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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라구.B.P 님의 서재입니다.

경제왕 연산군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공모전참가작

라구.B.P
작품등록일 :
2024.05.08 21:07
최근연재일 :
2024.06.28 21:00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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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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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50
글자수 :
461,568

작성
24.05.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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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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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
글자
20쪽

용팔이 2

DUMMY

"오오오!"


박경식이 머무르던 사주인의 집이 갑자기 진품명품 쇼 분위기가 되었다.


비단에 눈독을 들이는 장사꾼들 사이에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건 진 별감 뿐이었다.


'...나주에서 살면서 전주가 이렇게 좋은 비단이 난다는 말은 한번도 못 들었는데?'


물론 의문을 품는다고 해도 이걸로 뭔가 알 수 있는 힌트가 나오지는 않는다. 진 별감이 의문에 파고들기 전에 방의 상인들이 다가와서 '이 좌수' 에게 말을 걸었다.


"이 비단, 우리에게 파시오. 값은 후하게 치뤄주겠소."


"납공을 위해 가져온 것인데 어찌 그러겠는가?"


"방금 저 이가 설명하지 않았소? 전주에서 막 올라와서 서울 물정을 모르는 모양인데, 그리 고집 부리고 충민인척 해봐도 각사이노들이 농간을 부려 점퇴 당할 뿐이오."


"내가 이걸 그대에게 팔면 경주인이 납공을 못한 책임을 지고 경을 칠텐데."


"경주인이 알아서 사든, 사주인이 알아서 사든 해서 납하겠지."


"그들이 산 값은 우리 고을로 또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이 순박하고 답답한 시골 청년을 보고 상인이 한숨을 지었다.


"솔직히 말하여, 댁들이 이렇게 비단을 낑낑 지고 서울까지 올라오는 신역을 지고서 얻는 것이 뭣이란 말이오?


서울까지 오는 여비도 고생도 컸을 터. 그 노임이라도 받는게 마땅하지 않소?


정 고을 사람들에게 값이 날아오는게 불편하다면, 지금 팔아서 받은 값으로 자진해서 내면 될 것이오."


그 말을 들은 '이 좌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실 조선의 많은 문제의 대부분은 여기서 나온다.


사람을 돈을 안 쓰고 부리려고 한다.


미래에 있을 때도 조선의 부정부패의 원인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였다.

조선은 명목 상으로는 유교적 이상국가 실현을 위해 낮은 세율을 유지했으나, 현실적으로는 그 관료제를 유지하기에는 부족한 세입 때문에 관례화 된 부정부패로 유지되었다는 이야기.(*1)


그렇다면 다른 공리들도 올라와서 공납을 하려 할 때, 이렇게 상인들에게 공물을 팔아버리고 자기가 이득을 챙기려는 유혹에 빠졌으리라.


"내가 이것을 그대에게 팔면 그대는 이것을 어찌할 생각인가?"


"글쎄, 아마 한양 시전에 팔겠지. 그런 귀물을 살 수 있는 높으신 분들은 다 한양에 살고, 값을 잘 쳐주는 사람들도 한양에만 있으니."


"그럼 경주인이 이걸 사서 대납하거나 할 수도 있겠군. 그렇게 불어난 값이 또 우리 고을로 청구 될 것이고. 아니면 이 비단은 다른데에 팔리고 관에는 더 조악한 비단이 납공될 수도 있겠지."


"그래서? 흔한 일이오."


경식이 다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팔 생각은 없지만, 짐짓 파는 척을 하여 정보를 더 캐기로 했다.


"내가 이것을 그대에게 판다면 무엇으로 값을 치르겠나?"


"쌀로 산다면...그 정도 비단이면 몇 섬이어도 부족하니 댁들이 들고가기엔 좀 많겠군. 정포로 값을 쳐줄 수도 있고. 한양 도성에서는 근래 지폐 값도 부쩍 뛰었는데 지폐로 쳐 주면 어떻소?"


