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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님의 서재입니다.

초보도사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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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작품등록일 :
2023.12.01 13:52
최근연재일 :
2024.06.07 21:10
연재수 :
1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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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5
추천수 :
72
글자수 :
707,785

작성
24.01.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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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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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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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38. 악귀나찰 2

DUMMY

3.


일성은 나찰을 데리고 청운당을 한 바퀴 돌았다.


아직도 겁을 먹은 유정은 멀찍이 떨어져서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오고 있었다.


“흐으으··· 자, 잠깐!”


나찰이 오금이 저리는지 갑자기 멈춰 섰다.


청운당의 전경을 보자 운천에게 끌려오던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난 것일까.


바들바들 떨며 괴로워하는 모습에서 당시 겪었을 고통이 짐작되었다.


일성은 나찰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안심해도 된다. 여기는 이제 내가 접수했으니까.”


마당에 걸려있던 새끼 멧돼지의 다리 한 짝도 쥐여주었다.


다행히도 먹을 게 입에 들어가자 불안이 누그러지는 모습이었다.


나찰은 입에 문 고기를 와그작와그작 씹다가 뼈도 뱉지 않고 그대로 삼켰다.


나찰을 마루에 앉힌 일성은 양주도 한병 내밀었다.


악귀 주제에 인간의 음식과 술맛을 얼마나 알까 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다.


마치 사람처럼 고기를 뜯고, 술을 마시며 ‘캬’ 소리도 내는 나찰의 모습에 일성은 혀를 내둘렀다.


나찰의 저런 모습은 인간의 몸을 자주 훔치고 다녀서 저절로 익힌 것일까?


일성은 의문을 뒤로 한 채 앞으로 함께 할 이들을 소개했다.


“저기는 유정 법사.”


초가의 처마 끝에 서 있던 유정은 나찰과 눈빛을 교환했다.


아직 경계하는 게 일성처럼 가까워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듯싶었다.


“그리고 내가 식신으로 삼아 부리는 놈들도 있지.”


일성이 손짓을 하자 헛간 뒤에 있던 길수와 철민이 걸어 나왔다.


삐그덕삐그덕!


불안정한 걸음걸이 때문인지 나찰도 눈썹을 꿈틀대며 째려보았다.


잠시 못마땅한 표정이던 나찰은 두 사람의 어깨에 걸린 엽총에 관심을 보인다.


“두 놈 다 사냥꾼이었다.”


나찰은 유정과 식신 둘을 다시 돌아보더니 일성에게 말한다.


“저쪽은 셋이고 우리는 넷이다. 지금 덮치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의욕이 앞서는 나찰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운천의 목을 비틀 기세였다.


일성은 나찰의 곰보투성이 얼굴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빙그레 웃었다.


“운천을 너무 쉽게 보지 마라. 그래도 살아있는 도사 중에서 한가닥 하는 자다. 그리고 정철이라는 놈도.”


나찰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지 양팔을 벌린 채 어깨를 으쓱한다.


저 몸짓도 분명 사람들의 몸을 훔치며 다니다 배운 것일 테다.


“이쪽에는 나도 있고, 또 저 엽총도 있다.”


수적 우위에 더해 물리적 화력까지!


당연히 이길 수 있다는 말이 튀어나올 만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해야 할 자가 평범한 사람인 경우다.


그런데 그게 만약 최강의 도사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나찰 자네··· 운천에게 당해봐서 알지 않나. 놈이 얼마나 강한지. 그냥 밀어붙이면 절대 못 이긴다. 계획을 단단히 세워야 한다.”


또 짐승처럼 불쑥 감정을 드러내고 힘만 앞세울 것 같던 나찰은 순간 차분해졌다.


일성의 말이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타당했기 때문이다.


일성은 나찰의 숙고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저런 모습은 어쩌면 인간보다도 더 인간다운 모습이었다.


“좋다! 계획이 뭐냐?”


나찰은 들고 있던 양주병을 일성에게 내밀었다.


일성은 병을 받아 들고는 양주를 홀짝 한 모금 삼켰다.


“원래는 여기서 준비하고 있다가 놈들이 돌아왔을 때 덮쳐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일성이 다시 양주병을 나찰에게 돌려주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꼴을 보니 건우 그놈을 잡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움직이도록 하자!”


나찰은 남은 술을 벌컥 다 들이켰다.


일성은 마루 밑에서 또 한병의 양주를 꺼냈고, 처마에 걸려있던 꿩고기도 내렸다.


“나찰! 자네가 먼저 놈들을 찾아가라. 그곳에 잠입해서 은밀히 놈들을 괴롭혀라. 계속 혼란스럽게 해서 서로 떨어지게 하면 좋다.”


나찰은 고기와 술을 씹고 마시느라 분주했지만, 시선은 일성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가장 높은 곳에서 이 부적을 태워 연기를 올려라. 그걸 신호로 우리가 합세하겠다. 놈들이 혼란스럽고 흩어졌을 때 우리가 힘을 합쳐 하나하나 각개격파한다!”


