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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라구.B.P 님의 서재입니다.

경제왕 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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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라구.B.P
작품등록일 :
2024.05.08 21:07
최근연재일 :
2024.06.28 21: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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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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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백성 1

DUMMY

'결국 이렇게 됐군...'


경식은 1년 간 조선 생활로 나름대로 조선식 화법에 '자아' 와 '지식' 으로써도 적응했다.


이 뜬금없는 배째기가 중간 관리직 관헌들과 유생을 달래지 않으면 대신들도 경장을 더 이상 따라올 생각이 없단 뜻이란 것 정돈 이해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신료들 말이 맞다.


말이 근대적 조세 체계지 지금 경장은 오직 성과를 위해 모든 부작용과 체계 파괴를 애써 무시하고 달려온 것이었다.

성과가 초초과달성으로 나왔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흥선대원군과 같은 반열에 들었다.


'그래도 되려 공법보다는 행정부담이 줄었을텐데...'


일을 그렇게 시켜놓고 행정부담이 줄었을거 같단 말이 뭔 소리냐 하겠지만 사실이다.

그게 목적이 맞기도 하다.


토지세 개혁 자체가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결 당 10전을 내는 구조로 일원화되니 걷는 과정 자체는 간단해졌다.


원래는 전세 수취가 없던 양계까지 전세를 걷을 수 있던 것도, 의외로 구멍이 별로 안 나고 1400만전 가량이 멀쩡히 수취된 것도 그런 단순한 조세 구조 때문이다.


지금까지 호조 관료들이 갈려나간 건 주로 예산 배정 문제와의 씨름 및 화매소와 경매장 운영과 관련된 것이었다.


화매소랑 경매장 쪽은 인력을 늘리는게 우선이라 속성 교육한 서리들을 아무데서나 끌어와 박은 걸로 해결이 대충 된 거고, 진짜 문제는 예산 배정이었다.


사실, 개정된 토지세 구조에서 예산이 어떻게 분급될지가 아직도 불명확한 상태다.


필요에 따라 물건으로 받아왔던 세금을, 생산량 기준으로 하여 돈으로 받으니, 정부 필요 물자 조달할 때 물자의 가격 변동에 따라 필요한 돈이 바뀐다.


쌀값만이 아니다. 상업 규모가 그저 그런 시대라서 경강삼방에 배가 들어오느냐 마느냐에 따라 물가가 널뛰기 한다.


공납의 시대에는 백성들이 나지도 않는 물건을 내라고 하는 나라 때문에 고통받았지만, 이젠 나라에 필요한데 생산이 부족한 물건이 있으면 정부 재정이 비명을 지른다.


가격공개제를 만들고 기록하긴 했는데, 1년치 데이터도 안 쌓인 상태인데다가 지폐 가격이 안정되기 전의 물가 데이터들이라서 예산을 짤 데이터도 모자라다.


게다가 '아무튼 니들이 돈 써야 경제가 굴러간다고!' 하고 반강제로 채무를 할당 시켜가며 예산을 굴린 덕에 앞으로는 어떻게 분급해야할지 더 꼬여버렸다.


안타깝게도 호조는 더 갈려야 한다.


그리고 이건 서리층 실무진을 늘린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맞다. 그들은 대민업무나 창고 출납 관리, 회계 같은걸 하지 예산안 편성은 못한다.




신료들을 일로 학대하던 왕이 한발 뺐다.


왕을 화나게 했다는 이유로 서리로 처 박혔던 관헌들은 승진해서 정직으로 올라갔다.

여전히 호조 관헌이라는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승진이니까.


상놈들이 시빌워를 찍던 곳곳의 아문들에서도 '왕의 친위세력(아님)'과 기존 서리들이 분리되어 정리되었다.


하지만 노사신과 이극돈이 살피니, 역시 화매소에 친위세력들이 많이 배치되었다는 점은 우려되었다.


'결국 주상께서 화매소를 장악하게 되겠군...'


녹사들을 찰방으로 임명하는 문제도, 일단은 관례대로 음서 출신을 올리는 것으로 타협했다.

대신 녹사들을 근무일수에 따라 6품까지 올릴 수 있게 조정하여 차후에는 찰방으로 진출할 수 있게 하고, 승진을 위한 필요 근무일수를 확 늘리는 걸로 조정했다.


