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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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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티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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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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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59

작성
24.09.1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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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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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
12쪽

필드의 빌런 15

DUMMY

*******


한편,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의 연고지인 케임브리셔 주 피터버러.


고딕 양식의 대성당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져 있으며 주위로는 내내 강이 흐르는 이 아름다운 중소도시에서, 구단 AP인 에밀리는 풍경 한번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으으, 이건 아니야.”


구시렁거리는 그녀의 큼직한 두 눈은 한없이 퀭했고, 눈 밑으로는 다크서클이 그림자처럼 내려와 있었다.


신임 감독이 자리를 비운 닷새 동안 휴가라도 받은 것처럼 한가할 줄 알았는데, 지독한 신해성은 한국까지 원정 경기를 가서도 매일 지시를 내렸다.


따라서 그녀는 구단 내 스포츠 과학 부서와 포시 아카데미 및 런던 로드 스타디움 식당 스태프들을 대동한 채 선수들의 경기 후 회복을 위한 식단 제공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뿐인가?


시설 관리 부서, 장비 관리 부서, 메디컬 센터와 상의해서 선수들이 언제든 쾌적하게 얼음 목욕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오히려 감독이 자리에 있을 때보다 더 바빠져서 오죽하면 그녀는 가족 메신저에 대고 하소연을 했다.


-오늘도 야근 30분 꽉꽉 채워야 해서 좀 늦어요... 으헝헝 너무 바빠...

-감독님 없을 때 군것질 실컷 하면서 농땡이 좀 피우려고 했더니 이게 뭐야?

-감독님 빨리 돌아와 주세요. 보고 싶어요. T_T


하지만 가족들은 위로해주긴커녕 헛소리를 했다.


-에밀리 네가 자랑스럽구나.

-엄마 아빠. 저는 에밀리를 존경해요. 누나가 피터버러 감독님을 보필한다고 하면 모두가 부러워하거든요.

-에밀리. 오자마자 선수들도 칼같이 잘라버린 감독님이 정규직 직원들은 그대로 고용해줬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에밀리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응석도 부릴 사람들한테 부려야지.

수십 년째 피터버러 팬인 부모님들이나 이럴 때만 말 잘 듣는 동생도 전부 한통속이다.

이 사람들은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자기 딸도 내다 바칠 사람들이다.


“에휴, 그래. 내 팔자에 위로는 무슨 위로냐. 일이나 해야지.”


이렇게 투덜거리면서도 눈코 뜰 새 없이 일상을 보내다 보니 금세 원정 나갔던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1군이 돌아올 날짜가 됐다.


그래서일까?


진작 신해성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이 보낸 시합 영상을 확인한 퍼포먼스 분석 부서에 의해 승리한 사실이 알려졌기에, 아침부터 구단에는 모처럼 활기찬 분위기가 감돌았다.


“좋은 아침이에요, 에밀리!”

“혹시 뭐 먹고 싶은 간식 있으면 언제든 식당으로 전화해요. 우리 감독님 오시면 감독님한테도 꼭 좀 물어봐 주고.”


청소하는 직원도, 식당 직원도 화색을 띠며 인사를 건넸다.

우편물을 전해주러 온 관할 우체부 역시 오랜만에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를 본 에밀리가 눈을 반짝였다.


“아저씨, 다시 팀을 가까이서 지켜봐 주실 생각이 드신 거예요?”

“에밀리. 다들 실망해서 경기장에 가지도 않았지만, 우리 가슴 속에는 항상 포시로서 정체성과 여정이 살아 숨 쉬고 있어.”


‘포시’는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서포터즈의 애칭.

이들의 사랑이 있기에 피터버러가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에서 피치 위 열두 번째 멤버는 팬들이라고 해서 12번을 영구결번 시켰겠는가?

하지만 그 12번은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지 한참 됐다.

팀의 연전연패로 인해 경기장이 한산해진 탓이다.

