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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ii 님의 서재입니다.

리겔의 불꽃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Ceii
작품등록일 :
2015.03.16 21:19
최근연재일 :
2015.04.02 04:26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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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8
추천수 :
609
글자수 :
55,072

작성
15.03.3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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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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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제6화 추격자들(3)

DUMMY

잠시의 침묵이 흐르다 나사크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워워, 이거 뭐야. 너랑 잔 적이 없다고? 내가 고자를 모시고 있던 거였어? 크하하!”

“글쎄, 사르곤이 고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르곤이 남들에게 잘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있어.”

“그게 뭔데?”

“사르곤이 에누마엘리쉬(Enuma Elish)교의 극단적인 근본주의자라는 거.”

“근본주의자? 그게 뭔데? 넌 가끔 창녀 출신 치고는 이상하게 제법 고상한 말을 다 알더라?”

“뭐, 쉽게 말해 엄청 꼰대 신자라는 거지.”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키샤리크 사람 열 명중 여덟 명은 에누마엘리쉬를 믿고 있어.”

“하지만 구하기 힘든 경전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사람 본 적 있어?”

“샤리크가 항상 들고 다니던 것이 그거였어? 뜻밖이군. 그럼 경전을 가르치는 순례자나 할 것이지 그렇게 고결하신 양반이 왜 해적질을 하고 계시데?”

“언젠가 사르곤과 술을 마시고 유혹해 보려다 실패한 적이 있었어. 사실 맘만 먹으면 잘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왜 못 잤는데?”

“그게 묘하더라. 서로 진탕 마시고 몽롱할 때였지. 나보고 자기랑 자고 싶으면 반 바퀴를 돌고 다시 반 바퀴를 돌아보래. 했지. 그랬더니 방금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세상을 다 본 거라나 뭐라나 어쩐지 기분이 확 없어져서 그만 두었어. 술 퍼마시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샤리크가 겉옷을 덮어주었더라고. 그래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

“큭큭. 내 생각엔 그냥 서지를 않아서 그런 거 같은데 큭큭.”

“어머, 나사크. 사랑은 꼭 그게 서지 않아도 할 수 있어. 그걸 모르니까 네가 항상 뭔가를 찌르고 썰어야 행복해지는 거야.”

“사랑? 별거냐. 나도 누군가 때문에 눈깔 뒤집혀본 적 정도는 있다고. 근데, 아까 서부 놈들도 쓸 만하다고 하지 않았냐?”

“헤헤 말들 이야기 아니었나?”

“저기 시험해 볼만한 놈들이 있다.”

“응? 뭘 말하는 거야?”

“아직은 안보일거야. 구천 세퓨 정도 되는 거리거든.”

“뭘 먹으면 그렇게 멀리 보이는 거야? 네 눈은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건지 모르겠다. 바다에서만 살아서 그런가?”

“동부 내륙 평야지대의 어떤 나라에서는 만 삼천 세퓨 밖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지.”

“와우, 거의 1리그까지 되는 거리인데? 그런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보일 지 궁금하군. 근데 저놈들이 왜?”

“우리가 지금까지 온 길하고 정확하게 같은 길을 가고 있어. 4명이다. 기사하나에 기마병 셋 쯤 되어 보이는군.”

“추적자군. 대공이 보냈을 거야.”

“협력해야 하나?”

“아니, 해치울 거야.”

“응?!”

“걱정 마. 샤리크는 우리가 먼저 꼬마를 확보하고 싶어 했어.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에스테, 꼬마를 대공에게 데려간 것은 샤리크 아니었어? 무슨 거래를 한다고 했잖아.”

“큭큭. 우리 손에 꼬마가 들어오면 거래를 한 번 더 할 수 있지 않겠어? 자 받아.”

에스테는 롱소드 한 자루를 나사크에게 건냈다.

“뭐야 이게?”

“펠이라는 녀석이 주로 롱소드를 쓴다더라고. 그리고 오늘 링핑거에서 죽은 놈을 살펴보니까 석궁이랑 단검이랑... 하여간 가지가지 하더라.”

“덮어씌울 생각인가? 어차피 곧 죽을 놈이지만. 처음부터 추적자를 죽일 생각이었군. 서부 놈들 무기 쓰는 거 오랜만이네.”

“후발대가 오고 있을 테니 얼른 해치우자고. 구천 세퓨면 20분 안으로 따라잡을 수 있겠군. 이럇!”

에스테는 즐거운 표정으로 박차를 가했다.


