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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가넷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 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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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가넷
그림/삽화
케빈가넷
작품등록일 :
2020.06.23 22:47
최근연재일 :
2021.06.04 00:00
연재수 :
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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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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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글자수 :
501,682

작성
20.06.2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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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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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화. 새로운 식구1

DUMMY

1528년 여름. 타란티아, 이탈리아 남부.


해변과 그리 멀지 않은 공터에는 마을 아이들의 열띤 응원소리로 가득 찼다. 아이들의 시선은 야트막한 개울가에 걸쳐진 통나무를 향해 있었다. 어지간한 어른의 몸통보다도 굵은 통나무 위에는 두 사내아이가 숨막히게 대치하는 중이었다. 이제 겨우 여덟 아홉 살 정도밖에 안돼 보였지만 그들은 마치 인생을 건 듯한 모습이었다.

“로카, 개울에 떨어져도 저번처럼 울지는 마.”

오른쪽에 선 아이가 여유 있는 표정으로 도발하였다. 그는 손 떼가 묻어 표면이 반질반질한 참나무 작대기를 마치 장검처럼 치켜들었다. 로카라 불린 반대편의 아이 역시 비슷한 길이의 참나무 목검을 감아 쥐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조반니.”

자세를 바짝 낮춘 로카가 가볍게 응수하였다. 둘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 때문인지 어느새 아이들의 응원소리도 잦아들었다. 탐색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빈틈을 노리던 로카가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핫!”

그는 커다란 기합소리와 함께 조반니의 왼쪽 종아리를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 탁!

불의의 기습이지만 조반니는 능숙하게 공격을 받아냈다. 그리고 거의 엎드리듯이 상체를 낮췄다. 왼손을 통나무에 짚은 그는 비어 있는 상대의 오른쪽 공간을 파고들었다. 유려한 그의 동작에는 전혀 군더더기가 없었다. 순식간에 작은 목검이 로카의 종아리를 때렸다.

“악!”

로카가 비명소리와 함께 종아리를 감싸 쥐었다. 곧바로 몸을 일으킨 조반니는 침착하게 로카의 어깨를 밀쳐 그를 통나무 아래로 떨어뜨렸다. 로카는 저항할 새도 없이 개울가에 처박히고 말았다.

“와~!”

언제 봐도 완벽한 조반니의 검술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자세를 더 낮춰야 반격을 막을 수 있어.”

조반니는 친구들의 환호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제야 아이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곤 망설임없이 개울가로 뛰어내려 넘어진 로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로카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이 꼴로 성에 돌아가면 또 혼나겠다.”

로카가 웃는 얼굴로 푸념했다. 개울가에서 올라온 그는 옷에 묻은 물기와 진흙을 털어냈다.

“로카! 로카!”

그때 한 무리의 남자들이 공터를 향해 달려왔다. 선두에 선 사내가 아까부터 로카를 불러 댔지만 떠드는 소리에 묻혀 이제야 귀에 들어왔다.

“앗, 빅토르 대장님이다.”

로카는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환한 표정으로 반겼다.

“이런, 그새 또 엉망이 됐군.”

사내는 마을 아이들 사이에서 로카를 발견하고 가볍게 혀를 찼다.

“너희들 정말······ 지금은 시간이 없다. 영주님께서 얼른 선착장 앞으로 오라고 하셨다. 어서 따라와.”

그는 로카에게 더 잔소리를 하려다가 다른 아이들의 시선 때문에 단념했다. 넓고 단단한 어깨에 암갈색 턱수염을 지닌 그는 한 눈에 봐도 위엄이 흘러 넘쳤다. 그는 영주의 근위대장인 빅토르 포르뱅가였다. 마을 아이들은 잔뜩 주눅이 든 표정으로 각자의 칼집에 작대기들을 꽂아 넣었다.

- 끼루룩. 끼루룩.

갑자기 해변의 갈매기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하늘을 올려다본 아이들은 그제서야 항구 주변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로카가 빅토르를 따라 나서자 아이들 역시 너나 할 것없이 근위대를 쫓기 시작했다.


“우와! 저기 봐.”

선두에서 걷던 한 아이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생소한 모양의 함선들이 항구를 향해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 배들은 이 곳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대형 갤리선들이었다. 얼른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신이 난 로카 역시 근위병들을 앞질러 뛰어갔다. 선착장과 가까운 방죽 위에는 이들을 지켜보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넘어지겠다. 천천히 오너라.”

