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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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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티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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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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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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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필드의 빌런 11

DUMMY

하긴, 그건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측 코칭스태프와 선수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거 진짜 괜찮은 겁니까?”


더그아웃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는 공격 코치 루크 해밀턴이 물었다.

하지만 수석 코치라고 알 리가 있나. 이안 역시 이러한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믿기로 했으니, 믿어봐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신임 감독의 언행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혼자서 뭘 할 수 있다고 전술로 수비를 보완하진 못할망정 직접 뛰겠다는 건지······.”


리암 커닝햄이 중얼거리는 소리만이 썰렁한 더그아웃에 울려퍼졌다.

누구도 그 의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이안 윌러비 역시 감독이 자리를 비운 지금, 더그아웃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수석 코치로서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그럼에도 차마 숨기지 못하는 초조한 눈빛 안으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피치 위 풍경이 담겼다.


*******


애초에 트레이닝 팬츠와 재킷 안에 ‘13’번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양말에 축구화까지 신고 왔던 신해성은 감개무량한 기분을 만끽하며 잔디를 밟고 있었다.


“좋구나!”


그가 스스로에게 붙인 등번호 13번은, 주로 백업 골키퍼에게 주어진다.

백업 멤버나 골키퍼가 가진 의미를 생각해 보면 마지막까지 팀을 지킬 최후의 보루.

뭐 이 정도 생각할 수 있겠다.

더군다나 서양 문화에선 13이란 숫자를 불운한 숫자로 여기므로, 신해성은 자신에게 딱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에게 이깟 불행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기력하던 어린 시절 겪어야만 했던 지독한 가난에 비하면······.

그는 스스로의 운명을 바꾸는 데 익숙했다.


“잘 들어.”


신해성은 골키퍼 마테오 네베스와 센터백 노아 콜드웰이 자기 자리로 향하는 사이, 그들에게 어깨동무하며 덧붙였다.


“나한테 공 받으면 무조건 리턴 내도록.”


누구 말이라고 거부하랴?

그냥 주장만 해도 피치에선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법인데, 감독이 한 팀이 돼서 뛴다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전반에 두 골이나 먹힌 주제라면 더더욱.

한편 신해성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삐익!


멀찍이 떨어진 센터서클에서 휘슬이 울리는 것을 시작으로 상대팀이 공을 돌렸다.


그들은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선수들을 침착하게 끌어들이며 공간을 벌린 뒤, 그 사이로 패스를 찔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직 오성 블루윙즈 서포터즈뿐인 경기장의 함성을 등에 업은 적들이 전진 패스를 하며 노도 같이 밀고 내려왔다.


미친 소리 같지만 신해성은 이들이 반가웠다. 깊숙이 침략당할수록 초조해지는 아군 선수들과 달리, 그는 상대 선수들의 공격이 위협적일수록 신바람이 났다. 그렇게 오성 블루윙즈 에이스 겸 스트라이커인 이동우를 향해 질주했다.


‘오랜만이다.’


원래 현실에선 대한축구협회에서 운영하는 해외 유학 프로그램에 선발되기 직전까지 박터지게 경쟁하던 녀석이라 더욱 반가웠다.


유럽으로 나간 후에도 대표팀에서 퇴출되기 전까지 같이 뛰었는데 한 팀이 되니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지.


“덤벼!”


신해성이 크게 외치며 달려들자, 이동우가 ‘뭐야, 이 기본도 없는 미친놈은?’ 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같은 팀 선수에게 패스를 찔렀다.


팍!


신해성은 그 궤적을 놓쳤다. 무작정 달려들었으니 당연한 노릇이다.

하지만 만약 이동우가 옛날처럼 패스를 하지 않고 제 잘난 개인기 실력을 뽐냈다면?

기본기고 뭐고, 초등학생 공 빼앗듯이 간단히 가로채줬을 텐데.

신해성이 입술을 핥으며 한국어로 말했다.


“겁쟁이 다 됐네.”


한국인?

왜 나를 아는 것처럼 얘기하지?

뒤지려고 도발하는 건가?

상대할 가치가 없어서 더 좋은 공격 루트로 패스했더니······.

이동우는 여러 가지 상념이 뇌리에 맴돌았으나 말 상대나 해주고 있을 새가 없었다.


“뭐래?”


미간을 찌푸리며 한마디 뱉은 그는 곧장 상대팀 골문으로 달렸다.