대공이 보낸 무리를 쫓던 에스테와 나라크의 추격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브라운워터 방면으로의 수색을 맡은 기사 윌리엄은 수하의 기병 세 명을 이끌고 펠을 추적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걸릴 것 같나?”

“대장, 적어도 반나절 안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윌리엄의 부하들은 윌리엄을 ‘경’이라 부르지 않고 ‘대장’이라 불렀다. 윌리엄이 그렇게 부르라고 시킨 적은 결코 없었지만 떠벌이 잭스가 먼저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이후로 다들 그런 식으로 부르고 있었다. 윌리엄은 서너 번 정도 주의를 줬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경고를 했을 때는 잭스의 입 안에 대거를 집어넣었을 때였지만 그의 혀 놀림을 멈출 수가 없어서 그냥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한숨을 쉬었을 뿐이었다. 윌리엄이 처음 부임했을 때 수하의 부하들은 대부분 풋내기였고 모두 윌리엄에게 죽도록 얻어터지며 훈련을 받았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한 차례의 전쟁을 겪으며 그들은 병사가 되어갔다.

“말발굽이 계속 이어져 있어. 이정도 거리를 이동하고 있는 것은 도주일 가능성이 일단 높겠지.”

“펠 경은 체스터랜드와의 전쟁에서 어느 부대에 있었답니까?”

“홀드킵의 챠펠 밑에서 있었지.”

“아이고, 그 외국에서 굴러들어온 남작의 부대 말입니까? 거기 완전히 거덜 나지 않았습니까?”

“양동작전의 희생을 챠펠이 받아들였었지. 정치적 기반이 없었으니까. 부하의 반 이상이 희생되었어.”

“펠 경도 험한데서 구른 양반이군요. 어쩌다 거기까지 굴러들어갔답니까?”

“스타폴로 귀순한 챠펠 부대의 교관으로 배치되었던 거지. 그런데 배신자 놈한텐 경을 꼬박꼬박 붙이면서 나한텐 뭐냐 이 망할 자식아.”

“하하. 올해 안에 결혼하고 애라도 만드시면 경이라고 불러 드리죠.”

“미친...”

잭스는 아랑곳 않고 떠벌였다.

“근데 여기 데릭이 대장보다 먼저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중에서 제일 막내인데 밤 일은 제일 능숙한 것 같습니다만.”

다소 까다롭고 고고한 성격의 윌리엄은 잭스가 떠벌이는 것이 듣기 싫었다. 처음 만났을 무렵에는 잭스의 혀를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많았다. 그러나 전쟁을 함께 겪으면서 한층 더 분량이 늘어나고 오히려 재미는 없어진 잭스의 수다가 윌리엄에는 안쓰럽게 느껴졌다.

“데릭, 첫째가 태어나려면 얼마나 남았나?”

“한 석달 안으로는 태어날 것 같습니다.”

“이름은 지었나?”

“아직...”

데릭은 쑥스러운 듯 씨익 웃었다.

“대장, 뒤에 따라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잭스와는 반대로 대전 이후로 말이 더 없어져 필요한 일 이외에는 입을 열지 않는 하디가 후방을 가리켰다.

“두 명인데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일까요?”

“10분 정도 전부터 계속 따라오고 있습니다.”

“추격이 바쁘긴 하지만 확인해 봐야겠군.”

“멈춰서 기다릴까요?”

“저 앞의 하천 다리 앞에서 기다리자. 펠과 관계된 자라면 다른 데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윌리엄 일행은 다리에서 말을 멈췄다. 상대는 금새 거리를 좁히며 가까워졌고 그들을 살피던 잭스는 두 남녀가 말을 몰아오던 것을 확인하고 휘익 휘파람을 불며 돌아서서 말했다.

“대장, 제가 왼편의 이쁜이를 맡겠습니다.”

“시끄러워!”

“쩝”

잭스가 입맛을 다시자 윌리엄이 농을 걸었다.

“내가 왼편이다.”

“크하하. 대장도 참. 저 오른편의 못생긴 놈은 하디 네가 가져가라. 이스턴스케일의 개구리는 내 취향이...”

그 때, 윌리엄이 말을 끊고 외쳤다.

“조심해!”

“네?!”

쉬이익! 퍽!

쿼렐이 날아와 잭스의 뒤통수에 꽂혔고 그 화살촉은 그대로 무엇인가 말하려던 잭스의 열린 입으로 튀어나왔다. 잭스는 말 위에서 무너지듯 쓰러졌다.

“병신같이!”

