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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가넷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 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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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가넷
그림/삽화
케빈가넷
작품등록일 :
2020.06.23 22:47
최근연재일 :
2021.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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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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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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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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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11화. 세 사람

DUMMY

1534년 여름. 타란티아, 이탈리아 남부.


몇 번을 망설이던 카린은 마침내 방문을 나섰다.

‘오늘은 이야기 해야겠어.’

성채를 벗어난 카린은 부지런히 걸어 알레 등대로 향했다. 비토리아 해변의 서쪽 끝에 위치한 알레 등대는 높게 쌓아 올린 흰색 벽돌 덕분에 먼 곳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조반니는 그 앞에 이미 한참 전에 도착해서 그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는 늘 허름한 수련복을 입고 지내던 평소와 달리 가진 옷들 중에 가장 멀쩡한 셔츠와 바지를 차려 입었다.

“카린! 여기야!”

카린을 발견한 조반니가 손을 흔들었다. 카린은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등대 쪽으로 걸어갔다.

“일찍 나왔네?”

“당연하지. 모처럼 너와 둘이서 보는 건데 지각할 순 없잖아. 후후.”

조반니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위쪽에 올라가서 볼래? 아마 낮에는 등대지기도 없을 거야.”

“그래, 올라가 보자.”

알레 등대에 처음 와본 카린도 높게 솟아 있는 꼭대기 층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카린과 조반니는 기둥 안쪽을 따라 둥글게 설치된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올라가자 마침내 이오니아 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꼭대기 층이 나타났다. 등대지기 혼자서 일하는 곳이다 보니 불을 밝히는 공간은 그다지 넓지 않았다.

“우와, 속이 탁 트이는 기분이야.”

조반니는 난간에 기댄 채로 넓게 펼쳐진 바다를 향해 몸을 내밀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초여름의 바닷바람이 등대를 오르며 흘린 땀방울들을 차갑게 식혀주었다.

“시원해.”

카린 역시 장엄하게 펼쳐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자 기분이 상쾌해졌다. 사실 그녀는 어릴 적 트라몬토 섬의 꼭대기에 올랐을 때부터 자신이 높은 곳을 즐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바다 멀리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올라오면 늘 기분이 좋았다. 창밖으로 한껏 가슴을 내민 그녀는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감았다.

“카린.”

한참 동안 바람을 즐기던 조반니가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카린은 그가 갑자기 돌아서는 바람에 살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나는 조만간 이곳을 떠날지도 몰라.”

조반니는 뜻밖의 계획을 입밖으로 꺼냈다. 그의 단단한 목소리에서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여길 떠난다고? 왜?”

카린은 갑작스러운 그의 말이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로마로 가서 교황청에서 창설한 해군에 입대할 생각이거든. 거기서 해적들을 많이 토벌하면 큰 상을 내린데. 난 반드시 고위 장교가 되어서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올 계획이야.”

조반니는 굳은 의지가 담긴 표정으로 카린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부탁인데, 지금부터 딱 2년만 날 기다려줄 수 있어?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고 2년만. 약속한 시간 안에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날 잊어버려도 좋아.”

카린은 조반니의 고백 아닌 고백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조반니가 자신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타란티아에 온 지도 벌써 6년, 그사이 성숙한 소녀로 성장한 그녀는 상대방의 조그마한 감정 변화도 눈치챌 만큼 예민한 시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당연히 조반니가 보내오는 애틋한 신호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카린의 마음 속에는 이미 또다른 누군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건 그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였다. 그래서 혹시 오늘 조반니가 자신에게 마음을 표시한다면 최선을 다해 거절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진심 어린 고백을 받고 나니 그녀가 세워 둔 단단한 성벽이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조반니, 난······ 난 잘 모르겠어······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사실 결론을 정해 놓고 여길 왔는데 그게 맞는건지 뭐가 진짜인지 지금은 잘 모르겠어.”

결국 항상 똑 부러지던 그녀답지 않게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조반니는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아니야! 그건 아니야! 넌 나에게 과분한 남자야.”

카린은 오랜 친구였던 그가 상처받는 것이 싫었다.

“그럼 내가 고아라서?”

조반니는 상처받은 마음에 꺼내지 말아야 할 이야기도 내뱉었다. 카린은 대답대신 눈을 부릅떠 조반니를 노려보았다.

