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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ii 님의 서재입니다.

리겔의 불꽃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Ceii
작품등록일 :
2015.03.16 21:19
최근연재일 :
2015.04.02 04:26
연재수 :
7 회
조회수 :
5,069
추천수 :
609
글자수 :
55,072

작성
15.03.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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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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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제5화 추격자들(2)

DUMMY

쿵!

수레에서 에드의 몸을 밀어낸 사내들은 황급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사내들이 모두 떠난 것을 확인한 에드는 벽에 손을 짚고 힘겹게 걷기 시작했다.

“헉헉, 정말 숨 가쁘군. 이름은 왜 저따위로 지은 거야?”

한참을 걸어 ‘숨 가쁜 염소 술집’앞에 도착한 에드는 그만 문 앞에 쓰러지고 말았다. 마침 종업원인 늙은 노인 짐이 소변을 보러 나오다 그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일으켰다.

“누구시오? 무슨 일을 당했길래... 아니, 에드 경 아니신가? 대체?”

“짐, 정말 반갑군요. 지나는 안에 있나요?”

“아침 장사를 위한 요리를 만들고 있네.”

“아침장사? 짐, 미안하지만 부축 좀 해줘요. 재수 없는 아침이군요. 이상한 업소에 걸려서 어떤 놈들이 아침장사용으로 내 다리 살로 만든 스테이크를 팔려는 데서 도망쳐 왔거든요. 설마 여기서도 그러진 않겠죠?”

“알겠네. 에구. 급한데. 요실금이 와서 큰일이구만.”

짐 노인이 발을 동동 굴렀다.

“크큭. 짐, 볼일 보고 와서 해요. 생각해보니 잠깐 누워 있는 것도 좋겠군요.”

“금방 오겠네.”

에드는 길바닥에 몸을 누이고 하늘을 바라봤다. 언뜻 하늘을 가르는 빛줄기가 보였다.

“빌어먹을 미티어타워.”

“에드 무슨 일이야?”

익숙한 여인의 음성이 들렸다.

“지나?”

“이야기 소리가 들려 나와 봤어.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상처야?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후후. 잠깐 누워있고 싶군. 옛날처럼 너의 무릎에서.”

지나에게서 미묘한 표정의 변화가 느껴졌다.

“추억팔이를 하고 싶어서 온 거야? 어디서 술 마시고 싸움이라도 했나봐?”

“바트가 죽었어.”

“!?”

지나의 눈이 커다랗게 파르르 떨렸다.

“무슨... 말이야?”

에드는 지나의 의문에 찬 눈을 피하지 않았다.

“장난치는 거지?”

에드의 눈빛이 잠시 동안 일렁이듯 반짝였고 그는 가팔라지는 숨을 참으며 미소를 지었다. 지나는 그의 표정에서 바트의 죽음을 읽었다.

“정말이구나?”

에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윽...”

지나가 입을 가리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울음에 놀란 그녀는 잠시 호흡조차 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에드는 어찌 할 바를 모르다 머뭇거리는 손길로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어놓았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흐느끼기 시작했고 에드는 그런 그녀를 한참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이미 돌아와 있던 짐 노인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지나씨, 부상자를 이렇게 밖에 오래 놔둘 수는 없잖습니까,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해요.”

“흑흑. 네... 그게 좋겠네요.”

보다 못해 입을 연 짐의 말에 지나는 눈물을 훔치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에드를 부축해서 지나의 방으로 옮겼다. 짐이 나가고 에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엘윈은?”

“옆방에서 자고 있어.”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에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심정에 쓰잘데기 없는 농담이 떠오르는 자신에게 약간 혐오감이 들었다. 지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오늘 링핑거 다리에서 싸움이 있었어. 펠... 몇 번 본적 있지? 녀석이 배신을 해서 도주하는 중 싸움이 붙었고 바트가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나를 구하려고 싸우다가 그만...”

지나는 다시 흐르려는 눈물을 참는 듯 살짝 웃으며 미소지었다.

