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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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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티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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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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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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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빌런 17

DUMMY

점차 훈련장의 풍경이 가까워지며, 가벼운 스트레칭을 마무리한 선수들이 새로운 훈련에 돌입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


3열로 나란히 선 선수들이 3인 1조가 되어 전방으로 천천히 달려나갔다. 동시에 세 가지 종류의 패스를 교대로 진행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침투해들어가는 동료에게 찌르는 패스, 두 번째는 2 대 1 패스, 세 번째는 일반적인 패스를 주고받으며 패널티 에어리어에서 반대편 패널티 에어리어까지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약 70미터 거리를 이동한 선수들은 반대편 패널티 에어리어를 찍자마자 전속력으로 돌아갔다.


확실히, 루이스가 기존 팀에 있을 때 경험했던 800미터에서 1000미터 달리기나 장거리 달리기 같은 저항운동에 비해 흥미롭고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3부 리그 이름값 하는구나.”


그는 혀를 차고 말았다.


공을 왜 저렇게밖에 못 다루지?

패스도, 움직임도, 트래핑도 서툴기 짝이 없다.

게다가 저게 전력질주라고?


“왜 여기서 뛰는지 알겠다.”


루이스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뭐, 이처럼 낮은 레벨의 리그에서 양민학살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하나 그는 놀러 온 것이 아니다. 일하러 온 거지.

걸맞는 보상이 필요했다.


“역시······ 오래 있을 곳은 아니야.”


그 순간 선수들을 따라 나란히 걸으며 독려하는 감독이 눈에 들어왔다.


“더 빨리! 터치 수 줄여!”


역시 이반 블레이크의 말처럼 감독만큼은 뭘 좀 아는 것 같긴 했다. 루이스와 같은 지점을 보고 답답한 듯 지적 중이니까.


하지만 그게 말처럼 되나.


다른 코치들도 선수들이 패스를 주고받으며 움직이는 과정에서 필요 이상 속도를 내거나 기술적인 실수를 저지르면 이를 교정해주고 있었지만, 선수들은 여전히 흐름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든 말든 선수들을 몇 바퀴 돌린 감독은 론도에 이은 두 번째 세트를 마무리했다.


신해성 감독과 루이스 마르티네스의 눈이 마주친 것도 그때였다.


루이스는 당연히 그가 선수들을 잠시 코치진에게 맡기고 다가올 줄 알았다.

자신은 분명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한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망주였고, 프리미어리그의 기대주이기도 했으니까.

비록 감독이나 팀 동료들과의 불화나 잦은 부상, 기량 하락으로 악재가 겹치면서 여러 클럽을 전전했다지만 3부까지 내려올 실력은 아니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이 다 등을 돌려도 유일하게 자신을 비호해주던 이반 블레이크의 권유가 아니었더라면, 백수로 놀면 놀았지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터다.


그런데도 신해성은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긴커녕 첫 대면부터 그의 발작 버튼을 눌렀다.


“저니맨, 여기서 뭐해?”


저니맨.

여러 클럽을 옮겨다니는 선수.

혹은 기술적으로는 유능하지만 탁월할 수 없는 운동선수를 의미한다.

어딜 가든 둘 다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루이스 마르티네스의 검미가 치켜올라갔다.


“저니맨? 저한테 한 소립니까? 맞아요?”


신해성이 당연하다는 듯 되물었다.


“여기 저니맨이 또 있나? 우리 선수들 대부분은 피터버러가 친정팀인데.”


덧붙여, 그가 말했다.


“오후 훈련에 참여하려면 훈련장이 아니라 메디컬 센터로 가서 메디컬 테스트 받아야 돼. 시간이 많지 않으니 서둘러야 할 텐데 미리 못 들었나?”

“훈련하는 걸 그냥 지나칠 수가 있어야죠.”


루이스 마르티네스가 비릿하게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뭐 아시다시피 제가 저니맨 아닙니까? 여러 클럽을 전전하며 여러 감독과 선수들을 겪었죠. 그 경험에 빗대어 한마디 하자면 감독이 욕심만 그득해서 못 따라오는 선수들한테 감당도 못 할 훈련을 강요하는 것도 자질 부족이더라고요.”


그러나 루이스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신해성이 어떤 상대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는 지난날 세계 최고의 나르시스트 놈들에게 이골이 난 남자였다. 심지어 그 자신은 그중에도 가장 중증이지 않았던가?


“이반이 선수를 보내준다고 했는데 코치를 보내준 건가? 이제 그냥 은퇴하려고?”