윌리엄은 장창을 뽑아들었다. 하디와 데릭도 각자 무기를 빼어들고 말을 몰았다. 석궁을 쏜 것은 여자였고 꼼꼼하게도 하나를 더 미리 장전하고 윌리엄 일행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여자가 상대를 고르고 격발하는 속도는 지체 없이 민첩했다.

피잉! 쉬이익!

“흐윽!”

이번엔 데릭의 이마에 쿼렐이 박혔다. 그대로 말에서 떨어진 데릭은 즉사한 것으로 보였다.

‘무슨, 이 거리에서!?’

아직 거리가 충분히 좁혀지지 않아 여자는 여유 있게 석궁을 장전하고 있었다. 윌리엄은 창을 버리고 방패와 칼을 들었다.

“하디, 내가 먼저 간다! 내 뒤로 와.”

하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잉! 세 번째 공격이 날아왔다. 쿼렐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윌리엄의 미간을 향해 왔지만 윌리엄은 침착하게 방패를 들어올렸다. 티잉! 카이트쉴드의 부드러운 휘어짐이 날카로운 화살촉을 튕겨냈다.

“흐음, 역시 기사는 기사네? 그래도 머릿수는 줄였으니 할 만 하겠지 나사크?”

“흐흐. 잘했어, 에스테. 기사 놈은 내가 죽일게.”

“어머, 내가 두 명 잡았는데 나머지 두 명은 네 몫이지.”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에 윌리엄과 하디가 들이닥쳤다. 채앵! 마상에서 나사크와 윌리엄이 칼을 맞대었고 하디는 에스테를 향해 장창을 내질렀다. 윌리엄과 나사크는 교차해서 거리가 벌어졌으나 차락! 하는 소리가 나고 어느새 나사크의 채찍이 윌리엄의 목을 감았다. 나사크가 몸 에 채찍을 감아 밀착시키며 힘차게 채찍을 당기자 윌리엄은 땅위로 떨어졌다.

쿵! 나사크가 말을 몰아 그를 끌고 가려 했으나 윌리엄은 얼른 일어나 자세를 잡았고 목을 감고 있던 채찍을 붙잡고 있는 힘껏 당겼다. 예상치 못한 괴력에 나사크도 말 위에서 떨어져 내렸으나 몸을 틀어 고양이처럼 안정된 자세로 바닥에 착지했다. 윌리엄은 단검을 꺼내 채찍을 자르고 바닥에 구르던 무기를 챙겨들었다. 한편, 에스테는 다리로 버티면서 말 위에서 몸을 기울여 창을 피했다. 에스테를 지나친 하디의 얼굴에서 빨간 선혈이 흘렀다. 어느새 날아온 플라잉나이프가 그의 얼굴을 긁고 간 것이었다. 하디는 말을 돌리며 칼과 방패를 들었다. 쉬익! 에스테가 다시 플라잉나이프를 날렸지만 하디의 버클러에 막혔다. 하디가 다시 거리를 좁히며 에스테에게 칼을 휘두르자 마상전에 익숙하지 않은 에스테는 미련 없이 말에서 뛰어 내렸다. 플라잉 나이프가 세 개가 남아있었고 에스테는 이것을 미련 없이 하디의 말에게 연속적으로 날렸다. 퓩, 퓩, 퓩!

이히힝!

세 개의 나이프가 모두 말의 목 옆구리 다리 등에 막혔고 말은 비명을 지르며 비틀댔다. 하디는 고삐를 강하게 끌어 잡아 낙마를 면했지만 얼른 말에서 뛰어 내릴 수밖에 없었다.

“멋진 아저씨 살살 좀 부탁해!”

“...”

하디는 대꾸 없이 칼을 휘둘렀다.

“어머, 진지하셔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타입이시네.”

에스테는 농담을 던지며 단검을 뽑아들었지만 상대에 비해 월등히 짧은 간격의 무기로 인해 상황이 좋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 붙는 하디의 공격을 계속 피하고 있었지만 계속 도망만 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하디 역시 경무장으로 상당히 몸이 가벼웠다. 에스테는 가급적 상대와 칼을 섞지 않고 몸만 피했다. 몇 차례 공격을 시도한 하디는 여자가 몸이 상당히 날랜 편이나 근접전에 서투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몸을 과하게 움직이며 돌아다녔고 반격할만한 기회에서도 공격이 오지 않았다. 여자를 베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얼른 승부를 내고 윌리엄을 도와야 했다. 하디가 침착하게 하단을 공격하자 여자는 뒤로 걸음을 옮겨 피했다. 우측 상단을 공격하는 척 속임수를 걸어 롱소드를 뫼비우스의 띠 모양으로 돌리며 속임수를 걸었다. 그러나 에스테는 기회를 잡은 듯 하디의 몸 쪽으로 파고들었다. 여자는 두 번째 진짜 공격을 노리고 왼편으로 나이프를 들어올렸다. 이미 하디의 공격은 속임수 모션을 끝내고 결정타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손을 빼기에 늦은 시점이었다. 서걱!