“그럼 혹시······”

“조반니, 그런 거 아니야. 내게도 생각할 시간을 줘.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어릴 때부터 날 위해서라면 목숨도 걸었으니까. 다만 내 마음이 지금 혼란스러워서 그래. 그러니 조금만 더 시간을 줘.”

카린은 조반니를 등대에 남겨두고 도망치듯 아나스 성으로 돌아가 버렸다. 조반니는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마지막 질문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다음날, 로카는 혼자서 트라몬토 섬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누워 있었다. 그는 한가로이 햇살이 부서지는 해변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여름이 다가오는 비토리아의 모래사장은 어느새 울창하게 자라난 포플러 나무숲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빅토르 대장님이 돌아올 때가 된 거 같은데······”

그는 검술을 가르쳐 주던 빅토르가 마르세이유로 떠난 뒤로 낮에 딱히 할 일이 없어졌다. 그나마 대련에 응해 주던 조반니도 한달 전의 그 가벼운 다툼 이후 통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조는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겨우 그 정도 일로 이렇게 토라져 있을 녀석이 아닌데······”

눈앞에 펼쳐진 타란티아의 풍경은 더할 나위없이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은 헛헛함이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카린도 방에서 안 나왔네.”

곰곰이 생각에 잠긴 로카는 다시 자세를 고쳐 누웠다. 그러다 불현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안되겠어. 그 녀석 기분을 좀 풀어줘야겠다.”

로카는 조반니가 살고 있는 성 안젤로 성당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성 안젤로 성당은 마을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알레시오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그 곳은 타란티아를 지켜주는 주민들의 안식처 같은 장소였다. 전력으로 달린 로카는 고즈넉한 성당 입구까지 한달음에 도달하였다. 평소 같으면 큰 소리로 조반니를 불러 댔겠지만 오늘은 조용히 안뜰로 들어섰다.

“뒤뜰에 있나?”

조반니를 찾지 못한 그는 성당 뒤편으로 돌아갔다. 그곳엔 고아들이 생활하는 기숙사 건물이 있었다. 과연 작은 공터 위에는 땀에 젖은 조반니가 연신 목검을 휘두르는 중이었다.

“조······”

로카는 그를 부르려던 손을 급히 내렸다. 대신 공터 구석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친구의 수련을 구경하였다. 혼신의 힘을 다해 집중하는 모습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조반니의 검술은 더욱 성장한 듯했다. 아직 열다섯 살에 불과하지만 이미 어지간한 어른도 상대가 안될 정도로 검기에 힘이 넘쳤다. 그의 검술은 칭찬에 인색한 빅토르마저 감탄할 만큼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어? 언제 왔어?”

한참을 수련하던 조반니가 인기척을 느끼고 동작을 멈췄다.

“방금 왔어. 와~ 실력이 엄청 늘었네?”

조반니는 로카의 칭찬에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얼굴에 흘러내린 땀을 천으로 닦고 로카 옆에 다가와 앉았다.

“뭘······ 어쩐 일이야? 여기까지.”

조반니는 금방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뭐, 특별히 일이 있어서 만나러 오냐? 얼굴 본지도 오래 됐고 해서 와봤지.”

로카는 대충 얼버무렸다. 충동적으로 달려오기 했지만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조, 있잖아······ 저번에 비토리아에서 내가······”

침묵이 길어지자 결국 로카가 어렵게 입을 뗐다. 하지만 조반니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 그날은 내가 좀 예민 했어. 나 답지 못했지. 다 지나간 일이니 신경 안 써도 돼.”

의외로 조반니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서로 사과는 했지만 둘은 또다시 말이 없어졌다. 간간이 들리는 풀벌레 소리만이 적막한 공터를 채웠다. 조반니는 뭔가 할말이 있어 보였지만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괜히 목검 손잡이에 감겨 있던 가죽 끈을 풀어 다시 감기 시작했다. 로카는 인내심을 갖고 조반니가 어떤 말이라도 해주기를 기다렸다.

“내가 쭉 생각해 봤는데.”

드디어 끈 감기를 마무리 지은 조반니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릴 때는 우리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 했었어. 하긴 그땐 아무것도 모를 때니······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웃기지. 나이를 먹으면서 이런 거 저런 거 알게 되니까 어른이 된다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닌 거 같아.”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너와 내가 비슷하지 않다니?”

