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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연재수 :
122 회
조회수 :
53,831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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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28,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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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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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얼음공주

DUMMY

동훈은 알지 못했지만 제이엠 엔터는 보이그룹과 배우를 위주로 육성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지방 공연을 다니고 영화의 단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몇이 이 엔터에 속해있었다.


인지도는 높지 않으나 소속된 아이돌과 배우를 가혹하게 굴리는 걸로 유명한 회사였다.


엔터판이야 워낙 좁고 큰 회사들이 대부분 해먹는 판이라지만 제이엠은 그 바닥에서도 독하게 굴어 중견 수준까지는 올라왔다고 평할 수 있는 회사였다.


그런 제이엠의 악명 높은 오너 일가 중 차녀 나유라는 엘리트 의식이 강해 소위 말하는 서민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도 싫어하는 거로 악명이 자자했다.


보안팀 직원은 그녀의 이름을 듣고도 여전히 무슨 상관이냐는 듯 원칙적으로 대답했다. 콧방귀를 안 뀌었다뿐이지 전혀 그녀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저희가 건물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보안팀 직원의 말에 답답하다며 나유라는 가슴을 쳐댔다.


“오늘 VIP 대상 IR 하는 날 아니에요? 이 사람은 얼굴도 모르고 옷도 아무거나 입고 왔잖아요.”


나유라의 구구절절한 설명에 보안팀 직원은 작게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오늘이 VIP 대상 IR 하는 날은 맞는데,”


보안팀 직원의 말을 끊고 나유라는 동훈을 가리키며 그의 차림을 비하했다. 그러면서 냅다 이상한 누명을 씌우기 시작했다.


“저 사람 봐요. 잡상인 같지 않아요? 당신 잡상인이죠? 뭐 팔러 온 거잖아요. 아저씨, 성진 빌딩에 잡상인도 들여요?”


잡상인이라니. 동훈은 기가 찼다.


저 여자는 진짜 잡상인도 못 본 건가?


그래도 나름 동훈도 차려입고 나와서 흰 셔츠에 자켓을 걸치고 있었다. 어느 잡상인이 이렇게 입고 다니냔 말이야.


게다가 손에 든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뭘 팔겠어?


그럼에도 나유라는 동훈이 잡상인이라고 굳게 믿는 모양이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동훈을 삿대질하는 모습은 동훈마저도 자신이 잡상인이 아닌가 되돌아보게 할 정도였다.


한참 보안팀 직원에게 쏘아대고 있는 나유라를 향해 누군가 다가왔다.


“유라야!”


나유라의 이름을 힘껏 외치며 달려오는 사람은 포마드로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서른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였다.


유라 역시 그를 아는지 잠시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상 오빠.”


강진상.


두어 개의 IT 사업체를 가진 젊은 CEO이자 포항에서 대기업 하청을 받는 큰 제조업 공장 사장의 아들인 그는 소위 말하는 금수저였다.


그 역시 경제지에서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뉴스에서도. 하지만 그를 봤다는 게 좋은 쪽의 기사를 본 게 아니었다.


‘강진상 부대표, 또 탈세 의혹?’

‘강 부대표의 직원 폭행, 상습이었다는 증언 확보.’

‘강진상 부대표 공장내 폭행 영상 공개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 논란.’


다 저 강진상과 얽혀있는 기사들이었다.


멀끔한 외모에 180에 가까운 건장한 키를 가졌으나 인성이 덜된 사람이었다. 그러니 본인 소유의 사업체에서 대표 직함을 쓰지 못하고 부대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거고.


하여간 그런 악소문 무성한 뉴스의 빌런을 직접 보게 되니 동훈은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럴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진상은 망나니 같은 기사가 많은 것과는 별개로 냉담한 유라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아, 여자를 밝힌다는 소문도 있었지.’


나유라를 향해 미끌미끌한 미소를 짓고 젠틀한 체 하는 모습은 그의 음습한 속이 훤히 보이는 행동이었다.


“이거 입구에서 다 만나네. 안 들어가고 뭐 했어. 혹시 오빠 기다린 거야?”


그가 윙크를 보내며 은근히 보내는 추파에 나유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저 오빠는 이 여자, 저 여자한테 다 뿌리고 다닌다니까, 하는 작은 속삭임을 동훈은 들을 수 있었다.


나유라는 동훈을 향해 무례하게 삿대질하며 진상에게 대충 설명했다.