이 말이 문득 경식이 반응했다.


'잠깐, 한양의 지폐 값이 뛰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지만...'


"한양의 지폐 값이 뛰었는데 그대는 어디서 지폐를 구했나?"


"? 충주에서 조를 팔아서 샀소."


상인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지폐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경식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일이다.


삼남 등 지방에서 디플레이션을 일으키고 경기도에서 인플레이션을 일으켜서 햔양으로 물자가 모이게 하고, 한양에서 지불되는 돈이 지방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 경식의 당초 계획이었다.

그렇게 해서 지방의 물자를 끌어들여 경기의 기근을 극복할 생각이었고.


'되려 지방의 지폐가 한양으로 역류하고 있다! 한양의 디플레이션이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야!'


상인은 흥정을 하다가 갑자기 이상한 질문을 하고 생각에 잠기는 좌수를 보며 의아해 했다.


왕의 '저 버릇'을 아는 시위 관헌들은 불안해 했다. 곧 무슨 일이건 일어나겠군.


"어쩌겠소? 팔려는 것이오, 말려는 것이오?"


"내 좀 더 생각해보겠네. 급한 용무가 있어서 나가야겠어."


"어? 어?"


'나한테 준다던 사례는?' 이라는 말을 진 별감이 미처 하기 전에 이 좌수는 떠나버렸다.




정상적인 시장경제 상태라면, 찍어낸 돈을 시장에 푸는 것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그래서 박경식도 근래 디플레이션에 대한 1차적 해법으로 인쇄기를 만들어낸 것이고.


그러나 권력자가 개입한 암시장 등으로 인해 시장구조가 왜곡되면 그것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박경식의 지금 잠행도 그 실태 파악을 위해 온 것이다.


하지만 박경식이 여기서 실태 파악을 하기 전까지 여태 생각하지 못한 것이 뭔지 알았다.


'지폐가 있어도 물건을 살만한 시장이 한양 시전 뿐이야!'


사실 박경식이 지폐를 도입하고 전세를 혁파한 것으로 인해, 곡물들은 강제로 시장거래의 대상이 되어 전국에서 급격하게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는 중이긴 하다.


하지만 그럼 뭘하는가? 곡물은 전국이 잠재적인 시장이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곡물 외의 것은 어떤가? 지금 박경식이 쓰고 있는 갓 하나도, 이 정도로 퀄리티가 좋은 갓은 서울 아니면 구하기 힘들다.


돈이 있어도 지방에서는 곡물 사는데 외에는 쓸모가 없다. 그러니까 지방민들은 돈을 모아도 서울로 올라온다. 돈으로 다른 무언가를 사기 위해.(*2)


그렇게 서울로 돈이 몰리면, 서울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해야한다. 그런데도 법정 가치와 동떨어져 지폐의 값이 올라 있다. 그럼 그 지폐는 지금 어디로 사라진거지?


'대간들이 탄핵한대로 윤은로 집안이 방납을 저지르고 지폐를 매점하고 있다면, 이곳에 그 지폐가 모일거라고 생각해서 잠입한 것이긴 한데...'


"이 버러지 같은 윤가놈. 대체 얼마나 해처먹으려는 거야?"


경식이 나름대로 윤가 놈들의 범죄를 심각하게 인지했다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상상을 초월하게 해처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조선 최초의 대규모 금융범죄 사건이 발생 중이었다.




박경식은 이곳 저곳에 보내 염탐을 시켰던 겸사복들을 불러모았다.


"내가 명한 것은 조사해왔느냐? 이곳 사주인들이 창고에 어떤 물건을 많이 쌓아놓고 있더냐?"


"가장 많던 것은 쌀이었습니다.

포구에 모인 상인들이 쌀을 가져와 지폐를 구하려 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사주인들이 그들을 물리치며 잡물을 주고 쌀을 사고는 했습니다.