“바트답네.”

“...바트가 죽기 전에 너의 이름을 불렀어.”

“흑...”

지나는 고개를 돌리고 울음을 삼켰다.

“미안, 너도 힘들 텐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펠 경이 그런 짓을 한 거야?”

“자세히는 모르겠어. 하지만 상당히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어찌되었건, 바트의 원수는 갚아줘야겠어.”

“죽은 사람이 뭘 안다고. 에드가 위험해지잖아.”

“물론 죽은 바트를 위해서도 그럴 수 있지만,”

에드는 잠깐 지나의 얼굴을 살피고 말을 이었다.

“너와 엘윈을 위해서이기도 해. 엘윈이 나중에 바트의 원수를 갚으러 가는 것보단 내가 펠을 죽이는 게 났겠지.”

“에드, 엘윈에 대해 알고 있었어?”

지나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어. 지난 아침에 바트한테 이야기한 거 아니야? 엘윈이 바트의 아들인 걸.”

지나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알고 있었구나. 예전부터 넌 눈치가 참 빨랐지.”

“왜 5년이나 사실을 숨긴 거야?”

“뻔하잖아. 나처럼 유곽에서 구른 사람은, 아무리 바트의 가문이 몰락했어도 창녀 출신이 시집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에드는 지나의 어린 시절의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해 가슴이 아파왔다. 헌팅턴 가문이 반역의 누명을 쓰고 지나의 아버지였던 헌팅턴 경이 참수될 때부터, 지나가 형장에서 아버지를 부르며 절규하던 모습이 기억났다. 사창가로 팔려가던 때 보았던 그녀의 체념에 찬 표정을, 성문 앞에 걸린 헌팅턴 경 머리의 눈알을 까마귀가 파먹던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자신의 무력감을! 몰래 헌팅턴 경의 머리를 매장해주려 하다 경비병에게 들켜 아버지에게 죽도록 맞았던 슬픔과 분노가 떠올랐다. 기억을 지우듯 첫 여행을 떠나고, 지나를 다시 볼 용기가 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었다.

“작년에 바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사실을 이야기 할 줄 알았는데.”

“말 하고 싶었는데, 입이 안 떨어지더라.”

“그래...”

“그런데, 며칠 전 밤에 엘윈이 아빠가 어디 있는지 물으며 심하게 울었어. 자신도 성을 가지고 싶다고 하면서. 동네 꼬마들에게 놀림을 받았나봐. 너무 속상해서 최근엔 한숨도 자지 못했지.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어. 아침에 바트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니까 화를 내더라. 왜 귀찮게 이제야 얘기 하냐고.”

“미웠겠다.”

“별로. 내가 아는 바트는 말로 진심을 보이는 이는 아니었어. 사실, 어느 정도는 바트도 눈치 채고 있었던 것 같아. 우리 술집에 널 데리고 와서 허구한 날 술을 퍼마신 거 보면. 봉급의 절반은 술값으로 나갔을 거 같더라고. 가끔씩은 술에 취한 척 술잔을 쏟기까지 하더라고.”

“알고 있었어? 나만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바트 놈을 보며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 힘들었지.”

“그래, 그런 것을 볼 때면 그래도 행복한 느낌이 들었지. 그런데 이제 보니 바트만 그런 식으로 술 마시러 왔던 건 아니었던 것 같네. 너도 날 많이 동정해준 것 같아.”

“동정 같은 게 아니야!”

“뭐, 아무래도 괜찮아. 어렸을 때, 모두가 나를 귀하게 여길 때라면 바트가 그런 식으로 화를 내는 것도 네가 나를 동정하는 것도 자존심 상할 일이였겠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많이 느꼈어. 소중히 여겨주는 진심 하나만으로 괜찮다고! 마음을 표현하는 모양새를 따지는 것이 얼마나 사치인지를... 모두가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사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리고 말이야 그 사람이 생각해 주는 대상이 ‘나’였던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를... 그게, 그게... 크흐흑.”