“아니, 들어가려는데 웬 잡상인이 있잖아. 그래서 경비한테 빨리 내보내라고 했지.”


강진상은 나유라에게 점수를 딸 좋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동훈을 살폈다.


“잡상인이 들어와?”


동훈의 위아래를 스캔하는 진상의 눈길. 그의 눈에도 역시 유라의 것과 비슷한 경멸의 빛이 떠올랐다.


브랜드 없는 옷에 특별히 비싼 악세사리를 찬 것 같지도 않은 모습에 스캔을 마친 것이다.


그 눈빛이 은근히 기분 나빴는데 동훈은 자신의 몸에 걸린 스텟, 그게 다 얼마짜리인지 아느냐고 묻고 싶었다.

비싼 돈 주고 만든 스텟인데 보여줄 수도 없고.


만만한 사람이라는 판단 하에 강진상은 동훈을 향해 훈계조로 을러댔다.


“여기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돼요. 그런 곳 아닙니다. 나가주세요.”


진상은 나름 존댓말을 썼지만 동훈을 전혀 존중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저 이 하찮은 사람을 여기서 쫓아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동훈 역시 그의 속마음을 잘 알아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표정 하나는 투명한 사람이라 그의 귀찮음과 경멸을 동훈 역시 잘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훈의 묵묵부답에 유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는 강진상을 부추겼다.


“오빠, 이 사람 봐. 아까부터 내가 나가라고 했는데도 계속 여기 있었다니까? 사람 말도 안 듣고 진짜. 별꼴이야.”


유라의 말과 동훈의 침묵에 진상은 점점 열이 오르는지 동훈에게 반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내 말 안 들려? 사람이 말하면 들어야지. 나가라고!”


끝내 소리를 지르는 강진상.


뉴스에 나오던 성질머리가 어디 가지 않았는지 빌딩 로비에서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사람이 몇 오가지 않는 로비층에 강진상의 목소리가 울려 옅게 메아리쳤다.


그러고는 동훈을 노려봤다.


아마 동훈이 겁먹으리라고 기대한 것 같은데 동훈은 귓구멍을 후빌 뿐 전혀 겁먹은 기색이 아니었다.


“듣자듣자 하니 어이가 없어서. 당신이 뭔데 나가라 마랍니까? 이 빌딩 주인도 아니면서 그래도 되는 겁니까?”


동훈은 천천히 반박했다. 반박하기도 가치 없는 시비지만 어쩌겠나, 시비를 걸어오는 것을.


강진상이 부리는 진상짓은 동훈의 눈에 앵앵거리는 파리의 날갯짓처럼 느껴졌다.


진상이 고래고래 소리치는 위협은 더 벨룸에서 만났던 2레벨따리 갱단 전투원의 것보다 위세가 허접했고 심지어는 1레벨의 늑대보다도 살기가 없었다.


그저 위협뿐인 위협은 동훈의 입맛에 너무 싱거울 지경이었다.


동훈의 말에 진상은 위세를 이어가듯 큰소리를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성진 그룹 차 상무랑 얼마나 막역한 사이인 줄 알아? 당신 같은 거, 나가라면 나가야지 뭘 버티고 있어!”


로비층에서 고성이 오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빌딩에 근무하는 직원들이며 오가는 손님 모두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닌 만큼 인파를 이뤄 구경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지나가며 흘끔흘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하얀 대리석 바닥 위에서 소득 없는 대거리를 하고 있으니 어쩐지 당혹감보다 현타가 왔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게다가 떽떽떽 시끄럽기도 하지.


동훈은 듣고 있기 귀가 아플 정도가 되니 슬슬 짜증이 오르기 시작했다.


전쟁은 말로도 한다.


폭력을 쓰지 않고, 힘을 쓰지 않고 이기는 전쟁이 가장 최고의 전쟁이라고 하는데 중요한 건 입으로 하든 주먹으로 하든 일단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기본적인 무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는 입을 아무리 잘 털고, 선동을 아무리 잘한들 바람 앞의 등불이자 풍랑 앞의 조각배였다.


동훈이 굳이 입을 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말랑말랑하네. 고작해야 사람 하나 내쫓으려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한 판 시원하게 붙고 진 사람이 나가는 거로 하면 안 되나.’


강진상의 체구는 커 보였고 운동도 곧잘 해 보였으나 동훈에 비할 무력을 갖춘 것은 전혀 아니었다.

