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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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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티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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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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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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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필드의 빌런 8

DUMMY

구단주는 생각지도 못한 신해성의 선포에 놀랐는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황당무계한 소리 같지만······ 한때 첼시(프리미어리그 상위권 팀, 첼시FC)의 스폰서였던 오성에서 구단을 인수해준다면 이사진 모두 두 팔 벌리고 환영하겠죠. 미팅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바로 최고의 협상팀을 꾸려서 파견하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예?

“오성에 한해서만큼은, 저만한 영업사원이 없거든요.”


신해성은 그 집안 막내아들에 대해 매우 깊게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이상, 팀을 재편할 시간도 부족한데 미쳤다고 한국까지 친선경기를 치르러 가겠는가?


*******


신해성은 이후 삼 일간 선수들 한 명 한 명을 면담했다.

그리고 그 시작에나 끝에는 항상 악수를 나눴다.

그때마다 선수들의 머리 위로 종합적인 능력치의 산물인 황금별과 잠재력을 나타내는 푸른별이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냈다.

따라서 그는 선수 분석 부서에서 올린 보고서에 나와 있는 대로 별들에게 물었다.


‘이 친구는 얼마나 빠르지?’

‘패스가 좋다던데.’

‘일 대 일 수비에 강한가?’

‘판단력은 어때?’


별들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해주었다.

보고서의 정확도는 대략 7대3 정도.

이는 코치진과 경기 분석 부서, 스카우트 부서의 능력이 뛰어나며 긴밀하게 협력이 잘 되고 있다는 뜻이다.


신해성은 이 외에도 또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종합적인 별의 개수가 높다고 해서 무조건 더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라는 사실.

이를테면, 슛과 공중볼, 몸싸움, 침착성, 판단력, 위치선정 능력이 좋은 선수의 경우 황금별이 세 개라도 붙박이 타겟맨으로 써먹으면 별이 네다섯 개인 선수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 반대로 별이 다섯 개라도 밸런스가 똥망이면 별 세 개짜리 선수보다 못한 거고.


‘좀 더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신해성은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별을 보려면 상대와 접촉이 필수다.

자칫 성 정체성을 의심받거나, 최악의 경우 성추행범으로 몰릴 수도 있을 터였다.

따라서 그는 보고서를 참고하여 각 선수의 장점만 캐치하고 나머지는 뒤로 미루었다.

이처럼 아쉬움을 삼키면서도, 신해성은 선수들 면담에 소홀하지 않았다.


“루카. 보고서를 보니 최근 기량이 부진했더군.”

“예.”

“혹시 우리가 모르는 부상이 있나?”

“······아닙니다. 앞으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럼 실력인 모양이군.”

“예. 죄송합니다.”

“아니. 미안한 건 나지. 이게 실력이라면 자넨 강등될 테니까.”

“예?”

“만에 하나 부상이 있다면 괜히 숨겨서 내가 자네 실력을 오해하고 불이익을 주게 만들지 마. 부상 때문이라면 우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넬 최대한 회복시킬 거고, 그동안 계속 기대를 갖고 기다릴 테니까.”

“아!”

“당장 뛰는 게 중요한 건 아니야.”

“죄송합니다. 구단 상황이 안 좋아서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실은······ 무릎이 좀 안 좋습니다.”

“메디컬 센터에 가봐.”


신해성은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선수였기에, 누구보다 선수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했다.


“코피 카마라. 가족들이 아직 라이베리아에 있는 것 같던데.”

“예. 제가 축구를 하는 이유죠. 얼마 전에는 둘째도 태어났습니다. 옆에 있어주진 못하지만, 돈 벌어서 꼭 이곳으로 데려올 겁니다.”


해맑게 웃는 그를 보며 신해성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아프리카 리그에서 활약하던 시기 영상을 봤지. 잘하더군.”

“감사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

“그땐 몸을 던져서 뛰던데, 지금은 몸을 사려. 왜? 자네가 다치면 가족들을 데려올 수 없을 테니까?”