이미 쌀을 넣을 곳이 없어 곳곳에 노적하고 있을 지경입니다."


'디플레이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군. 현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손해이니 빠르게 현물은 매각하고, 지폐나 지폐로 환전할 수 있는 쌀을 매입하는거야.'


"그러고보니 나처럼 공물을 들고 온 사람들도 많았을텐데 사주인들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하였는가?"


"대부분의 공리들은 그대로 사주인 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어째서? 공리들에게서 사주인이 공물을 사들이지는 않던가?"


"공리들도 모리배들이기 때문입니다. 한양에서 공물의 값이 오를 때까지 기다려 값을 크게 받고 팔려 하는 것이지요."


'...공리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한 것 취소다.'


"공리들 역시 선상들에게 자기들의 물건을 제시하여 쌀을 사 모으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공리놈들도 곧 재개될 쌀 매입을 노려서 쌀을 팔아 지폐를 사려는 수작이군."


난리 났다.

이대로라면 원래라면 공납으로 서울에 모여야할 물자들이 다 지방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서울의 물품 가격은 폭등하겠지. 디플레이션 상태가 불건전한 형태로 균형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값은 다시 영수증의 형태로 지방에 내려가 지방민들의 세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원래 정책 의도인 쌀을 서울로 모아서 경기 백성을 구제하는 것도, 이곳에 쌀이 매집되는 결과로 이어져 실패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폐 역시 이들이 디플레이션을 조장해서 차익을 챙기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상호작용이군! 조선 초에 화폐 제도 한번 도입해보자고 한게 이렇게까지 파란을 일으킨다니!'


원래 경식의 계획은 공납의 개혁은 화폐 제도가 자리 잡을 때 시작하려고 한 것인데, 이제보니 안될 거 같았다. 더더욱 급격한 개혁이 필요했다.

이 암시장을 박살내고, 권력자들이 뒷배를 봐주는 행태를 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폐 제도도 개판이 난다.


"이 사주인들의 뒷배에 대해서는 들었는가?"


그 질문에, 겸사복들이 아닌 좀 더 떨어진 곳에서 대신 대답이 들려왔다. 한 무리의 상놈스러운 관상의 사내들이 몰려와 그 중 우두머리 같아 보이는 상놈이 말했다.


"우리들의 뒷배를 묻는다면, 대답해드리는게 인지상정이겠군."


"로켓단?!"


"...?"


주변의 조선인 중 그 누구도 경식이 내뱉는 희한한 단어를 알아듣지 못해 찬물 끼얹은듯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아...아니, 내 실언일세. 마저 하려던 말 하게."


경식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 씨...저거 진짜 로켓단이었는데...'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상놈 우두머리는 '저 자칭 좌수라는 어린 놈은 미친놈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마저 하려던 말을 계속했다.


"이곳을 봐주시는 분은 왕대비마마의 오라버니인 윤은로 영감이외다."


"...."


"...뭐야, 그 표정은?!"


'놀랍군. 놀라울 정도로 반전이 없어.'


뭔가 대단한 정보를 얻을 줄 기대했던 경식의 얼굴에 실망의 표정이 너무 뚜렷하게 드러났다.


지금 경식에게 로켓단스러운 말투로 자기소개를 해준, 친절하게 말 많은 악당스러운 인물은 윤은로의 또 다른 방납 실무 앞잡이인 내은동(內隱同)이었다.(*3)


내은동은 상판데기로 보면 말똥이와 마찬가지로 '판타지에 출현했으면 엑스트라 산적 같은 대사를 치다가 1화만에 주인공에게 컷 당할거 같은 얼굴' 이었다.


물론 이곳은 판타지 세계가 아니라 조선이었기 때문에 말똥이는 경식의 전투력을 측정하고 정면 승부를 피했지만, 내은동은 말똥이보다 '조선에서 상놈으로 살아남기' 의 레벨이 높았다.