그는 뛰어오는 로카를 발견하고 따뜻하게 반겼다. 그러나 이내 얼굴이 굳어졌다. 지저분한 로카의 행색과 뒤따라오는 마을 아이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들아, 또 해적놀이를 한 것이냐?”

사내는 로카의 아버지인 안토니오 드니로였다. 타란티아의 영주이자 드니로 가문의 문주이기도 했다. 그는 특이하게도 자신의 아들이 영지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질책하지 않았다. 다만 아이들끼리 편을 갈라 해적놀이를 하는 건 매우 싫어했다. 이번에도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아버지. 오늘은 조반니와 검술 수련을 하던 중에······”

로카는 억울한 마음에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안토니오는 아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만 됐다. 어서 따라오너라.”

선착장엔 이미 구경 나온 주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타란티아는 항구도시지만 해안 깊숙이 자리잡은 탓에 이정도 규모의 선단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기껏 해 봤자 마을의 어선이나 주변 항구를 오가는 코그선 따위가 구경할 수 있는 배의 전부였다. 그런 이유로 마을 주민들은 오늘같이 진귀한 구경거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들은 일찌감치 항구에 나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 끼익. 드르륵. 드르륵.

어느덧 선착장 근처까지 다가온 갤리선들은 일제히 노 젓기를 멈추고 닻을 내렸다. 내항의 수심이 깊지 않아 더 이상 진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저 배들은 다 뭐죠?”

로카가 언제 혼났나 싶을 정도로 해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안토니오 역시 이미 화가 다 풀린 듯 어린 아들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들은 베네치아로 가는 정기 상선대란다. 내게 올 손님을 내려 주기위해 잠시 우리 도시를 방문한 것 같구나.”

로카는 정기 상선대라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배들을 구경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그는 특유의 갈색 눈을 반짝이며 아버지를 쫓아갔다. 그사이 선착장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갤리선에서 작은 보트 하나가 조용히 내려왔다.

“누가 내리는 모양인데?”

구경하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보트가 바다에 띄워지자 그 위로 선원 한 명이 훌쩍 뛰어내렸다. 그는 배 위에서 던져준 간이 사다리를 받아 보트에 단단히 고정하였다. 그 사다리를 밟고 귀족으로 보이는 사내와 검고 긴 머리카락을 지닌 여자아이가 차례로 내려왔다. 이들이 내려선 것을 확인한 선원은 천천히 노를 저어 선착장으로 다가왔다.

“여~ 오베르망! 이게 얼마만인가?”

보트가 채 도착하기도 전에 안토니오가 팔을 크게 흔들었다. 주민들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베르망 역시 만면에 웃음을 띄고 손을 들어 보였다.

“하하, 영주님의 체통을 지키게. 드니로 공!”

곧장 부두 위로 올라선 사내는 안토니오를 덥석 끌어안았다. 그는 프랑스 출신으로 보였지만 유창한 이탈리아어를 구사했다.

“하하하, 자네 완전 뱃사람이 다되었는데?”

안토니오는 격의 없는 얼굴로 친구를 맞이했다. 그러다 문득 뒤에 서있던 로카의 팔을 잡아당겼다.

“기억하겠나? 이 아이가 내 아들 로카 일세. 아기 때 보고 헤어져서 이제 못 알아볼지도 모르겠군.”

“아니야. 한눈에 알아봤지. 벌써 이만큼 자랐다니 놀랍네. 엄마를 닮아서인지 어째 클수록 인물이 나는 구만. 하하.”

두 사내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 로카의 관심은 오베르망을 따라온 여자아이에 쏠려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아차차, 너무 반가워서 여기 온 이유를 까먹을 뻔했군. 이 아이라네. 얘가 바로 자네가 그토록 찾던 카이론의 딸, 카린이야.”

오베르망이 드디어 함께 온 꼬마아이를 소개하였다. 카린은 부끄러운지 오베르망의 다리 뒤로 숨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 끌어 자신의 무릎 앞에 세웠다.

“물어보니 이제 여덟 살이라더군. 아마 로카보다 한 살 어릴 거야. 카린, 어서 인사드려라. 앞으로 너를 보살펴 주실 대부님이다.”