점점 목소리가 격앙되어지던 지나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에드는 지나를 끌어안았다. 지나의 작은 어께가 들썩이는 것이 에드에게도 너무나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남자들이 내 위에 올라탔어! 바트도 그 중 한 사람일 수 있었겠지만, 지금도 잊지 못하겠어. 그가 나와 자고 수줍게 웃으며 처음이었다고 하던 때를! 막상 자고 나니 이런 식이어서 미안하다고 하던 때를! 그날 이후 시시때때로 술을 퍼마시고 와서 자기가 내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떠벌이던 때를! 내가 아이를 낳고 바트의 아기가 아니라고 했을 때, 실망감과 슬픔과 분노에 차서 나를 노려보던 그 눈빛을!”

“지나, 미안, 미안해.”

“그런데, 그런데...! 크흑”

지나는 조금씩이라도 눈물을 멈추고 싶었지만 터져 나오는 감정의 샘을 멈출 수 가 없었다. 에드는 마음속으로 당장은 말 못할 다짐을 하며 지나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가까스로 울음을 참던 에드의 눈앞도 점차 흐려져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크레이터월의 집무실에는 여전히 레스터대공이 미티어타워의 기사대장 그랜트 바스토니 경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 자가 떠나는 것은 확인 했나?”

“예, 붉은 거리 사창가의 한 유곽에 들렀다가 이스턴스케일로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창가의 유곽?”

“포주 러스가 운영하던 것을 얼마 전에 외국에서 흘러들어온 어떤 여자가 사들인 모양입니다만, 캐어 볼까요?”

“은밀히 알아보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에드가 발견됐습니다.”

“죽었나?”

“아닙니다. 큰 부상을 입고 쓰러져있는 것을 선술집 주인이 발견하고 치료했답니다. 지금 성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당장 내게 데려오도록.”

“네.”

바스토니경이 옆의 부관에게 눈짓을 건네자 부관은 에드를 데리러 방을 나갔다. 에드는 보고를 위해서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에드경, 대공께서 부르시네.”

에드는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일어섰다. 대공의 집무실에 들어가기 전 호위병에게 지팡이를 맏기고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방에 들어서자 대공이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게 에드.”

“대공 전하.”

에드는 공손히 예를 올리고 이야기 했다.

“임무를 실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임무의 실패라. 에드 자네가 나를 섬긴지 꽤 된 것 같은데 내가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처분할 것 같나?”

“무엇이든 처분에 따르겠습니다.”

“난 실책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는 사람은 아닐세. 허나, 내 책임이 어디까지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아니지. 자넨 펠의 배신을 몰랐고, 난 펠의 역량을 몰랐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둘 다 알지 않나?”

“그렇습니다, 대공전하.”

“그렇다면 다음엔 우리에게 책임질 일이 있을 거야. 물론 각자의 방식이겠지만.”

“알겠습니다, 대공전하.”

“자네 친구 바트라고 했던가? 실력 있는 기사를 잃어버려서 안타깝군.”

에드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본 대공은 바스토니에게 고개를 돌려 말을 이었다.

“펠에 대한 추적은 어떻게 되고 있나?”

“미티어타워에서 이어지는 전 가도에 추격병을 보낸 상황입니다.”

“펠에 대한 추적을 증원해야 할 것 같은데, 에드, 자네 펠의 연고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나?”

에드는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방 안에 있는 인원은 대공과 자신, 기사대장 바스토니와 부관 헤일 이렇게 네 명 뿐이었고 그 가운데 사르곤의 첩자가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 같았다. 펠의 추격로를 특정하는 것이 바트의 원수를 갚는데 도움이 될 터이지만 상황에 대한 아무런 확신을 가질 수 없었기에, 또 소녀에 대한 일이 어떤 비밀스러운 음모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에 일단은 조심스럽게 접근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펠은 늪지 출신입니다. 그리고 예전 근거지인 남부 이야기는 가끔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체스터랜드와의 전쟁으로 한동안 그 방면에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바스토니경. 이 이야기를 참고해서 추격대를 증원해야겠군.”