무기에 익숙하지 못한 손, 반격에 전혀 용이하지 않은 자세며 동훈의 무력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옹이구멍 같은 눈깔까지.


속이 꽉 막힌 기분이다.


이렇게 약한 사람과 말을 나눠야 해?


그래도 처음 오는 곳이고 손님으로 온 곳이니 사회생활을 하며 길러온 사회성을 최대한 발휘해 얌전히 있으려고 했는데 사람 성질 돋우기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둘을 보니 참고 있기 어려웠다.


이런 소리나 들으려고 온 게 아닌데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충동이 마구 일었다.


동훈은 마지막으로 해명했다.


“나는 잡상인도 아니고, 누가 여기 같이 가자고 해서 온 거니까 혹시 불만이 있다면 그 사람한테 여쭈시죠. 이젠 나도 모르겠네요.”


여기서 더 짜증스럽게 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다 엎어버릴 수도 없고.


동훈은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화가 났다. 초대장이 자신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초대를 증명해줄 이현은 다른 자리에 있으니


보안팀 직원은 아무래도 귀찮은 모양이었다.


성진 그룹 사람도 아닌 외부인이 와서 빌딩에 사람을 쫓아내라 어째라 하는 건 본래라면 들은 체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오늘은 VIP가 많이 오가는 날이었다.


괜히 문책받기도 싫으니 상황을 봐가며 움직이려 했기에 소란을 일단 지켜보는 셈이었다.


아마 어느 쪽이라도 밀리는 쪽을 가차 없이 내치리라.


지금은 그 밀리는 쪽이 동훈이었고.


보안팀 직원은 점점 동훈에게로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나가달라고 말할 것만 같았다.


한숨을 푹 쉰 동훈이 제 발로 나가겠다고 말하려 할 때였다. 나유라의 입가에 미소가 점점 짙어지려 할 때와 동시였다.


그때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 나왔다.


싸늘한 목소리로 나유라의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


“나유라.”


이현이었다.


또각거리는 하이힐에 단정한 수트차림의 이현은 세련된 도시 여성 그 자체였다. 하얀 대리석이 빛을 받아 반사판처럼 이현의 모습에 빛을 더하자 그녀의 모습이 마치 구원자처럼 보였다.


그녀와 비슷한 얼굴을 한 비서가 역시 단정한 차림으로 옆에 서 있었고 이현은 전에 없을 차가운 얼굴로 나유라와 강진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유라는 이현의 등장에 깜짝 놀라 손까지 바들바들 떨렸다. 아마 전에 뭔가 된통 당한 게 있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된통 당했길래 보자마자 손을 떨까? 동훈의 의문에 답하는 건 바로 이현의 별칭이었다.


얼음공주.


그녀의 친구들 사이에서는 차가운 얼굴에 언제나 태연한 태도, 툭툭 내뱉는 날카로운 말씨 때문에 말다툼으로 대거리하려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현이 정말 화가 나면 세련되고 냉정한 사람답지 않게 난투극도 불사했는데 그녀의 매운 따귀 맛을 본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걔가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오래 했다더니 손이 보통 매운 게 아니라니까.’


유라 역시 이현의 심기를 잔뜩 건드렸다가 따귀를 맞고 잠시 정신을 잃을 뻔한 적이 있었기에 아직도 그녀만 보면 손이 떨리고 뺨이 욱신거렸다.


그럼에도 나유라는 턱을 치켜들고 그녀에게 대들었다.


“송, 송이현? 왜, 뭐! 잡상인 쫓아내는 데 너도 한 손 보태려고? 고마워하진 마. 이미 나갈 모양이니까.”


이현의 등장에 아까까지 기세를 올리던 강진상이 즉시 꼬리를 내렸다. 마치 호랑이의 등장에 즉각 꼬리를 내리는 성질 더러운 치와와의 모습 같았다.


“이현아, 오랜만이다. 하하.”


젠틀하게 웃어 보이는 진상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이현은 딱 자신의 할 말만 남겼다.


“그 사람, 내 손님이야.”


이현의 말에 유라는 잠시 안색이 창백해졌다.


친분 맺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이현이 손님이라 평할 사람은 분명 보통 사람이 아닐 터였다. 유라는 사람이 끼리끼리 만난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이었다.


어느 지역유지의 자식일까? 아니면 외국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일지도.


‘내가 실수한 건가? 이 남자가 진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아닌 거야? 난 그냥 만만한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싶었을 뿐인데.’