“으윽!”

에스테의 단검이 하디의 몸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손목을 밀어내며 공격을 차단하는 동시에 그의 손목에 큰 상처를 냈다. 절단까지 되지는 않았지만 손목뼈까지 드러나는 큰 부상이었다. 그러나 에스테는 이에 멈추지 않고 베어낸 동작에서 부드럽게 이어지는 동작으로 하디의 얼굴을 찔러 들어갔다. 다른 쪽 손으로는 버클러를 들어 올리려는 하디의 움직임을 방해하면서.

푸욱!

한쪽 눈을 완전히 관통당한 하디는 다른 쪽 눈을 부릅뜬 채 에스테를 노려봤지만 곧 땅 위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그러게 아저씨, 여자를 얕보고 기다란 걸 함부로 휘두르는 게 아니야. 너무 뻔히 보이잖아!”

에스테는 하디의 목을 그어 싸움을 마무리 지었다.

에스테와 하디의 싸움이 결착이 나기 얼마 전까지 나사크와 윌리엄은 빠른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윌리엄은 갑옷과 방패를 앞세워 상당히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고 있었고 나사크는 적당히 롱소드로 흘리며 거리를 두고 있었다.

“헤이, 기사양반. 그 실력으로는 도저히 힘들겠는데? 그만 친구들 곁으로 가시지?”

“이스턴스케일 놈들이 입으로 싸움을 하는 건 여전한 것 같군. 하지만 난 여러 번 네놈들의 혀를 뽑아줬지.”

“아이고 무서워라. 말만큼 손도 빠르려나? 이걸로 연습 좀 하지.”

나사크는 성기 부근에서 수음을 하는 시늉을 했다.

“히얍!”

윌리엄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나사크의 코끝을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몸을 빼며 윌리엄의 두 번째 공격이 닿지 않을 거리까지 거리를 벌린 나사크는 다시 조롱하기 시작했다.

“웁! 좀 더, 좀 더, 큭큭.”

하지만 윌리엄은 세 번째 공격을 들어가지 않고 다시 방어자세를 잡았다. 상대가 일부러 간격을 주고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젠장, 반사신경도 몸놀림도 굉장하군. 강하다.’

그러나 모양새와는 달리 나사크도 내심 조금 긴장을 하고 있었다. 윌리엄의 공격은 계속됐지만 섣부르지 않았고 방어의 여지를 둔 안정적인 자세로 공격해왔기 때문에 시간을 끌면 한 순간의 실수로 보호구가 부실한 자신이 치명적인 공격을 허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상대는 도발에 동요하지도 않고 현 상황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편이었다. 다만 에스테와 상대 기병의 싸움 결과가 상황의 변수가 될 수 있었다. 결국 서로 섣부른 공격을 하기 힘든 상태가 이어졌다.

그렇게 대치가 이어지다가 두 사람의 귀에 하디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쌍방의 표정에 희비가 갈렸지만 비명 소리와 함께 양 쪽 모두 결착의 순간이 왔음을 알았고, 서로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상대방을 주시하느라 둘 다 에스테와 하디 쪽으로 고개를 돌릴 여력은 없었지만 윌리엄은 당장의 공격으로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반대로 자신이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윌리엄은 칼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한 각도로 빠르게 참격을 가했지만 나사크는 앞으로 나오나 싶다가 한 쪽 다리를 축으로 뒤로 180도를 회전하며 거리를 벌렸고 손잡이를 어께 높이까지 들어 올린 상태에서 칼끝을 약간내리며 들어오는 칼을 막았다. 그리고 그대로 칼을 찔러 들어갔으나 윌리엄은 이를 방패로 막으려 했다. 하지만 나사크는 롱 소드의 가드를 교차시키며 손목을 비틀어 올렸고 다른 손으로 윌리엄의 칼을 쥔 한쪽 손목을 잡았다. 윌리엄이 방패로 가격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몸이 바싹 붙은 상태였다. 나사크는 가까운 거리임에도 묘하게 칼을 비집고 들어오며 윌리엄의 목을 노렸다.

