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2030

집착과 단일화

그날 밤.

집에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있던 준표는 침대에 놓여있던 스마트폰에서 카톡음이 울리자 의자를 침대쪽으로 스르르 굴려 스마트폰을 집어들었다.

-선배~아까 방가웠어요ㅎㅎ

준표는 그렇지 않아도 머릿속이 복잡하여 공부가 잘 안되던 터라 카톡알림을 무음으로 바꿀까 생각하다가 일단 답장을 해주었다.

-그래 너도 재밌게 놀았지? 나도 반가웠어

-친구들이 선배보고 모델같대용ㅎ실물은 첨본다능

준표는 딱히 할 말이 없어 고민하고 있는데 다시 그녀의 톡이 올라왔다.

-선배 근데 아까 은아선배랑 커플티?ㅎ설마?

-아니야

-그렇죠? 친구들이 백퍼 커플티라고 난리ㅎㅎ

-아니라고 말해죠

-근데 선배 저 수1 모르는 문제가 있는데 내일 좀 갈쳐줄 수 있어용?

-내일?

-넹

-만나서?

-ㅇㅇ학원에서 만나요~!

준표는 갑자기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는데 최대한 빨리 핑곗거리를 생각해 내야 한다.

-어쩌지? 나 내일 하루종일 알바해

-엥? 선배 알바도 하세요?ㅠ

-응

-헉 알겠어여ㅠ 나중에 물어볼게염ㅠ

-그래 미안

-아니에요~잘자요 선배!

-그래 너두

준표는 마지막 톡을 보내고 나서 채팅방 알림을 무음으로 바꾸고 폰을 다시 침대위로 휙 던졌다.

눈치가 빠르다면 그녀는 대화를 하면서 이쪽에서 자신한테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빨리 알아채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눈치를 못채는건지 아니면 눈치채고도 모르는척 하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는데 계속 자신과의 사적인 대화를 이어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그녀를 피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는데 결국 선거를 위해서 그녀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은아와의 스캔들을 잠재우려고 전략적으로 먼저 접근했지만 이렇게 그녀가 적극적으로 다가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투철한 기자정신을 가진 똑똑하고 당찬 여학생이라고만 생각했던게 큰 실수인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당장 다음주 금요일이 선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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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궁 고등학교 학생회장선거 D-4. 월요일 아침.

교실에 들어온 준표가 자신의 자리에 앉자마자 승민이 허겁지겁 교실 앞문으로 들어왔는데 무언가 심상치 않은 표정이다.

그는 재빨리 준표의 빈 옆자리에 와 앉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큰일났다. 단일화한대."

"단일화?"

"그래!"

"뭔 소리야?"

"민진이랑 효근이 근태한테 붙었어."

"뭐라는거야?"

기호 1번 하헌기, 2번 허은아, 3번 김근태, 4번 강민진, 5번 김효근.

기호 4번과 5번이 자신을 지지해주는 학생들에게 기호 3번을 지지해 달라고 선언하며 후보를 사퇴한 것인데 2번 허은아와 더불어 당선이 유력한 후보였던 4번 강민진이 회장직을 포기한 것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오늘 새벽 학교홈페이지와 앱에 자신의 입장문을 올린 4번과 5번은 당선권에서 멀어져있는 3번에게 회장직을 양보한 것인데 3번 김근태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 갑자기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급부상했다.

"야 그리고 근태가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한대."

"뭐?"

"이제 고3도 국회의원선거랑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잖아."

"진짜?"

"너 평소에 뉴스도 안보냐?"

"그래서 민진이랑 효근이가 사퇴했다고?"

"왜 사퇴했는지는 모르겠고 들리는 이야기로는 근태가 당선되면 민진이랑 효근이를 학생회간부로 임명할거래. 방금 듣고 왔어."

"도대체 이게 무슨일이야?"

"내 생각에는 민진이랑 효근이가 애초부터 장학금만 노리고 있었던거 같애."

준표는 말문이 막혔는데 사실 은아와 자신도 장학금을 노리고 선거에 뛰어든 것이다.

승민은 준표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선거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알지만 은아도 같은 이유라는 건 모른다.

경원도 은아가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승민과 경원은 은아가 떨어져도 큰 문제가 없겠지만 준표와 은아입장에서는 이 선거결과에 따라 자신들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준표는 고개를 떨구고 잠시 생각해봤지만 선거가 4일밖에 남지않은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 이런.."

준표가 크게 낙심한 듯한 표정을 짓자 승민은 한숨을 쉬었는데 이번 선거가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 헌기랑 단일화 시도해 볼까?"

승민은 순간 말을 하고 나서 곧바로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는데 '기호1번 하헌기'는 방송반 동아리 회장으로 '금잔디' 대표인 4번 강민진와 적대적 관계를 가진 학생이었는데 마초 기질이 있어서 여학생들 대부분은 그를 싫어하고 2학년 남학생들에게만 겨우 지지를 받고 있었다.

순간 준표와 승민의 스마트폰에서 동시에 알림음이 울렸는데 학교앱에 게시물이 올라온 것이다.

둘은 얼른 내용을 확인했는데 학교신문에 올라온 속보다.

<속보>

-학생회장선거 D-4 지각변동, 기호4번 강민진, 기호5번 김효근 동반사퇴. 기호3번 김근태 캠프에 합류.

-김근태 후보 내년 지방선거에도 출사표, 학우들 큰 관심.

이제 은아와 경원도 이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폰 화면을 보던 준표는 소현으로부터 카톡이 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1시간전에 온 카톡인데 알림을 꺼두어서 이제야 본 것이다.

-선배! 기호4,5번 사퇴하고 3번으로 단일화한대요. 입장표명 최대한 빨리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