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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라구.B.P 님의 서재입니다.

경제왕 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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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라구.B.P
작품등록일 :
2024.05.08 21:07
최근연재일 :
2024.06.28 21:00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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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151
추천수 :
26,765
글자수 :
461,568

작성
24.05.10 18:00
조회
19,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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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
글자
14쪽

이세계 용사 박경식

DUMMY

"전하께서 쾌차하시니 종사의 큰 복이며 소첩의 마음도 크게 흡족하옵니다."


중전 신씨가 왕의 쾌차를 축하했다.


"고맙소, 중전. 하늘이 내게 아직 대업을 맡기려 하시는데에 뜻이 있기 때문 아니겠소."


'재이설이 누구 탓(특히 왕 탓)이라고 주장하는 건 이단'이라고 명문화해서 대간을 쫓아내놓고서 태연하게 뻔뻔하게 하늘의 뜻을 찾는 왕이었다.

쫓겨난 대간들이 들었다면 두고두고 뒷담을 깔 것이다.


하여간 그런 날이었다. 사간들은 없고, 새들은 지저귀며, 꽃은 피어나고....중전이랑 후원을 좀 걸으며 건강을 만끽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육조 쪽에 저것들은 뭐요?"




"그어어어어어..."


"으어어어어..."




저들을 본 박경식은 순간 자기가 빙의한 세계가 조선이 아니라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조선 배경 좀비물인가 싶었다.


"그워어어어어....즈어언하아아..."


"아이고, 깜짝이야! 호판! 꼴이 그게 뭐요! 난 시체가 걸어 움직이기라도 하는 줄 알았소!"


"죄...죄송합니다, 전하. 하교하신 화폐 제도의 경장에 대한 절목에 관해서 말씀을 올릴 것이 있어서..."


호판 홍귀달은 왕에겐 '당신 때문에 과로로 이 꼴이 되었다'고 대놓고 따질 순 없어서 바로 그 과로의 원인인 일 얘길 꺼냈다.


"아, 그러고보니 내가 절목을 준비하기 위해 이른 것이 있었지. 잘 보니 저기 육조에서 호판과 비슷한 상태인 사람들도 거의 호조의 녹사(* 상급 서리), 서리, 관원들이군. 음? 아니, 저들은 호조가 아닌거 같은데."


"...호조만이 아니라 이조, 형조, 예조 관원들 모두가 쉴 틈이 없습니다."


"아아, 맞다. 내가 삼사를 혁파하고 경장하면서 만든 천거의 법에 관한 사무를 그 셋에 맡겼지. 내가 절목을 친히 만들어서 내렸는데 일이 그렇게 많소?"


아니, 그 절목이 문제라고요 전하!

실제로 대신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세세한 어제절목은 수정할 사항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이판 이극돈이 권점할 시기는 농번기를 피하는게 좋겠다는 정도만 지적했을 뿐.(미래인이요 차가운 도시 남자인 박경식은 조선시대의 농번기 농한기 같은거 잘 모른다.)


하지만 그게 이조에게 있어서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 될 줄은 몰랐다.

이극돈의 말을 들은 왕이 '언로를 트는 것은 급박한 시무이다. 지금이 농한기이니 지금 바로 시행하는 것이 좋겠다.' 라고 대답하는 것 아닌가.

갑자기 일폭탄이 떨어졌다.


거기에 쉴 틈도 안 주고 사헌부에 대한 경장안이라며 형조에게 뭘 던져주고, 홍문관에 대한 경장안이라며 예조에게 또 뭘 던져주는 것 아닌가.

그래서 셋이 동시에 갈려나가게 되었다.


홍귀달은 이 뻔뻔하고 유능하고 젊은 왕 때문에 이빨을 갈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차마 할 수 없어


"죽여주시옵소서, 전하..."


라는 사극스러운 대사를 남길 뿐이었다.


왕은 이번에도 '응? 갑자기 왜?' 라며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봄이었다.



"그래서, 절목에 대해 올리겠단 말이 무엇이오?"


"저화를 발행하실 때, 각사와 관아에 대해서 차대(* 빌려줌)하여 쓰게 하고 백성들에게도 차대해주는 것은 심히 그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전을 찍어내더라도 그것을 식리를 붙여 빌려줘서 각사와 백성들은 1전 1문을 갚아야 한다면 과연 누가 어찌 그것을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왕이 씩 웃었다.


아아, 조선인들 너희는 모르는 것인가? 이것은 '통화 정책' 이라는 것이다.