'이 역시, 시간이 흐르면 주상께서 키우시는 인재들이 조정을 채우게 되겠지.'


이런 흐름들이 보이는 대신들 측에서는, 경식 입장에선 놀라운 의견을 내놨다.


"앞으로는 과거에 입격한 이들에게 옥당(홍문관)에서 잡학을 가르치게 한 후에 실직으로 임명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경식은 여태까지 사대부들에게서 '선비가 무슨 잡학이냐!' 소리만 듣다가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으니 신기했다.


대신들은 왕이 실무능력 없는 관리들을 유난히 미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능력주의, 실적주의 자체가 조선에서 인정되는 인사 기준이기는 하다.

왕이 대간들 쫓아내기 전에는 되려 대간들이 종일 주장하는 일이었다.


혈연이 더 우선되는 경우가 흔해서 그렇지.


조선의 실무능력 평가는 결국 단순하게 '직접 일 시켜본다' 로 돌아간다.


과거로 사람 뽑는 나라 주제에 취재 시험에 대해서는 '글 한줄 읽는거로 사람 능력 어떻게 앎?' 이라는 비판이 나오는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 21세기에도 마찬가지인 문제이긴 하다.


시험으로 사람 능력 어떻게 아냐는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직접 일 시켜서 확인하는 건 직위 자체도 부족했고,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트집 잡아 되려 서리들을 쓰려고 하는 왕에게 어떻게 신진관료들이 직접 일해서 평가를 받을 기회를 얻는단 말인가?


그래서 대신들이 내놓은게 지금 타협책이다.


홍문관을 연수원으로 굴리자는 것이다.


지금 홍문관은 어차피 왕이 대간들 때려잡을 때 같이 처맞은 뒤로 간언도 못하고 정말로 연구만 하라고 박아놨다.


문과 합격자 신인은 원래는 돈도 안 주고 권지로 일 시키면서 대충 싹수를 봤지만, 이젠 돈도 있고 하니 좀 더 체계적인 싹수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다.


"좋은 방법이오. 지금 율학은 형조, 산학은 호조, 이학은 예조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홍문관에서 통합해서 교육하고, 각 학에서 점수가 우수한 자를 세 조에서 뽑아가면 될 것이오."


"하지만 그렇게하면 다들 산학을 피할 것인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수포자가 세상에 많은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의 전통이다. 인간의 뇌는 원래 수학 계산용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호조는 자기들 앞으로 사람 안 올까 걱정이고,


"산학에 대해서는 점수가 부족한 자는 어디로도 임용하지 못하게 기준을 만드시오."


왕은 제일 신경쓰는만큼 후대해줬다.


"그리고 평준도감은 내가 경연에서 강한 경세의 이치를 정리해서 올리시오."


사실 왕이 가르친 그것들을 아직도 대부분 이해 못하고 있던 신료들은 갑자기 내려온 과제에 진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이극규가 전하께서 이르신 경세의 이치를 잘 꿰고 있으니 맡을 만 합니다. 그런데 어찌 갑자기 그것을 정리하시고자 하는지요?"


"왜냐니. 홍문관에서 이제 앞으로 가르쳐야지. 그것에 점수가 부족한 자는 호조에 임용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오."


뭐...라고...?


'그걸 어떻게 이해하라는거지...?'


호조는 혹시 앞으로도 자기들 신입이 안 오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에 잠겼다.




그런 식으로 속도 조절과 타협이 이뤄지고, 경장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어차피 겨울이라 토목공사도 못하고, 강이 얼어 배가 못 드나들어서 포구들도 놀고 있고, 심지어 종이도 못 만들고...계절 때문에라도 쉬어가야 할 때지.'


경식이 조선에서 만 1년을 살아보니 확실히 느껴졌다. 전근대 국가는 어쩔 수 없이 계절의 리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게.


호조가 제일 비명을 지를 때는 가을 추수기 직후였고, 평소에는 생각보다는 한산했다. 경매장 물가도 대부분의 물자가 제철에 제일 싸고, 겨울 직전에 비쌌다.


돗자리 하나조차 자연의 리듬에 따라 가격이 움직였다.

