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블루티풀 님의 서재입니다.

필드의 빌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스포츠

새글

블루티풀
작품등록일 :
2024.09.07 01:00
최근연재일 :
2024.09.19 23:2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10,441
추천수 :
333
글자수 :
130,512

작성
24.09.16 11:20
조회
272
추천
14
글자
17쪽

필드의 빌런 19

DUMMY

‘이서윤.’


오성호텔 이태주 사장이 직접 부임할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당연히 전문경영인을 보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태주 사장의 장녀가 왔다. 신해성이 축구 천재라면, 그녀는 그냥 천재였다.


17세에 영국으로 건너와서 A-level 과정을 통해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부 입학, 3년도 안 돼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후 MBA 과정 수료 및 핀테크 스타트업 설립······ 다시 3년 만에 초기 투자금의 10배가 넘는 700만 파운드에 회사를 매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상세하게 아느냐 하면, 이곳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그녀에게 직접 들었으니까.

그것도 침대에서.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분명 그런데, 그의 뇌리에 맺힌 기억들은 이 세상에선 모조리 일어난 적 없는 일들이다.


그는 악수를 청하는 이서윤의 손을 가볍게 맞잡으며, 마치 기억상실증 걸린 전 여자친구와 다시 만난 느낌을 받았다. 한땐 너무나 익숙하던, 작고 가늘고 차갑고 보드라운 손의 촉감이 낯설어서 그런지 기분이 묘했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언제나 그렇듯 시선을 피하지 않고 빤히 마주 보며 묻는 그녀의 맑은 눈을 응시하던 신해성이 손을 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잠시 다른 세상을 헤매던 의식이 현실로 돌아온 까닭이다.


“아닙니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녀는 여성에 나이도 어리지만 그 누구보다 구단주로서 자격이 차고 넘쳤다.

영국에서 유학하며 느끼는 외로움을 축구 경기를 보며 달래서 그런지 어지간한 남자들 이상으로 축구를 애정하며, 또 수십 년 기업을 운영한 아버지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전화해서 조언을 구하던 기억이 있을 만큼 명석한 두뇌와 칼 같은 판단력을 지녔으니까.


신해성은 이러한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기에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뿐이지만, 그 모습이 예상 밖이었는지 이서윤이 눈을 빛냈다.


“다행히 촌스러운 사고방식을 가진 분은 아닌 것 같네요.”

“비슷한 처지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해성이 모처럼 능글맞게 받아넘겼다.

그는 나름대로 반가운 마음에 까분 거지만 너무 갔던 모양인지, 이서윤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의 현 구단주가 식당에 나타났다.


“구단 사무실로 먼저 오지 않으시고요. 그럼 제가 직접 아카데미 투어를 해드렸을 텐데.”


사무실이 있는 런던 로드에서 냉큼 달려온 것이다.

애물단지나 다름없는 구단의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마당에 금쪽같은 고객님이 행차하셨으니 그럴 수밖에.


“어차피 런던 로드로 가던 참에 들린 거라 직접 오실 필요 없는데요. 그래도 이왕 오셨으니 같이 식사하시죠. 마침 자리에 계신 감독님한테 새 소식도 알려드릴 겸.”


신해성과 함께 일어났던 코치진이 다소 떨떠름한 얼굴로 자리에 다시 앉았다. 이미 식사를 하고 있던 그들로서는 졸지에 먼저 일어나기 애매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회식 자리에 갑자기 부장님이 합류하게 된 셈.


하나 이를 조금도 개의치 않은 이서윤이 현 구단주와 에밀리를 대동한 채 배식을 받아와서 입을 열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저보단 서로에 대해 잘 알고 계시겠지만, 데이빗은 앞으로도 구단 이사로 남아서 저를 도와주기로 하셨어요.”


곧 전임 구단주가 될 데이빗 맥레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남을 거라고 차마 생각하지 못한 코치진 모두가 놀란 표정을 했다.

전재산을 투자해서 손해만 본 마당에 구단에 남겠다니.

그것도 축구에 관해서 만큼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영국인 남성, 심지어 전직 구단주가 자신의 구단을 인수한 동양인 여성을 직속 상관으로 모신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신해성만큼은 그러려니 했다.


‘역시 이서윤이야.’


한국에서 오성 블루윙즈를 상대로 벌인 친선 경기에서 승리하는 등 팀이 어딘가 변화할 것 같은 낌새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아직 데이빗이 구단 매각 결정을 후회할 정도는 아니다.

그랬다면 애초에 매각을 취소했겠지.

즉, 그가 구단에 남도록 설득한 것은 이서윤이라는 뜻이다.