“네, 전하. 그럼 펠의 고향인 늪지와 예전 근무지인 남부, 그리고 이스턴 스케일로 갈 수 있는 육로와 해로, 체스터랜드 방면을 중심으로 증원을 하겠습니다..”

“바스토니경, 지금 이야기 한 지역만 다 빼고 군사를 보내게.”

“네?!”

“펠은 바보가 아니야. 그간 비밀스럽게 행동한 만큼 우리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곳으로 몸을 숨기지는 않을 거야. 비록 우리가 취해야 할 선택지가 많아지지만, 조금이라도 높은 확률을 취하는 것이 좋겠지.”

에드는 속을 뜨끔한 느낌이 들었다가 좀 웃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큭. 사르곤 난 아무 말도 안했다고!’

“알겠습니다. 인원을 편성해서 보내겠습니다.”

바스토니의 대답을 들은 대공은 에드를 돌아보며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에드, 자네는 펠과 싸우던 때를 전후해서 무엇인가 특이할만한 상황이 기억나는 것은 없나?”

에드는 사르곤에게 여자아이에 대한 일을 들킨 것이 떠올라 조금 긴장이 되었지만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생각을 돌리기 시작했다.

“펠에게는 조력자 둘이 있었습니다. 돈으로 누군가를 매수한 것처럼 보였지만 싸움은 할 줄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두 명이 도우려 했지만 펠이 말렸습니다... 아! 나무꾼이 끼어들 싸움이 아니라고 한 것이 기억납니다.”

“바스토니경, 성내의 나무꾼들의 행적도 다 알아보게. 간밤에 있던 일을 추궁해야 할 거야. 그리고 펠이 옷을 갈아입은 것이 확인되었네. 수문장 마크는 화려한 옷을 입은 소년과 함께 나갔다고 하더군. 옷의 구입처 역시 함께 알아봐야겠네. 펠의 일처리를 생각하면 별로 건질 것 없을 수도 있겠지만, 안하는 것 보단 나을 것 같군.”

“네, 알겠습니다.”

“에드, 자네 펠과 동행한 꼬마는 보지 못했나?”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에드는 생각나는 대로 답하기 시작했다.

“펠이 저를 죽이려는 순간 꼬마 놈이 펠을 말려서 살 수 있었습니다. 펠은 시간을 벌고 싶었을 텐데 아이의 말을 듣고 저를 죽이지 않은 것이 이상했습니다. 아이의 정체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더군요.”

“에드.”

“네 대공 전하.”

“아이에 대해서는 그 이상 신경 쓰지 말게나. 다른 이들이 데려올 걸세.”

“알겠습니다.”

“펠을 도운 나무꾼들이 확보되면 그들을 확인할 수 있겠나?”

“투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목소리는 기억합니다.”

“좋네. 그만 가보게.”

“네, 대공 전하.”

에드는 공손히 예를 올리고 집무실에서 나왔다. 그는 경비병에게 목발을 다시 받아 복도를 힘겹게 걸으며 은밀히 중얼거렸다.

“거짓말을 할 때는 사실을 섞어서 이야기하라고? 흥. 좋아. 억지로 초대된 놀이지만 일단은 어울려주겠어. 엿먹어봐라 사르곤.”

대공 집무실을 슬쩍 뒤돌아 본 에드는 잠시 뒤에는 다시 중얼거렸다.

“망할 레스터 새끼도.”


에스테와 나사크는 페어리우드로 향하는 가도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탄 말은 이스턴스케일보다 더 동쪽의 드넓은 초원의 땅에서 길러지는 것으로 키나 덩치는 서부왕국의 말보다 작은 편이었으나 지구력이 좋아 오랜 시간을 달릴 수 있었다.

“나사크, 얼마나 달리면 따라잡을 수 있을까?”

