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조휘 님의 서재입니다.

이산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조휘
작품등록일 :
2014.03.19 15:11
최근연재일 :
2014.04.25 10:01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87,683
추천수 :
1,675
글자수 :
34,866

작성
14.03.21 15:37
조회
8,245
추천
156
글자
8쪽

이산 6

DUMMY

2장. 쉽지 않은 적응


이산은 얼른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오, 오상궁은……. 오상궁은 어디 있느냐?”

“번이 끝나 쉬러갔사옵니다.”

이산은 속으로 아차 싶었다.

‘하필 이런 때에 자리를 비우다니.’

나인이 번을 서는 상궁을 불렀는지 처음 보는 상궁이 들어와 물었다.

“필요한 게 있사옵니까?”

“화,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

“화장실이 무엇이옵니까?”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배가 아파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질 무렵. 싸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선 이산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가, 가서 매우틀을 가져오너라.”

그제야 상궁은 얼른 나인에게 매우틀을 가져오라 하였다. 매우는 궁에서 대변이나, 소변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먹었으면 언젠가 싸는 게 사람의 생리이지만 왕족이라는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여염집처럼 똥과 오줌이라 부르지 못하는 대신, 매우라 불렀다.

나인이 가져온 매우틀은 매우 간단한 구조였다. 나무로 만든 이동식 변기였다. 그리고 변기 안에 구리로 만든 그릇이 들어 있었다.

그릇 바닥에는 잘게 썬 여물을 미리 깔아놓았는데 그릇에 용변을 보면 그릇을 따로 빼내 처리하는 식이었다. 바닥에 여물을 깔아놓은 이유는 용변을 볼 때 엉덩이에 튀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거의 싸기 직전이던 이산은 상궁과 나인에게 빨리 나가라 손짓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상궁과 나인은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 나가라니까.”

한 번 더 말해보았지만 상궁과 나인은 묵묵부답으로 장승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더 참다가는 옷에 쌀지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찾아온 이산은 하는 수 없이 매우틀 위에 앉아 볼일을 보았다.

창피함에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옷에 싸는 불상사는 어떻게든 피해야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색다른 경험에 어떻게 볼 일을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곤란한 상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볼 일을 본 후 닦으려는데 닦을 만한 도구가 없는 것이다.

“화, 화장지를 다오.”

“화장지가 무엇이옵니까?”

상궁의 물음에 이산은 얼굴이 벌게져 물었다.

“닦. 닦을 게 없는가?”

“쇤네가 닦아드리겠사옵니다.”

명주수건을 든 상궁이 엉덩이 쪽으로 오자 이산은 화들짝 놀랐다.

“이, 이리 주게. 내가 닦겠네.”

“왕실의 법도가 그렇지 않사옵니다.”

“잔말 말고 어서 주게.”

이산이 강하게 나오자 상궁도 방법이 없는지 명주수건을 건네주었다. 상궁과 나인을 밖으로 내보낸 이산은 얼른 명주수건으로 닦았다. 뒤처리 역시 상궁과 나인 몫이었다. 상궁과 나인은 다시 그릇 위에 잘게 썬 여물을 뿌린 후 매우틀을 회수해 돌아갔다.

‘휴, 왕족도 할 만한 게 못되는군.’

지금 시대를 사는 왕족에게는 당연한 일로 보이겠지만 21세기에 살던 이산에게는 그야말로 다시 하기 싫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다음 날 아침, 영조에게 문안 인사드린 이산은 밖으로 나오던 중 우연찮게 지나가던 대신 무리와 부딪쳤다. 아마도 영조에게 아침 일찍 부름을 받아 편전이 있는 선정전을 찾아가던 길로 보였다.

누가 누군지 모르는 이산을 위해 오상궁이 다가와 속삭였다.

“맨 앞에 있는 대감이 이조판서(吏曹判書) 홍인한(洪麟漢), 그 뒤에 있는 대감이 도승지(都承旨) 김귀주(金龜柱)이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대감이 호조참판(戶曹參判) 정후겸(鄭厚謙)이옵니다.”

이산은 오상궁의 설명을 들으며 세 사람의 외형을 먼저 살펴보았다.

이조판서 홍인한은 세손의 외종조부로 홍봉한의 이복동생이었다. 그러나 세손을 모함해 제거하려했기에 사이가 남보다 못했다.

홍인한은 마른 체격에 눈꼬리가 길게 찢어져 강퍅한 인상을 주었다. 그의 실체를 몰랐다고 해도 가까이 하기 어려운 인상이었다.