조선에서 상놈들끼리의 전투력은 본인의 전투력만이 아니라 뒷배의 전투력도 포함된다. 조선의 세계관은 라노벨 판타지물보다는 웹소설 성좌물과 비슷하다.


내은동은 이 사주인저의 중간관리자로서 딱봐도 수상한 이 좌수 무리를 유심히 봐두었다. 과연 짐짓 모른 체 하며 이것저것 묻고 다니거나 매우 티가 나게 염탐하고 다니는게 보였다.


이런 짓을 구태여 할 이들이라면 분명 조정의 관헌들일터. 그러나 내은동이 조정 관헌들 따위를 무서워 할 이유는 없다. 권력이랑 붙어먹는게 뭣 때문이겠는가?


"댁들이 요새 용산포에서 이리저리 염탐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소."


"그렇네. 그럼 이만 돌아가볼까."


"어딜 가?!"


박경식에게는 도적을 때려잡으면 경험치가 오르는 상태창도,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주면 코인을 넣어주는 성좌도 없기 때문에 내은동에게 전혀 흥미가 없었다.

(사실 지금 조선에서는 박경식 쪽이 코인을 발행하는 성좌에 가깝다.)


"어딜 가냐니...서울로 관서들에 공납하러 가오."


내은동은 저 자칭 좌수의 뻔뻔한 대답에 기가 찼다.


"발뺌하지 마시오. 댁들이 의정부에서 온 관헌들인건 알고 있소."


"아닌데?"


원래부터 경식은 뻔뻔했지만 정말로 본인은 '관헌'이 아니니까 경식은 더 뻔뻔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오. 세상 어떤 향리들이 여길 그리 돌아다니며 염탐한단 말이오?"


"우리가 촌놈들이라 서울 구경 신기해서 좀 돌아다닌 것 뿐이오."


"전주에서 세공을 바치러 왔다면서 비단을 보였는데, 전주에 분정된 공물 중 비단은 없소."


내은동이 반박할 수 없는 팩트로 공격했다.


"아나 와 씨 야 이걸 이렇게 들키네."


"나리!!!"


어처구니 없게 순순히 자백하는 경식에 주변 내시들이 탄식했다.


"아니 야 사주인 쟤들 저거 존나 똑똑해. 혹시 전국의 군현들 공물 다 알고 있는거 아냐?"


"나리! 말하시는게 뭔 소린지 점점 못 알아듣겠습니다!"


요새 신료들이 깨달은게, 왕이 감정적으로 격해지거나 당황하면 점점 말이 싸지며 전국 팔도 어디서도 듣지 못한 이상한 말투와 단어를 마구 쓴다는 것이었다.


"하여간,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그 비단, 여기 팔고 가시오. 값은 잘 쳐줄테니."


"나보고 관헌 아니냐고 하지 않았는가? 관헌에게 모리배처럼 방납에 끼라는 말인가? 방납은 국법에서 중죄인걸 모르나?"


"국법? 그래서 뭐?"


"그래서 뭐? 뒷배가 윤은로라고 뵈는게 없는 모양이군. 윤은로가 법보다 높은가?"


"법? 주상이 변덕을 부리면 아무 쓸모 없는게 법이오. 주상이 왕대비마마 말씀을 어길 수 있는가?"


"왕대비라 하여도 이 나라에서는 왕의 신하임을 모르는가보군."


"하! 얼마 전에도 주상 전하가 노발대발 하셔서 윤은로 영감을 내치려 하셨으나 왕대비 마마 한 마디에 취소되었소.

설마 댁들이 법에 따라 일한다고 주상께서 뒷배를 봐줄거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4)


"하..."


박경식은 내은동의 접대에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 사주인들의 손님을 대접하는 싸가지가 가히 500년을 앞선 용팔이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용산이 터가 안 좋아서 싸가지 없는 상인들이 계속 모이나?'


경식은 자신이 대동한 관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에 혹시 형조에서 일한 이가 있는가?"