그녀는 영리한 눈으로 자리의 코칭스태프를 훑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저는 구단 경영에 대해 잘 몰라요. 도움이 절실하죠.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보드진이 관여해선 안 되는 불가침 영역이 있다고 생각해서예요. 전술은 중요하지만, 시합에서 승리하는 건 결국 인간이잖아요? 저는 이 클럽의 부채를 탕감해줄 수는 있지만, 이 팀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피치에 서는 여러분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자금이나 스폰서를 끌어올 수 있어요.”


이 소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러하다.

성과를 내라.

성과만 나온다면, 자신은 언제든 자금을 수혈받을 능력이 된다.

그에 신해성이 대답했다.


“저희는 우승할 겁니다.”


코치진이 그에게로 고개를 홱 돌렸다.

승격도 아닌 우승을 하겠다고 확신하다니?

하지만 신해성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확언했다.


“피치 위 전사들을 믿으세요. 선수단도, 코칭스태프도 반드시 잘 해낼 겁니다.”

“최근 몇 시즌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것으로 아는데, 굉장한 자신감이시네요.”


흥미로운 얼굴로 넌지시 묻는 이서윤을 향해 신해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승하기에는 차고 넘칠 만큼 좋은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들이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유지할 겁니다. 만약 불안하시거나 못 믿으시겠다면, 이태주 사장님의 안목을 믿어주십시오.”


아버지 이야기에 이서윤이 미간을 좁혔다. 그녀를 내면까지 잘 알고 있는 신해성이야 나름 장난치며 약을 올린 거지만, 정작 이서윤은 다른 현실에서 발끈하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 세상의 신해성은 아무것도 모르는 생판 남이니까.


“그래요. 아버지를 설득한 실력으로 한번 잘해보세요. 우린 한 버스를 탔으니 서로 믿어야죠. 단, 버스에서 내린 사람까지 태우고 갈 수는 없어요. 무슨 일을 하든 구단의 방침을 최우선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감독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상의해 주세요.”


아마 취임사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감독은 선수를 추천하거나 거부할 권리가 있지만, 선수를 사고 파는 것은 본래 구단의 몫이기 때문이다.

신해성도 이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식사가 끝나고, 이후 그들은 또 보자는 인사를 나눴다.

이 과정에서 곧 전임자가 될 데이빗이 신해성과 악수를 나누며 어깨를 두드렸는데, 신해성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머리 위에 떠있는 별무리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


기존보다 황금별이 하나, 잠재력을 뜻하는 푸른별도 하나 생겨 있었다.

자금력과 능력을 갖춘 신임 구단주 이서윤이 와서인지, 아니면 이사로 직책과 업무가 달라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발견임에는 틀림없었다.

물론 그보다 더 큰 수확은 이서윤이었다. 그녀와 악수를 나누는 순간 눈에 들어온 별무리는 찬란하기 그지없었으니······.


★★★☆☆


세상은 아직 모를 것이다.

유럽 리그를 통틀어 스무 명도 채 안 되는 이십대 구단주 중 이런 거물 예정자가 있으리라고는.

세계 굴지의 대기업 오성을 등에 업은 이서윤은 오성가의 직계 핏줄이라는 점에서 이미 월클이었다.


*******


신해성은 비시즌 친선 경기 제안을 모두 거부했다. 대신 남은 7주 동안 60회의 훈련 일정을 소화했다.


이미 코치진의 마음을 사로잡은 신해성은 훈련 스케줄을 짜서 그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선수 개개인의 역량 강화에 힘썼다. 이처럼 선수들을 돌아가며 일 대 일로 지도한 덕분에 시즌 첫 경기인 두 달 후까지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신해성에게 일 대 일 지도를 받은 날이면 선수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 감독님은 진짜야. 부임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 장점을 정확히 아시더라.”

“맞아. 귀신이 따로 없더라고. 게다가 뭐 하나 허투루 시키는 법이 없었어.”

“나도, 축구를 다시 배우는 느낌이더라니까.”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훈련을 시키긴 해. 일 대 일 지도받고 단체훈련 해보면 확 는 게 느껴질 정도야.”

“생각 차이만으로 이 정돈데 능숙해지면, 어쩌면 우리 진짜 사고칠 수 있을지도.”

“빨리 시합 뛰고 싶다.”

“팀 전체가 상향 평준화되는 느낌이야.”


선수들은 이처럼 효과적인 훈련을 받다보니 하루하루 쌓여갈 때마다 달아오르고 있었다. 다들 하루빨리 실전에서 성과를 확인해보고 싶은데 올 비시즌 땐 친선 경기도 없어서 풀 데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8월 5일, 선덜랜드 AFC와의 리그 원 시즌 첫 경기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장소는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의 홈구장인 런던 로드 스타디움.


그동안 피터버러가 한국으로 원정 간 친선 경기에서 2부 리그인 챔피언십 레벨의 K리그 팀을 이겼다는 둥 이래저래 소문이 무성했기에 제법 많은 팬들이 홈구장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시즌권 판매 실적은 저조했지만, 다시금 관심을 끌어오는 데에는 어쨌든 성공한 셈이다. 다만, 팬들은 다들 환호와 야유를 양쪽 다 단단히 준비하고 온 상태.


