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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 님의 서재입니다.

이산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조휘
작품등록일 :
2014.03.19 15:11
최근연재일 :
2014.04.25 10:01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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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690
추천수 :
1,675
글자수 :
34,866

작성
14.03.1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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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이산 2

DUMMY

1장. 두 명의 이산(李祘)


이산은 버스에서 내리기 싫었다. 체험학습은 좋았지만 장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몇몇 아이는 벌써 그를 보며 키득대는 듯했다.

끼익!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몸이 앞으로 쏠렸다. 김이 서린 창문을 닦은 이산은 밖을 내다보았다. 신기하게 생긴 성문이 그를 맞이했다.

작은 문이 있고 그 뒤에 큰 문이 있었다. 작은 문과 큰 문은 성벽으로 이어져 큰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문을 지나야했다.

마이크를 잡은 국사선생님이 설명했다.

“지금 보이는 문이 팔달문(八達門)이다. 수원화성(水原華城)의 남문이지.”

반 아이들을 둘러보던 국사선생님의 시선이 이산 앞에서 멈추었다.

“수원화성을 누가 세웠는지 말해볼 사람?”

“저요!”

장난이 심한 임준호(任俊豪)가 손을 번쩍 들었다.

국사선생님이 웃으며 물었다.

“그래 준호가 말해봐라.”

“우리 반 32번 이산이요!”

“와하하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버스 안을 가득 매웠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때는 놀림을 받는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지 않는 날이 더 적었다.

‘이게 다 드라마 때문이야!’

이상은 창피해서 얼굴을 숙이며 몇 년 전 방송했던 드라마를 욕했다. 정조(正祖)의 본명을 아는 사람은 원래 많지 않았으나 드라마를 방영한 후에는 정조라는 존호만큼 본명 역시 유명세를 탔다.

“급우를 놀리면 못쓴다.”

임준호에게 주의를 준 국사선생님이 버스 문을 열었다.

“자, 이제 수원화성을 본격적으로 둘러보자.”

아이들을 대동한 국사선생님은 팔달문 안으로 들어가며 건물과 성벽, 성루에 대해 설명했다. 서장대(西將臺)와 공심돈(空心墩) 등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았으나 이산의 눈과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오늘 이 체험학습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중이었다.

건물을 설명할 때마다 국사선생님은 짓궂게도 그를 쳐다보았으며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체험학습이 아니라, 공포학습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기분 좋은 관심은 아니었다.

사실, 이산은 화성에 벌써 여섯 번이나 와봤기에 관심이 별로 가지 않았다. 정조의 본명이 이산임을 안 그는 자라며 정조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생겨 건릉(健陵)과 화성에 몇 차례 간 적 있었다.

물론, 정조의 일대기 역시 읽은 적이 있었다.

체험학습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여민각(與民閣)에 도착했을 때였다.

“이 여민각은 백성에게 베푸는 일이야말로 임금의 도리라는 의미에서 만든 종각(鐘閣)이다. 원래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소실되었는데 얼마 전 복원을 마쳐 타종행사를 진행하고 있지.”

아이들과 조금 떨어져 걸어가던 이산은 반짝이는 빛을 발견했다.

‘어, 웬 빛이지?’

신기한 마음에 다가서는 순간.

빛이 종각에 있는 문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뭐지?’

이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국사선생님과 반 아이들은 종각 반대편에 있었다. 그리고 화성을 관리하는 분 역시 다른 방향에 있었다.

심호흡을 한 이산은 문고리를 당겨보았다.

다행히 닫혀 있는 문은 아니었다.

‘신기한데.’

안을 둘러보던 이산은 환한 빛이 머리 위에 떠있는 모습을 보며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 순간 새하얀 빛이 그를 온통 휘감았다.

***

“저하, 저하.”

낮게 소곤거리는 소리였다.

이산은 꿈결에 돌아누우며 대답했다.

“5분만 더 잘게.”

“저하, 일어나셔야하옵니다.”

이산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저하라니? 엄마가 아닌가?’

이산이 침대에서 꾸물거릴 때마다 엄마는 볼기짝을 사정없이 후려치며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볼기짝을 치지 않았다. 그리고 소곤거리는 목소리도 엄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일어난 이산은 눈을 정신없이 깜빡였다. 두꺼운 요와 금색 수를 놓은 두꺼운 이불 사이에 누워있었다. 더구나 침대도 보이지 않았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이산은 깜짝 놀라 숨이 멎을 뻔했다. 머리를 곱게 빗어 올린 아주머니 한 분이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는 비취색 한복 저고리에 남색 한복 치마를 입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쩍 벌린 이산은 그가 있는 방 안을 정신없이 둘러보았다. 이불 옆에는 병풍이 보였다. 그리고 다리가 있는 쪽에는 창문이 있었다. 창문 아래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장식장이 있었는데 그 위에 이름 모를 꽃이 화병에 꽂혀 있었다.

주저앉은 이산은 지금 상황을 이해해보려 애썼다. 그러나 머리가 지끈거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금방 되지 않았다. 한참만에야 반 아이들과 수원화성에서 체험학습 중이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빛, 그래 빛이었어.’

