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조휘 님의 서재입니다.

이산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조휘
작품등록일 :
2014.03.19 15:11
최근연재일 :
2014.04.25 10:01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87,688
추천수 :
1,675
글자수 :
34,866

작성
14.03.24 16:04
조회
8,216
추천
191
글자
10쪽

이산 7

DUMMY

채제공은 사도세자를 보필한 거의 유일한 충신으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을 때 그는 마침 부모의 3년 상을 치루는 중이었다.

당시 채제공에 대한 영조의 신임이 대단했기에 그가 만약 도성에 남아있었다면 뒤주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실제로 사도세자의 폐세자를 거의 결정한 상태에서 죽음을 무릅쓴 채제공의 간언덕분에 철회된 적이 있을 만큼 사도세자를 아꼈다. 지금은 사도세자의 아들인 세손을 홍봉한과 함께 홍인한, 김귀주, 정후겸, 정순왕후, 화완옹주 등에게서 보호하는 중이었다.

이산을 본 채제공은 극진한 예를 올렸다.

“신 호조판서 채제공이 세손저하를 뵈옵니다.”

“반갑소, 아니 오랜만이오.”

“무탈하신 모습을 보니 신은 참으로 기쁘옵니다.”

“호판도 건강한 거 같아 기쁘오. 가족은 잘 있소?”

“세손저하의 염려 덕분인지 모두 무탈하옵니다.”

안부를 주고받은 채제공은 영조를 만나기 위해 희정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채제공의 뒷모습을 보며 이산은 몇 년 전 병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 모습을 보는 듯하여 코끝이 시려왔다.

‘선입견일지 몰라도 저 분이라면 나를 도와줄 거 같구나.’

그러나 이산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도 홍봉한이 실각하는 바람에 채제공 혼자 고군분투하는 상황에서 그를 세자시강원에 데려올 수 없었다. 만약, 채제공이 빠져버리면 그를 비호해줄 수 있는 인물이 조정에 없었다.

이산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정순왕후와 혜빈궁을 찾아 문안인사를 드렸다. 같이 간 빈궁은 혜빈궁과 할 얘기가 있는지 궁에 남아 혼자 동궁에 돌아온 이산은 스승을 찾을 일에 골몰하였다.

그 시각, 채제공은 영조와 독대 중이었다.

“요즘 세손의 공부가 지지부진하니 경이 시강원을 맡아줘야겠네.”

“신이 말이옵니까?”

“요 며칠 고뿔에 걸려 몸이 많이 상했는지 서연에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하니 이래서야 어찌 과인이 3백년 종사를 세손에게 넘길 수 있겠는가. 그러니 호판이 세손의 공부를 도와줘야겠네.”

“신 채제공 명을 받드나이다.”

희정당을 나온 채제공은 동궁전으로 걸어갔다.

“저하, 호조판서 채제공대감이 들었사옵니다.”

정내관의 보고를 받은 이산은 깜짝 놀라 일어섰다.

‘채제공이 왜 왔지?’

그러나 지금은 의문보다 기쁨이 더 큰 게 사실이었다.

“얼른 안으로 뫼셔라.”

“예, 저하.”

정내관이 문을 열자 오전에 본 채제공이 들어와 절을 올렸다.

“또 뵙게 되었사옵니다, 저하.”

“어서 앉으시오.”

“황공하옵니다.”

채제공이 자리에 앉자 이산은 정내관에게 슬쩍 눈짓을 보냈다. 눈치 빠르기에 있어서는 오상궁 못지않은 정내관은 궁녀와 내관을 동궁전과 멀리 떨어트려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하게 했다.

내관과 궁녀의 그림자가 사라지자 채제공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시옵니까?”

이산은 이마를 짚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대감이니 하는 이야기지만……, 나에게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소.”

“무엇이옵니까?”

“놀라지 마시오. 나는……, 나는 모든 기억을 잃었소.”