“조심해!”

에스테의 갑작스런 외침이 들렸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싸움에 열중해 에스테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아니, 목숨이 오가는 급박한 상황으로 인하여 파악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타다닥! 빠른 발소리가 들렸다.

숙련된 전사인 두 사람은 자신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인영을, 그 사람의 세찬 발걸음 소리를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눈앞의 상대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그 싸움의 결과 나사크는 이제 막 윌리엄의 목숨을 빼앗을 참이었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 끼어든다면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으리라.

‘누굴까?’

두 사람은 동시에 상대와 자신 중 누가 죽을 지 궁금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한 사람은 더 이상의 숙고할 기회가 이 세상에서 주어지지 못했다.

파악!

생각해 보면 나사크의 머리가 잘려 허공위로 떠오른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으며, 싸움은 여전히 세 명에 의해서 이루어 형성된 형국이지만 2대 1에서 1대 1대 1이 되는 상황이었다.

“펠!”

윌리엄은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을 건진 사내의 이름을 복잡한 심경으로 불렀다.

“멋진 기사님, 노리고 계셨던 거야?”

나사크의 허무한 죽음에도 에스테는 침착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펠에게 건넨 말의 내용과는 달리 그녀의 목소리에서 여유는 없어졌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목숨을 노리던 사람이었고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펠은 나사크를 벤 후 바로 한 걸음 물러서서 칼에 묻은 피를 대지에 뿌렸다.

“글쎄, 노렸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운이 좋았다고 할까? 여기서 추격대를 한 번 잡아볼 생각이긴 했지만 당신들 실력을 보면 여섯 명은 좀 무리였을 것 같은데. 그래, 역시 운이 좋았던 것뿐이야.”

“잘생긴 기사님이 겸손하기까지 하시네. 이제 어쩔 셈이지?”

“어쩌긴. 난 이제 볼 일 끝났으니 가보겠네. 두 사람은 하던 것 마저 하셔야지.”

“어머, 저 아저씨도 나도 아직 당신한테 볼일이 있는 것 같은데?”

“하하. 난 저 친구를 몇 년째 보고 있어. 저 친구가 당신하고 연합할 것 같나? 그 정도 융통성이 있었으면 기사대장 정도는 하고 있겠지.”

“펠! 좀 전엔 신세를 졌군. 하지만 내 임무엔 변화가 없네. 이 죽일 년과 볼일을 마치면 자네를 찾아가도록 하지.”

“맘대로 하게나. 어차피 자네를 위해서 손을 쓴 것도 아니네.”

펠은 어께를 으쓱 하고 윌리엄에게 대답한 후 에스테를 향해 말했다.

“봤지? 저런 친구라니까! 그리고 넌 저 사내의 부하 셋을 죽였고.”

몸을 돌리며 펠은 다리 건너의 나무들 사이로 사라지며 말했다.

“행운을 비네!”

펠이 사라진 후 에스테는 윌리엄에게 물었다.

“누구의 행운을 빌어준 걸까?”

윌리엄은 대답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완전무장한 기사를 접근전에서 어떻게 이겨?’

에스테의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펠은 빠르게 나무 사이를 빠져나갔다. 버려진 밭에 옆에 세워진 쓰러져가는 허름한 집이 나오자 펠은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집 옆에서 테슈가 말고삐를 끌면서 몸을 드러냈다.

“돌아오셨군요. 다치신 데는 없나요?”

“네 무사합니다.”

테슈는 달려오는 펠을 반기다 그의 옷에 뿌려진 피를 보고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것이 기사님의 마지막 싸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동감입니다만, 아가씨도 저도 그런 날이 오려면 멀었습니다. 어서 서두르죠.”

테슈를 말에 태운 펠은 서둘러 박차를 가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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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15 김종성
    작성일
    15.04.07 15:16
    No. 1

    에누마엘리쉬교의 교리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단위가 무척 색다릅니다.
    즐갑하고 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7 Ceii
    작성일
    15.04.10 00:47
    No. 2

    약간 불교와 비슷하면서도 급진적이고 과격한 느낌을 주고 싶습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전혀 안어울리는 다른 느낌의 조합이네요. 단위는 구글링해서 아카드어를 참고했습니다. 예를들어 세퓨 발이라 뜻이라(발음은 정확히 몰라서 마음대로 적었습니다) 피트(feet)에 해당하는 식으로 만들어봤습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1 반자개
    작성일
    15.04.28 09:45
    No. 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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