.

"니안, 네 뜻이 그렇다면 나의 검 또한 왕자님과 함께 할것이다."

헤르반은 허리에 찬 검집에서 검을 꺼내 들며 니안에게 말했다. 두 형제의 눈빛이 어느때보다 뜨거웠다. 슈말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젠 진실로 그가 새로운 역사의 첫 장에서 한 걸음 물러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오늘부로 너희들은 내가 아닌 카루온 왕자님을 온전한 너희들의 주인으로 섬겨야 할것이다. 그의 뜻이 곧 내 뜻이고 그의 말이 곳 나의 말이다. 알겠느냐?"

슈말의 말에 헤르반과 니안은 함께 무릎을 굽힌채로 대답했다.

"네 아버님"

바라쿠타의 마지막 밤이 슈말의 눈물에서 니안의 의지와 헤르반의 검을 타고 흐르며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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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5 아히ㅡ
    작성일
    18.03.17 18:55
    No. 1

    다시 멘티스 이야기로 돌아왔군요
    아마 루아즈와 프로렌스 전쟁에 어부지리를 취하려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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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모래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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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바라쿠타와 아카론 17.02.18 161 0 14쪽
20 프로렌스의 새로운 우나프 +1 17.02.11 255 1 11쪽
19 전쟁의 시작 17.02.11 187 1 15쪽
18 새로운 형제들 +1 17.02.04 340 1 19쪽
17 아카론의 도적들 +1 17.01.27 209 1 18쪽
16 프로렌스의 새로운 용병 +1 17.01.26 344 1 21쪽
15 발로니테의 계획 +1 17.01.22 309 1 18쪽
14 루가단 +1 17.01.22 284 1 11쪽
13 페루스의 검 +1 17.01.06 382 1 20쪽
12 루아즈의 세검사 +1 16.12.31 318 1 15쪽
11 카소에의 음모 +1 16.12.29 439 1 12쪽
10 주인과 노예 +1 16.12.24 430 1 12쪽
» 바라쿠타의 길 +1 16.12.17 264 1 23쪽
8 아카네르의 계략 +1 16.12.17 341 1 9쪽
7 아카네르와 코누잔 +1 16.12.10 311 1 10쪽
6 코누잔의 거래 +1 16.12.10 385 1 11쪽
5 만오레사막에 감도는 전운 +1 16.12.03 472 1 11쪽
4 새로운 여정 +2 16.12.01 502 3 11쪽
3 스페스의 귀족회의 +2 16.12.01 866 4 12쪽
2 왕자의 귀환 16.12.01 1,271 8 11쪽
1 프롤로그 16.12.01 1,920 9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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