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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 님의 서재입니다.

이산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조휘
작품등록일 :
2014.03.19 15:11
최근연재일 :
2014.04.25 10:01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87,685
추천수 :
1,675
글자수 :
34,866

작성
14.03.21 15:36
조회
7,843
추천
151
글자
8쪽

이산 5

DUMMY

대궐에서 사는 동안, 눈치가 빨라진 오상궁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쇤네가 비록 홍씨 집안과 먼 친척인 건 사실이오나 북당은 아니오니 염려하지 마옵소서. 정내관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정내관은 저하가 기억을 상실하기 전에 가장 총애하던 내관이었사옵니다.”

오상궁은 이산이 전혀 다른 사람임을 눈치 채지 못하는 듯했다. 얼굴과 몸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니 그녀 입장에서 보면 이산은 그저 그 동안의 기억을 잃은 가련한 세손일 뿐이었다. 그리고 세손이 세손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는 날에는 오상궁과 정내관 또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우니 그를 최대한 도우려는 듯했다.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정내관이 알고 있어요?”

오상궁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옵니다. 하오니 지시만 내리시옵소서.”

“알았어요.”

“그럼 쇤네가 정내관을 불러오겠나이다.”

밖으로 나간 오상궁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내관을 하나 데려왔다. 하얀 얼굴에 팔다리가 길쭉해 내관이 아니라, 유생으로 보였다.

“찾으셨사옵니까?”

미리 준비한 이산은 최대한 근엄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내가 지금부터 말한 사람을 이조에 찾아가 수소문해보아라. 다른 사람이 알면 좋을 게 없으니 은밀히 해야 한다. 알아들었느냐?”

“예, 저하. 성심을 다해 수행하겠나이다.”

“좋다. 어서 가봐라.”

정내관이 떠나자 이산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오상궁이 급히 주전자의 물을 따라 주며 칭찬했다.

“아주 잘 하셨사옵니다. 앞으로 쇤네가 왕실의 법도와 궁중예절을 가르쳐드리올 터이니 빨리 몸에 익히셔야하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당의 탄핵을 받아 저하의 신상에 위해가 갈지 모르옵니다.”

이산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상궁 말대로 빨리 세손이라는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면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그러했듯 정적의 공격에 무사하기 어려웠다.

이산이 오상궁과 대화를 나눌 때 정내관이 돌아왔다.

“찾아보라하신 홍국영과 정약용은 이조 명부에 없었사옵니다. 물론, 이미 아시겠으나 체재공대감은 현 호조판서(戶曹判書)이옵니다.”

“물러가라. 그리고 오늘 일은 함구해야할 것이다.”

“여부가 있사옵니까.”

정내관이 물러가자 이산은 다시 목소리를 낮춰 오상궁에게 물었다.

“체재공대감은 호조판서인데 나를 도와줄 여력이 있을까요?”

“없을 듯하옵니다. 더구나 체재공대감은 목숨 걸고 사도세자저하를 보필한 중신이어서 사방에 적이 있사옵니다. 만약, 체재공대감이 동궁전에 자주 출입하게 되면 의심을 받을 게 분명하옵니다.”

이산은 고개를 저었다.

“어렵다는 말이군요.”

“그렇사옵니다.”

이산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럼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 건가요?”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스승님 중에 골라보는 건 어떻사옵니까?”

이산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어 오늘 서연에 참석하지 않은 사실이 떠올랐다. 임금이 공부하는 자리를 경연(經筵)이라 하는데 경연처럼 세자와 세손이 공부하는 자리를 서연(書筵)이라 한다.

아침에 하는 서연은 조강(朝講), 저녁에 하는 서연은 석강(夕講)이라 불렀다. 심지어 경연에 매우 애착을 보인 세종대왕의 경우에는 하루 세 번 경연하는 날마저 있어 신하들이 곤혹스러워했다.

정사에 쫓기는 임금보다는 임금이 되기 위해 오로지 공부에 전념해야하는 세자와 세손의 경우에는 서연이 거의 매일 이루어졌다.

또, 그 참석률이나, 서연을 통해 배우는 경전의 목록이 매일 임금에게 전해지어 게을리 하거나, 진도가 느릴 때는 질책을 받았다.

어제와 오늘, 이틀이나 감기를 핑계로 빠졌으니 내일은 반드시 서연에 나가 공부를 해야 했다. 다음 날, 이산은 빈궁과 함께 영조, 정순왕후, 혜빈궁에게 문안인사를 올렸다. 한 번 해본 일이어 그런지 어제와는 다르게 실수 없이 문안인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산은 빈궁과 동궁에 돌아와 같이 아침을 들었다.