로카는 그의 말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조반니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로카, 우리 이제 순진할 나이는 지났잖아. 너와 난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게 달라. 어디가 다른 지는 너도 잘 알 테고.”

“알겠어.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로카는 오늘따라 조반니가 매우 멀게 느껴졌다.

“물론 나도 언제까지나 이 순간에 머물러 있고 싶어. 하지만 요즘은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졌네. 내가 너와 친하긴 해도 여느 고아들처럼 불안한 미래를 가진 건 매한가지니까.”

조반니는 멀리 시선을 둔 채 읊조리듯 말했다.

“네가 고아이건 뭐건 간에 넌 내게 최고의 친구야. 내가 나중에 영주가 된다고 해도 네가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로카는 조반니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 나도 잘 알아. 네가 좋은 귀족이라는 거. 넌 어쩌면 풀리아 지방에서 제일 명망 높은 영주님이 될지도 몰라. 난 당연히 너의 훌륭한 가신이 될 테고.”

조반니의 말에는 여전히 뼈가 담겨 있었다.

“그런 말이 아니라 우린······”

“이봐, 로카.”

조반니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로카의 말을 잘랐다.

“얼마 전만 해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지금처럼 안락하게 사는 방법.”

그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조······”

로카는 불안한 눈빛으로 그의 움직임을 좇았다.

“난 정말 운이 좋은 아이라고 생각해. 부모님이 없는데도 잘 곳과 먹을 것이 있으니까. 심지어 영주님 아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래서 여기 계속 남아 너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는 잠깐 말을 멈췄다. 하지만 곧 결심이 선 듯 로카를 또렷이 응시하였다.

“그런데 이젠 아니야. 난 좀더 성공한 남자가 되고 싶어졌어.”

조반니의 눈빛에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그거야 당연히······”

“왜냐하면!”

조반니의 목소리에서 조급함이 느껴졌다.

“왜냐하면 정말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거든.”

그는 오늘 로카를 본 순간 이 사실을 꼭 말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로카로선 예상치 못한 고백이었다.

“여자라고 하면······”

자신이 아는 그 주변의 여자는 한 명 밖에 없었다.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 애가 맞아.”

조반니는 로카가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토해내 듯 고백하였다. 로카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 애의 모든 것이 좋아졌어. 하루 이틀 된 가벼운 감정은 아니야. 어릴 때 숲에서 처음 그녀와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모든 순간이 쌓이고 쌓여 이렇게 된 것 같아. 그렇게 커진 마음이 이제는 내 안에 그 무엇보다도 단단해졌어. 물론 나도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몰라. 하지만 지금은 온통 카린 생각뿐이야.”

속사포처럼 빠르게 말을 쏟아낸 조반니는 바다를 향해 뒤돌아섰다.

“하지만 내 처지에 그녀가 날 만나줄까? 혼인은 할 수 있을까? 아직 그녀가 날 좋아하는지도 모르는데 그런 생각들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곤 해.”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머리를 가로저었다.

“물론 카린도 나처럼 부모님이 안계시는 건 비슷해. 그런데 그녀가 나 같은 고아는 아니잖아. 비슷해 보여도 명백하게 나와 다르지. 그래서 심지어······ 그 아이도 나처럼 진짜 고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어. 머저리 같지만.”

조반니는 다시 로카를 돌아보았다.

“로카, 나도 너처럼 네가 나의 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해 왔어. 그래서 방금 아무것도 숨김없이 내 모든 감정을 너에게 들려준 거야. 내가 그러하듯 너도 그러길 바라고 있어.”

로카는 그 말의 의도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이 물음에 진실되게 대답해줘. 네가 보기엔 내가 카린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조반니는 마침내 진짜 하고 싶었던 질문을 꺼냈다. 로카는 왠지 모르게 그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글쎄, 너희 둘이 잘 어울리는지에 대해 내 생각이 중요한 건가?”

로카는 슬그머니 대답을 회피했다.

“응, 난 중요해. 네 생각을 꼭 듣고 싶어.”

조반니는 집요했다.

“그래? 안 어울릴 건 없지만······ 어찌되었건 우리 부모님도 카린을 딸처럼 생각하시니······ 당연히 카린의 마음도 중요할 테고······”

로카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생각의 갈피를 잃은 그는 횡설수설하다시피 이런 저런 이유들을 끄집어냈다.