흠칫한 채제공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기억나는 게 전혀 없다는 말이옵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렇소.”

채제공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누구이옵니까?”

“오상궁만 아오.”

“그녀를 믿으십니까?”

이산은 솔직히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소. 하지만 그녀에게 나쁜 의도는 없는 거 같았소.”

어지러운지 이마를 짚은 채제공이 고개를 들었다.

“오상궁의 뒤는 신이 알아보겠사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발설해서는 안 되옵니다. 동궁은 복마전(伏魔殿)과 다름없어 정적의 사주를 받은 궁인이 도처에 있사옵니다.”

“경의 말대로 하리다.”

그 날 밤, 이산은 채제공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먼저 받기 시작했다. 한자를 시작으로 경전, 궁 안의 예절 등 폭넓은 교육이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배우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 시간이 필요했다.

채제공은 먼저 조정이 돌아가는 사정을 이야기해주었다.

“지금 조정은 노론이 장악했사옵니다.”

이산은 물론 노론과 소론을 들어본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붕당의 분화가 워낙 자주 있어와 정확히 어떤 당파인지는 알지 못했다.

침착한 채제공은 훈구파를 제거한 사림(士林)이 정권을 잡은 후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분리된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주요한 원인은 외척이던 심의겸(沈義謙)과 신진관료였던 김효원(金孝元)의 갈등에서 비롯되었사옵니다. 이조정랑(吏曹正郞)은 벼슬이 낮지만 인사권을 쥐고 있는 아주 중요한 자리인데 심의겸의 아우 심충겸(沈忠謙)과 신진관료였던 김효원이 이 자리를 두고 다투는 와중에 동인과 서인으로 분당되었사옵니다. 당시 김효원의 집은 동쪽에 있고 심의겸의 집은 서쪽에 있었기에 동인과 서인으로 부르게 된 것이옵니다.”

“어떤 사람이 당파의 주축을 이루었소?”

“동인은 선조대왕시절 정계에 진출한 신진관료가 주축이었사옵니다. 그러나 서인은 기존에 있던 사림출신 관료와 살아남은 훈구파가 합류해 만든 당파이옵니다. 출생부터 다르기에 그들의 주장하는바 또한 크게 달랐사옵니다. 동인은 정계에서 밀려난 훈구파를 강하게 처벌하는 강경책을 주로 편 반면, 서인은 훈구파와 타협하는 온건론을 주장하였기에 정쟁이 끊이지 않았사옵니다.”

차를 마셔 목을 축인 채제공이 말을 이어갔다.

“중재하기 위해 노력하던 이이(李珥)가 서인을 자처하며 동인은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이황(李滉)과 조식(曹植),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 주를 이루었사옵니다. 반대로 서인은 경기, 충청, 전라도를 기반으로 하는 기호학파(畿湖學派)가 주를 이루었사옵니다.”

“동인과 서인 역시 분당을 거쳤다고 들었소.”

“맞사옵니다. 동인은 서인 정철(鄭澈)의 건저의사건(建儲議事件)을 계기로 정철을 극형에 처해야한다는 강경파와 정철의 처벌에 온건한 입장을 보이던 온건파로 갈라져 강경파는 북인(北人), 온건파는 남인(南人)으로 분당했사옵니다. 주로 조식의 문인이 북인의 주를 이루었던 반면, 남인은 이황의 문인이 주를 이루어 학통이 갈리며 당론 또한 갈린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동인이 먼저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진 것이오?”

채제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사옵니다. 건저의사건을 계기로 동인은 북인과 남인으로 분당되었사옵니다. 그 후 북인은 광해군시절에 정권을 잡았으나 인조대왕의 반정으로 멸문지화당해 그 맥이 거의 끊어진 형편이옵니다.”

“그럼 서인과 동인의 한 당파이던 남인만 남은 것이오?”

