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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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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티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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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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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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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필드의 빌런 21

DUMMY

“방금 봤어?”


피치 위 선수들을 내려다보며 환호하던 스탠드의 관객들이 서로 물었다.


“컷백을 노 룩 힐패스로 하다니······ 이런 건 프리미어리그에서나 나오는 하이라이트 아니야?”

“대체 저 감독 정체가 뭔데? 왜 선수보다 잘해?”

“이거 잘하면 진짜 역전하겠는데?”


그들은 더그아웃에서 뛰쳐나오자마자 경기 흐름을 바꿔버린 신해성을 보며 경악했다.


“그건 모르겠고 루이스, 저 망할 놈 뒤통수 한 대 갈길 땐 내 속이 다 뻥 뚫리더라니까!”

“저놈은 지옥에나 가라고 해! 팀워크 따위는 개나 준 놈을 왜 안 빼나 했더니 감독이 다 생각이 있었구만! 오히려 저놈을 이용해서 골을 넣었어!”


스탠드에 앉아 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던 이서윤은 그들의 경기 보는 수준에 내심 놀랐다.

구단주가 아니었을 땐 남들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렇게 구단주가 되어 귀를 기울이다 보니 관객들의 경기 보는 수준이 장난 아니다.

이곳 서포터즈 한 명 한 명이 최소 그녀 정도의 축구광인 셈이다.

이런 도시에서, 이 지역을 대표하는 구단을 운영한다는 것은 흥분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일이었다.


‘잘되면 영웅, 까딱 잘못하면 역적이라······.’


하지만 이서윤은 경쟁이나 이로 인한 긴장감을 즐기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피치 위 신해성 감독 또한 비슷한 부류처럼 느껴졌다.

3 대 0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피치에 들어왔음에도 그는 즐기고 있었다. 피치의 잔디를 죄 태워버릴 것처럼 승부욕에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저 사람과 함께라면, 영웅이 될 수 있을지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 것만 같다.

스탠드에 있는 그녀마저 이렇게 든든한데, 피치 위 선수들은 어떻겠는가?


팀이 침몰할 것처럼 흔들리고 있을 때 기꺼이 잘 차려입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거친 파도 속으로 몸을 던질 수 있는 감독이라니.


그가 단지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피치에 들어와 선수들과 함께 호흡한다는 것부터가 다른 감독들과 다른 점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 장점보다 단점이 크지만,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신해성은 이를 자신만의 카리스마로 승화시킨 케이스인 것이다.


그때.


“근데 저 감독 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난 거지?”

“그러니까! 이 정도면 상위리그에서도 선수로 활약할 수 있지 않나?”


현역 선수들보다 공을 잘 차고 경기도 뛰는 감독이라는 점이 부각되며, 벌써 사람들의 이목을 바짝 끌고 있었다.


*******


한편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의 관객들을 기쁨과 혼란, 의문에 빠뜨린 신해성은 하프타임을 맞이하여 선수들과 함께 60에서 80 평방미터 남짓 되는 드레싱룸으로 들어갔다.


방금 한 골을 따라잡고 환호 속에 퇴장해서 그런지 출전 선수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여전히 울상인 선수들이 몇몇 보이긴 했지만 고작 한 골 만회했다고 장난스럽게 웃고 떠드는 것보단 낫다.

무엇보다 평소 장난기가 많은 카이 레이튼마저 결의에 찬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선수들 면면을 살피던 신해성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전반에 개판이었다. 사실 경기력만 보면 3 대 0이 아니라 4 대 0, 5 대 0이 됐어도 할 말 없었지.”


선수들이 이를 악물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해성이 들어오고 나서야 겨우 3점차에서 2점차로 줄어들었다. 만약 흐름이 바뀌지 않았다면?


선덜랜드 AFC가 시도한 슈팅 횟수를 고려했을 때, 몇 골 더 실점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피치에서 뛰는 너희가 가장 뼈저리게 느꼈을 거야.”


따라붙는 신해성의 한마디에 선수들이 분분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끔찍했어요.”

“모두를 실망시켰습니다.”


선수들은 무릎 위에 올려둔 주먹을 움켜쥐거나 머리를 숙이고, 혹은 허공을 노려보며 자책하고 있었다.


그들의 면면을 바라본 신해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를 갖고 경기장을 찾아준 관객들이 야유를 보낼 땐 창피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 그래서 나부터도 놓칠 뻔했다.”

“······?”


선수들이 얼굴을 들었다. 창피하면 창피한 거지 잊었다고? 뭘?

