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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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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티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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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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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필드의 빌런 18

DUMMY

“오우!”

“왓 더······.”

“홀리 쉿!”

“지저스 크라이스트······!”


그래.

말도 안 된다.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다.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그리고 챔피언십의 번리, 퀸즈 파크 레인저스까지 여러 팀을 거쳐온 루이스 마르티네스 역시 자기 눈을 의심했으니까.

하지만 이는 분명한 현실이었다.


“이런 게 가능하다고?”


공을 절반쯤 따라잡았던 루이스 마르티네스는 황망하게 중얼거리며 터덜터덜 걸음을 멈췄다.


30미터······ 아니, 40미터?


신해성은 볼링 레일에서 볼링공을 굴려도 적중시키기 힘든 거리에서, 바운딩도 없이 저 작은 표적을 맞춰버린 것이다. 이런 신기(神技)를 보여준 이상, 어떤 방식으로 골을 넣었느냐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꿈에도 몰랐다. 신해성조차 이를 확신하지 못한 채 공을 찼다는 걸.


‘안 맞으면 냅다 뛰려고 했는데, 맞춰버렸네?’


신해성이 입맛을 다셨다.

마음먹고 전력 질주를 하면 3대 리그를 통틀어 따라올 자를 찾기 힘든 자신인지라 대범하게 공을 찰 수 있었지만, 공을 찰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던 게 사실이다.

방향과 거리를 어느 정도 맞췄으니 바닥에 튕겨서 맞거나 아니면 빗나갈 줄 알았지.

그런데 다이렉트로 공이 맞은 것도 모자라 보기 좋게 골까지 들어갈 줄이야.


‘아무렇지 않은 척하자, 아무렇지 않은 척······.’


신해성이 짐짓 태연하게 물었다.


“말했잖아. 네가 발바닥에 땀 나게 뛰어봐야 소용없다고. 정 실력을 뽐내고 싶으면 경기에 나가서 뽐내고, 지금은 고분고분하게 가서 메디컬 테스트부터 받고 와라.”


루이스 마르티네스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뇌리에는 자신을 이곳에 보낸 이반 블레이크의 한마디만 가득히 울리고 있었다.


-감독이 아니라 선수로 활동해야 할 인간이야. 그런 남자가 하루라도 3부 리그에서 썩는다는 건 풋볼 비즈니스 전체에 손실이라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이반 블레이크가 뭘 잘못 본 거겠지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십대 중반이 될 때까지 눈에 띄지 않다가 혜성처럼 등장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번에도 이반 블레이크의 육감이 맞았다. 그는 자신이 최고의 에이전트임을 증명해냈다.

그 덕분에 루이스 마르티네스는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승부에 져서가 아니라, 승부 이전 신해성이 한 말 한마디 때문에.


-네가 어중간하다는 뜻이야.


일전에는 애써 무시했지만 더 이상 흘려들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 스스로도 저니맨으로 지내는 동안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인정하기 싫었을 뿐.


“죄송합니다.”


루이스 마르티네스는 많은 의미가 함축된 한마디를 남기며 목례한 뒤, 몸을 돌려 멀어졌다.


그를 메디컬 센터로 보내버린 신해성은 눈길도 주지 않고,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선수들에게 말했다.


“다 쉬었지?”

“예!”


선수들이 목청이 터져라 대답했다. 방금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해서 그런지 다시금 축구에 대한 열망이 차오른 것이다. 이는 신체적인 피로감을 우습게 이겼다.


“좋아.”


신해성이 눈을 빛내며 메이슨 로이스턴을 바라봤다.


“메이슨.”

“에, 보스.”


메이슨 로이스턴이 존경에 찬 눈빛으로 대답했다.


현역 선수들에게는 어쨌든 공 차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 확실한 동기부여가 없는 모양.

피식 웃은 신해성이 진도를 뺐다.


“이제부터 일 대 일 개별훈련에 들어간다. 코치들은 나머지 선수들을 데리고 4 대 4 미니게임을 진행해주세요. 그 후 스트레칭과 고유수용성 운동, 간단한 복부 운동으로 오전 세션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예.”