선수들은 이번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시즌 첫 경기가 그 시즌의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뭐야?”

“아니, 왜 절반이······!”


피터버러의 선수층 자체가 얇아서 선발 걱정 없이 명단을 확인한 선수들은 잇새로 탄성을 뱉었다. 절반이 어린 선수들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임시 주장인 메이슨 로이스턴이 선수단을 대표해 문의를 하냐마냐 말이 많았지만, 결국 군말 없이 따르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유인즉,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감독님이잖아?”

“하긴. 감독님은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셔. 선수 선발은 감독 권한이고.”

“감독님을 존중한다면 우리가 좀 더 인내심을 가져야 해. 시즌 첫 경기부터 대립하는 건 옳지 않아.”

“그건 그렇지.”


불만이 있던 선수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만큼 신해성에 대한 신뢰감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일까?

경기 당일, 팀버스를 타고 런던 로드 스타디움에 도착한 선수들은 드레싱룸에서 전과 달리 유연한 신해성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1, 2군 선수들을 모두 드레싱룸으로 불러모은 그가 말했다.


“나는 선덜랜드 AFC가 더 이상 우리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린 시즌 중 리그 원에서만 마흔여섯 경기를 치러야 하지. 이 와중에 리그컵과 FA컵 같은 토너먼트도 생각해야 돼. 그에 반해 선수층은 너무 얇고, 그중에는 재활 중인 선수들도 있다. 그래서 이번 경기를 통해 몇몇 어린 선수들의 기량을 확인해보려는 거야.”


그제야 1군 선수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리저브팀이나 어린 선수들 역시 눈을 빛냈다. 어쨌든 이들에게는 기회인 까닭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신해성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는 다시, 말 몇 마디로 선수단 분위기를 뒤집어버렸다.


“다음 경기는 챔피언십에 속한 입스위치와의 리그컵 토너먼트고, 지면 그대로 탈락이니 전력으로 갈 생각이다. 오늘 선발되지 않은 인원은 무조건 들어간다고 보면 돼. 단, 나머지 선발인원은 오늘 경기를 보고 결정하겠다.”

“······!”


선수들이 입을 딱 벌렸다.

선발 명단에서 빠진 채 인내해야 했던 인원들과, 선발 명단에 들어간 선수들의 입장이 뒤바뀌며 희비가 엇갈린 것이다.

선수들은 그제야 눈치를 챘다.


‘그러고 보니······?’

‘포지션이 겹치는 녀석들이잖아······!’

‘일부러 같은 포지션에 1군과 리저브팀, 유스팀 소속을 배치한 거야.’

‘제기랄, 얄미울 정도로군······.’


이렇게 되면 어떻게 이 악물고 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한편, 이 와중에 자존심이 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중 한 명은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의 스트라이커 존 킬리언.

그는 마크 로스가 팀을 떠나고 이제 좀 1군으로 자리 잡나 싶었던 찰나, 어디서 나타난 루이스 안토니우 마르티네스가 상당히 거슬렸다.

다음 경기 선발 명단에 들지 못하고 리저브, 유스팀과 함께 시험을 당하게 된 것도 모두 저놈 탓이라고 여겼다.

하물며 피터버러 유나이티드를 싸잡아 개무시하던 놈이기에 더더욱 지고 싶지 않았다.


‘왜 감독님은 나한테만 이렇게 매정하신 거지? 하늘이여,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하지만 굴러들어온 돌인 루이스 안토니우 마르티네스 역시 지금 상황이 마땅찮았다.


‘후우, 이런 급 떨어지는 오합지졸들과 포지션 경쟁이라니.’


신세 한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그는 즉시 반발하지 않았다. 지시를 내린 인물이 다름 아닌 신해성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실력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무시하다 보니, 자신보다 실력이 월등한 상대에게는 존중을 보이는 그였다.

하물며 그 실력자가 감독이라면야.

그래서인지 간단한 전술 설명을 마친 감독이 코치진을 데리고 드레싱룸을 빠져나가자마자, 존 킬리언과 눈이 마주친 루이스 마르티네스가 한마디 했다.


“공 받으면 패스나 잘해라. 이 형님이 게임 터뜨려 줄 테니까.”


그에 얼굴이 붉어진 존 킬리언이 대답했다.


“닥쳐, 저니맨. 구제불능 문제아 자식아. 팀워크에 방해되니까 네놈이나 나대지 말고 찌그러져 있어.”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한바탕 충돌할 뻔했으나, 때마침 바로 시합에 나가야 하는 선수들이 끼어들며 그들을 말렸다.


“이봐, 그만해.”

“싸우지마. 화는 선덜랜드 놈들한테 풀라고.”