“그런 것들은 나도 잘 알아. 대답하기 어려우면 그만 둬. 네가 어떤 마음인지 잘 알겠다.”

조반니는 다시 바다 쪽으로 돌아섰다. 둘 사이엔 다시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있잖아······ 난 좀더 준비해서 내년 봄 즈음에 여길 떠날 거야. 일전에 상선대 선원에게서 들었는데 교황청이 해적에 대적할 해군함대를 만든다고 해. 거기에 한번 지원해 볼 생각이야.”

로카는 깜짝 놀랐다. 그가 너무 충동적인 감정에 휘둘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길 떠난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빅토르 아저씨도 너를 눈여겨보고 계시고······ 조금만 더 있으면······.”

“맞아. 여기 있으면 영주님의 근위대장 자리 정도는 물려받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잖아. 난 그런 걸로는 만족 못해.”

조반니는 로카의 말을 단박에 잘랐다.

“계획대로 로마로 가서 해군에 입대할 거야. 그리고 가장 악명높은 해적들을 때려잡아 이름을 드높인 다음, 다시 돌아와 그녀에게 청혼하겠어. 그게 내 최종 목표야.”

조반니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 로카는 그의 기분을 이해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그의 귀에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당장 마음을 돌리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내가 서운하게 한 거라도 있어?”

로카는 다른 오해가 있다면 풀고 싶었다. 조반니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네 생각이 그러하니 일단은 나도 널 응원하는 수밖에 없겠다.”

로카는 내년 봄이 오기 전에 조반니의 결심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로카, 너를 포함해서 드니로 가문 사람들만큼 존경할 만한 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건 진심이야.”

“그러면······”

“다만······”

조반니는 말을 이어 가려다 뜸을 조금 들였다.

“아까 질문엔 대답을 안 했으니 이번엔 질문을 바꿔 물어볼게. 너에게 카린은 단지 여동생일 뿐이야? 루안나와 같은?”

로카는 이번에도 말문이 막혔다.

“이번에도 대답 안할 거야?”

조반니는 그가 이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안나는 친동생이고 아무래도 카린은······”

로카는 여전히 우물쭈물 댔다. 조반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카린은 다르구나. 너도 알 수 없는 마음을 내가 알 수는 없지. 하지만 만에 하나.”

조반니가 갑자기 목검을 들어 바다를 향해 쭉 뻗었다.

“만에 하나, 그녀가 나중에 우리 사이에서 힘들어 할 일이 생긴다면······ 오늘 내게 대답하지 않을 것을 후회하게 될 거야.”

목검을 쥐고 선 조반니의 벌어진 어깨는 단단해 보였다. 어릴 때부터 함께한 철부지 같은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었다. 로카는 조반니를 바라보는 두 눈에서 왠지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럴 일이 없도록 내가 최선의 방법을 찾을 테니까. 난 너와 카린 그리고 우리 친구들과 죽을 때까지 함께하고 싶어.”

조반니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로카는 이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워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때 조반니가 목검 끝으로 선착장을 가리켰다.

“저기 처음보는 배가 항구로 들어오는데?”

그의 말처럼 낯선 배 한 척이 미끄러지듯이 선착장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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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화. 다가온 운명 2 20.07.06 52 0 14쪽
13 12화. 다가온 운명 1 20.07.05 54 0 12쪽
» 11화. 세 사람 20.07.04 54 2 17쪽
11 10화. 완벽한 제안 20.07.03 58 1 18쪽
10 9화. 서로 다른 길 2 20.07.02 61 1 12쪽
9 8화. 서로 다른 길 1 +2 20.07.01 78 2 14쪽
8 7화. 트라몬토 탐험 4 20.06.30 70 2 14쪽
7 6화. 트라몬토 탐험 3 20.06.29 73 2 14쪽
6 5화. 트라몬토 탐험 2 20.06.28 85 2 15쪽
5 4화. 트라몬토 탐험 1 +2 20.06.27 160 2 16쪽
4 3화. 타란티아의 아이들 +2 20.06.26 208 2 18쪽
3 2화. 새로운 식구 2 20.06.25 236 0 15쪽
2 1화. 새로운 식구1 20.06.24 457 1 11쪽
1 Intro. 그리스도의 검은 뱀 +2 20.06.23 644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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