그 의아한 표정을 응시하던 신해성이 말을 이었다.


“겨우 세 골 먹었다는 걸.”

“예?”

“그게 무슨······?”


선수들이 눈을 크게 치뜨며 선뜻 알아듣지 못했지만, 신해성은 역발상적인 정신 승리를 입에 담았다.


“축구에서 팀워크는 공기 같은 거야. 당연한 거고, 없으면 죽는 거지. 지금껏 우린 숨도 못 쉬고 싸웠는데 세 골밖에 안 먹힌 거야. 봐, 정신 좀 차리니까 바로 한 골 만회하는 거.”

“······!”


선수들의 눈매가 좀 더 확장됐다. ‘이게 맞아?’ 되묻듯이 서로를 마주보거나,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라는 표정으로 미간을 좁히는 선수들도 있었다.

그러든 말든 신해성은 꿋꿋이 궤변을 늘어놨다.


“우린 패스를 하니 마니 신경전을 벌이느라 선덜랜드가 뭘 하는지도 몰랐지만, 쟤들은 지금껏 우리 숨통을 끊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공격하고 있었지. 그렇게 죽기살기로 넣은 게 세 골이라고.”

“아!”


카이 레이튼이 탄성과 함께 되물었다.


“그러니까, 우린 최선이 아니었는데 쟤들은 최선이었다는 거네요?”


신해성이 미미한 웃음기를 드러내며 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그가 선수들에게 물었다.


“그런 거지. 그래서 말인데, 최선이었냐?”

“······.”


잠시 고민하던 선수들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골을 넣은 어린 선수가 대답했고.

뜻밖에, 루이스 안토니우 마르티네스 역시 어렵사리 입을 뗐다.


“아니었습니다.”

“자랑이다.”


핀잔을 준 신해성이 루이스를 바라봤다.


“루이스. 너는 패스 정확도도 높은 편이지?”

“예 뭐······ 그런 편이죠.”

“수비는 어때?”

“솔직히 그럴 바에는 공격에 치중하지만······ 기본은 할 줄 압니다.”

“그럼 체력은?”

“체력은 좋은 편입니다.”

“그런데도 너는 패스도 안 하고 수비도 안 했어. 전반전에는 70퍼센트 정도 힘을 숨겼군 그래.”


그를 지나친 신해성이 이번에는 카이 레이튼을 돌아봤다.


“카이. 넌 빠르고 크로스에도 자신있잖아. 루이스가 좋은 위치로 들어갔을 때 왜 크로스 안 올렸어?”

“······그냥 뭐, 저 자식이 워낙 패스를 안 하니까 저도 안 했던 거죠.”

“루이스가 그렇게 고집 부리다 상대 선수들한테 둘러싸였을 때 공 받으러 뛰어 들어간 적은?”

“그게, 처음에는 갔습니다. 근데 끝까지 패스 안 하고 나대길래 골탕 좀 먹어보라지 싶었죠.”

“이제 알겠나? 세 골 실점으로 끝난 게 다행이란 걸.”


신해성이 선수들을 차례로 일별했다.


“세 골 먹혀도 괜찮다. 네 골 넣으면 되니까.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진심을 다해 뛴다면, 지금보다 열 배는 강해질 테니까.”

“······!”

“아직도 선덜랜드와의 두 골 점수차가 부담되는 사람?”

“없습니다!”


선수들이 외쳤다. 신해성의 말이 궤변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분명한 점은, 도무지 극복이 힘들 것 같던 선덜랜드 AFC와의 점수차나 전력차가 별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한번 마법을 부린 신해성이 말했다.


“모여봐.”


선수들이 서로 어깨를 걸고 둘러섰다.

이윽고, 신해성의 입술을 비집고 한마디가 새어나왔다.


“겨우 두 골이다.”

“두 골.”

“겨우 두 골.”


선수들이 잇따라 추임새를 넣고.


“역사를 쓸 순간이 왔다. 이제 시작이야. 우리는 지지 않는다.”

“예쓰!”

“렛츠 고!”


이처럼 15분의 하프타임을 마무리한 신해성은 선수, 코칭스태프들과 함께 터널을 지났다.

런던 로드 스타디움의 터널 입구 위, 교훈처럼 걸려있는 액자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Upon this rock.


이 반석 위에.


터널을 나가며 선수들은 액자를 한 번씩 터치할 것이다.

전통대로.

하나 신해성은 선두로서, 마치 성경책에 손을 올리고 서약하듯 액자를 만지며 말했다.