일성이 내미는 부적을 받아 든 나찰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일성은 남은 꿩고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


씨익 웃는 게 악귀 나찰보다도 더 섬뜩해 보였다.



4.


해가 떨어지자 유정은 만봉의 시신을 태웠다.


시신을 송담처럼 식신으로 부리자는 일성의 말에 유정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순간, 화가 뻗친 일성은 분노를 토할 뻔했으나, 큰 싸움을 앞둔 시점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흔히들 얘기한다.


큰 싸움에서는 힘이 센 쪽이 이기는 게 아니라 냉정한 쪽이 이긴다고.


또 많고 느슨한 쪽보다 적지만 단단한 쪽이 이긴다고.


일성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악귀 나찰마저도 금수의 본능을 누르고 진지하게 싸움에 임하는데, 자신만 폭주할 수는 없었다.


아직 싸움은 시작도 안 했는데, 우리가 먼저 분열할 수는 없었다.


일성은 만봉의 시신을 태우는 걸 허락하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나찰은 자정 무렵이 되자 떠날 채비를 했다.


“운천의 흔적이 있으면 달라. 놈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일성은 운천의 방에서 도포끈 한 가닥을 뽑아주었다.


나찰은 그걸 스윽 냄새를 맡더니 부적과 함께 귓구멍에 말아 넣었다.


“그럼 먼저 떠난다. 저기 남은 술은 운천의 목을 따고 와서 함께 마시자!”


일성은 떠나는 나찰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거듭 말하지만, 절대로 혼자 맞서지 마라!”


나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휘리릭!


마당에서 발자국이 가볍게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의 사이에 나찰은 어느새 청운당의 문을 벗어났다.


그리고 몇 번의 눈을 깜빡이는 동안 저만치 앞을 달리고 있었다.


도사들의 축지술보다는 조금 느린 속도.


악귀의 세계에선 귀답*이라 불리던가.


(*귀답(鬼踏) : 귀신의 발걸음)


보통 저 정도의 속도라면 서너 시간이면 부산쯤 거리에 다을 테지만, 글쎄···.


눈이 침침하고 속세의 지리에 밝은 것도 아닌 놈이다.


법사들이 지난 길에 운천의 냄새가 아직 남아있다는 보장도 없고.


‘과연 운천을 찾는 데 얼마나 걸릴까?’


일성은 나찰이 사라진 길을 뚫어져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만봉의 시신은 시뻘겋게 타오르다가 어느 순간 작은 불꽃을 사방으로 튕기고 있었다.


일성은 불 옆에서 침울하게 서 있는 유정에게 다가갔다.


“이보시오, 유정! 큰 싸움이 시작되었소. 이제부터 우리가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는 거요.”


유정은 불 옆에서 음산하게 웃고 있는 일성을 돌아보았다.


문득 악귀는 나찰이 아니라 이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성··· 내가 묻고 싶은 게 있소.”


유정이 다시 불길에 눈을 돌렸다.


이번에는 일성이 유정을 돌아보았다.


“운천을 없애고, 정철을 제거하고 나면··· 가장 먼저 뭘 할 생각이오?”



5.


나찰의 발걸음에 점점 속력이 붙었다.


불빛 하나 없는 산길이어서인지 이리저리 부딪치는 게 많았다.


발을 헛디딜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찰은 속력을 줄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멀리서 이 모습을 본다면 취객이 미친 듯이 비틀대며 뛰어간다고 할만했다.


“후우우··· 후우우···.”


식식대는 숨소리가 산바람 소리와 합쳐졌다.


나찰은 일성이 일러준 법사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고 있다.


운천의 냄새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일까.


나찰의 콧구멍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짝 열려있었다.


나찰은 산길 구석에 탐스럽게 익은 열매의 향이 유혹할 때도 꾹 눌러 참았다.


냇가에서 꾸물대는 가재와 송사리 떼의 소리가 들려도 흔들리지 않았다.


눈앞에서 바깥세상을 휘젓고 다니며 악귀 나찰의 이름을 드높이던 때가 어른거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운천!


“운천! 기필코 내가 당했던 걸 갚아 줄 테다.”


그렇게 두어 시간쯤 달렸을 때였다.


갑자기 운천의 흔적이 사라져 버렸다.


나찰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한 무리의 새 떼가 모여있다가 솟아오른 흔적이 있었다.


가볍게 꺾인 나뭇가지들.


떨어진 나뭇잎들.


그리고 깃털.


특히, 깃털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한 방향을 향한 채였다.


“북쪽이다!”


나찰의 흐릿한 눈이 새롭게 정한 쪽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타다닥!

타다닥!


나찰의 발이 다시 바빠졌다.



6.


줄리 한의 집, 건우의 방.


건우의 가방 안에서 꼬박 하루 가까이 숨죽이고 있던 법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미 세 마리는 지퍼가 열린 틈으로 조심조심 모여들었다.


정철이 먼저 머리를 내밀더니 밖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정철은 과감하게 자기 몸을 밖으로 빼면서 방 안을 둘러보았다.


