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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가넷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 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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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가넷
그림/삽화
케빈가넷
작품등록일 :
2020.06.23 22:47
최근연재일 :
2021.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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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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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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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0화. 완벽한 제안

DUMMY

1534년 여름. 튀니스, 북아프리카.


선술집 안은 여전히 어수선했다. 하지만 확실히 축제 분위기였다. 얼마 전 오스만의 외교관이 가져온 한 장의 문서가 튀니스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이다. 오스만의 술탄이 직접 서명한 공식 문서에는 해적왕 바르바로사를 무려 오스만 해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유래없이 파격적인 임명장은 해적 도시 전체를 열광에 빠트리기에 충분하였다. 심지어 이들과 별 상관없는 수크(상업 지역) 쪽 사람들까지 너도 나도 이 소식을 입에 올리기 바빴다. 유일하게 바에 앉은 한 사내만이 이들과 함께 즐기지 못했다. 그는 시뻘개진 얼굴로 대낮부터 술을 퍼마시는 중이었다.

“이봐 바로스, 대단한 곳도 아닌데 뭘 그렇게 속상해하나?”

선술집 주인 하디는 빈 술잔에 다시 술을 채워 넣으며 혀를 끌끌 찼다. 바로스는 술을 다 채우기도 전에 벌컥벌컥 들이마시더니 소리 나게 술잔을 내려놓았다.

“아니 뭣도 아닌 놈들도 죄다 한자리씩 차지하고 따라간다는데, 내가 제독 밑에서 꼴아 박은 세월이 몇 년이야······ 빌어먹을······”

열이 오른 바로스가 탁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바르바로사의 무용담들을 주고받으며 흥을 돋우던 손님들이 깜짝 놀라 바로스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다들 그의 괴팍한 성질머리를 아는지라 슬금슬금 눈을 피할 뿐 아무도 제지하는 자는 없었다.

“크크크, 그 잘려 나간 귀만큼이나 바르바로사의 신뢰를 잃어버렸나 보군.”

그때 바로스의 등 뒤에서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를 조롱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술집 내부는 마치 폭풍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고요해졌다. 하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스를 제외한 모든 해적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이 놈이 염통은 배에 두고 몸만 항구에 내렸나 본데?”

이들 중 애꾸눈의 해적이 맨 앞으로 나섰다. 그는 목소리의 주인공인 그 겁 없는 사내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칼을 들이밀었다. 발목부터 목까지 온통 진회색 천으로 감싼 사내는 코앞의 칼을 보고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잠자코 앉아있던 바로스가 손을 번쩍 들었다.

“크롤리, 거기까지.”

바로스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자신의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 반쯤 풀린 눈빛으로 사내를 응시했다.

“음······ 아주 좋아. 이런 게 내 취향이지. 정말이지 말고. 난 늘 신선한 자극에 목말라 있거든. 요즘은 도통 이럴 일이 없잖아? 다들 그냥 살려 달라고 빌기나 하지. 어이! 켈리, 오 아직 살아 있다면 거기 내 칼 좀 가져다주겠나?”

바로스는 켈리가 갖다 준 시미터를 칼집에서 천천히 뽑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 이름이 궁금하지만 모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고마워. 이렇게 칼을 뽑아 보는 것도 오랜만이야.”

바로스의 거만한 모습을 지켜보던 사내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세워 뒀던 칼을 집어 들었다.

“소문만 자자하던 솜씨를 드디어 볼 수 있겠군. 어린애에게 귀가 날아간 그 실력 말이야.”

사내가 다시 한번 바로스를 도발하였다. 바로스의 부하들이 선술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그는 거침이 없었다. 눈치 빠른 해적들이 잽싸게 탁자들을 밀어 공간을 만들었다.

“오, 그래. 좋아 좋아. 넌 특별히 양쪽 귀와 그 나불대는 주둥이까지 잘라주지. 자른 건 하디에게 주는 게 좋겠군. 오늘 저녁 특선 메뉴로 선보일 수 있을 테니까.”

물오른 독설만큼이나 바로스의 인내력도 최고조에 달했다.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예리한 칼끝으로 사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비록 방심하다가 파미르의 칼에 귀 한쪽이 날아가긴 했지만 그는 이 곳에서도 손꼽히는 검술을 지닌 검투사였다.

- 캉!

놀랍게도 사내는 바로스의 기습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동시에 바로스의 무릎으로 반격을 가했다. 대낮부터 꽤 술을 마신 바로스는 가까스로 뛰어올라 그의 공격을 피했다.

“제법인데?”

바로스는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양손으로 칼을 고쳐 잡은 그는 이번에는 제대로 일격을 날리기 위해 몸을 한껏 움츠렸다. 사내는 근방에서 본 적이 없는 독특한 방어자세를 취하며 바로스를 내려다보았다.