겨울 직전에야 돗자리 값이 싸서 각사가 한가득 사오길래 물어봤더니, 농민들이 추수하고 지푸라기로 돗자리 삼는데 그 정도 걸려서 그렇댄다.


이런 자연에 맞춘 삶이 나쁘진 않았다. 겨울엔 일이 그닥 많지 않다보니 후원만 돌아다녀도 유유자적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사실 이건 박경식이 본인 워라벨을 위해 대신들에게 일을 꽤나 맡겨서 그런 것도 있다.


경식은 본인이 벌인 프로젝트들이나 좀 신경쓰지 왠만한 일은 다 해조(*該曹, 해당 부서.)에서 먼저 상의하라, 의정부가 상의하라며 정리했다.


사실 조선에서 공식적인 일처리 프로세스는 그게 맞아서 대신들도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덕분에 지금은 결산이나 예산안 때문에, 신료들은 미래의 국회를 방불캐하는 난투극(물리)를 벌이고 있는데도 경식은 많이 바쁘진 않았다.


경식은 삼정승이 취합해서 안을 3개 정도 만든 후에 가져오라고 한 후 빠졌다.

경식은 직장 생활 하기 전에 왕이 돼버려서 이런 명령이 제일 좆같은 걸 모른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신하들을 뒤로 한 채 경식은 오랜만에 잠행을 나갔다.



왕의 얼굴을 오랜만에 본 김막동(*1)이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저...전...나리!"


"고생이 많네, 막동이. 요새는 큰 일 없는가?"


요새 1년 간 제일 큰 일이 왕이 가출한 걸 놓친 것이었던지라, 지금이 그 바로 다음으로 큰 일이었다.


"작년에 이맘 때도 자네가 수자리를 섰고 여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러니 이게 무슨 일인가? 번상은 안 하는가?"


"시...실은 같은 조 번에서 지폐를 받고 대립하고 있는지라..."


원래 조선의 군역은 번상제(番上制)라고 하는 교대 형식의 의무 복무다.

백성들 고충을 덜겠다면서 복무 기간을 짧게 해서, 2개월 복무 시키고 되돌려 보내는걸 8조로 나눠서 반복한다.


이런 구조라서, 장부상 병력이 8만이면 실제 복무하는건 1만 정도다.


그런데 2개월 뺑이치게 시키려고 서울로 불렀다 돌려보냈다 하니 딱히 백성들 고충이 덜리진 않았다.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거 자체가 엄청난 고생인지라, 다들 돈을 주고 남에게 대신 복무를 시켰다.


'이걸 잘 활용하면 직업군인제로 전환이 될 법도 한데...'


저 난민촌을 밥 주는 대신 겨울 직전까지 부려먹어왔고, 겨울 다 되어서 쫓아내기도 뭣해서 결국 어영부영 남겨진 상태다.


조선에서 실제로 복무 상태인 병사 1만 여 명 중 3천 정도가 한양에서 복무한다.


그런데 난민을 병사라는 이름으로 2만 정도-사실 여자와 아이를 뺀 장정만 세면 1만 정도-를 갑자기 배속시키고, 그걸 정말 최소 생활 수준용이라고는 하나 돈을 주는 건 급격히 불어난 조선의 재정 상태에서도 상당한 무리였다.


올해는 반드시 저들을 쓸모있게 쓸 방법을 찾아야한다.


진짜 병사로 조련을 하던지, 어디 취직이라도 시키던지.


"자네는 대립하면서 얼마를 받지?"


"지폐로 20전 정도 받습니다."


'...그 돈으로 얘 어떻게 살지?'


"서울에서 집은 어디서 사나?"


"주상 전하...아니 나리께서 지어주신 영에서 요새 살고 있습니다. 은혜가 참으로 큽니다. 헤헤."


아아, 병사를 빙자한 난민들 수용하려고 짓게 한 병영인데 이런 일반 병사도 진짜 들어가서 사는구나.


"요새 그 병영에서는 학당을 다니며 서리 되어보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을텐데 자네는 생각 없는겐가?"


"사실 병조 취재를 보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칼도 말도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뭐? 뭐가 없어?"


"병조 취재(* 일종의 부사관 시험)를 보려면 격구나 기사를 보는데 말이 있어야 배우든 연습을 하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말 빌리는 값이 오죽 비싸야지요."


