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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라구.B.P 님의 서재입니다.

경제왕 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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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B.P
작품등록일 :
2024.05.08 21:07
최근연재일 :
2024.07.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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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전환 : 5일 남음

작성
24.05.0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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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시위(侍衛) 시위(示威)

DUMMY

닭이 울기 전 새벽. 한양도성의 성문은 굳게 잠겨 있다. 집이 가난해서 번상을 여러 정병들에게 짬처리 당해 번상을 몇개월 연속으로 서고 있는 김막동과 이개을은 여느 조선군이 그렇듯 설렁설렁 순라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흰 옷을 입은 사내(국상 중이라 다들 흰 옷이긴 해도)가 홀로 문으로 다가와 성 밖으로 나가려 하는 것 아닌가. 들어오려는 사람 막은 적은 많아도 이 시간에 나가려 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왠 놈이냐? 아직 종도 안 쳤는데 행순(* 야간통행금지)을 범해?"


그런데 이 사내,


"부친의 상을 당하여 급히 나갈 일이 있소."


라는 말을 하며 소매에서 희고 반짝이는 무언가를 꺼내들지 않는가.


아! 부친상은 킹정이지. 여긴 동방예의지국 조선 아닌가. 순라꾼들이 글은 몰라도 대충 어떤 사항에서 행순에서 예외가 되는지는 대충 들었다(대충이라는 말이 두 번 들어간 것에서 보이듯, 정말정말 대충 들었다).


누군지 몰라도 효와 예를 잘 아는 그 사내에게 성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그나저나 이게 은이라는 것인가? 이번 번상은 오길 잘했네, 같은 생각을 하며 효자에게 잘 가라고 인사도 해줬다. 상 당한 사람은 행순에 예외인 법이라고 아마 들었던거 같은 기분적 느낌이 드니까 분명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새벽종이 칠 무렵 궁궐은 뒤집혔다.


"전하께서 사라지셨다!!!"


"상선들은 전하를 보필 안 하고 뭘 했는가?!"


"하...하지만 분명 밤에 자리에 드시는 것도 봤는데 아침에 문안을 와보니..."


"병사들을 풀어라! 도성을 닫고 도성을 전부 뒤져라!"


"산릉으로 공사하려 보낸 병사들도 다 도성으로 모읍니까?"


"당연한 일 아니오!"


"도성을 수문하던 병사에게서 증언은 없는가?"


"한 사내가 부친상을 칭하며 통금 시간에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신료들의 주의가 모였다. 그놈이다!


"그는 어디로 갔다고 하오? 수상한 점은 무엇 없었는지 상세히 추국하시오!"


그렇게 새벽에 분명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충 사내를 보내줬던 병사들은 신나게 얻어터졌다.


"남쪽으로 갔다고 하고...한명 뿐이며 특별히 들고 있는 것도 없는 혈혈단신이었다 합니다."


"...한명?"




신료들이 왕의 행방을 찾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산릉도감 쪽에서 연락이 왔다.


전하가 산릉에서 초막을 짓고 시위(侍衛 : 모시어 지킴.) 중이시라고.


어떤 의미로는, 미래에 쓰이는 단어로써 시위(示威)이기도 했다.




"부덕한 내가 어찌 선왕의 치세에 비하겠느냐? 우리나라의 관습대로 산릉에서 3년 간 시위하며 효를 다하여 수신한 뒤에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다."


뭐? 그럼 나라는 누가 다스려? 대신들이 미치고 팔짝 뛰었다.


게다가 그 말이 대비의 귀에도 들어갔다.


"주상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하시고 잔병치레가 많으시었는데 어찌 3년상을 버티겠는가!!!! 내가 그것을 걱정해 빈전에서 여막살이를 지내는 것조차 그르다 했거늘 신료들은 전하를 보필하지 않고 대체 무엇하였는가?!"


그렇찮아도 신료들은 울고 싶었는데 대비가 또 호령하니 그냥 울기로 했다. 산릉으로 달려가서 왕 앞에서 울면서 빌었다.


"전하! 한 나라의 임금의 효는 보통 사람과 다른 법이옵니다! 대계를 위해서라도 통촉하여주시옵소서!"


"대간들이 내게 충심으로 간하지 않았느냐? 지금 경기에 흉년이 든 건 내가 수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조금이라도 수신하기 위해 간언을 듣고 효를 다하려 한다."


따지고 보면 왕이 뒤끝질을 하며 신하들 기강잡기를 시도하는 것이지만, 원래 이렇게 모여서 기강잡기 당하면 기강잡기를 시전하는 사람보다는 시전하는 사람이 저격하는 대상에게 비난의 화살이 간다. 신료들의 분노가 대간들을 향했다.


'안 그래도 성종대왕 말년 쯤부터 몇년 동안 대간들이 너무 위세를 부렸어!'