“합!”

빈틈을 노리던 바로스가 이번에는 사내의 허리를 향해 베어왔다. 사내는 즉시 칼등을 세워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흥분한 바로스가 더욱 맹렬하게 칼을 휘둘러 댔지만 사내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공격들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헉, 헉, 네놈은 어째서 공격을 하지 않는 거지?”

슬슬 지치기 시작한 바로스는 이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단지 그대와 대화하고 싶었을 뿐이야. 첫인사 치고는 너무 무례한 거 아닌가? 하하.”

사내는 빙그레 웃으면서 방어 자세를 풀었다.

“말을 건 게 아니라 목숨을 걸었겠지.”

바로스가 약이 잔뜩 오른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뭘 걸었든 달라질 건 없고.”

사내는 아예 칼을 내리고 팔짱을 꼈다.

“그대에 대해서 꽤 많은 것을 알고 왔네.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왜 대낮부터 술이나 퍼 마시고 있나?”

바로스는 사내의 일침에 갑자기 먹은 술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혈압이 올라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 잘린 귀에 대한 복수, 그리고 바르바로사의 신임, 그게 자네가 원하는 것인가? 내 말이 맞다면 내일 저녁에 여기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 술도 좀 깨고 이 덩치 큰 친구들도 내보내고 말이야.”

사내는 주위에 둘러선 해적들을 향해 칼 끝을 휘휘 저었다. 아무런 대꾸없이 사내를 노려보던 바로스는 칼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리곤 그대로 선술집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운 좋은 줄 알아. 촌놈아!”

남아있던 해적들이 사내에게 눈을 부라렸지만 덤벼드는 자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바로스를 따라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쓸 만한 놈인 것 같긴 한데······”

혼자 남은 사내는 술잔에 담긴 아라크(증류한 아랍 술)를 한번에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다음 날 저녁, 바로스는 혼자 선술집 안으로 들어와 바 앞에 조용히 앉았다.

“그 놈은 어디 있나?”

선술집 주인 하디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술집 문이 열리고 어제 본 그 사내가 등장했다.

“주인장, 나도 아라크 한 잔만 주게.”

사내는 마치 단골손님이라도 되는 양 익숙하게 술을 주문하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바로스의 옆자리에 앉았다. 바로스가 기선 제압을 위해 시미터를 뽑아 나무바닥에 내리꽂았지만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네놈이 칼 좀 쓴다고 겁대가리를 상실한 것 같은데 그거 하난 알아 둬. 허튼소리를 늘어놓다간 이 동네를 사지 멀쩡하게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거.”

바로스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사내를 위협하였다. 사실 어제 상황만 봐도 그의 협박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의 부하들이 한꺼번에 공격했다면 그는 목숨을 보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사내는 바로스의 위협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자네 부하들 실력이 그만큼 뛰어났으면 나도 바랄 게 없겠네.”

오히려 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제 정신이 아니군······ 그래서, 네놈은 어디에서 온 누구냐?”

“알아 봤자 별 의미는 없지만 알려주지. 난 카이로에서 온 하심이라고 하네. 그대가 여기서 썩기엔 아까운 인재인 거 같아서 이렇게 먼 길을 왔지. 물론 자네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갖고 말이야.”

하심은 물음에 거침없이 대답하였다.

“카이로라······ 정말 멀리서 왔군. 그렇다면 그 제안이나 한번 들어보지.”

바로스는 목이 타는 듯 아라크를 들이켰다.

“아주 간단하네. 자네가 잘 아는 타란티아로 가서 우리가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주면 끝나는 일이야.”

“타란티아라고?”

바로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렇지, 타란티아. 자네도 들은 적 있겠지만 그 도시의 허름한 성엔 의외로 값나가는 보물들이 꽤 많거든. 물론 약탈한 다른 물건들은 모두 자네가 가지면 돼. 제독의 눈에 들 공적도 올리고, 보물도 차지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그 귀 자른 놈도 찾아 복수도 하고. 아주 멋진 제안 아닌가?”

하심의 제안은 그럴싸했다. 그러나 바로스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코웃음을 쳤다.

“쳇, 난 뭐 대단한 이야기라도 가져온 줄 알았네. 난들 거기가 어디 붙어있는지 몰라서 안간 줄 아나? 젠장, 괜한 시간낭비를······”

바로스가 허탈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허, 성질이 급하군.”

하심은 서늘한 눈빛으로 바로스를 올려다보았다.

“그게 아니라······ 뭘 잘 모르나 본데, 거긴!”