당연히 구단 수입도 급감했고, 이는 재정난과 성적 하락 등 악순환의 굴레로 이어졌다.

그런데 지금, 에밀리는 작은 변화를 목격하고 있었다.


“그건 저도 알죠. 저도 구단 직원이기 이전에 포시인 걸요. 어려서부터 온 가족이 피터버러 팬이었죠.”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 도시에 우리 팀이 존재하는 한 내 아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래서 팀은 이겨야 해. 그런데 이겼다며?”


우체부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것 좀 봐.”


그가 에밀리의 책상에 타블로이드 신문을 툭 내려놨다. 그것을 내려다본 에밀리의 두 눈이 크게 확장됐다.


“아니?”


신해성에게 아직 들은 적 없는 빅뉴스가 떡하니 실려 있었다. 이를 함께 응시한 우체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직 몰랐나 보군. 하긴, 오늘 아침 신문이니까. 우리 팀에도 이제 희망이 생겼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아마 팬들도 돌아올 거야.”


에밀리는 타블로이드 신문 한구석에 큼직하게 실린 기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오성 호텔 이태주 사장,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인수 검토 중 : 승격의 발판이 될까?]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가 근시일 내로 글로벌 기업 오성의 계열사, 오성호텔 이태주 사장측과 구단 매각을 위한 협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 인수 가능성이 현실화된다면 피터버러는 잉글리시 풋볼 리그(EFL) 내에서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임 감독 부임 이후 급변하는 피터버러>

최근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의 지휘봉을 잡은 신해성 감독이 취임 직후 팀의 전격적인 체질 개선을 선언하며 파란을 일으킨지 얼마되지 않아, 피터버러는 224일 만의 승리를 거두었다. 비록 친선경기였지만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지옥의 32경기 무승 기록이 그들보다 강팀으로 평가되는 팀을 상대로 마침내 깨진 것이다.

한편 이같이 값진 승리를 서둔 피터버러 1군 팀이 귀국하는 길에 오성 호텔의 구단 인수설이 거론되면서 피터버러의 한국행 자체가 한국인 신임 감독의 계산된 행보가 아니었냐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전한 리스크, 팬들의 기대와 우려>

이번 인수설에 대한 피터버러 서포터즈의 반응이 뜨겁다. 많은 팬들이 오성 호텔이 가져올 재정적 안정성과 신임 감독이 노력 중인 팀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지만 일각에선 외부 자본 유입이 구단의 전통과 정체성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신임 감독의 경력 역시 여전히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만약 이 협상이 성사되고 새 시즌에 또다시 승리를 거두게 된다면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 서포터즈도 경기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과연 피터버러가 새로운 감독과 함께 거대한 변화를 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이후, 포시 아카데미로 출근한 신해성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에밀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어요?”

“감독님!”


고작 닷새 만에 보는 거지만 그동안 그녀가 처리한 일도 많고 구단에 날아든 소식도 한두 개가 아니라서 그런지, 에밀리는 절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승리 축하드려요! 그리고 저, 오늘 기사 봤어요. 구단 인수설 진짜예요?”

“아아.”


신해성이 피식 웃었다.


“오늘 보는 사람마다 그 질문이네요. 아직 확실한 건 없습니다. 일단 지금 구단주님과 이사회, 그리고 오성 호텔 측 조건이 맞아야 하고 구단 서포터즈도 75퍼센트 이상 동의해줘야 해요.”

“그럼 진짜란 거네요!?”

“아니, 일단은 가능성이라고······.”

“말도 안 돼!”


신해성은 고개를 저었다. 에밀리는 잔뜩 흥분해서 아예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구단을 사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모양이다.

이내 에밀리가 물었다.


“그런데 왜 아카데미로 출근하신 거예요? 구단 사무실로 가지 않으시고요.”

“구단에 관한 협상은 구단주님과 이사회가 하는 거지, 제가 하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감독님이 가져오신 건이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 않습니까.”