“맞사옵니다. 서인과 남인은 서로 견제하며 정권을 번갈아 차지하던 중 당시 남인의 영수이던 영의정 허적(許積)의 유악남용사건(油幄濫用事件)으로 남인이 실각하는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이 일어나 큰 피해를 입은 남인은 조정의 주류에서 밀려났사옵니다.”

“유악남용사건이 무엇이오?”

“허적이 집안의 잔칫날에 왕실에서 사용하던 기름천막을 몰래 가져가 유용한 사건으로 이에 분노한 숙종대왕이 허적을 비롯한 남인을 숙청한 직후 서인을 대거 등용한 사건을 가리키옵니다.”

“남인이 밀려났으면 이제 서인의 세상이 된 게 아니오?”

채제공은 고개를 저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옵니다. 남인을 쫓아낸 서인은 잠시 정권을 장악하는 듯했으나 쫓겨난 남인을 처벌하는 수위를 놓고 다시 갈라졌사옵니다. 남인을 강하게 처벌할 것을 주장한 노장파는 송시열(宋時烈)을 중심으로 노론(老論)을 형성했사옵니다. 또, 온건론을 주장한 윤증(尹拯) 등 소장파는 소론(少論)을 형성했사옵니다. 한때 사제관계였던 송시열과 윤증이 노론과 소론의 영수가 되어 적으로 만난 셈이었사옵니다. 물론, 송시열과 윤증의 사이가 벌어진 건 회니시비(懷尼是非)가 더 큰 이유였지만 결정적으로 경신대출척으로 쫓겨난 남인의 처벌수위를 놓고 당론을 달리했던 게 가장 크옵니다. 송시열 등 노장파는 남인을 강하게 처벌하자 주장한 반면, 윤증 등 소장파는 타협을 주장했습니다.”

남인이 몰락한 후 노론과 소론은 지금까지 치열한 정쟁을 펼쳤다.

채제공의 설명은 물 흐르듯 이어졌다.

“지금은 저하의 선친인 사도세자가 승하하신 일로 인해 두 당파로 갈라져있사옵니다. 사도세자저하가 승하하신 일을 인과응보라 주장한 쪽을 벽파(僻派)라 한 반면, 사도세자저하를 동정하는 쪽을 시파(時派)라 하옵니다. 벽파는 노론이 주를 이루었으나 시파에는 노론과 소론, 그리고 남인이 모두 포함되어 있사옵니다.”

벽파와 시파가 문서에 등장한 시기는 정조의 치세에서였다. 그러나 조정과 대궐에서는 이미 그 전에 시파와 벽파가 갈라져있었다.

긴 이야기가 끝나자 이산은 고개를 들어 채제공을 보았다. 채제공은 얼마 남지 않은 남인 중 한 명으로 시파를 이끄는 영수였다.

자정이 지나서야 일어난 채제공이 진심을 담아 당부했다.

“워낙 영명하던 분이었으니 조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정적에게 꼬투리가 잡힐 만한 일은 미리 피하는 게 좋사옵니다. 대궐에서 저하의 즉위를 바라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옵니다.”

“명심하겠소.”

고개를 끄덕인 이산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기억을 잃은 사실을 발각당해 폐세손이 되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쟁(政爭)의 여파에 휘말려 목숨을 잃는 상황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 출간으로 인해 삭제합니다. +7 14.04.25 2,108 23 1쪽
10 이산 10 +2 14.03.27 7,757 164 6쪽
9 이산 9 +7 14.03.26 6,736 160 10쪽
8 이산 8 +3 14.03.25 6,428 148 9쪽
» 이산 7 +2 14.03.24 8,217 191 10쪽
6 이산 6 +6 14.03.21 8,246 156 8쪽
5 이산 5 +2 14.03.21 7,844 151 8쪽
4 이산 4 +4 14.03.20 8,724 157 9쪽
3 이산 3 +4 14.03.20 10,178 172 10쪽
2 이산 2 +3 14.03.19 10,356 189 9쪽
1 이산 1 +6 14.03.19 11,095 164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