코치들도 군말 없이 따랐다.

한편 선수들은 메이슨 로이스턴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어깨를 두드리거나 엉덩이를 건드리며 한마디씩 했다.


“한 수 배우고 와, 주장.”

“감독님께 일 대 일 코칭이라니, 횡재했구만.”

“뭐 배웠는지 이따 우리한테도 알려줘.”


틀린 말은 아니다.

비록 그들은 꿈에도 모르고 있지만, 신해성에게 일 대 일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는 이곳과 다른 현실에서 무려 ‘역대 최고의 재능’ 혹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 겸 미드필더, 그리고 수비수’라고 불리던 전천후 유틸리티 플레이어인 것이다.

그가 수상한 발롱도르만 몇 개던가?

과외비로 선수들 연봉을 받아도 부족하겠지만, 여기서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생각이었다.

일단 살고 봐야지.


“다들 부러워할 것 없다. 너희도 세션 때마다 한 명씩 맞춤 지도에 들어갈 테니까.”


그렇게 말한 신해성은 메이슨 로이스턴을 데리고 실내 구장으로 갔다.


단둘이 마주 서자 신해성이 물었다.


“그래서, 좀 어때?”


그에 질문의 요지를 알아들은 메이슨 로이스턴이 답했다.


“지난 경기 때 제가 공을 빼앗기면서 몇 번이나 역습을 허용했습니다. 그래서 패스하기 전에 어디로 줄지 미리 생각하라는 감독님 말씀을 새겨듣고 오늘 훈련 내내 신경을 썼지만······ 만족스럽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생각이 급변하는 상황을 못 따라가는 느낌입니다.”


그가 답답한지 말을 이었다.


“볼을 잘 간수하려면 달리기와 개인기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넌 그쪽은 영 텄어. 안 맞는 옷이지.”


신해성이 단칼에 잘라 말했다. 그의 직관으로 보나, 메이슨과 접촉했을 당시 주력과 개인기 면에선 황금별 두 개만 떠올랐던 것으로 보나 이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공을 원 터치나 투 터치로 처리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야.”


메이슨이 눈을 치떴다.


“몸이 못 따라가는 데도요?”


신해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시야가 넓고 패스가 훌륭한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반응 속도만 줄이면 되는 거지.”


다른 건 몰라도 축구에 대한 신해성의 학구열과 창의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오죽하면 전세계에서 공에 가장 집착하는 놈들만 모아둔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조차 고개를 저을 지경이었으니까.

그러한 태도가, 타인을 가르치는 데에서도 발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때그때 생각해가면서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없다면 규칙을 만들어서 네 몸에 때려 박으면 된다.”

“······!”


생각지도 못한 방법에 메이슨의 입이 벌어지고.


신해성이 덧붙였다.


“이제부터 발이 느려도 순간적으로 타이밍을 빼앗거나 상대를 속여서 일시적으로 탈압박 할 수 있는 간단한 스킬 몇 가지 배울 거야. 그리고 몇 가지 패스 코스를 반복적으로 연습한다. 장애물이 있거나, 심지어 눈을 가리고도 정해진 코스로는 정확히 공을 보낼 수 있을 때까지.”

“아! 그럼 생각하지 않고도 바로바로 패스할 수 있겠군요.”

“그래.”


신해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선수들이 네 패스 코스로 가서 공을 받을 테니까. 넌 적어도 우리 팀 내에서만큼은 패서(Passer)로서 완벽한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겠지.”


안 그래도 시즌 시작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

신해성은 임시방편을 말해준 것에 불과하지만, 메이슨 로이스턴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신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지금까지 그 어떤 지도자에게도 들은 적 없는 해법이기 때문이다.

본래 고수란 깨달음이 깊어 지나가는 한마디에도 정수가 담기는 법.

분명 신해성이라는 초일류 선수의 발상은 비록 제한적일지언정, 이류 선수조차 단숨에 일류 선수로 둔갑시킬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연습하는 시간 외에는 발목 단련을 해둬. 패스 동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거야.”