이산은 빛을 보고 여민각의 문을 열었다는 사실이 새로 떠올랐다.

‘대체 그 빛이 뭐였기에 내가 이런 곳에 있는 거지?’

이산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며 젊은 여자 두 명이 대야에 물을 데워 들어왔다. 그를 깨운 아주머니와 달리 두 여인은 옥색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착용했다.

어느새 이불을 치운 아주머니가 대야를 가져와 이산 앞에 놓았다.

“씻으시지요.”

아주머니의 말은 그가 모르는 지역의 사투리처럼 알아듣기 어려웠다. 혼란스러웠던 이산은 아주머니를 밀치며 달려가 문을 열었다.

복도 앞에도 한복을 입은 여자 서너 명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잠시 멈칫한 이산은 그들을 재빨리 지나 복도와 연결된 바깥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빛이 새어 들어오는 큰 문이 보였다.

이산은 주저 없이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러나 차라리 보지 않는 게 좋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 사극에서 보던 복장과 비슷한 복장을 한 남자와 여자, 군인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를 본 사람들은 허리를 숙이며 공경의 자세를 취했다.

당황한 이산은 문을 닫은 후 방으로 돌아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음 보았던 아주머니가 당황한 시선으로 쳐다보았지만 개의치 않은 이산은 장식장 위에 있는 거울에 얼굴을 먼저 비춰보았다.

‘맙소사.’

한국 중앙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자기 얼굴이 분명했다.

그러나 머리는 상투를 틀어 금비녀로 묶었다. 또, 옷은 자주 입던 잠옷이 아니라, 비단으로 만든 저고리와 한복바지였던 것이다.

기억은 이산의 기억이었다. 얼굴과 몸도 이산의 얼굴과 몸이었다. 그러나 그 외에 모든 환경이 변했다. 잠에서 깬 곳은 궁궐처럼 보이는 거대한 한옥이었으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사극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복장을 한 채, 불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털썩 주저앉은 이산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를 걱정하는 기색으로 쳐다보던 아주머니가 물었다.

“어디 편찮은 데가 있으시옵니까?”

“여, 여기가 어디에요?”

이산의 말을 들으며 눈을 동그랗게 뜬 아주머니의 표정이 여러 차례 변했다. 잠시 후, 고개를 돌린 아주머니가 당황한 표정으로 서있는 젊은 여자 두 명을 밖으로 내보내더니 다시 한 번 물었다.

“기억이……. 기억이 나지 않으시옵니까?”

“그, 그래요. 여기는 어딘가요? 그리고 대체 무슨 상황이죠?”

목소리를 낮춘 아주머니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대답했다.

“여기는 창덕궁(昌德宮)에 있는 동궁(東宮)이옵니다.”

“그럼 나, 나는 대체 누구죠?”

“저하, 정말 기억이 나지 않으시옵니까?”

아주머니가 울먹거리며 묻자 이산은 당황했다.

“왜, 왜 그래요? 그리고 저하라니 내가 왜 저하에요?”

“저하는 상감마마의 적통을 이은 이 나라의 세손(世孫)이시옵니다.”

이산은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세손? 세손이면 세자의 아들이란 말인가?’

이산은 급히 물었다.

“세자는 안 계신가요?”

“그, 그건…….”

뭘 잘못 물었는지 아주머니는 머리를 방바닥에 찧으며 벌벌 떨었다.

오히려 이산이 놀라 물었다.

“왜, 왜 그래요? 내가 뭘 잘못 물었어요?”

“저하, 아뢰기 송구하오나 사도세자(思悼世子)저하는 몇 년 전…….”

사도세자 네 마디면 충분했다.

‘사도세자의 아들이면 내가 정조라는 말이잖아.’

정조!

조선의 스물두 번째 왕으로 영조대왕의 손자이며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노론의 지독한 견제와 감시 속에 즉위한 후 조선 후기 중흥을 이끈 명군이며 세종대왕과 더불어 대왕의 칭호를 받았다.

이산은 정조가 낯설지 않았다. 정조의 본명은 이산으로 이산의 본명과 같았다. 그리고 이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자기를 세손이라 하는 걸 보면 얼굴과 몸마저 세손의 얼굴과 몸인 모양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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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99 아우에이
    작성일
    14.03.20 14:35
    No. 1

    리메인가요?? 비슷한 글을 전에 쓰셧던거 같은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일생동안
    작성일
    14.04.14 03:42
    No. 2

    암살에 수없이 시달렸던 정조라면 시대배경 또한 그랬고 작가님이 항상 등장 시키는 음모세력이 활개치기 좋겠군요.개인적으로 작가님 글의 단점은 용두사미격인 결말(출판사와의 사정도 있겠지만 좀 급작스럽고 허무하게 끝나는 경향이...)과 음모세력의 지나치게 강한 조직력과 단결력,그리고 집요하면서 잡초같은 생명력으로 결말에서도 결국은 해결되지 않아 독자를 불만족스럽게 만드는데 있지 않나 싶더군요.이번글은 어떤글이 될지 기대하면서 보겠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61 선율
    작성일
    14.04.17 11:43
    No. 3

    잘 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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