'주상께서 즉위하신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찌 그리 가벼이 말을 간언이라고 했는가!'


하지만 고집도 자기네 편이 부리면 절개인 것이 정치의 논리다. 대간들은 소신발언을 계속했다.


"전하, 수신이라 함이 어찌 능에서 시위함을 말하겠습니까? 간신인 노사신과 윤필상을 내치시어..."


'아오, 저 눈치 없는 새끼들!'


신료들이 왕 앞이라서 차마 대간들을 두들겨 패지 못해 참고 있을 때 왕이 대간의 말을 끊었다.


"되었다. 내가 불효한 죄인인데 어찌 상들에게 죄를 묻겠는가? 내가 없는 사이 원상들은 나라를 잘 돌보시오."


그러면서 삽을 들고 초막을 나서 능 공사 현장으로 갔다.


그리고 직접 능 자리를 팠다.


"으아악 전하! 전하께서 이렇게 직접 하시면 소인네들이 경을 칩니다!"


능 공사를 하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말렸다.


"됐다. 아들이 아비를 장 지내기 위해 무덤을 파는게 잘못이란 말이냐?"


신료들도 결국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전하! 차리리 소신들을 벌하소서!!"


"신하라고 칭하면서 옥체를 범할 셈이냐? 건드리지 마라."


그렇게 드잡이질로 조정은 하루 동안 일을 말아먹었다.




'돌아오옵소서!' 와 '아아~대간들이 수신하래서 킹쩔수 없이 하는건데에~' 로 기싸움을 며칠이나 이어갔을까.


늙은 대신들이 저 대간 놈들 때문에 자기들이 저 멀리 산릉까지 매일 가며(사실 가마타서 가기 때문에 대단히 힘들진 않지만)통촉쇼를 벌여야한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며 산릉으로 가고 있을 때, 희한한 광경을 보게되었다.


국상 중이라 다들 흰 옷이라 먼 발치에서 옷차림만 보고 누구인지 식별은 어렵다. 그러나 여자들인건 확실해보이고 한 여자를 뒤로 많은 여자들이 따르는걸 보니 지체 높은 집 여식이라. 그런 여식이 어찌 아침에 도성을 나서는지 희한한 일이었다.


게다가 가는 길이 묘하게 대신들이랑 겹치는 것 같았다. 아니, 같았다가 아니라 똑같이 산릉에 가고 있었다. 산릉에 가까워지고서야 그들이 말하는게 들리고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괜찮다니까요. 시부모님께 효를 다하는 것이 열녀 아닙니까?"


"아이고, 우리가 물고가 난다니까요, 중전마마!"


대신들은 자기들 귀를 의심했다. 마마? 무슨 마마?


"아이고오!!! 어찌 이러십니까 중전마마!!"


상황 파악이 되자마자 대신들이 일제히 가마에서 내리고 중전이 가는 길을 가로막고 울면서 절했다.


"주상 전하께서 산릉을 시위하느라 초막에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아내이자 신하로써 주상을 모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나갈 것 같았던 대신들의 정신이 정말로 아찔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일이 벌어졌다.


"중전? 중전께서 왜 여기 있으시오?"


대신들은 '전하께서야 말로 왜 거기서 나오십니까?' 라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긴 산릉이 이제 코 앞이니 나오는게 맞긴 하다.


"제가 일전에 말했듯 전하께서 효를 다하지 못하여 애달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어미는 지아비의 뜻을 따르는 법(夫唱婦隨). 저도 전하와 함께 산릉을 시위하겠습니다."


박경식은 속으로는 저번에 한 대화가 왜 이렇게 복선회수되나 놀랐지만 짐짓 감동한 척 하였다.


"아아! 중전의 어짐이 이와 같은데 내가 어찌 도리를 어기겠는가! 고맙소, 중전. 나는 조선에서 제일 복 받은 사내요."


대신들은 '뭐? 설마 진짜 안 돌아가겠다고?' 라고 잘 알아들었다. 일부러 울음소리를 더 크게하며 빨리 돌아오시라며 조아렸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왕의 딴청.


"허어, 대신들의 말을 들으니 사간들이 논하는 재이의 설이 참인지 거짓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구려."


대충 알아들었지? 지금부터 재이론을 비판해라. 그리고 재이 타령하는 대간들도 같이.




삼정승이 빈청에 모여 의논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다 대간들 탓이오."


좌의정 노사신이 먼저 나서 요약했다.


"상의 뜻이 대간들을 내치는 것에 있는 것은 명백하나, 무엇으로 대간을 벌한단 말이오? 이전 성종조에 이미 임사홍도 벌한 것이 그들이오."


영의정 이극배가 우려를 표했다.


"성상의 뜻이 대간들을 벌하는 것에 이미 있다면 더 무엇을 따진단 말이오? 전하께서 재이론의 허실을 논하라는 교지를 내리셨으니 그것을 탄핵하면 될 것이오."