“······!”


한 방 먹은 루이스 마르티네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뭐라고요?”

“아니면 네 수준이 낮아서 내 훈련이 무리가 될 것 같다고 미리 밑밥 까는 거냐?”


신해성이 묻자, 가까이 있던 피터버러 선수들이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안 그래도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놈이 자신들을 대놓고 무시하는 듯한 소릴 지껄여서 기분이 상하던 참에 감독이 유쾌하게 반격해준 까닭이다.

선수들은 새삼 생각했다.


‘그렇지, 참.’

‘불쌍한 놈. 건드려도 될 인간을 건드려야지.’


선수들은 여기까지 하라고 조언해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루이스 마르티네스는 아직 분위기 파악을 못 했다.


“취소하세요.”


신해성이 혀를 찼다.


“하긴, 적응이 빠른 놈이었으면 애초에 맨체스터에서 여기까지 굴러떨어지질 않았겠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그가 덧붙였다.


“별수 있나. 한 명이 아쉬운 때 고쳐 써야지.”


신해성이 시니컬하게 피터버러의 현실을 인정해버렸다. 그에 따라 떠들썩하게 웃던 선수들의 웃음이 뚝 그치고.


여러 클럽을 전전하며 분란을 일으켜온 불화의 아이콘으로서, 본능적으로 분위기를 쥐락펴락하는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고 느낀 루이스가 도발하듯 물었다.


“고칠 자격은 되고요?”


이윽고 그가 덧붙였다.


“이반이 그러던데요. 그쪽더러 감독이 아니라 현역 선수로 뛰어야 할 양반이라고. 이렇게 보니 확실히 지도자 치곤 젊은 것 같긴 한데, 제가 한창 나이에 지도자 하는 사람 치고 공 잘 차는 사람을 못 봤거든요. 제가 저보다 커리어도 구리고 실력도 안 되는 지도자 말은 귀에 잘 안 들어와서요.”


신해성이 이마를 긁적였다.


“멍청한 놈이네.”


루이스 마르티네스의 눈빛에 공격성이 드러나는 와중에도 신해성은 안중에도 없는 듯 팩트 폭행을 했다.


“애초에 축구가 아니라 공놀이나 하고 있으니 그 수준을 못 벗어나지. 그거 아냐? 네가 진짜 존나 축구를 잘하면, 네 성격이 아무리 거지 같아도 네가 사람을 죽이지 않는 한 받아줄 강팀이 있을 거라는 거. 그런데 여기까지 왔다는 건 네가 어중간하다는 뜻이야.”

“당신이 뭘 알아?”

“공 좀 찬다고 감독이나 코치들보다 축구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놈보단 잘 알지.”


신해성이 반대편 패널티 에어리어를 턱짓했다.


“네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드리블을 해서 골을 넣었다 치자. 한 경기에 그 짓을 몇 번이나 할 수 있는데?”


피터버러 선수단은 물론 코칭스태프들까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더 이상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갑자기 나타난 건방진 인간이 아니었다. 오성 블루윙즈전에서 실제로 70미터 단독 드리블로 역전골을 성공시켰던 신해성만이 눈에 들어왔다.


반면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루이스 마르티네스는 건강미 넘치는 구릿빛 피부가 무르익다 못해 검붉은 빛깔을 띄고 있었다.


“이반을 봐서 계약서를 쓰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당신 실력을 보기 전에는 사인 못 하겠는데?”


루이스가 결국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신해성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이반을 믿고 계약하려고 했는데 이런 불량품을 보낼 줄이야. 폭탄 개조 좀 해야 쓰겠다.”


신해성은 자신의 실력을 썩힐 생각이 없었다.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팀을 우승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능력을 과시해서라도 불씨는 미연에 잡아야 한다.


루이스 마르티네스의 기를 꺾어놓지 않는다면 감독의 권위와 팀워크에 반드시 균열이 갈 것이다. 이는 그의 전적이 증명하고 있었기에, 신해성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를 다루기로 했다.


아마 이반 역시 그걸 원하는 동시에, 반신반의하고 있을 테니 더더욱 필요한 일이었다.


툭!


신해성이 공을 차주자, 루이스 마르티네스가 이를 발 안쪽으로 받았다. 이를 통해 주의를 끈 신해성이 고갯짓했다.


“축구화 신고 와.”