"...."


놀라울 정도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겸사복은 진짜 생짜 무관들이라서 그렇다쳐도 내금위도 데려왔는데도 없어?'


원래는 법잘알에게 '지금 이 언사는 어느 죄에 해당하는가?' 하고 물어서 '지금 바로 집행하라', 고 포즈를 잡으며 때려잡으려고 했는데 망했다.


사실 경식은 조선에 와서 이것저것 잘난 척은 했는데, 경연은 자꾸 정책 연구 회의로 활용하는 바람에 경전이나 지금 조선의 현행법 같은건 잘 모른다.


그래도, 굳이 그렇게 법을 물어가며 포즈 잡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조선은 왕이 '법을 가능하면 준수하는 존재'지, '법에 구속되는 존재' 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제군주제가 이렇게 편하다. 입헌군주제로 아직 이행을 안해서 정말 다행이다.




"내금위, 겸사복은 시위(侍衛)하라. 저 역도들을 다 잡아라. 죽여도 죄를 묻지 않겠다."




스릉-


관원들이 명령에 바로 숨겨뒀던 칼을 빼들었다.


"허억?!"


이런 암시장, 뒷골목에 있는 주먹패들은 원래 '진짜 싸움'을 위해 동원되는 이들이 아니다. 그들의 본분은 '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서열이 뭐가 어쨌든 이들이 관헌이라는 것은 방금 젊은 자칭 좌수의 자백으로 인해 밝혀진 바.


공권력이 각 잡고 칼 빼들면 그들에게는 대항 수단이 없다. 의외로 조선 정부의 권위는 마약 카르텔도 못 때려잡는 허접 21세기 멕시코 정부보다 높다.


특히 현 조선 내에서 최강의 전투력을 지닌 부대인 겸사복들 앞에서라면, 무력으로도 대항 수단이 없다.


더군다나 이 겸사복과 내금위들은 이럴 사태가 벌어질 것을 애초에 상정해서, 옷 안에 갑옷을 받쳐 입고 열댓명 넘게 파티를 짜서 말까지 타고 왔다.


"자, 잠깐! 나리! 말로 합시다!"


"아, 그래. 칼로 하면 죽을지도 모르니 편곤을 써라."


그 말에 호위병들이 일제히 소매에서 편곤을 꺼냈다.

편곤은 조선 전기에는 원래 없는 무기지만, 박경식이 조선 후기에 기병들이 많이 썼다고 들은게 있어서 만들도록 명해서 금군들에게 나눠줬다.

대단히 어려운 구조의 무기도 아니니 금방 퍼졌다.


물론 중요한 것은, 맨몸인 사람은 칼이 아니라 편곤에 맞아도 죽는다는 것이었다. 대갈못이 박힌 흉악하게 생긴 저 편곤에 맞으면 최소 중상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곧 맞을 예정인 쪽은 칼보다는 편곤이 덜 아플 줄 아는지 웬 용기가 샘 솟은듯, 대들기 시작했다.


"이,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아시오!"


"가라!"


포켓몬을 부리는 듯한 그 말을 신호로 겸사복들이 달려나가 밀매꾼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역시 로켓단을 때려잡는건 포켓몬 트레이너가 아니라 포켓몬이다.


딱히 조직되지 않은 군중이었던 밀매꾼들의 대부분은 여기저기 흩어지며 도망쳤다. 발이 느리거나 너무 앞으로 나와 있던 사람들은 머리나 그 외 이곳저곳이 깨지고 찢어진 채 바닥에 구르게 되었다.


"당연히 무사하지."


대답을 들을 사람은 이미 없어졌지만, 경식은 굳이 한 박자 늦게 대답하며 여기저기 쓰러진 밀매꾼들 사이로 걸어갔다.


밀매꾼들의 우두머리 노릇하며 잘난척 하던 내은동은 벌써 오줌까지 지려가며 바닥을 기며 쭈그리고 있었다.