우의정 신승선이 주장했다. 안 그래도 대간이랑 사이 나빴던 노사신만큼이나 신승선이 강경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지금 왕 따라 초막살이를 하고 있는 중전 신씨가 바로 신승선의 딸이니까.


이극배는 좀 걸리긴 했으나 좌우 양정승이 합의하는 사항을 거스르진 않았다. 당상관 신료들을 불러모았다. 물론 사간원은 뺐다.


"조정의 변고가 호흡지간에 달렸소. 경들은 빨리 전하께서 하문하신대로 재이론에 대한 논변을 모아 공론을 정해야 할 것이오."


왕이 하문한대로 재이론을 비판하는 논변들이 여기저기서 모여서 한 문집이 만들어졌다.


"동중서의 천인감응론은 음양가의 잡변이 섞여 있소."


"일식과 월식이 이전에는 재이로 여겨졌으나, 주자 이래로는 이와 기의 원리로 설명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오. 다른 많은 일들도 그렇지 않겠소?"


"재이에 어찌 인군, 재상의 책임만 있겠소? 낮게는 백성에서부터 신료까지 모두 수신해야하는 것이고, 감히 나서서 남의 탓이노라 주장하는 것 역시 수신이 부족한 소인의 일이오."


정승들이 미리 답을 정하고 그 외 대신들도 안 그래도 대간들이 맘에 안 든 참이었기 때문에 일은 꽤 금방 끝났다.


하지만 그들도 역시 유학자로 시대의 한계도 있고, 재이론은 왕권을 견제할 때 유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얼마 전 왕이 일갈한 것처럼 모든 재이로 보이는 것은 그냥 하늘과 땅의 이치에 따라 일어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논리까지는 쓰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재이 일어나도 누구 탓인지 정확히 모르니까 그만하자~' 정도의 결론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정말로 이대로 계본을 올립니까?"


으음? 신료들의 시선이 이의(異議)를 제기한 대사헌 이의(李誼)에게 모였다.


"아니, 이 계본대로면 재이론이 이단의 잡변이라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옳소? 전하께 아첨하는 것이 아니오?"


이의는 소신발언을 계속했다. 이름부터가 이의더니 아무 때에나 이의를 제기하는 이름값을 해서 대사헌에 올라온 것이 분명했다.


'뭐야 저 새끼?'


'같은 대간이라고 사간원을 두둔하는가?'


"아니, 재이에 대한 논변은 한의 동자(* 동중서를 말함)때 부터 있던 바요. 어찌 우리가 감히 이단이라 정할 수 있겠습니까? 주상께서 재이론을 논변하라 이르셨다고 하나, 솔직히 주상께서도 세자 시절부터 딱히 문리에 밝으셨던게 아닌데..."


"예끼!!!!!!!!!!!!"


노사신이 크게 꾸짖었다.(사관은 말 그대로 思愼喝 이라고 적었다.)


바로 빈청이 사헌부를 규탄하는 집회 분위기로 뒤집혔다.


"사헌부는 아직도 어심을 모른단 말이오!!!!"


"자고로 충심을 잃음이란 죽음을 뜻하며..."


사헌부는 그대로 빈청에서 쫓겨났다. 홍문관은 딱히 대단히 반발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같이 쫓겨났다. 홍문관 영사는 영의정이 겸하다보니 커버쳐줄 높은 사람도 없다. 대신들이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애초에 삼사 대간 중 하나인 홍문관이랑 사헌부를 여기에 껴준게 잘못이었다.


"사문난적도 물리쳤으니 이대로만 상언합시다!"




경식은 산릉에서 계본을 받아보았다.


재이는 모두의 잘못이니 대간들처럼 아무거나 비판한다! 이놈저놈 탄핵한다! 는 논리로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는 결론이었다. 그렇게 난언을 한 대간들에게 벌을 내리라는 소도 함께였다.(박경식이 정말로 원하던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재이론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에는 도달하지 못한거 같군...'


미래의 과학 지식을 전파해서 재이론을 물리칠 수 있을까 생각을 좀 해봤는데, 미래에 인공위성과 슈퍼컴퓨터 정도는 있어야 기상 예측이 가능하다는걸 생각해보니 문과인 자기 지식으론 대단한 증명 같은건 못할듯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바로 지구구형설과 지동설을 주장하고 증명하라고 하면 그것도 못할 거 같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궁궐로 돌아가기에는 명분이 되겠지. 무덤 옆에서 초막 짓고 사는거, 사람이 할 짓이 아니더라고. 아내 신씨도 걱정되고.


"경들의 말을 들으니 과연 내가 섣불리 이렇게 할 수 없겠소. 대계를 위해서라도 궁으로 돌아가리다. 재이에 대한 논변은 돌아가서 합시다."


그 계본을 받은 왕은 바로 궐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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