“더 중요한 과제요?”


신해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일머니 등에 업고 선수단 통째로 갈아엎을 거 아닌 이상 선수들 수준을 끌어올려야죠. 아마 오성 호텔이 들어와도 바로 거금을 투자해주진 않을 테니까.”

“그런가요?”

“그렇죠. 수익성이 있을 것 같아야 배팅을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급한 연락 아니면 네 시 이후로 돌려줘요. 저는 훈련장 나갑니다.”

“네,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에밀리가 양쪽 엄지를 추켜세웠다.


“마음 같아선 저도 따라 나가고 싶네요. 맙소사, 선수들과 내기 때 보여주신 모습이 빙산의 일각일 줄이야! 이러니 선수들도 감독님을 잘 따를 수밖에 없는 거겠죠? 저, 완전 팬 됐잖아요!”


신해성은 뺨을 긁적였다.

연습경기 수준의 친선경기다 보니 시합 영상을 퍼포먼스 분석 부서에만 전달했는데 어떻게 벌써 찾아본 모양.

아직 팬들은 고사하고 구단 내에도 소문이 안 난 것 같은데 굉장히 발 빠르다.

하긴, 이렇게 적극적이니 일도 잘하는 거겠지.


“정보력이 007급이네요, 에밀리.”

“에이, 아니에요.”


으쓱한 에밀리가 의기양양하게 덧붙였다.


“오성 블루윙즈 팬카페나 SNS만 가봐도 난리법석이던데요? 경기 가서 직관하길 잘했다느니, 축구의 신이 강림했다느니······ 한국 사이트 들어가서 번역기 돌려봤죠. 중계도 없이 이루어진 시합이라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


신해성은 고개를 저었다.

에밀리 말처럼 소식이 영국 축구계까지 닿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소문이 빠른 것 같다.

그나저나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그 같은 퍼포먼스를 펼친 것도 아니고, 무슨 축신급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오그라든 신해성이 민망한 칭찬을 피해 사무실 안으로 사라졌다.


“어쨌든 늦기 전에 훈련 갑니다.”


이렇듯 사무실에서 편한 훈련복으로 갈아입은 신해성은 클럽하우스를 나갔다.


시설 관리 부서에서 관리하는 파릇파릇한 잔디 위로 장비 관리 부서에서 내어놓은 각종 훈련장비와 공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분위기, 정말 오랜만이다.


그가 코치진과 선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점점 이들과 가까워지자, 가장 먼저 신해성을 알아본 공격 코치 루크 해밀턴이 고개를 숙였다.


“감독님.”


다른 코치들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인사한 수석 코치 이안 윌러비가 물었다.


“직접 세션을 진행하시겠습니까?”


신해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사실 코치진 여러분과 미리 훈련 시스템을 조율하고 나왔어야 하지만······.”


훈련장에 미리 나와 있던 코치진 몇몇이 흠칫했다. 신해성이 그들을 소집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한국으로 원정에 나서기 전까지 코치진 누구도 신해성에게 회의를 먼저 요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쌍방이기에 신해성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자신은 바빴고, 이들은 지도자 경력도 일천한 자신을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아니, 지금도 훨씬 더 베테랑인 이들 코치진은 신해성의 지도 능력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이를 모르지 않는 신해성이 말을 이었다.


“우린 아직 서로의 스타일을 모르니, 직접 훈련 세션을 진행해 보면서 맞춰가 보도록 하죠. 오늘은 제가 먼저 오전 세션을 진행해보겠습니다.”


신해성은 솔선수범하기로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유명 감독들처럼 자신이 신뢰하는 코치진을 꾸려서 시작할 수 없다면 스스로 증명해내야 한다.

이쪽 세상에선 일면식도 없는 레알 마드리드나 맨체스터 시티의 코치진과 은퇴를 앞둔 선수들을 설득해서 데려올 수는 없었기에,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초일류(超一流)’를 몸소 선보이기로 마음 먹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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