영조는 검소함을 평생 미덕으로 삼았다. 하여 세손이라도 밥과 찬 몇 가지가 전부였다. 더구나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은 음식은 이산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자극적인 조미료에 길들여져 있는 입맛에는 어떤 음식은 너무 짜고 어떤 건 너무 싱거웠다.

수저를 내려놓은 이산을 보며 빈궁이 걱정스레 물었다.

“입맛이 없으십니까?”

“아니오. 나는 많이 먹었으니 빈궁은 마저 드시오.”

“신첩도 다 먹었사옵니다. 오상궁, 그만 상을 내가게.”

“예, 빈궁마마.”

이산은 나이가 그녀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오상궁에게 자연스레 지시하는 빈궁이 대단해보였다. 아직 현대사회의 규범에 묶여있는 이산은 왠지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렇게 하지 못했다.

빈궁은 차를 마시며 이산의 말벗을 해주었다. 그러나 말을 많이 하면 들킬 가능성이 높아 ‘그렇소.’나, ‘아니오.’ 두 마디만 하였다.

빈궁이 돌아간 후 이산은 서연이 열리는 성정각(誠正閣)을 찾았다. 성정각은 동궁의 중추로 세손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전각이었다.

오상궁의 말에 따르면 지독한 공부벌레인 세손은 이 성정각과 더불어 개인도서실로 사용하는 개유와와 열고관을 매일 방문했다.

동궁 내관 중 하나인 조내관(趙內官)이 성정각에 나아가 고하였다.

“세손저하 납시오!”

올해 마흔 살인 조내관은 동궁전을 맡은 내관 중 가장 높은 위치인 상호(尙弧)를 맡고 있으며 20여 명의 장번내관(長番內官)을 관리했다. 장번내관은 출입하는 게 아니라, 붙박이처럼 계속 남아 일을 하는 내관을 말했다. 장번내관 외에 출입내관(出入內官)이 따로 있어 동궁에 딸린 내관의 수만 해도 수십 명에 이르렀다.

이산은 조내관에 대해 들은 말이 있어 그를 멀리했다. 조내관은 정순왕후가 심어놓은 내관으로 그가 실수하기를 기다리는 자였다. 자칫 실수하는 날에는 정순왕후의 귀에 바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쨌든 조내관이 고하자 성정각 문이 열리며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옛날그림에서 보던 서당과 닮았으나 다른 점이라면 학생이 상석에 앉으며 나이 지긋한 중신은 아랫자리에 앉는다는 거였다.

세자를 교육하는 세자시강원은 규모가 큰 기관이어서 가장 높은 직위인 세자시강원사(世子侍講院師)를 영의정이 겸임했다. 그처럼 조정의 주요 대신이 시강원 벼슬을 겸임하는 경우가 많아 조선이 얼마나 후계자 양성에 공을 들였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산이 상석에 앉자 두 손을 모은 채 공손히 서있던 대신 두 명이 자리에 앉았다 오상궁에게 미리 교육받기로는 오십대로 보이는 꼬장꼬장한 인상의 대신이 김종수(金鍾秀)였다. 또, 김종수보다 대여섯 살 많아 보이는 그 옆의 대신이 서명응(徐命膺)이었다.

당연히 김종수와 서명응은 현재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들이었다. 그러나 김종수는 원시유학의 대가인 반면, 서명응은 막 태동하기 시작한 실학을 비롯해 폭넓은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김종수와 서명응은 이내 그에게 어려운 경전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자를 모르는 이산에게 경전은 더더욱 모를 소리였다

김종수와 서명응은 이산의 진도를 확인할 목적으로 어려운 문구를 뽑아 질문을 던졌으나 이산은 오상궁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목이 아파 오래 말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어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지루한 서연은 저녁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파김치가 된 이산은 허기진 배를 채울 목적으로 저녁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그 날 밤, 정조로 살아야한다는 불안감에 잠을 쉬이 이루지 못하던 이산은 배에서 꾸르륵하는 소리를 들었다.

‘저녁에 먹은 게 체했나?’

아픈 배를 부여잡으며 문으로 걸어간 이산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게 있느냐?”

나인 하나가 문 밖에서 물었다.

“부르셨사옵니까?”

“화장실이 어디냐?”

“화, 화장실이 무엇이옵니까?”

당황한 나인의 목소리에 이산은 장이 더 꼬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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