“······예.”

“그 상태로 성적을 내야 하니 부담이 크겠지. 그 와중에 전임 감독은 구단 구조조정을 한답시고 자넬 알아보고 데려온 스카우터까지 안목이 없다며 해고했었고.”

“제 잘못입니다.”

“당연하지. 그 양반은 이 구단에 필요한 인물이었거든.”


신해성이 말을 이었다.


“자넨 내가 보기에 목표를 쫓기보단, 목표에 쫓기는 타입 같아. 혹시 실수하진 않을까, 무리하다 다치면 어쩌나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지. 그러니 안정감을 느끼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거야. 이렇게 하자고. 구단이 나서서 자네 가족들을 데려올 테니, 자넨 자네 때문에 나간 스카우터를 제자리에 돌려놔.”

“예? 보스, 그게 무슨······?”

“서로 문제점을 해결해주자는거야.”

“아! 예······! 무, 물론입니다.”

“다음 사람 기다리고 있으니 나가봐.”


코피 카마라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더니, 갑자기 허리를 숙여 신해성을 와락 껴안았다.


“감사합니다, 보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한편 신해성은 머쓱했다. 남의 돈으로 인심 쓴 느낌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예 그의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결정권자가 감독이기도 했고, 더 큰 이유는······.


‘미꾸라지들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군.’


태업 주동자 마크 로스와 와이엇 헉슬리를 매각해서 어느 정도 여유자금이 생긴 덕분이었다.

그들은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선수들이었기에 이적료를 총합 570만 파운드(약 100억 원)나 챙길 수 있었다.

둘이 합쳐서 매 주 1만 파운드(약 1700만 원)씩 타가던 주급도 절약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숨통이 틘 것이다.

물론 이는 모두 서약서 덕분이었다.

덕분에 선수들에게 거부권이 없었고, 선수 계약금이나 주급보다 많은 이적료를 제시하는 구단에 이들을 매각한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봐도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선수는 재계약을 원할 거고, 구단은 2년 동안 반값 할인으로 부려먹으려 하겠지.’


경쟁구단에 팔았으니 내분은 환영이었다.

어쨌든 이처럼 사무실에 앉아서도 승리를 위한 포석을 깔며, 삼 일 내내 선수와 면담하면서 삼시세끼 식사까지 해결하는 신해성을 죽 지켜본 에밀리는 혀를 내둘렀다.


“감독님, 이것 좀 드세요.”


사흘째가 되는 날, 감독이 혼자 애쓰는 것을 지켜보던 그녀는 집에서 구운 쿠키를 가져와서 신해성에게 나눠주었다.


‘이거 곤란한데.’


신해성은 미간을 좁힌 채 쿠키를 내려다봤다. 평소에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는데, 거절하기도 뭐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마지못해 쿠키를 맛본 뒤······.


“음, 맛있네요.”


조금 놀랐다.

눈을 치뜬 그를 바라보는 에밀리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어서 그녀가 다소 수줍게 말했다.


“감독님이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감독님처럼 열심히 하시는 분은 처음이에요. 다들 일과 생활을 분리하셨거든요.”


물론 신해성도 그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나 지금 우리 구단이 효율 따져가며 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요.”


이쪽은 죽고 사는 문제였다.

이를 꿈에도 모르는 에밀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언가 큰 결심을 내린 듯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앞으로 구단이 안정화 될 때까진, 매일 삼십 분씩 야근을 하겠어요!”

“······.”


신해성은 그녀를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자신은 사무실에서 먹고 자는 마당에 30분 야근을 선심 쓰듯 말하다니······.

하나 이는 스스로 선택한 문제였기에, 그는 능청스레 대꾸했다.


“맙소사, 피터버러의 에밀리가 30분 더 야근하다니······ 우리 피터버러의 프리미어리그 승격은 시간문제겠어. 챔스 우승컵을 노리는 구단들이 벌벌 떨겠는데?”