조선이 초기부터 흥선대원군 시절까지 꾸준히 화폐정책을 말아먹는 유별나게 돈에 대해 모르는 편인 나라인 것도 맞지만, 사실 이 시점 지구에서는 정말로 박경식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진짜 치트스러운 미래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호판, 호조 관원들을 특히 불러 경연을 열겠소. 내가 이 절목의 비의를 직접 강하리다. 모두 나 같은 수재가 될 수 있도록 힘써 정진하시오."


홍귀달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네? 수재? 누구? 전하가요?' 라는 표정을 짓는 것을 박경식은 알아채지 못했다.


'이세계 용사' 박경식으로 돌아갈 때다.




지금 시점의 조선은 저화가 아직 흔적으로나마 남아있는 시대다.

저화 발행 기관인 사섬시도 남아 있고, 거기에 저화가 수백만장이나 쌓여 있기도 하다.

저화가 분명 세종 대왕 시절 쯤에 실패한 정책으로 알고 있었는데 수백만장이 있는게 맞냐고? 싶겠지만, 호조가 분명 두 눈으로 똑똑히 세고 수백만장이라고 보고했다.


일단 직접 그 저화 실물을 본 박경식 입장에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맘에 안 들었다.

저화라는게 직접 보니 왠 종이쪼가리에 붓으로 영수증처럼 써갈겨 놓고 도장을 찍어놓은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미래에서 얻은 지식 그대로, 확실히 그냥 종이쪼가리이다 보니 내구성이 영 약했다.

종이 만드는 기술도 열악해서인지 두께도 일정하지 않았다. 단위도 따로 없이 1장으로 썼다.


"이전 저화는 전부 폐하고 새로이 발행한다!

새 저화는 인쇄로 찍어내며, 담청색으로 물을 들이며(쪽을 쓴 담청색 염료가 그나마 제일 싸기 때문이다), 호조인을 찍어내고, 같은 규격의 종이로 통일하고, 닥나무가 아니라 추포(* 麤布, 오직 거래를 위해 만들어내 매우 성긴 삼베천.)를 찧어낸 것을 떠내 종이로 만들어 사용하여 만들어라!

단위를 여럿으로 하여, 가장 작은 것은 1문으로 하여 10문을 1전, 10전을 1냥으로 하며 1문, 5문, 1전, 5전, 1냥의 다섯 종류를 발행(* 이후로는 편의를 위해 지폐의 단위를 전을 기준으로 표기합니다.)하라!"


"하오나 전하, 그러면 그것은 저화가 아니게 됩니다.(* 저화의 저楮는 닥나무로 만든 종이라는 뜻이다)"


"사소한걸 물고 늘어지는구나. 그럼 이름을 바꾸면 되는 것 아닌가? 지화나 지폐로 하면 가할 것이다."


왕이 지폐가 좀 더 어감이 좋다는 이유를 내세워서 새 화폐의 이름은 지폐로 정해졌다.

조선인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미래인만이 알 수 있는 사정이었다.


갑자기 기존 저화 수백만장을 전부 물에 씻어서 재활용하고, 새 종이를 만들고, 지폐 발행용 인쇄판을 새로 만들게 된 공조는 일복이 마구 마구 폭발했다.

이로서 새 왕이 즉위하고 반년이 넘지 않아 육조 중 다섯 조가 갈려나가게 되었다.




하여간 현행 제도에서 저화로 받는 세금은 공장세(* 工匠稅, 서울의 국가 소속 장인들에게 걷는 인두세), 납속(* 벌금을 냄), 노비에 대한 신공 셋 정도가 거의 전부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 세금들은 지불하는데에 1년간 저화 수백만장 씩이나 필요하지도 않다. 잘해야 수 만장 정도고 그나마도 노비들의 신공이 대부분이다.


"무릇 모든 물건은 필요보다 양이 많으면 값이 천해지는 것이오. 저화의 필요가 이리 적은데 사섬시가 찍어낸 저화가 많으니 저화가 천해진 것이지."


그런 이치는 호조도 당연히 알고 있다. 다만 그 알고 있는걸 어떻게 현실 정책에 적용하여 실현하느냐가 문제다.


저화를 바꿔주는 곳은 오직 서울 뿐이라, 지방에서는 저화 구하러 서울까지 다니기도 불편하니 아무도 쓰지 않는 지경이었다.


그 때문에 속전(* 벌금)을 내려는 백성들은 저화가 구하기 힘들어 내지 못하는 지경이고, 이에 대응하려고 또 저화를 막 찍어내니, 서울에서는 저화가 넘쳐 아무도 저화를 가치있게 여기지 않는 지경인데 지방은 여전히 저화가 없었다.