고요했다.


그리고 어두웠다.


시간이 꽤 흐른 건 느끼고 있었지만,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벽에 붙은 시계라도 있는지 보려고 가방에서 떨어진 정철은 방바닥을 이리저리 기었다.


벽면을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하지만 시계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드르렁-!

푸우우-!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가 미세하게 울려 나오고 있었다.


깜짝 놀란 정철이 황급히 다시 가방 쪽으로 움직였다.


가방을 타고 올라가니 놀란 운천과 철산이 더듬이를 바짝 세웠다.


“왜 그러나?”

“저기 격벽 꺾여 들어가는 쪽에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으응? 혹시 건우인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방 안이 어두워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나가서 회복술을 써서 확인하는 건 어떤가?”

“으음··· 모두가 다 가는 거보다 한 명만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운천은 정철에게 회복술을 허락했다.


정철이 다시 지퍼가 열린 틈으로 머리를 막 내밀려던 찰나였다.


빠빠빠빠빠~ 빠빠라빠빠~ 빠빠빠!


갑작스러운 핸드폰 알람 소리에 놀란 정철이 다시 가방 안으로 떨어지고 만다.


놀란 건 운천과 철산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쿠···.”


머리를 딱딱한 책 커버에 찍은 정철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세웠다.


그리고 잠시 후.


밖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어서 그 노인과 건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른 일어나! 다섯 시다.”

“아··· 조금만··· 더 자면 안 돼요?”

“앙드레는 벌써 일어났을 거다. 혼나기 싫으면 어서 일어나.”

“아··· 미치겠네.”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에, 화장실 물소리, 또 식탁에서 밥을 먹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세 법사는 숨을 죽인 채 소리만으로 바깥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소음이 점점 잦아들어 가던 어느 순간이었다.


탁-!

탁-!

탁-!


웬 발소리가 다가오더니 가방이 갑자기 확 들렸다.


안에서 겨우 중심을 잡고 있던 법사들은 또 인정사정없이 내동댕이쳐진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오늘도 수고하고!”


또 건우의 목소리에, 그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방을 들고 가는 건 건우인 모양이었다.


건우는 계속 뭔가를 중얼대며 어딘가로 바쁘게 뛰어갔다.


가방이 흔들릴 때마다 법사들은 멀미가 나서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철산이 머리를 부여잡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으으흐··· 스승님! 큰일 났습니다.”


필통의 지퍼를 겨우 붙들고 있던 운천은 애써 철산을 달래는 말을 한다.


“조금만 참아라! 놈이 계속 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철산은 고개를 흔들며 점점 얼굴이 굳는다.


“그게 아니라··· 차가운 남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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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077. 기다려라, 나찰 1 24.03.30 9 0 11쪽
76 076. BW, 비상사태! 4 24.03.29 7 0 11쪽
75 075. BW, 비상사태! 3 24.03.24 8 0 11쪽
74 074. BW, 비상사태! 2 24.03.23 9 0 11쪽
73 073. BW, 비상사태! 1 24.03.22 9 0 11쪽
72 072. 한 피디 2 24.03.17 8 0 11쪽
71 071. 한 피디 1 24.03.16 6 0 12쪽
70 070. 나찰을 잡아라 2 24.03.15 9 0 11쪽
69 069. 나찰을 잡아라 1 24.03.10 8 0 11쪽
68 068. 동상이몽 2 24.03.09 7 0 12쪽
67 067. 동상이몽 1 24.03.08 5 0 11쪽
66 066. 일성을 부를 때 3 24.03.02 6 0 11쪽
65 065. 일성을 부를 때 2 24.03.01 7 0 12쪽
64 064. 일성을 부를 때 1 24.02.28 5 0 12쪽
63 063. 이 애는 안 돼요! 2 24.02.24 6 0 11쪽
62 062. 이 애는 안 돼요! 1 24.02.23 6 0 12쪽
61 061. 부엌혈전 4 24.02.21 7 0 12쪽
60 060. 부엌혈전 3 24.02.17 7 0 12쪽
59 059. 부엌혈전 2 24.02.16 10 0 12쪽
58 058. 부엌혈전 1 24.02.14 10 1 12쪽
57 057. 부적은 어디에 2 24.02.10 8 0 11쪽
56 056. 부적은 어디에 1 24.02.07 10 0 12쪽
55 055. 주인이 바뀐 돈 2 24.02.03 12 0 12쪽
54 054. 주인이 바뀐 돈 1 24.02.02 12 0 11쪽
53 053. 내친 김에 어디 한번 5 24.01.31 13 0 12쪽
52 052. 내친 김에 어디 한번 4 24.01.26 14 1 11쪽
51 051. 내친 김에 어디 한번 3 24.01.25 16 1 11쪽
50 050. 내친 김에 어디 한번 2 24.01.24 14 1 11쪽
49 049. 내친 김에 어디 한번 1 24.01.23 17 1 11쪽
48 048. 쫓기는 놈 쫓는 놈 3 24.01.22 2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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