“자네보다 그곳에 대해 잘 알지. 그곳엔 지금 빅토르가 없네.”

하심의 이어지는 말에 바로스는 그대로 동작을 멈췄다.

“빅토르가 없다고?”

“응. 빅토르는 고향에 갔어. 아버지가 위중한가 보더군.”

하심은 바로스를 힐끗 쳐다보며 아라크를 홀짝였다.

“그 말을 어떻게 믿나?”

“믿고 안 믿고는 순전히 자네의 몫이지. 나도 할 일이 없어서 이렇게 해적들이 득실거리는 먼 곳까지 자네를 찾아온 게 아니니까.”

바로스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럼 가져다 달라는 물건은 뭐지?”

그제서야 대화가 통한다는 듯, 하심이 싱긋 웃었다.

“별 거 아니야. 타란티아 영주의 집무실 어딘가에 하얀색 돌을 감싼 브로치가 있을 거야. 그걸 가져다주면 되네.”

“하얀색 돌? 그 브로치가 꽤 중요한 물건인가 보지?”

바로스는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브로치는 중근동에 있는 어느 유력 가문의 후계자를 상징하는 물건이야. 우리가 그걸 가져가면 일을 의뢰한 자가 상당한 값어치를 지불하겠지. 아, 물론 자네가 들고 있어봐야 돌덩어리 밖에 안되는 거고.”

“흠······ 그게 다야?”

하심은 아라크를 한 모금 머금고 입안을 헹궜다.

“하나 더 있어. 영주에게 딸이 둘 있을 텐데. 하나는 친딸이고 하나는 밖에서 데려온 수양딸이야. 그 수양딸을 잡아다가 나에게 넘겨주게. 머리카락이 검고 눈이 초록빛인 아이니까 구분이 쉽게 갈 거야.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하지?”

“브로치.”

하심은 고민없이 대답했다.

“그래······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드는군. 왜 직접 하지 않고 나를 이용하는 걸까?”

바로스는 모든 의구심을 털어내고 싶었다.

“이런 건 우리 일이 아니라서 그래. 우린 비밀스러운 정보 같은 걸 사고 파는 소규모 조직이거든. 그래서 이번 일도 사실 받으면 안되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 아무리 빅토르가 자리를 비웠다고 해도 경비병들이 고스란히 타란티아에 남아있을 것 아닌가. 그들을 처치하려면 어느 정도의 무력이 필요하단 이야기지. 하지만 우리에게 그 정도의 병력은 없어.”

“그만한 해적들은 이집트에도 찾아보면 꽤 있지 않나?”

“이집트 놈들은 바르바리 해적들만큼 깔끔하게 일처리를 못해. 그리고······ 여러가지 정보들을 취급하다 보니 우연히 자네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네. 타란티아와 아주 인연이 깊다고 하더군.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왕이면 동기부여가 되는 자가 이 일을 하는게 좋지 않겠나?”

하심의 대답은 일목요연했다. 바로스도 제안을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만약에 그 브로치를 못 찾으면 어떻게 되나?”

바로스는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해 두고 싶었다. 하심은 전달할 말이 끝났는지 남은 아라크를 입에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뢰를 잃게 되겠지. 함께 할 일들이 무궁무진한데 그 기회를 놓치게 되는 거고. 우린 작은 조직이지만 자네를 갑부로 만들어 주는 건 일도 아니네.”

하심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아, 이거 하난 명심하게. 만약, 브로치를 찾았는데 빼돌린다면 신뢰를 잃는 수준이 아닐 걸세. 우리가 만만해 보이거든 어디 한번 시험해봐도 좋아.”

말을 마친 하심은 그대로 선술집을 나가려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그는 바로스에게 잘 접혀진 종이 한 장을 흔들어 보였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여기로 오겠네. 해볼 생각이 있다면 영주의 성으로 가는 지름길을 알려주지. 바르바로사가 곧 정식 임명장을 받으러 이곳을 떠난다는데 어차피 이판사판 아닌가?”

하심이 사라지자 바로스는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그를 수년 전부터 보아온 하디는 하심이 사라진 문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느낌이 좋지 않아. 저자와 엮이면 안될 것 같다.”

그는 빈 잔에 아라크를 한잔 더 채워주며 나직이 말했다. 바로스는 하디가 내어준 아라크를 입 안 가득 머금었다가 그대로 삼켰다. 술기운이 오르자 잘려 나간 귀의 흉터 자국이 더욱 쓰라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지.”