'돈을 많이 찍어서 많은 사람들이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하되, 값이 떨어지진 않게' 라는 정책은 조선인들의 지식으로는 달성 불가능했다. 사실 조선이 아니라 전세계가 다 앞으로도 몇백년 정도 달성 못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식이 만든 대책이 이번의 전세 혁파다. 돈을 많이 찍는 만큼, 돈의 수요를 늘이는 것이다.


사실 토지 당 풍흉에 따라 얼마 걷는다는 법을 아무리 잘 세워도 뭘 하나? 창고가 없다, 수송할 인원이 없다, 욕 먹을까 두렵고 주민들이 안 내려고 저항해서 못 걷는다 하는 별에 별 이유로 겉치레만 남아 있는데.


그래서 전세를 결(結) 당 저화 10전으로 고정했다.


특히 결이라는 단위는 애초에 생산량을 기준으로 한 과세 표준이다.

조선 팔도의 장부 상 토지는 약 160만결. 여기서 이미 내년의 토지세는 약 1600만전이 될 것이라고 바로 예측이 가능했다.

이전처럼 풍흉에 따라 세금이 바뀐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고, 주민들과 싸워가며 수확량 측정을 할 필요도 없다!


토지 측량은 나름대로 잘하고 이론상의 법률은 잘 세워도 시행은 못하는 기묘한 행정력의 나라가 이 조선이었지만, 그것이라도 잘 활용하니 이렇게 편하다.

(한편으로, 공조는 내년까지 저화를 최소 1600만전 어치 찍어내야한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1년 동안 갈려나갈 것은 확정이었으나, 호조도 제 앞가림도 바쁘니 공조의 일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럼 군량이라던가 다른 일상용 돈이라던가로 쓰던 쌀을 비롯하던 곡물은 어디서 구하느냐고 호조에서 걱정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겠지만, 절목에 이미 잘 준비되어 있어서 물을 것도 없었다.


'각 부와 목의 주창(州倉), 조창(漕倉)에서 쌀, 조, 콩을 받고 지폐를 내어준다. 가격은 첫해는 왕명으로 정하고 추후에는 시가에 따라 정한다.'


한줄로 정리되지만, 이걸 위해 호조 관원들이 갈려나갔다.


왕이 팔도 모든 군현의 토지 전결 수, 호 별 토지 보유량, 곡식들의 시세, 풍흉 상태를 죄다 알아내서 정리해오라고 하지 않는가.

그걸 알아와서 제출하자 왕이 그것을 물끄러미 보고선 몇번 붓을 휘적이더니 각 주와 목과 조창에 지폐를 얼마 분급하여 빌려줄지, 곡식의 가격은 얼마로 할지 정해서 하교했다.


굳이 말하자면, 수십년 전 태종 때도 똑같은 정책이 있었다.

호조에서 '이 지폐 제도로 우리가 쌀 구할 수 있는거 맞아요?' 하는 의문을 그다지 품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태종대의 정책이랑 박경식의 정책은 이런 저런 차이점이 있지만, 특별히 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면 그때 태종은 그렇게 쌀을 모으고서 바로 세금을 저화로 받는 제도를 1년 만에 폐지하고 저화를 쌀로 바꿔주는건 거의 안함으로써 백성들을 뒤통수 쳤는데, 이번엔 정말로 영구히 정책으로 쓰려 한다는 것이었다.


예조 쪽에서 누가 한마디 했다.


"경국대전에 이미 저화와 쌀, 정포(* 오승포)의 값을 정해놨는데, 이번 지폐의 제도 역시 옛 제도를 상고하여 가격을 정하는게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호조 관원들이 '쟤 호조에서 일 안해봤지?' 하는 눈치를 서로 나눴다.


"호조, 저화의 값이 대전에 나온 대로 지켜져서 유통되오, 아니면 싯가에 따라서 사고 파는 것을 근래 계속해왔소?"


"말씀하신대로 싯가에 따라서 국고에서 방출하거나 들이기를 계속하였으나 저화의 값이 계속 떨어져 대전에서 규정한 값이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돈의 값도 흔한가 귀한가에 따라 바뀌는 법이오."


전세를 지폐로 걷게하는건 조선인들이 화폐의 법을 시행하려고 한 이유랑도 맞닿아 있다. 호조가 그 조선인들의 화폐 관념을 드러내는 말을 아룄다.