알고보니 이 막동이는 기병(* 騎正兵 : 상민 징집 기병)이었다.


급여도 보병에 비해 많고 보인도 받은 기병이니까 그나마 종이갑옷(진짜로 종이로 만들었다.)이라도 입은거고,

칼(뽑아보니 광선이 안 나오는 광선검 모양이다.)이라도 갖추고 있는 것이었다.

실전 무기로 활과 창(병영 무기고에서 빌려왔다.)이라도 있고 말이다.


앞서도 봤지만 지금 조선에서 병사는 기본적으로 그냥 전투력 0의 SCV 에 가깝다.


비록 뇌물 받고 부친상 난 효자 이 아무개를 내보내주긴 했어도, 도성 수문을 하는 시점에서 알아봤어야 했다.


이 막동이는 상민 병사 중에서는 최정예다.


"그러고보니 이제 정병들도 나라에서도 월료를 주지 않나?"


"아! 그렇습니다! 주상전하의 은혜가 그...하해와 같습니다!"


물론 그 급여는 터무니 없었다. 월 지폐 15전. 현대 가치로 치면 대략 75만원 정도.(*2)


기병이 보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은 법적으로는 매 월 포 3필인데, 포가 지금 필 당 5전 정도라서 이렇게 정해졌다.


사실 실제로는 대리복무인 대립이 횡행하면서, 원래 병사로 뛰어야 할 사람에게서 월 8~9필 정도 받으면서 복무를 하는게 보통이었다.


'...얜 어디서 구멍이 나서 겨우 20전 받고서 대립하는거야? 하여간 최소 40~45전은 줘야 이 정도 장비이라도 갖춘다는거군.'


그렇다면 2만명을 병사로 육성하려면? 또 보병을 이 정도로 잡으면 기병은 한 명 당 얼마나 들까?


그런 계산에 갑자기 골몰해서 경식이 말이 없어지자 막동이가 의아해했다.


"나리?"


"아, 미안하네. 나가려는 길이었는데 자네에게 인사한다고 일 방해했군."


막동이에게는 먹으라고 엿 좀 챙겨주고, 저 근래의 골치거리인 난민촌 근황은 어떤가 살피러 갔다.




공식 명칭 정병영, 박경식의 마음 속 이름 난민촌. 이름만 병영이지 난민촌이니만큼 벽도, 초소 같은 것도 없다.


마을 근처에 발을 딛자 주민들이 의심과 두려움에 휩싸인 눈빛으로 반겨주었다.


"...분위기가 왜 이런지 알고 있나, 최 별감?"


경식이 호위로 데려온 겸사복에게 물었다.


"이곳 출신들이 서리로 쓰이면서 워낙 사고를 많이 저질렀으니 스스로 찔리는게지요."


데려온 액정서 별감 중 하나도 거들어 말했다.


"지체 높아 보이는 분이 갑자기 이런 곳으로 오니 시비를 걸까 두렵기도 할 것입니다."


경식이 마을 상태를 보니, 지은지 1년도 안된 곳인데 지금 바로 대책을 세우고 관리 안 하면 정말 큰일이 날 거 같다.


사실상의 난민촌이긴 해도, 이건 어쨌든 병영이란 명목으로 지은거라 시간과 돈이 되는 범위에선 최대한 성의를 들였다.


시간이나 돈 문제로 초가집이요, 비숙련자들이 만든 것이다보니 좀 삐뚤긴 했어도 움막이 아니라 나무기둥 세우고 제대로 지은 건물들이었다.


대충 도랑을 파고 기와를 얹은 것이긴 하나 하수도도 있고, 각 건물 부지도 계획적으로 분할되어 있다.


물론 처음 계획이 그랬단거고, 결국 난민들 넣으려고 만든게 맞다보니 정말 난민촌처럼 굴러갔다.


원래는 500명 정도 살 수 있는 영을 서울 도성 인근에 20군데 정도 지어서 입번병사와 난민병사를 살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늘어버리고 말았다.


20명을 살 수 있게 설계한 막사에 -그 구막사 맞다- 에 그 갑절은 사람이 들어가 있고, 초막이 부지를 무시하고 지어져 있었다.