“오늘부로 시합에서 이겼을 때만 팀 모토를 터치할 수 있다. 그게 우리의 새로운 전통이야.”


신해성이 앞서 나가고, 무심코 손을 움찔거린 1군 선수들은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젠장, 지금은 지고 있잖아.’

‘이기자.’


신해성은 선수들이 습관적으로 이행하던 사소한 전통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서 그들이 다시 한번 결의를 다질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승리를 다짐한다고 해서 전광판의 점수가 바뀌진 않는 법.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치 거대한 산맥처럼 피치를 둘러싼 관중석 스탠드에선 쉼없이 함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신해성은 이 분위기를 사랑했다. 태어나 가장 짜릿한 순간이 이곳에 있었다. 만약 목숨이 걸려 있지 않았더라면 더그아웃은 쳐다도 안 보고 피치 위에서 주어진 모든 시간을 보내고 싶을 정도로.


하나 피터버러 유나이티드로 최상위 리그에서 트래블을 달성하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였다. 어디서 떠벌리든 모두가 미쳤다고 말할 만큼······.


신해성은 그와 같은 일을 해내야 했다. 이는 선택이 아니었다. 여기서 평생 썩거나 잘려서 영혼을 소멸당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평생을 다 바쳐도 될까말까한 일을 최대한 빨리 해내야 하니 한시도 낭비할 시간이 없다.


‘이긴다.’


승리에 대한 그의 열망은 어느 누구에게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는 이따위 거지 같은 룰에 목숨을 저당 잡힌 채 운명에 질질 끌려다닐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순식간에 뒤집어주마.’


그의 두 눈이 번뜩이는 그때, 선덜랜드 AFC 공격수의 발끝에서 경기가 시작됐다.


툭!


신해성은 공을 쫓거나 특정 선수를 견제하지 않았다. 선덜랜드 선수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그들이 지금껏 취해온 움직임을 떠올렸다.


어떤 팀이든 그들이 익숙한 포메이션과 전술에서 실시간으로 벗어나긴 어려운 법.


아니나 다를까, 신해성의 시야로 공보다 앞서 밀고 내려오는 선덜랜드 선수 둘이 들어왔다.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2선과 3선 사이 빈공간으로 중앙침투하는 선덜랜드 공격수, 그리고 1선과 2선 측면에서 빠르게 달려 내려오는 미드필더를 발견한 것이다.


신해성은 이들 사이 공간에 자리를 잡고 몸을 돌렸다. 마치 파도타기를 하듯 상대 공격 흐름에 휩쓸려 내려가며 좌우를 꾸준히 살폈다.


물론 다 같이 평행선상에서 뛰고 있기에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공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다. 빠르게 이동하는 공을 찾으려 정신을 팔았다간 끊임없이 움직이는 상대팀 선수들을 놓칠 테니까.


대신 그는 자신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뛰고 있는 목표물 둘을 살핌으로서 그들 뒤에서 날아오는 공을 제때 포착할 수 있었다.


그 순간.


파바박!


신해성이 허벅지에 힘을 실으며 잔디를 밟았다. 순식간에 속도가 올라가며 그가 튀어나갔다. 공이 떨어지는 위치를 예측하고 두 명의 표적 중 미드필더가 있는 방향으로 내달린 것이다.


분명 상대팀 미드필더도 딱히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먼 거리에 있었으나, 순식간에 그 간격이 좁혀졌다. 그렇게 한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던 신해성은 공이 지면과 가까워진 시점에는 이미 미드필더 근처에 다다라 있었다.


“······!”


뒤늦게 그를 발견한 미드필더가 눈을 부릅떴지만 신해성은 가속도가 실린 상태. 그는 출력을 끝까지 당기고 있었고, 상대는 공을 받기 위해 동력을 어느 정도 풀어놓은 상태였기에 충돌에 대비해 반사적으로 흠칫하고 말았다.


그때, 신해성이 지면을 밟는 각도를 바꾸고 무릎과 허벅지를 튕기며 아슬아슬하게 방향을 바꿔 미드필더 앞으로 스치듯 지나갔다.

물론 이 와중에 그는 하강하는 매가 사냥감을 낚아채듯 날아든 공에 발을 가져다 대며 인터셉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툭!


너무도 손쉽게 공을 잘라먹은 신해성이 전방을 향해 크게 외쳤다.


“들어가!”


역습 시작.

만여 명 관중들의 함성 속에서도 쩌렁쩌렁 피치를 울리는 목청으로 소리친 그가, 반격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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