김귀주는 정순왕후의 친정오라비였는데 사사건건 세손을 못살게 구는 찰거머리였다. 나이는 삼십대 초반이었으며 단단한 체구였다. 또, 마치 자기 집에 온 듯 걸음과 행동에 여유가 넘쳐흘렀다.

이산의 시선이 김귀주를 지나 정후겸에게 향했다.

호조참판 정후겸은 상당히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정후겸은 원래 서인(庶人)이었으나 영조의 총애를 받는 화완옹주(和緩翁主)의 양자로 간 후 양모처럼 영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자였다.

그 총애가 어느 정도였냐면 약관을 갓 넘은 나이에 벼슬이 호초참판에 이를 지경이었다. 외모는 이목구비가 시원하여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으나 그 미소 속에 감춰둔 칼을 알기에 속지 않았다.

홍인한, 김귀주, 정후겸 이 세 사람은 세손의 가장 큰 정적으로 세손의 즉위를 누구보다 반대하는 자들이었다. 앞으로 즉위까지 얼마의 시간이 그에게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이들의 방해공작을 뚫지 못하면 즉위는커녕,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세손은 이들의 방해를 뚫고 즉위해 그들을 숙청하는데 성공했지만 이산은 세손이 아니었다. 세손에 비해 경험은 물론, 연륜마저 떨어졌기에 그들의 방해를 이겨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이산을 발견한 세 사람은 먼저 인사를 올렸다.

“세손저하, 오랜만이옵니다.”

“수고가 많소.”

이산이 답례하자 홍인한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요즘 도성 내에 고뿔이 유행이라 들었는데 저하는 괜찮으십니까?”

이산은 흠칫했다.

‘김귀주가 동궁을 감시중이라는 오상궁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이산은 침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고뿔이 사람 가려가며 걸리는 게 아닐 테니 이판도 조심하시오.”

“흥.”

살짝 코웃음 친 홍인한은 이내 몸을 돌려 그 앞을 휘적휘적 지나갔다. 그가 세손의 외종조부이며 현 이조판서 지위에 있을지라도 상대는 나라의 국본인 세손이었다. 그런데 전혀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니 세손이 왜 그를 멀리했는지 알듯하였다.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

홍인한이 지나가며 빈자리를 김귀주가 새로 채웠다.

그는 정순왕후의 오라비로 홍봉한과 함께 조정을 둘로 양분하는 남당의 영수였다. 김귀주가 영수로 있는 남당은 특히 세손의 외조부인 홍봉한을 탄핵하는데 총력을 기울여 결국 홍봉한은 김귀주일당의 지시를 받은 한유(韓鍮)에게 탄핵당해 실각한 후였다.

“그럼 신은 바빠서 이만.”

고개를 살짝 끄덕인 김귀주가 그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게 싫은지 서둘러 걸음을 옮기자 마지막으로 호조참판 정후겸이 걸어왔다.

정후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공손히 물었다.

“그간 별래 무양하셨습니까?”

“별일 없었소.”

“세손저하가 무양하셨다니 나라의 경사입니다.”

날씨 얘기며 영조의 건강얘기 등을 하던 정후겸은 계속 말을 걸었다.

한참만에야 정후겸이 무언가를 알아내려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산이 입을 다물자 정후겸은 살짝 미소를 흘리며 이내 돌아갔다.

오상궁이 다가와 속삭였다.

“정후겸은 웃음 속에 칼을 감춘 자이옵니다. 방금도 동궁을 감시하는 자를 통해 저하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음을 안 정후겸이 떠보려 했던 것이옵니다. 너무 늦지 않게 깨달으시어 다행이옵니다.”

이산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정말 궁은 방심할 수 없는 곳이구나.’

그때, 오상궁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전하, 저 분이 채제공대감이옵니다.”

오상궁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리는 순간, 쉰쯤 보이는 대신이 걸어왔다. 인자한 얼굴에 눈빛이 선해 그를 보자 마음이 편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 출간으로 인해 삭제합니다. +7 14.04.25 2,108 23 1쪽
10 이산 10 +2 14.03.27 7,756 164 6쪽
9 이산 9 +7 14.03.26 6,736 160 10쪽
8 이산 8 +3 14.03.25 6,427 148 9쪽
7 이산 7 +2 14.03.24 8,216 191 10쪽
» 이산 6 +6 14.03.21 8,246 156 8쪽
5 이산 5 +2 14.03.21 7,843 151 8쪽
4 이산 4 +4 14.03.20 8,724 157 9쪽
3 이산 3 +4 14.03.20 10,178 172 10쪽
2 이산 2 +3 14.03.19 10,356 189 9쪽
1 이산 1 +6 14.03.19 11,094 164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