막사 안의 사람들은 모닥불 하나 근처에 모여 닭털과 지푸라기로 채운 추포를 덮고 겨울을 버텼다.


그나마 좋은 막사는 병사들이 자리를 차지해서 지내고 있었는데, 난민들이 몰린 곳보다는 사람이 덜 들이차 있을 뿐 대단히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데에서 살면서 성은이 어쩌고 한 거냐고...'


박경식이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는 중에 마을 사람 중 그나마 장정들이 나와 몰려들었다.


"지체 높으신 분들께서 이런 병영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말은 예의 바르지만 전혀 환대하지 않는 분위기. 되려 위협적인 느낌까지 든다.


"이놈들! 누구 면전이라고 감히 겁박하려 드느냐!"


소리부터 치려는 겸사복을 물러나게 한 후 경식이 직접 말했다.


"내가 내수사 관헌인 이 별감이라 하는데, 근래 전하께서 이 병영의 백성들을 어여삐 여기시어 어찌 지내고 있나 살피라 명을 내리셨네.

이에 자네들 삶이 어떤지 좀 보러 온 것일세."


내수사가 관할 토지도 아닌, 명목상 병영을, 갈취하러 온 것도 아니고 보살피러 왔다는 말은, 아는 사람들에겐 총체적 개소리로 들릴 소리였다.


다행히, 이 난민들은 그런거 모른다.


대신 최근에 서원으로 입격한 동향 사람들이 풀어댄, 내수사 사람들이랑 힘을 합쳐서 탐관오리(?)와 싸우고 있다는 무용담만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순식간에 경계를 풀고 경식과 호위관헌들에게 절하며 환대하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요새 생계는 어찌 잇고 있나? 전국이 풍년이라지마는 자네들은 여기서 사느라 농사도 못 지었을텐데."


"풍년이라 잘 살고 있습니다요! 돗자리를 팔면 며칠 밥을 먹고, 하다못해 빗자루 하나만 만들어서 팔아도 하루 밥은 먹으니 다 주상전하의 은혜입니다!"


겨우 돗자리랑 빗자루가 뭐냐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조선에서 생활할 때 필수적으로 소모되는 물품이 저 둘이다.


둘 다 각사에서 작년에 부족하다고 징징거리던 물건이기도 하고, 경기도에서 공납하느라 힘들어한다고 상소가 올라온 물건이기도 하다.


특히 돗자리는 조선 후기에는 몰락 양반이나 퇴직한 하류 양반들도 부업으로 많이 만들어 팔았다.

미래 한국에서 할 거 없는 퇴직자들이 치킨집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작년의 덜 적응한 시점의 경식은 조선이 이렇게까지 거지 같은 나라였나 절망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병영민들의 생계 이야긴 비슷했다.


"조 값이 싸니 나라에서 쌀로 내려주는 군량미는 팔아서 조를 사서 먹고 있습니다."


"넝마라도 조지서에 팔면 돈을 주니 넝마주이를 하고 있지요."


이런 식으로, 그들은 이미 농업이 아닌 한양의 도시 경제에 편입되어 최하류층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풍년으로 농부들이야 쌀 값 떨어졌다고 죽상이었지만, 이 병영민들처럼 농사랑 연이 별로 없고 도시 경제 아래에서 살면 풍년이면 여유로워지는 법.


그래서 빈민굴에서 살고 있는데도 올해는 그나마 좋은 집에 살고 굶주리지도 않는다고 만족해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여전히 녹록하지 않은 삶이었다.


"요새는 서울에선 요역을 할 때 돈을 주니 날품팔이 삼아 요역을 나갔는데, 겨울이라고 공사가 없어 벌이가 없습니다."


여인들도 호소했다.


"생계에 보탬하려고 품을 받아 빨래를 했는데, 이제 겨울이라 빨래도 못해 삯바느질을 하는데, 삯바느질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품삯이 계속 줄기만 하고, 바늘은 비싸 남는게 없습니다."


한번 설움이 터져나오자 그 뒤로도 계속 그들의 팍팍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병이 들어도 의원은 커녕 무당도 부르지 못해 초막에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었다.

경식이 본 마구잡이로 지어진 초막들은 그것이었다.

겨울이라서 이미 죽은 이들도 많았다.


겨울엔 땔감조차 비싸 근처 강에 자란 억새라도 주워 태우곤 했다.