*******


무사히 오전 훈련 세션을 마친 신해성은 코치진과 선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간단한 회의를 가졌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공격 코치 루크 해밀턴이었다.


“원래는 훈련에 대해서 좋았던 부분과 보완하면 좋을 부분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것 참.”


그는 콧등을 문질렀다.

그러자 수비 코치 리암 커닝햄이 괜히 접시 위 음식을 내려다보며 멋쩍게 말했다.


“실은, 저희도 감독님 스타일과 지도력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평가 아닌 평가를 했습니다. 무례를 범해서 죄송합니다.”

“그랬어요?”


신해성이 재차,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래서 제 점수는요?”

“만점입니다.”


골키퍼 코치 잭 로렌스가 쌍따봉을 날렸다.

다소 고지식한 타입인 그마저도 아시아에서 온, 경력도 일천한 신임 감독을 완전히 인정해버린 눈치.


‘하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속으로 되뇐 수석 코치 이안 윌러비가 다른 코치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입을 뗐다.


“조금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선수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때보다 집중했던 것, 이로 인해 과열된 선수들의 분란에 침착하게 대응하신 것, 그리고 중간에 루이스 안토니우 마르티네스라는 변수가 있었음에도 그조차 휴식 시간으로 활용하신 부분, 그 와중에 다시 한번 동기부여를 시키며 저희를 적절히 활용하신 것까지 1초도 낭비되지 않는 알찬 훈련 세션이었습니다. 감명 깊다 못해, 저희도 선수들처럼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배우는 자세로 지켜봤으니까요. 감히 저희가 평가할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코치진은 향후에도 감독님의 의견을 최우선적으로 따를 것입니다.”


딱히 동의를 구한 것도 아닌데, 모든 코치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기에, 함께 고개를 끄덕이던 메디컬 팀장 엘리자베스 그레이 역시 한마디 덧붙였다.


“날이 서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짜임새에 너무 빈틈이 없고 훈련 강도도 높았던 것 같은데, 계속 선수들 집중력을 유지해주셔서 그런지 오히려 부상 위험이 발생할만한 순간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도 감탄하면서 봤습니다.”

“훈련 과정을 복기하는 자리지, 칭찬받으려고 마련한 학예회가 아닌데 쑥스럽네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전혀 머쓱해 하지 않은 신해성이 다들 입이 마르도록 전해오던 칭찬 릴레이 탓에 방치되고 있는 그릇을 턱짓했다.


“어서 들죠. 식사 맛있게 드십시오.”


그들이 식사를 시작했다.

반면 서로 빵가루를 튀어가며 훈련 과정에 대한 만족감을 여과 없이 드러낸 선수들은 먼저 식사를 마쳤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나가는 길에 모여앉은 코칭스태프들에게 와서 한마디씩 했다.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뭔가 달라진 느낌이에요.”

“아까 훈련할 때 만큼은 시즌이 기대되더라고요. 그런 기분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보스.”


윙크를 해가면서까지 친근감을 드러내는 것이, 훈련에 참여하기 전과는 180도 달랐다.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안 윌러비는 신임 감독이 몰고 온 변화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이럴 수가 있나.’


하지만 구단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앞선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일어난 잔해가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었다. 그 후폭풍이, 다시금 태풍을 동반한 먹구름인지 날을 맑게 개어줄 비구름인지 알 수 없는 형태로 다가왔다.


“신해성 감독님? 그리고 코치님들?”


안절부절 못하는 에밀리를 대동한 호리호리한 그림자가 식사 중인 코칭스태프 테이블 위로 드리웠다.


“생각했던 것보다 선수단 분위기도 좋고, 식사도 잘 나오네요. 반갑습니다. 저는 법원 판결이 나는 대로, 근시일 내 구단주로 부임할 포시(Posh. 피터버러 서포터즈의 애칭)입니다. 대학 때부터 피터버러 팬이었죠.”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든 신해성의 두 눈이 확장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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