유라는 자신이 실수를 범한 사람이 사실은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그녀는 동시에 인정할 수 없었는데 저 남자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건 자신의 안목에 문제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유라는 동훈의 옷차림을 보고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뭐? 이 후줄근한 남자가 네 손님이라고?”


이현은 유라의 별 볼 일 없는 안목을 비웃듯, 물론 유라의 눈에, 코끝을 찡그리고는 단언했다.


“후줄근한 건 모르겠고, 내 손님이야.”


유라는 순간 패닉에 빠졌다.


정말로 이현의 손님이고 그런 남자에게 자신이 망신을 주려 했다가 되레 망신을 당했다면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평판이 작살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평소 유라를 싫어하는 또래 애들이 얼마나 뒤에서 씹어대겠나. 아마 그녀가 없는 자리에서는 그녀의 친구들도 이 상황을 술안주 삼아 씹어댈 것이다.


그 광경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듯 유라는 말까지 더듬어가며 상황을 부정하려 했다.


“거, 거짓말 작작해. 나 망신주려고 거짓말하는 거 아냐? 잡상인이 무슨 네 손님이야.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이현의 손님이 잡상인일 리가 없는데도 상황을 부정하려 계속 우기는 유라. 그녀는 후퇴할 퇴로가 없었다. 이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기자는 식이었다.


그녀를 향해 이현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내가 왜, 너 망신주려고 거짓말을 해?”


그녀의 말투는 마치 널 망신주는데 왜 자기가 거짓말까지 해야 하냐는 투였다.


평소 이현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나유라는 이현의 말이 ‘넌 가만히 있어도 망신인데 뭘 거짓말까지 하겠냐,’는 식으로 들렸다.


“너, 너!”


유라가 삿대질하며 이현에게 달려들려 하자 그녀를 말린 것은 바로 옆에 있던 진상이었다.


“유라야, 이현이 손님이래. 네가 참아. 아까는 무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현은 그렇게 말리는 진상에게는 역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진상은 강약약강의 전형 같은 인간이었다. 동훈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자 곧장 태세를 바꿔 사과하는 것이었다.


물론 동훈도 사과를 받지 않았다.


“들어가요, 동훈 씨.”


이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씩씩거리는 나유라와 강진상을 지나쳐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가는 이현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했다.

동훈은 그제야 속이 풀린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빙긋.


동훈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그들을 향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가도 되냐는 미소 같았다. 가벼운 비웃음이 담긴.


유라는 그 미소를 보고 열이 뻗쳤지만 너무 화가 나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동훈과 이현, 그리고 그녀의 비서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까지 확인한 유라는 그제야 화를 터뜨렸다.


“아아악! 진짜! 저 썅년이! 나한테 모욕 주려고 잡상인을 손님이라고 말한 거 맞다니까! 저런 옷을 입고 무슨 손님이야!”


미친년처럼 머리를 헤치는 유라는 머리가 산발이 되어 정말 미친년처럼 보였다.

아직도 인정하지 못한 그녀는 이제 자신의 거짓말과 억지에 자기 스스로가 속아 넘어간 상태에 이르렀다.


“아까 그 남자 나 보면서 비웃고 가는 거 봤어? 어이가 없어서 진짜!”


유라가 화를 내자 진상은 기회라도 잡은 듯 가깝게 다가서서는 움켜쥔 주먹을 흔들어 보여주며 험상궂은 소리를 해댔다.


“하루 벌어서 먹고사는 밑바닥 인생이 다 그렇지 뭐. 그런 거 일일이 다 화내면 얼굴에 주름 생겨. 나한테 주먹으로 먹고사는 친구들 많은 거 알지? 쟤 나중에 내가 조져준다. 어디 작살내줄까? 팔? 다리?”


진상이 유라의 토라진 어깨를 주무르며 비위를 맞췄다.


사실 나유라를 향한 아부가 아니어도 강진상은 모욕을 잊는 법이 없었다. 암흑가에 아는 사람이 있는 진상은 자신의 심기를 거스른 동훈을 가만둘 리 없었다.


그녀는 홱 돌아 진상을 보더니 도끼눈을 뜨고는 소리쳤다.


“오빠! 왜 그 여자가 나 꼽 주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


진상이 곤란한 표정을 하고 바락바락 화를 내는 유라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유라야, 네가 참아. 손님이라잖아. 저번에 또 이현이한테 덤볐다가 엄청 깨졌다며. 나도 깨지긴 싫다. 우리 아버지 공장 힘들어. 미래조선에 밉보였다간 밥도 못 먹는다.”