한편 반대쪽으로 연결된 공을 가슴으로 잡은 오성 블루윙즈 공격수는 곧바로 돌며 슛을 때렸다. 비록 불안정한 자세지만 정확히 임팩트를 겨냥해 발을 휘두른 그때.


퍽!


냅다 달려온 피터버러 센터백 노아 콜드웰이 허벅지부터 집어넣으며 상대를 밀치자, 공격수의 슈팅에 문제가 생겼다.


뻥!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골키퍼의 정면으로 날아간 것이다. 이를 간단히 잡은 마테오 네베스가 공을 떨구었다.


그 모습을 보며 공을 받으러 반대편에서 침투한 이동우는 쓴맛을 삼켰다.


‘한 번 더 줬어야지.’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그가 골키퍼를 향해 다가가자, 골키퍼 마테오 네베스는 노아 콜드웰에게 주려는 척하더니 공 받으러 내려온 신해성에게 패스했다.


툭!


공을 받은 신해성이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동우는 그대로 놔줄 생각이 없는지, 끈질기게 압박하며 달려왔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피터버러 골문 근처에서 공을 두고 경합을 벌이기가 부담스러운지, 신해성이 곧바로 오른쪽 다리를 휘둘렀다.

그 순간 이동우가 본인 기준 좌측을 막으며 다리를 뻗었다. 패스할 수 없도록 궤적을 완벽히 차단한 셈.

그때, 신해성이 공을 향해 휘두르던 오른발을 그대로 내려놓으며 발바닥으로 공을 핥았다. 공을 좌측으로 굴리고는 왼발로 차고 나갔다.


툭!


순식간에 이동우의 등 쪽으로 공을 빼낸 신해성이 지나치며 한마디 던졌다.


“입장이 바뀌었네?”


전신을 다 쓰는, 군더더기 없는 킥 속임수에 이어 기막히게 자연스럽고 간결한 터치까지.


일전 신해성의 어설픈 수비 방식을 보고 내심 비웃었던 이동우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저건?’


바로 돌아서서 뛰었지만 이미 신해성은 공을 툭툭 밀며 빈공간으로 치고 나간 상황.


그를 막기 위해 오성 블루윙즈 공격수 한 명이 피터버러 선수와의 사이 공간을 막으며 쇄도하고 있었다.


그러자 신해성이 방향을 바꿔 횡으로 달리며 오성 공격수가 막아버린 패스 길을 다시 내려 했다.


하나 좀처럼 길을 내주지 않는 오성 공격수. 심지어 아차 하는 사이, 이동우까지 다시 따라붙고 있었다.


그야말로 에워싸이게 생긴 마당에, 신해성은 돌연 패스 경로를 막는답시고 자신과 나란히 뛰느라 보폭이 커진 오성 공격수의 다리 사이로 공을 툭 밀었다.


“아!”


졸지에 알을 먹은 오성 공격수가 탄성을 흘렸다.

영락없이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 뱁새 꼴이 된 그는 즉각 반응하지 못했고,

그의 가랑이 사이로 빠진 공은 피터버러의 미드필더 코피 카마라에게 연결됐다.


턱.


공을 받은 코피 카마라도, 눈 뜨고 2선까지 뚫린 상대팀도 기가 막히게 들어간 땅볼 패스에 탄성을 내질렀지만, 누구 하나 감탄만 하고 있을 만큼 여유로운 사람은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역공에 2선이 뚫린 오성 블루윙즈 공격진은 바로 수비를 하러 뛰어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돌지마!”


신해성은 코피 카마라에게 외치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상대 선수 가랑이 사이로 아웃프런트 패스를 강하게 찌르자마자 이미 상대팀 공간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그 위치를 확인한 코피 카마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맙소사.’


사방에서 상대팀 선수들이 패스할 공간을 차단하며 빗장을 잠가오고 있는 이 순간, 신해성과의 사이에만 햇살이 내리쬐듯 패스 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코피 카마라는 생각할 것도 없이, 홀린 듯이 그 길을 따라 패스를 보냈다. 특별한 기교 없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평범한 패스면 되는 위치였다. 프로라면 누구나 실수할 리가 없는 그런 경로 말이다.


더 황당한 것은 신해성의 다음 동작이었다. 그는 코앞으로 굴러온 공을 세우지도 않고 가볍게 차올렸다.


팍!


“······!”


너무 빠른 템포에 그와 코피 카마라 사이에서 잠시 우왕좌왕하던 오성 블루윙즈 선수들의 움직임에 일제히 제동이 걸렸고.