“저주받은 요정들의 숲이 나오려면 한참을 더 가야겠지만, 우리가 훨씬 오랫동안 달릴 수 있을 거야. 여자애는 말을 몰지 못할 테고 꼬마라도 두 명이 탄 말은 금방 지치지.”

“오후쯤이면 따라잡을 수 있겠군.”

어느 새,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고 있었다.

“큭큭. 게다가 서부 놈들 말은 자기들 주인들의 거기를 닮아서인지 크기만 크고 금방 풀이죽어버리잖아.”

“어머, 나사크, 그래도 때때로 쓸만한 놈들도 있다고.”

“쓸만한 게 말들인지 남자인지 궁금하군 그래.”

나사크는 키가 작은 편이지만 상당이 옆으로 퍼진 탄탄한 몸매로 서부왕국에서는 눈에 띄기 쉬운 이스턴스케일식 매듭으로 만들어진 자켓을 가리느라 두터운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전부터 궁금하게 또 하나 있는데 에스테.”

“뭔데?”

“샤리크는 너가 딴 남자들하고 자는 것을 왜 가만 놔두는 거지?”

“글쎄, 작년쯤에 내가 너한테 ‘해적의 빚’진 것 기억나나?”

해적의 빚은 목숨을 구해 준 동료에게 한 가지 부탁을 반드시 들어줘야 하는 고요의 바다 해적들의 불문율이었다.

“아아! 바다늑대 녀석들과 붙었던 때 말이군. 좋은 시절이었는데. 후후. 그놈들 우리가 노린 상선을 먼저 털었었지. 그때 참 즐거웠는데 말이야. 내가 한 일곱 여덟 명 정도 베었던가?”

“아홉이었어. 그 때 진 빚을 없애준다면 이야기 해 주지.”

“너무 싸게 먹히는 거 아닌가? 언젠가 너를 무인도에 데려가 세상에 없을 하룻밤을 요구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말이야.”

피잉! 날카로운 바람이 이나 싶더니 나사크의 콧등에 살짝 피가 맺혔다.

“그 다음 일은 생각 안하는 거야?”

“워우, 세상에 없을 하룻밤이 내 마지막 밤이 되는 것도 좋은 추억이겠군! 뭐, 하지만 배고픔을 아는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의 소중함도 아는 법이지. 자, 빚을 지워줄 테니 말해봐.”

“그게 말이지, 사르곤은 나랑 잔 적이 없어.”

에스테는 나사크를 향해 윙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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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9

  • 작성자
    Lv.1 일단은달려
    작성일
    15.03.26 09:39
    No. 1

    잘 봤습니다, 윙크~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7 Ceii
    작성일
    15.03.27 06:47
    No. 2

    감사합니다. 저도 윙크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택일
    작성일
    15.03.29 23:42
    No. 3

    잘 봤습니다 직장도 다니시고 애도 키우시느라 글쓰기가 힘드시겠네요
    건필하세요! 공모전 좋은 결과 있길 바라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7 Ceii
    작성일
    15.03.31 21:04
    No. 4

    감사합니다^^ 20만자 완주 하면 일단 다행인 것 같네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김종성
    작성일
    15.04.10 01:44
    No. 5

    이야기전개가 잔잔해서 참 좋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7 Ceii
    작성일
    15.04.10 01:48
    No. 6

    야심한 시각에 안주무시고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겨우겨우 한편 쓰고 여기저기 읽으러 돌아다니는 중이네요~! 초보작가 비평도 많이 해주셔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역전승
    작성일
    15.04.17 20:29
    No. 7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7 Ceii
    작성일
    15.04.17 20:46
    No. 8

    글 쓰기 시작하면서 정말 매 순간순간이 소중해지네요. 조만간에 서재에 다시 찾아뵈러 가렵니다. 일단 애들 밥먹이고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1 반자개
    작성일
    15.04.28 09:40
    No. 9

    이제 애기들 쑥쑥 컸겠습니다.
    벌써 열흘이 지났으니... 어릴 때는 하루에 1mm이상 크지 않나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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