진상은 둘째로 태어나 치고 빠질 때를 알았다. 이현이 감싸고 도는 그 남자를 이현 앞에서는 어쩔 방법이 없었다.


“그 얘기는 지금 왜 꺼내? 진짜 짜증나게! 오빠는 그럼 그렇게 평생 밥이나 벌어먹고 살든가!”


마구 화를 내고는 들어가 버리는 유라를 쫓아 진상은 허겁지겁 달렸다.


“유라야, 유라야! 같이 가!”


***


동훈이 이현을 따라 들어간 곳은 3층에 위치한, 널찍한 연회장이었다.


마치 실라 호텔 연회장에서 봤던 것처럼 단아하고 고급스럽게 장식된 연회장은 중앙 천장에 커다란 샹들리에가 달려있었다.


한쪽 면이 통창으로 된 연회장에는 검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쪽 벽면에는 연회장보다 한층 높은 단상이 있었다.

보통 연회가 벌어지면 그 단상에서 진행자가 진행하고 각종 발표를 하는 곳인듯했다.


단상 아래 연회장에는 둥근 나무 테이블이 군데군데 놓여있었는데 넓은 공간에 좁지 않도록 적당한 간격을 두고 열 개 남짓하게 놓여있었다.


“여깁니다.”


이현의 비서는 테이블 중 ‘미래조선’이라 쓰인 팻말이 작게 올려져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원형의 목재 테이블에는 벨벳으로 된 두꺼운 식탁보가 씌워져 있었는데 검보랏빛의 광택감이 도는 식탁보는 꼭 커튼 같기도 했다.


드르륵!


다들 의자에 앉아 주변을 보니 한두개의 테이블을 제외하면 모두 채워져 있었다.


흔히 파티복하면 떠오르는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도 보였고 단정한 양복을 걸친 사람도 보였다.

그렇게 사람들의 복장은 각양각색이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었다.


연회장의 분위기는 동훈이 예상하고 기대하던 분위기였다.


고급스럽고, 여유롭고, 부유한 티를 내고 있는 연회의 느낌. 티비로나 보았던 부자들의 연회가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때마침 단상 위로 말끔하게 생긴 청년 하나가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행사가 시작될 모양이었다.


“참석해주신 모든 귀빈 여러분께 감사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성진SDI의 IR을 시작하겠습니다.”


짝짝짝!


사람들의 박수와 함께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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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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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검사 22.12.05 311 11 22쪽
61 옥탑 인간 22.12.03 324 10 20쪽
60 핏빛기사단 혈맹 22.11.29 331 7 22쪽
59 디렌의 탑 22.11.24 326 10 19쪽
58 정립 22.11.22 352 11 16쪽
57 첫 전설급 아이템 22.11.20 357 14 14쪽
56 다크엘프 비사(秘史) 22.11.18 337 10 18쪽
55 악령 22.11.15 346 13 13쪽
54 무너진 탑 22.11.13 357 11 13쪽
53 도발에는 도발로 22.11.12 356 12 13쪽
52 회장클럽 22.11.10 360 13 12쪽
» 얼음공주 22.11.09 349 8 19쪽
50 투자설명회(2) 22.11.07 355 12 14쪽
49 투자설명회 22.11.03 380 14 16쪽
48 저주와 10레벨 22.11.02 383 15 15쪽
47 영성 강림 22.11.01 372 13 17쪽
46 쌀과 정情 22.10.31 384 11 15쪽
45 건물주 22.10.30 393 11 14쪽
44 인버스 22.10.29 393 9 13쪽
43 폴트란으로 22.10.28 383 11 15쪽
42 독무대 22.10.27 382 12 15쪽
41 따이! 22.10.26 395 14 18쪽
40 훈련 22.10.26 404 12 14쪽
39 쟁에서 승리하는 법 22.10.25 421 9 20쪽
38 이벤트퀘스트, 가문의 비밀 22.10.24 419 12 15쪽
37 사랑하는 사람에게 베푸세요(2) 22.10.23 419 13 18쪽
36 사랑하는 사람에게 베푸세요 22.10.22 426 13 16쪽
35 폭력의 도시 22.10.21 468 12 18쪽
34 [zㅣ존영zㅐ] 22.10.20 491 11 21쪽
33 사기도박? 나도 할래 22.10.19 493 1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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