그사이 신해성의 감아 찬 인사이드 패스는 유유히 상대 수비수 사이로 바운딩 되더니, 그대로 부메랑처럼 휘어서 골문을 향해 달려 들어가던 존 킬리언의 코앞에 나타났다.


“미친······.”


존 킬리언은 생각지도 못한 궤적을 그리며 갑자기 나타난 공을 보고 깜짝 놀라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당연히 뒤에서 날아오든 굴러오든 해야 할 공이, 상대 수비 사이로 유턴을 해서 흘러들어온 것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보기 힘든 패스 스킬. 2부, 3부 리그에선 평생을 뛰어도 받아보기 힘든 공이다. 이런 환장할 고품질 킬러패스를 놓친다면 그건 축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긴 존 킬리언은 어느 때보다 침착하게, 호흡을 가라앉히며 굴러온 공에 발등을 얹었다.


팍!


속도감 있게 허공을 가른 공이, 슈팅 각을 먹은 채 급속도로 거리를 좁혀오던 골키퍼의 좍 펼친 손가락에 걸리지 않고 반대편 파 포스트 그물로 빨려들어갔다.


철썩!


“예스!”


존 킬리언은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고는 그대로 돌아서서 미친 킬러패스를 선사해주었던 신해성에게 달려갔다.


그 사이사이 팀 동료들이 엉겨붙으며 등이나 뒤통수를 치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지만 오로지 이 골을 90퍼센트쯤 만들어준 신해성만 눈에 들어왔다.


하나 가까이서 마주한 신임 감독 겸 주장,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실력의 미드필더인 신해성은 이 정도쯤 별 것 아니라는 듯 태연했다.

아니, 태연한 걸 넘어서 마치 훈련 때 연습경기에서 말하듯 이 와중에 선수들을 지도했다.


“이런 게 패스야. 기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압박해오는 상대팀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팀을 분해시키기 위한 목적이 분명해야 해. 그게 안 되면 우린 프리미어리그로 갈 수 없어.”


득점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모여든 선수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프리미어리그?

3부 리그에서도 중하위팀인 피터버러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구단 역사상 한 번도 진출해보지 못한 1부 리그까지 승격하겠다는 소린가?

하지만 신해성은 이러한 이야기를 어울리지도 않는 순간에 너무나 당연하게 언급했다.


“그러니까 남은 골들은 하나마나 한 패스 말고, 제대로 된 패스로 만들길 바란다.”

“아니, 그걸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구요. 어떻게 하는지 알아야 하죠. 저희도 프로인데 패스가 형편없다고 하시면······.”

“알려주십시오.”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제야 신해성은 아차 싶었다. 눈앞에 있는 불쌍한 어린 양들을 보며 깨달아버린 것이다.

주문한다고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목적을 가진 패스’의 진정한 의미조차 굳이 말로 알려줘야 한다는 사실을······.


‘다섯 살 때부터 하던 걸 여기서 알려주게 될 줄이야.’


신해성은 한국에서 자랐다. 도시 전체가 아스팔트나 콩크리트였으며, 어린 시절 그가 살던 곳은 흔한 말로 달동네 판자촌이라 골목골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살짝만 넘어져도 다칠 위험이 있는 그런 곳에서 축구화 살 돈도 없이 해진 학교 실내화를 신고 공을 찼으니 균형감각이 절로 길러졌다.

또한 공이 어디로 튈지 몰라서, 항상 공을 건드리기 전에 공의 궤적과 다음 움직임을 생각해야 했다.

내리막길도 많아서 빠른 공에 익숙했고 계단에선 리프팅을 해야 했다.

어쩌다 보니 요한 크루이프와 비슷한 환경에서 축구를 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 같은 환경을 겪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모두가 그러한 환경을 놀이 삼아 이용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 사실을 새삼 깨달은 신해성은 선수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공을 받기 전에 항상 다음 스텝을 생각해. 주변 상황, 상대의 움직임, 우리팀의 움직임. 이후 공격 루트까지, 여러 경우의 수들을 그리면서 공을 받는 거야. 또한 공을 받기 전에도, 받은 후에도 계속 목적을 가진 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공간을 낼 수 있어.”


설명을 들은 선수들은 입이 딱 벌어졌다.


‘그딴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들의 뇌리를 관통한 생각은 한 층 더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다들 자기 자리로 가서 또 한 번의 전투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분명 한 방 먹은 오성 블루윙즈의 공세 역시 더욱 거칠어질 테니까.

하지만 그들은 미처 느끼지 못했다. 신해성이 말해준 작은 발상의 차이가 변화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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