"화폐의 법은 곡식으로 조를 옮기는 불편을 물리치고, 추포를 사용하여 국용이 낭비되는 것을 막으며, 이권을 인군에게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지폐의 법이 잘 시행된다면 전조(田租)를 나르는 것이 불편하여 국용이 모자람에도 차마 걷지 못했던 폐단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에서 화폐의 용도에 대한 이해는 딱 이 정도 수준이다. 화폐의 가치가 어떻게 생성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종이돈이나 동전이 쌀이나 포목보다 나르기 편하니까 쓰면 좋지 않나?' 정도 수준.


호조에서 이어서 질문했다.


"그러나 전하, 지금 어제하신 절목대로라면 지방에서도 지폐를 흔히 볼 수 있게 되어 지폐의 값이 더욱 천해질 것입니다."


신료들은 어째 그 질문에 왕이 유난히 활짝 웃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신료들은 아무도 왕이 머릿 속에서 '본인 지금 이세계 용사 되어서 미래지식 치트 쓰는 상상함 ㅋㅋㅋ' 같은 생각을 하는줄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호판이 내게 물은대로, 지폐 하나를 찍어내더라도 각 사와 관아들과 백성들에게 오직 빌려줄 뿐 함부로 주지 않게 한 것이오.

빌린 것에 대해 식리(* 이자)를 붙인 것도 마찬가지요. 10전을 납세하기 위해 빌리는데, 내년에 11전을 갚아야 한다면 모두가 지폐를 귀히 여길 수 밖에 없소."


"하지만 전하, 제가 여쭌대로, 지폐를 그렇게 모두에게 빌려주는 것으로 시장에 푼다면 그 누구도 빚을 갚지 못할 것입니다.

나라가 발행한 지폐가 100전인데, 나라의 백성들은 110전을 내년에 갚아야한다면 누가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호조가 3개월마다 계속해서 지폐를 찍어내게 하는 것이오.


특히 이렇게 저화를 찍어낼 때마다 식리를 변경한다면, 식리를 낮추면 사람들이 돈을 더욱 빌려서 시중에 돈이 헐해질 것이고, 식리를 높게하면 사람들이 돈을 빌리려 하지 않아 시중에 돈이 귀해질 것이오.


이 제도를 항구히 유지하면 화폐를 통해 이권이 위에 존재함(利權在上)이 실현될 것이오."


그제야 호조 관헌들이 납득했다는 듯 말했다.


"전하의 뜻이 지극히 깊어 신등이 감히 헤아리지 못했나이다. 우리나라가 개국 때부터 저화를 통용하는 법을 쓰려 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하여 창고에서 부패만 할 지경에 달했는데, 전하의 절목대로라면 지폐의 법을 항구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조선 전국 곳곳에 방이 붙었다.


올해부터는 전조를 지폐로 걷으니 온 백성들은 쌀을 주창, 조창에 팔아서 지폐를 받아서 내라!


그리고 그 방에는 많은 백성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정보가 쓰여 있었다.


사실 자기네 집이나 겨우 땅 부쳐 먹고 사는 1결 짜리 토지를 가진 일반 백성들에게는 언감생심인 정책이지만, 특히 지주와 상인들이 아주 큰 흥미를 가질 정책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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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뉴딜 1 +50 24.05.22 14,106 559 21쪽
16 풍년인데 왜 농부는 가난할까 +46 24.05.21 14,036 568 20쪽
15 호조야 지금 너만 힘든줄 아냐 다들 힘들어 +46 24.05.20 14,306 581 22쪽
14 호조는 오늘도 갈려나간다 +35 24.05.17 14,833 553 20쪽
13 용산 락 페스티벌 +41 24.05.16 14,727 545 19쪽
12 용팔이 2 +47 24.05.15 14,663 572 20쪽
11 용팔이 1 +26 24.05.14 15,816 583 19쪽
10 돈이 복사가 된다고 +37 24.05.13 16,788 569 19쪽
9 아 장사하자 2 +37 24.05.12 17,166 578 20쪽
8 아 장사하자 1 +26 24.05.11 17,963 599 18쪽
» 이세계 용사 박경식 +38 24.05.10 19,297 650 14쪽
6 고심 끝에 "대간 해체" +38 24.05.09 19,944 670 14쪽
5 시위(侍衛) 시위(示威) +34 24.05.08 20,143 689 13쪽
4 대간이 대듦 +28 24.05.08 21,379 671 13쪽
3 사고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34 24.05.08 23,013 678 13쪽
2 여기가 어디요? 내가 누구요? +41 24.05.08 25,588 701 15쪽
1 프롤로그 : 수상할 정도로 까다로운 교수님 +73 24.05.08 28,656 75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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