에밀리가 양볼을 부풀렸다.


“에이, 놀리지 마시구요!”


피식 웃은 신해성이 보고서와 면담을 토대로 작성한 선수명단을 건네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그러니까 30분 야근하지 말고 얼른 축구 운영 부서에 전화해서 이번 친선전 원정팀 명단 공지해주세요.”


******


삼 일 후, 피터버러 유나이티드는 구단 팀버스를 타고 직행편이 있는 런던의 히스로 공항으로 갔다.

그곳에서 선수단은 비즈니스석에, 코칭스태프는 이코노미석에 탑승한 채 비행기가 이륙했다.

그래서일까?

선수들은 이점이 못내 미안한지 중간중간 비즈니스석 전용 간식이 나오면 코칭스태프들에게 가져다 주는 귀여운 짓까지 했다.

게다가 신해성을 바라보는 선수들의 눈빛은 전과 다르게 존중이 묻어났다.

아직 존경까진 아니라도, 실력과 인간성을 보여주면서 마음을 움직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약 12시간 후, 인천공항에 도착한 피터버러 유나이티드는 기자 한 명 나와 있지 않은 썰렁한 분위기를 맛봐야 했다.


“사람들이 우리가 축구팀인지도 모르는 것 같은데?”

“우리가 레알 마드리드는 아니니까.”

“그건 그렇지만······.”

“아쉬워?”


신해성이 묻자, 섭섭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좀 그렇죠. 영국이면 그래도 팬들이 응원을 왔을 텐데 여긴 진짜 우리 팬이 한 명도 없을 것 같아서요.”

“맞아. 경기 분위기가 볼만할 것 같아.”


하나 신해성은 목을 좌우로 꺾어서 풀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라고 지구 반대편까지 온 거야. 부담감에 적응할 좋은 기회지. 게다가 시차 적응할 시간도 없는데 언론이며 팬들이 환영해줘 봐야 피곤하기만 해. 오히려 잘된 거지.”

“정신승리 아닙니까?”

“기적의 논리인데요.”


선수들이 실소하며 태클을 걸었지만 신해성은 눈도 깜짝 안 했다.


“언론 인터뷰든 팬서비스든 그런 건 돌아갈 때 마음껏 해라. 이기면 기회가 있을 테니까.”


그래도 게이트 밖에는 이번 상대인 오성 블루윙즈에서 보내준 팀버스 두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열다섯 명씩 차에 나눠 탄다! 한쪽당 선수 열 명에 스태프 다섯 명씩이야.”


그들은 차를 타고 오성 계열사인 5성급 호텔로 가서 푹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신해성은 쉴 시간이 없었다. 그는 수석 코치 및 각 분야를 맡고 있는 코치들과 메디컬 팀장을 불러다 전술 브리핑을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죄송하지만 솔직히, 이건 미친짓 같습니다.”


수석 코치 이안 윌러비가 말했다.


“우린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왔습니다. 아무리 시험적인 목적이 강한 친선경기라도 크게 지거나 하면 앞으로 팀 사기에 악영향이 있을 겁니다.”


공격 코치 루크 해밀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포지션 훈련도 없이 선수들 포지션을 바꾸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이게 무슨······.”


수비 코치 리암 커닝햄 역시 동조했다.


“전술도 그렇습니다. 우린 지난 시즌까지 수비적인 축구를 해왔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고요. 그런데 공격 자원도 없이 공격적인 축구를 하면 선수들이 혼란스러워할 겁니다.”


골키퍼 코치 잭 로렌스, 피트니스 코치 크리스토퍼 앤더슨, 분석 코치 사이먼 브룩스, 메디컬 팀장 엘리자베스 그레이 또한 어깨를 으쓱이며 동감하는 의사 표시를 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인가.


일찍이 취임사에서 선수단에 칼질하겠다는 엄포를 아무렇지 않게 놓더니, 팀에서 가장 영향력 크고 몸값이 비싼 선수 둘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처분해버린 인물이 바로 신해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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