“파이팅까지 다 같이 외쳐놓고 서로 왜 이래? 애들이 본다.”


유소년 선수들도 있는 자리었기에 그들은 화를 누그러뜨렸지만,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결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합이 시작된 후, 선덜랜드 AFC 팬들이 점거한 일부 관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울려퍼졌다.

그것도 몇 번이나.


3 대 0.


전반에만 세 골이나 먹힌 처참한 스코어에 피터버러 관중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당장 일어나서 경기장을 박차고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그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뜻밖에도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서 있던 피터버러 측 젊은 동양인 감독이었다.


어느 순간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른 그는 마치 노출증 환자처럼 옷을 벗기 시작했고.


“아, 제발.”

“선발로 주전을 안 쓰고 리저브팀이랑 어린애들을 갖다 놓더니, 저건 또 뭐하자는 거야?”

“더 이상 우릴 쪽팔리게 하지 말라고. 빌어먹을!”

“제기랄, 대체 문제가 뭐야? 이번엔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궁금해서 집에 갈 수도 없잖아!”


피치 위 선수들과 더그아웃의 코칭스태프를 보며 손가락질하고 욕설을 퍼붓던 피터버러 팬들이 절규했다.


신해성은 그러든 말든 슈퍼맨이 변신하듯 숨겨져 있던 유니폼을 선보이더니 심판과 몇 마디 주고받았다.


이어서, 터치 라인 근처에 있는 존 킬리언에게 외쳤다.


“야, 조니! 나와!”


다음 경기, 반드시 선발에 들고 싶은 존 킬리언이 일 대 일 지도를 받은 후부터 이름 뒤에 ‘y’를 붙여서 이름을 부르는 영국식 애칭으로 자신을 지목하는 신해성을 피해 슬금슬금 뒷걸음 치는 그때.


“조니! 항명이냐?”


신해성이 관중석에서 쏟아지는 야유를 ‘13’이 적힌 등번호로 받으면서도 꿋꿋이 외쳤다.

그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열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덜컥 겁이 난 존 킬리언은 무기력하게 터치 라인 밖으로 나왔다.

패스 안 하고 멋대로 플레이한 건 루이스 마르티네스도 마찬가지인데 왜 자신에게만 그러냐는 불만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감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니미.”


1군을 제외한 팀 내 로테이션 자원과 어린 선수들을 관찰하기 위해 이번 경기에선 굳이 직접 나설 생각이 없었던 신해성이 나지막이 구시렁거렸다. 혹시나 해서 입고 온 정식 유니폼을 여기서 게시하게 될 줄이야.


존 킬리언, 조니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터치 라인 안으로 들어선 신해성은 머리를 좌우로 꺾으며 크게 숨을 한 번 뱉었다.


그동안 팀을 리빌딩한다는 이유로 훈련장에만 처박혀 있으랴, 지구 반대편 한국까지 가서 경기하랴, 팬들에게 뭔가를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없었지만 이젠 알려줄 때가 된 것이다.


이번 시즌 당신들이 응원하는 피터버러 유나이티드는 다를 거라는 걸. 시즌권을 끊고 응원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려면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느냐가 중요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필드의 빌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필드의 빌런 23 NEW 4시간 전 53 5 12쪽
22 필드의 빌런 22 +1 24.09.18 167 16 12쪽
21 필드의 빌런 21 +1 24.09.17 234 13 12쪽
20 필드의 빌런 20 +1 24.09.16 264 15 12쪽
» 필드의 빌런 19 +2 24.09.16 273 14 17쪽
18 필드의 빌런 18 +2 24.09.15 304 16 12쪽
17 필드의 빌런 17 +1 24.09.14 320 14 12쪽
16 필드의 빌런 16 24.09.14 344 16 14쪽
15 필드의 빌런 15 24.09.13 375 16 12쪽
14 필드의 빌런 14 +2 24.09.13 402 14 14쪽
13 필드의 빌런 13 24.09.12 400 15 14쪽
12 필드의 빌런 12 24.09.12 408 11 12쪽
11 필드의 빌런 11 24.09.11 408 13 13쪽
10 필드의 빌런 10 +3 24.09.11 421 16 12쪽
9 필드의 빌런 9 24.09.10 431 13 12쪽
8 필드의 빌런 8 24.09.10 460 14 11쪽
7 필드의 빌런 7 24.09.09 464 12 13쪽
6 필드의 빌런 6 +2 24.09.09 499 13 12쪽
5 필드의 빌런 5 +1 24.09.08 536 14 12쪽
4 필드의 빌런 4 24.09.08 547 11 12쪽
3 필드의 빌런 3 24.09.07 605 17 14쪽
2 필드의 빌런 2 24.09.07 867 22 14쪽
1 필드의 빌런 1 +5 24.09.07 1,660 2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