그는 6년전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렸다. 트라몬토 섬에서 알제로 돌아온 바로스는 보름이 지나서야 겨우 잘린 상처가 아물었다. 파미르에게 등을 찔린 켈리 역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미 돌아오는 배에서 숨을 거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깊은 상처였다. 켈리가 워낙 강골인 데다 칼이 급소를 벗어난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것이다. 하지만 바로스가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그가 친동생처럼 아꼈던 아메지드의 죽음이었다. 아메지드는 해적이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나올 때부터 자신과 함께한 수족과도 같은 동생이었다. 시간이 흘러 몸을 어느정도 회복한 바로스와 켈리는 완전 무장을 하고 투르구트의 막사를 찾아갔다.

“아니······ 바로스, 지금은 들어갈 수 없어. 안에 바르바로사 님이 와 계시네.”

“그럼 더 잘 되었군.”

바로스는 자신을 가로막는 경비병을 밀치고 거침없이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컴컴한 막사 안에는 투르구트와 바르바로사 둘만이 앉아 은밀한 대화를 나누던 참이었다.

“오, 바로스! 벌써 몸이 회복되었나? 지금은 제독님과 대화 중이니 내가 나중에 다시 부르겠네.”

완전무장을 한 바로스를 본 투르구트가 깜짝 놀라 손짓을 하였다. 바로스와 켈리는 막무가내로 성큼성큼 걸어가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나에게 배와 형제들을 내어 주시오. 이런 상태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소. 타란티아로 가서 그들을 모두 도륙을 내야 살 수 있을 것 같소.”

바로스는 복수심에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바로스······ 내가 나중에······”

투르구트가 다시 만류하였다. 그때 묵묵히 지켜보던 바르바로사가 손을 들었다.

“그대가 바로스인가? 그러고보니 트라몬토 섬에서 귀가 잘린 녀석이로군.”

바르바로사는 바로스의 얼굴을 알지만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말했다.

“제독! 우리에게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병사들을 내어 준다면 타란티아를 불태우고 그들이 가진 모든 보물들을 약탈해 오겠소!”

바로스는 고개를 숙여 다시 한번 간청하였다.

“네 기분은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우린 그런 식으로 싸우지 않아. 지금 그 곳에 쳐들어 간다면 마을에 불 정도는 지를 순 있겠지. 하지만 너희들도 무사히 돌아올 수 없다.”

노련한 바르바로사는 불이 타오르는 듯한 바로스의 간청을 가볍게 일축하였다.

“일전에 투르구트 자네에게도 잠깐 이야기한 적이 있지. 그 도시를 지키는 방어 책임자가 빅토르라는 프랑스 기사라고. 바로스, 자네도 들어본 적이 있던가?”

바로스로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 자는 성 요한 기사단이 로도스 섬에서 오스만 대군을 맞이했을 무렵부터 명성이 알려졌지. 그 대단하다는 기사단원들 중에서도 최상급의 검술 실력을 가진 자야. 하지만 그보다도 기사단장이 그의 능력을 높이 산 것은 병사들에 대한 통솔 능력이었다.”

바르바로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알다시피 오스만의 술탄도 무력으로는 로도스 섬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릴라당 기사단장과 남쪽 성문을 지키고 있던 빅토르의 존재 때문이었지. 그는 겨우 백여명 남짓한 기사들을 지휘하여 포격으로 무너진 성벽을 완벽하게 막아냈거든. 무려 예니체리 군병(오스만 제국의 정예부대)들이 덤벼들었는데도 말이야.”

꽤 긴 이야기를 마친 바르바로사는 목이 말라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게 무슨 상관이오! 배와 병사들만 내어 준다면 빅토르건 뭐건 반드시 타란티아를 초토화시켜 보이겠소!”

과거 무용담 따위에 물러설 바로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울분에 찬 목소리에도 바르바로사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바로스, 넌 용맹한 심장과 단단한 몸통을 가졌다. 그러나 아직 그에 걸 맞는 머리는 가지지 못했다. 너는 잘려 나간 그 귀로부터 네 목숨을 한번 빚진 거야. 다음에 날아올 칼날은 이번엔 귀가 아닌 너의 목을 노리겠지.”

바르바로사는 냉정한 모습으로 바로스를 타일렀다. 그의 낮은 목소리는 방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위압감이 있었다.

“너같이 불 같은 지휘관에게 나눠줄 형제들의 피는 없다. 하지만 기회는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니 그때까지 스스로를 돌아보길 바라. 차가운 머리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니까.”

바로스는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바닥을 짚은 손에 잡힌 모래를 그대로 움켜쥔 채 투르구트의 막사를 빠져나왔다.

“냉정하고 기민하게.”

바로스는 6년 전의 회상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마치 그때의 모래가 손에 남아있는 것처럼 술잔이 으스러질 정도로 손아귀에 힘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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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화. 트라몬토 탐험 1 +2 20.06.27 160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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