그의 '조선에서 상놈으로 살아남기' 레벨은 본인 뒷배의 힘을 믿고서 나대도 된다는 걸 깨달을 정도는 됐지만, 뒷배의 전투력까지 측정하기에는 모자랐다.


경식이 소매에서 편곤을 꺼내 돌리며 내은동에게 다가갔다.


"관아에서 진술을 잘 하면 살려 줄 수도 있다."


경식의 말에 내은동이 벌벌 떨며 물었다.


"나....나리께서는 누구십니까?"


"나? 니가 그렇게 믿는 윤은로의 주군."


---


<이하 미주>

*1 : 이것이 흔하게 조선 시대의 아전, 향리들의 부정부패를 설명하는 이론이지만, 근래 연구에서는 조선 후기 지방관아의 재정구조에 대한 연구 성과가 나오면서, 지방 관아의 내부 재정에서 향리들의 급여와 업무처리비가 책정되어 있음이 발견되어서 적어도 조선 후기에 대해서는 적절하지 않는 설명으로 보입니다. 다만 작 중 배경인 조선 전기에는 꼭 틀린 건 아닙니다. 작 중 시대는 향리에 대한 탄압이 이어져 향리에 대한 신역이 극히 기피되던 경향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권기중, 「향리에 대한 기억과 편견, 그리고 역사교육」 (『사림』32, 2008).>


*2 : 이러한 조선 전기 내의 역내 무역은 작 중 시대 이전 원래 역사에 존재했습니다. 바로 평안도와 함경도의 국경 지대에 군량을 보충하기 위해 시행한 회환제를 통한 것인데요, 양계 지방의 지주가 관에 곡물을 납부하면, 관에서는 그 영수증을 주고, 지주가 영수증을 가지고 삼남 지방으로 내려가면 삼남의 관아는 1.5배 정도의 곡물로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신숙주 등의 권세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그렇게 삼남에서 얻은 곡물을 처분해 포목으로 바꾸고, 포목을 서울로 가져와 공업품이나 사치품 등을 사서 다시 지방으로 가져가 파는 무역으로 큰 이익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조선 전기에 이미 조선 내에 지주 층의 곡물 매각 욕구의 존재, 역내 무역을 해내는 상인 계층의 존재를 보여줍니다. 본작은 이러한 조선 전기의 사회경제적 기반이 주인공의 개혁으로 더욱 급격히 가속하고 있습니다.<박평식. (1992). 조선전기 양계지방의 ' 회환제 ' 와 곡물유통. 학림, 14(0), 1-63.>


*3 : 내은동(內隱同)도 말똥이와 함께 역시 실존인물입니다. 말똥이와 함께 윤은로의 앞잡로써 방납 실무를 하던 인물로 나와 있죠. 원래 역사에서는 성종 시절에 '꼬리 자르기' 당해서 처벌 당한 것으로 나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엑스트라용으로 본작에서 출현 시킨 것도 말똥이와 같습니다. 11화 <용팔이 1> 미주에서 말똥이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4 : 내은동이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원래 역사에서는 윤은로의 동생 윤탕로 집의 노비가 기고만장하여 의정부 관헌들에게도 불손하게 굴어 윤탕로가 논쟁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작 중 내은동이 이런 성격으로 나오는 것은 해당 일화를 결합한 것입니다. 사실 조선 시대는 작 중에서도 설명한 것 같이 성좌물(?) 같은 세계관이라서, 뒷배가 충분히 강하다면 노비고 뭐고 끗발 약한 양반 따위에겐 개기는게 일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내수사에 속한 노비들은 왕이 뒷배다 보니 온갖 위세를 부리고 다니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지요. 아마 실제 내은동 역시 작 중에서 묘사된 것처럼 권세를 부리며 다니지 않았을까요?


작가의말

수묵화님, 文pia사랑님, 탈닌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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