하나 루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입단 첫날이 되리라 여기고 장비를 가져왔지만, 그는 번거롭게 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자신은 이 미치광이 감독의 체면을 있는대로 구겨준 뒤 포르쉐를 타고 돌아갈 테니까. 그렇게 돌아가는 길 이반에게 전화를 걸어서 오늘 겪은 일을 설명하고 나무라면, 미안해서라도 다른 괜찮은 팀을 소개해주지 않을까?


“시간 아까우니까 간단하게 갑시다.”


루이스 마르티네스가 발밑에 있는 공을 반대편 골대 쪽으로 가볍게 굴리더니, 디딤발을 옆에 두고 왼발로 힘껏 후렸다.


뻐엉!


보폭과 모션이 크지 않은데도 공이 시원하게 뻗어 나가며 골대 20미터 전방쯤에 떨어졌다.


“당신과 나, 둘 중에 저 공을 먼저 골대에 넣는 쪽이 이기는 거야. 당신이 날 이기면 군말 없이 입단해서 고분고분하게 뛰어주죠.”


신해성이 먼발치의 공을 힐끔 쳐다본 뒤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던지.”


그는 대충 대꾸했다. 마음 같아선 자신이 이길 경우 5년 계약에 바이아웃 조항까지 달아서 묶어버리고 싶지만 지난번 마크 로스 건과는 상황이 달랐다.


이반 블레이크에게, 만약 피터버러가 이번 시즌 성적을 못 낸 상태에서 그가 보낸 선수가 이적을 원하면 군말 없이 놔주겠다는 약속을 해놨기 때문이다.


아무런 의욕이 느껴지지 않는 신해성의 어조에 다시 한번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낀 루이스 마르티네스가 양쪽 볼이 부풀 정도로 숨을 내쉬며 치미는 분노를 가라앉혔다.


“후우, 내가 현역이니까 장비 없이 하죠. 그럼 시작할까요?”


안 그래도 발이 빠른 그는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신해성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레칭이라도 하지 그래. 그러다 햄스트링 터질라.”

“웃기는 소리.”


루이스 마르티네스가 달리기 위한 자세를 취하고, 신해성이 선수들을 보며 말했다.


“다음은 개인훈련이니까 좀 쉬고 있어. 오래 안 걸린다. 코치, 시작 신호 좀.”


고개를 끄덕인 이안 윌러비가 스톱워치를 켰다.


“5초 뒤에 출발입니다.”


이미 신해성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그는 거침없이 시작 버튼을 눌렀다. 5초가 지나는 시점, 워치가 울렸다.


삑!


그 순간 루이스 마르티네스가 튀어나갔다. 아니, 튀어나가려 했다. 신해성이 갑자기 허벅지와 어깨를 동시에 밀며 붙어버리지 않았다면 분명 저 멀리 멀어지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루이스 마르티네스는 신해성이 몸싸움을 걸어올 것을 예기치 못했고, 출발과 동시에 무섭게 제로백을 올리던 중 부딪치면서 균형을 잡지 못했다.


콰당!


졸지에 나자빠진 그는 바로 고개를 쳐들었다. 시작과 동시에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를 넘어뜨린 신해성이 아직도 출발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미 망신당한 것, 반칙도 아니었기에 이대로 바닥을 나뒹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볼썽사나워질 따름이다.


그래서 루이스 마르티네스는 벌떡 일어났다. 용수철 같은 탄력을 발휘한 그는 수치스러운 감정을 날려버리려는 듯 첫발부터 빠르게 튀어나갔다. 그는 순식간에 멀어졌다.


‘이겼다.’


루이스 마르티네스는 확신했다. 설령 이반 블레이크의 말처럼 신해성이 대단한 선수라 해도 못 따라온다. 자신은 오프 더 볼 상태에서 달리기로 치면 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1, 2위를 다투던 몸이니까!


그렇게 확신하는 순간.


뻐엉!


뻐엉?

등뒤에서 들려와선 안 될 소리에, 루이스 마르티네스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설마.’


그럴 리 없다.

그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무, 무슨······.”


그는 풍경이 휙휙 지나갈 만큼 빠르게 달리는 와중에서도 중얼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그의 머리 위로 시원하게 날아가는 축구공 하나.


‘이건 말도 안 돼. 절대 그럴 리 없어.’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능성을 절박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곧 그 어처구니없는 상상이, 가정이 아닌 현실로 눈앞에서 벌어졌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공이 포물선을 그리더니, 골문 20미터쯤 앞에 멈춰 있던 공에 정확히 명중한 것이다.


퍽!


그렇게 튄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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