카린은 새침하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곤 다시 오베르망의 다리 뒤로 몸을 숨겼다. 아직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은 그녀는 얼굴만 살짝 내밀어 로카를 훔쳐보았다.

“설마 했는데 진짜였군. 이 아이를 찾아내다니 믿기지가 않네. 자네 덕분에 드디어 마음의 짐을 덜 수 있게 되었어.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건가?”

안토니오는 감동에 젖은 눈빛으로 카린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경계를 풀지 않자 그는 한쪽 무릎까지 꿇고 손을 내밀었다. 머뭇거리던 카린은 마지못해 손등을 내밀었다. 그녀는 얼떨떨했지만 호의적인 분위기에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말도 말아. 로도스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있을 만한 항구는 모두 다 뒤져봤지.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군. 그런데 역시 베네치아 놈들의 정보력은 수준이 달라. 발이 넓기로는 그만한 친구들이 없더라고. 정기상선대의 한 선원이 칸디아 항구에서 그렇게 생긴 아이를 봤다는 거야. 그래서 혹시나 하고 가봤는데 이 아이가 딱!”

오베르망은 보트에서 기다리는 선원이 들을까 봐 목소리까지 낮춰가며 자랑을 했다.

“이것도 살펴보게.”

그는 갑자기 카린의 머리카락을 들어올려 귀를 보여주었다. 그녀의 귀는 특이하게도 끝이 뾰족하고 뒤통수에 붙다시피 뒤로 젖혀져 있었다. 그리고 귓불 아래쪽에 마치 칼에 베인 것처럼 흉터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카린이 맞네, 맞아. 정말 고생했어. 오베르망, 오늘 하루 정도는 묵고 갈수 있겠는가? 묻고 싶은 게 많네.”

마치 아이같이 흥분한 안토니오는 오베르망의 소매를 잡아 끌었다.

“아······ 미안하네. 알다시피 원래 일정에 없던 기항이라······ 자네도 알지 않나? 베네치아 놈들이 시간은 칼이라는 거. 여기 오는 것도 선장과 친분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걸세.”

오베르망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길게 늘어선 갤리선들이 벌써 닻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였다. 그가 난처해하자 안토니오는 어쩔 수 없이 친구의 팔을 놓았다.

“단장님과 동료들이 치비타베키아(로마 인근 항구도시) 로 들어갔다는 소식은 들었네. 상황이 희망적이진 않지만······ 조만간 다시 함께 하리라 믿네.”

안토니오는 못내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한번 오베르망을 끌어안았다.

“또 소식 전하겠네. 무사하게 잘 지내고······ 아! 우리 카린도 잘 부탁하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난 나름 이 녀석에게 정이 들었다고. 하하하.”

이제 떠나야 하는 오베르망이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는 카린의 작은 꾸러미까지 내려놓은 뒤 다시 보트에 올라탔다. 혼자 남겨진 카린은 멀어져 가는 보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모선으로 돌아간 보트는 순식간에 위로 끌어올려졌다. 다시 항해할 준비가 끝나자 상선들이 하나 둘 빠지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마을 주민들은 멀어지는 상선대를 향해 크게 소리를 질러 댔다. 로카 역시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실은 곁에 앉아 있는 카린과 눈이 마주칠까 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지저분한 옷차림이 왠지 모르게 부끄럽다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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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화. 세 사람 20.07.04 54 2 17쪽
11 10화. 완벽한 제안 20.07.03 59 1 18쪽
10 9화. 서로 다른 길 2 20.07.02 62 1 12쪽
9 8화. 서로 다른 길 1 +2 20.07.01 78 2 14쪽
8 7화. 트라몬토 탐험 4 20.06.30 71 2 14쪽
7 6화. 트라몬토 탐험 3 20.06.29 74 2 14쪽
6 5화. 트라몬토 탐험 2 20.06.28 85 2 15쪽
5 4화. 트라몬토 탐험 1 +2 20.06.27 160 2 16쪽
4 3화. 타란티아의 아이들 +2 20.06.26 209 2 18쪽
3 2화. 새로운 식구 2 20.06.25 236 0 15쪽
» 1화. 새로운 식구1 20.06.24 458 1 11쪽
1 Intro. 그리스도의 검은 뱀 +2 20.06.23 644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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