몰래 벌채하는 것도 흔한 일이었고, 단속하러 온 관헌과 싸움이 나기도 했다.


조선에서 유랑민의 삶은 이런 장면으로 가득했다.


그때 왕을 호위하던 관헌들은 용루(* 龍淚, 왕의 눈물)를 처음으로 보아 소스라치게 놀랐다.

신하들 잡을 때는 분노만 뿜어져 나오던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게 너무 어색해서 그러는건 절대 아니고 신하로써의 충심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자네들의 이야기는 내가 꼭 전하께 전해드리도록 하겠네. 주상께서는 결코 자네들을 내치지 않을 것이야."


궁궐로 돌아온 박경식은 궁궐에서 땔감을 정병영들로 보내도록 명했다.


"이 정도로 보내면 땔나무 태우는 것을 절반으로 줄여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이것도 충분히 보내는 것이 아닌데도 그러한가..."


왕조차도, 개인 재산을 성금처럼 보내서는 빈민굴 하나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줄 수가 없었다.


'내가 좀 땔감을 아끼면 되지' 하고 억지로 보내니, 신하들에게 들켜버려서 '대계를 생각하시어 옥체를 보존하소서!' 라는 잔소리를 들었다.


다행히도 신하들도 일단은 사대부 윤리를 갖춘 이들. 눈치 껏 땔감을 십시일반해서 정병영에 보냈다.


경식이 왕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왕은 자선을 한다면 개인에 불과하지만, 정책을 활용한다면 국가를 바꿀 수 있는 존재 아닌가.


그리고 분명 경제학과에서 들었다.


경제학의 목표는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고.


이제 그 지식은, 인류가 수백 년을 힘겹게 싸워서 얻어낸 그 힘은, 조선을 바꾸기 위해 사용될 것이다.


---


<이하 미주>


*1 : 김막동이는 5화 <시위(侍衛) 시위(示威)>에서 나왔던 인물입니다. 본문대로 부친상을 당한 효자에게 감동하여 통금 시간에 성문을 열어준 의로운 병사입니다.


*2 : 사실 전근대 시대는 일반적으로 곡물가가 매우 낮고 공업품의 가격이 높은 물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극히 많아 농업 노동자의 임금이 낮고, 공업 생산 능력이 부족해서 가격이 높은 경제 구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에 비하면 현대 선진국 도시 물가는 식품 가격이 국민들 구매력을 따라 값이 오르고, 공업 생산품은 가격은 무척 낮은 편이지요. 그래서 작 중 지폐의 가치는 현대로 환산하면 얼마 정도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사실 말이 안됩니다. 1전을 5만원 정도로 환산해서 작 중에서 표현하는 것은 미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작 중에서 전으로 표기한 가격을 현대의 5만원으로 환산했을 때 현대와 가치가 많이 동떨어져 있더라도, 이런 점을 염두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작가의말

날아올가즘 님, 낙뎀주의 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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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호조야 지금 너만 힘든줄 아냐 다들 힘들어 +46 24.05.20 14,173 576 22쪽
14 호조는 오늘도 갈려나간다 +35 24.05.17 14,693 548 20쪽
13 용산 락 페스티벌 +41 24.05.16 14,580 541 19쪽
12 용팔이 2 +46 24.05.15 14,519 568 20쪽
11 용팔이 1 +26 24.05.14 15,660 576 19쪽
10 돈이 복사가 된다고 +37 24.05.13 16,619 564 19쪽
9 아 장사하자 2 +37 24.05.12 16,993 573 20쪽
8 아 장사하자 1 +26 24.05.11 17,772 594 18쪽
7 이세계 용사 박경식 +38 24.05.10 19,063 644 14쪽
6 고심 끝에 "대간 해체" +37 24.05.09 19,737 665 14쪽
5 시위(侍衛) 시위(示威) +34 24.05.08 19,926 682 13쪽
4 대간이 대듦 +28 24.05.08 21,148 665 13쪽
3 사고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34 24.05.08 22,764 673 13쪽
2 여기가 어디요? 내가 누구요? +41 24.05.08 25,295 694 15쪽
1 프롤로그 : 수상할 정도로 까다로운 교수님 +70 24.05.08 28,298 74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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